다들 그러잖아. 남자들끼리는 기싸움도, 은근한 따돌림도, 편 가르기도 없이 두루두루 잘 지낸다고.
이 말한 사람들 다 바보 아니야? 어떻게 단체 생활을 하면서 갈등이 없을 수가 있겠어.
뭐, 남자들은 주먹 싸움 한 번이면 푼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저 말하는 애들, 이 남초 집단에서 살벌한 기싸움을 한 달만 경험하면 그 소리가 쏙 들어갈 거라니까?
본격! 서바이벌 남친 찾기 w.명조
"용건 있어, 반장?"
채형원. 세무경영과 취업반. 그리고 1년 전 헤어진 내 전 남자친구. 3년 동안의 여중 생활을 청산하고, 인문계 남고에서 남녀공학 상고로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문배컨벤션고에서 처음으로 만난 남자 짝지. 성숙하지 않은 연애가 그러하듯 많이 싸우고, 그러다 오해가 깊어지고, 속을 살살 긁는 말로 상처 주며 참 껄끄럽게 헤어졌다. 대학생 언니들이 소수과에서 C.C하지 말라는 거, 나는 이미 체험했지 뭐야. 세경과 학생들 다 긁어 모아봤자 한 줌이고, 3학년 때 취업반에서 무조건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거든.
"채형원, 취업계획서 지금 너 빼고 다 냈어."
"오늘 집에 가기 전까지만 주면 되는 거 아니야?"
"내일이 아니라 오늘 종례 때 제출해야 돼. 일찍 적어서 줘."
채형원의 자리에 찾아가 책상을 쾅쾅 두드리며 닦달하는 이 친구는 세경과 취업반 반장이자 내 친구 유기현. 의자에 기대서 잠깐 쪽잠을 취하려던 채형원이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한다. 쌍욕 하나 오가지 않는데도 꽤나 불편해 보이는 분위기. 당연하다, 채형원과 사귈 당시 가장 싫어했던 내 친구가 바로 유기현이기 때문. 어이 없지, 이성 문제 관련해선 나보다 채형원이 더 속을 많이 썩였는데. 애꿎은 기현이만 싫어하고, 또 둘도 서로 죽일듯이 미워한다는 게.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점심 전에 줄게. 늦게 낼 일 없으니까 미간에 주름이나 펴라."
한숨을 쉰 채형원이 다시 이어폰을 귀에 끼려는데,
"미간에 주름 잡고 있는 건 기현이가 아니라 너인 것 같은데?"
잘 마무리되고 있는 대화에 굳이 끼어든 건, 나와 유기현의 친구 이민혁. 가재는 게 편이라고 또 유기현 편을 들어주는 것 같은데, 그들의 신경전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왜 그러나 몰라. 채형원의 얼굴에 짜증과 불쾌함이 차오르고, 반의 분위기 전체도 싸해지는 이 기분. 아, 제발 얘들아. 고3이나 됐으면 철 좀 들자!
"야, 매점 가자."
솔직히 채형원이 정말 정말 미운데, 대신 꼽주는 친구들이 좀 기특하기도 하고. 유기현과 이민혁이 아무리 유치해도 내가 딱히 나설 수 있는 방법이 더 있으랴. 눈치 없는 척, 맥락 없는 이상한 말을 해서 분위기를 풀었다. 야, 나 배고파. 가자. 등을 팡팡 두드리며 유기현과 이민혁을 뒷문 쪽으로 끌고 나갔다. 뒷통수가 하도 따가워서 뒤를 돌아봤더니, 아마 올해 들어 가장 짜증나는 표정을 짓고 있을 채형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악! 웬 가슴팍 하나가 튀어나와서 내 얼굴과 부딪힌다. 아, 뭐야! 열 받아서 올려다보니, 글쎄 이번엔 임창균이 있지 뭐야.
"...여주야, 안녕."
"아, 창균이 안녕!"
국제무역과에서 세무경영과로 전과한 임창균. 취업반에서 가장 불편한 친구를 꼽으라면, 채형원이 아니라 오히려 임창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야, 이게 누구야. 무역과 축구 에이스 임창균이네."
참으로 악연이 많은 창균이는, 무역과와 세경과 축구 결승전에서 반칙을 했던 다른 팀원을 옹호하다가 이민혁과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퉁명스럽게 입이 댓 발 나와서는, 창균이를 살살 약올리는 이민혁. 임창균은 말 없이 이민혁과 눈을 맞췄고, 짧고 굵은 눈싸움 끝에 성질만 더럽지 공격력은 제로인 이민혁이 깨갱하며 내 어깨 뒤에 숨는 것으로 신경전은 끝났다.
"전과한 지가 언젠데. 나 이제 세경과야."
성큼성큼 걸어가 채형원 옆자리에 앉는 임창균. 작년부터 임창균은 채형원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유기현, 이민혁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채형원은 나와의 이별과 함께 반이 떨어지게 되었고, 전과 후 친구가 없는 임창균과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한다. 뭐, 대충 이런 스토리인데... 문제는 그 작년으로 돌아가보면 말이지, 내가 임창균이 채형원과 친한 걸 모르고... 최근까지도 썸 아닌 썸을 탔단 말이지. 그러니까, 전 썸남과 전 남친이 짱친이 되었다, 이 말입니다.
"여주야, 임창균은 너한테 되게 살갑다. 전 썸남이 아니라 현 썸남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
"제발 닥쳐라."
"임창균은 안 돼."
"이민혁 넌 또 뭐야..."
남자애들 그깟 공 차는 걸로 이렇게 오래 삐져 있는게 말이 되냐? 이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정말 빈정이 상해 보이는 이민혁을 위해 억지로 다시 꿀꺽 삼켰다.
"절-대 안 돼. 차라리 채형원이랑 다시 만나."
"야, 그건 내가 싫거든?"
저기요, 그건 제 의사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교실 창문을 통해 창가 쪽 자리를 훑어보니,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채형원과 아직 나를 향해 웃으며 손 들고 있는 임창균이 보인다. 임창균 쟤는 내가 채형원이랑 사귀었다는 걸 모르나? 눈치도 안 보이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니 유기현이 뭐 어때, 바람 피는 것도 아니고 이미 헤어졌는데. 라며 낄낄댄다.
"나 진짜, 정말로, 자퇴하고 싶다..."
"헐, 나도."
"너네 없으면 나 학교 못 다녀. 할 거면 같이 하자."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인연이 한 반에 모이게 된 것도 참으로 기구한데, 졸업 전까지 1년 동안 얼굴 보며 지내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종례가 끝나고, 기현이와 민혁이랑 함께 교실을 나서려면
"잘 가, 여주야."
눈치도 없는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 내 속을 뒤집어 놓는 전 썸남 임창균이 보이고,
그 옆에는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앉아서 휴대폰만 내려다 보는 전 남친 채형원이 있다.
채형원과 원수 관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으르렁대는 유기현은 내 가장 친한 친구이며,
창균이의 인사에 답도 하지 못한 채인 나를 질질 끌고 가는 기분파 이민혁은 꽤 골치 아프다.
그래, 자퇴할 수 없다면, 내가 가장 먼저 학교를 뜬다. 세경과 취업반 중 내가 가장 먼저 취업하겠어. 나는 이 꼴 못 본다. 그렇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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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명조입니다. 저번 단편에서도 채군은 전남친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서도 그렇게 등장하게 되네요... 사실 고등학교 졸업한 지는 조금 지났는데, 내년부터 특성화고에서 고교학점제가 실행된다 하더라고요... 그럼 이제 정말 저는 학교를 모르는... 그런 어른이 되기 전에 학원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ㅎ.ㅎ 배경은 인문계 남고에서 남녀공학으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업고등학교입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실 지 모르겠지만, 이 더보기 부분까지 읽어주신다면야..? 정말 감동일 것 같아요 따흑쓰~ PC로 써서 그런지 모바일에 맞추려면 조금 가독성이 떨어지는데, 어디에 맞춰야할 지 감이 안 잡히네요 혹시 어떤 기기를 주로 사용하시는지, 어떤 형식이 편하신 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더 복잡하고, 귀엽고, 그런 이야기를 추가해서 곧 돌아올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배컨벤션고는... 몬베베 -> 문배배 -> 문배.. 이렇게 해서 탄생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