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남자랑 키스하면 생기는 일
(부제; 민윤기 특별편)
(민윤기 시점)
"7년동안, 널 기다렸어."
눈을 감았다. 열여덟의 네가 잔상처럼 떠올랐다.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넌 여전히 날 이해가 가지 않는 눈으로 바라본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올라온 서울에서의 삶은 치열하다 못해 잔인했다. 벌써 며칠 간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웠는지 모르겠다. 다만, 내가 하고있는 음악이 행복해서 이 삶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며 나를 달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 없는 알바와 한시간 남짓하는 크루 공연에서 나는 막내로서 이년간 천천히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수능봐서 대학은 가야지 않겠냐던 형들도 스무살이 된 나를 포기한건지 인정한건지 넌 평생 음악이나 하라며 웃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작한 패스트푸드 알바와 점심 때 시작한 카페 서빙, 저녁시간에 하는 고깃집까지, 이상한건 한 여자애가 계속 있다는 것이다. 단정하게 검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아침에는 햄버거를 점심에는 커피를 사가더니, 저녁에는 남학생 두명과 고깃집을 왔다. 계속해서 나를 관찰하는 듯한 눈빛에, 한마디 할 생각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자애는 계산을 마친 뒤, 나가버렸다.
내일 햄버거를 사면, 왜 그러는지 물으려던 생각은 크루 공연이 시작되자, 사라졌다. 그 여자애는 맨 앞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이해가 안가는 눈빛으로 나만을 바라보던 아이는 내가 형들과 인사하고 발걸음을 떼자, 나를 붙잡았다.
"죄송한데요, 시간있으시면 잠깐 얘기 좀..."
불안해보이는 아이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캬라멜 마끼야또와 그린티를 주문한 뒤, 내게 그린티를 건넸다. 아, 이렇게 받아 먹어도 괜찮은건가... 멍하니 그린티를 보고있자, 내 생각을 안건지, 그냥 마시라며 아이는 자리에 앉았다.
내가 그린티를 다 마시자, 아이의 말도 끝이 났다. 자신에 대한 소개는 하나도 없이, 자신의 친구가 크루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말이 고작이었다. 겨우 그 말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에는 눈물까지 고여있었다. 제발 부탁드린다는 그 말까지, 살짝 구겨지는 그린티 잔을 바라보며 아이의 잔을 바라봤다. 마끼야또는 잘반이나 남아있었다. 이름을 물어볼까하다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어섰다.
생각, 해볼께.
그 아이의 말대로 며칠 뒤, 남자애가 크루를 찾았다. 이 아이를 거절하면, 다시 그 여자애가 찾아올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내가 멍하니 그 녀석을 바라보자, 그 녀석은 나를 보며 살짝 웃었다. 여자애를 생각하며 좋아졌던 기분은, 그 미소로 끝없이 추락했다. 굳어진 표정을 보지 못한건지, 자신을 김남준이라 소개한 녀석은 내게 악수를 요청했다. 마주잡은 두 손을 보며, 그 애와도 잡았던 손일까, 생각했다. 민윤기, 뭐하냐. 아무리 외로워도 학생은 아니지.
난, 아마도, 그 날 너에게 첫눈에 반했을지도 모른다.
김남준이 공연에 서면 볼 수 있을 것 같던, 너는 일년동안 단 한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형들은 한명씩 군대에 갔고, 나 역시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입대를 앞두고, 나는 둘 뿐인 크루 작업실에 김남준을 불러냈다. 잠정적으로 해체될 크루의 마지막을 기약하기 위해서였다. 답지않게 핑크색 옷을 입은 김남준과 비어버린 작업실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가슴을 쳐대며 술을 마시던 김남준은 이내 나를 잡고 울기 시작했다. 당장 군대에 가는 것은 난데, 이 새끼는 날 잡고 인생 한탄을 시작했다.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겠다며 내게 소중한 것이라고 휴대폰을 건네는 김남준을 빤히 바라봤다.
김남준의 휴대폰을 켜자, 잠금화면으로 보이는 뒷태가 익숙했다. 뒤돌은 검은 원피스의 여자애를 중심으로 김남준과 다른 남자가 서있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나서야, 그게 너임을 알았다. 검은 원피스 위로 이년전을 검은 교복이 겹쳤다. 손은 다급하게 갤러리로 향했다. 어린 아이가 아버지의 지갑에 처음 손을 대는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잠금장치 없이 열리는 갤러리에, 김남준스럽게 정리된 폴더들이 있었다.
<낮누>
<이름>
<호시기>
<폴더없음>
두번째 파일 위로 떠오른 네 얼굴에 주저없이 손을 가져갔다. 백몇장의 사진들과 동영상, 거기에 네가 있었다. 짧은 동영상 하나를 누르자, 네가 울고 있었다. 눈가가 다 빨개질 정도로 울던 너는 뒤에서 아까 본 남자가 튀어나오자, 소리를 질렀다. 소리들이 섞여서 알아듣지 못할 때 쯤, 너는 김남준의 휴대폰을 껐다. 몇 차례의 사진들이 더 있다가, 동영상이 다시 나왔다. 아까와 같은 화면, 너는 그 남자의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아, 미안미안, 동영상이다"
김남준의 짧은 말이 끝나자, 동영상도 끝났다. 다음 장에는 너와 그 남자가 웃으며 찍은 사진이 있었다. 부어버린 눈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 너는 아무래도 좋았다.
"형, 뭐봐요?"
김남준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화장실에서 술이 다 깬건지 김남준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넘겨받았다.
"형, 얘는 안돼요"
"뭐가"
"얘는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그것도 되게 오래 됐을껄요?"
"...누가 뭐래?"
잠시 멍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김남준은 기지개를 펴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선약이 있으니 먼저 출발하겠다는 김남준을 보내며, 술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누굴까, 아까 그 남자일까, 바닥에 그냥 앉아 남은 술을 털어냈다. 울고있던 네가, 자꾸 아른거렸다. 짧아진 머리를 만졌다. 날 모르는 너를 좋아한다는 건..
이년은 빠르게 지났다. 여자친구 하나 없어서, 형들이 보내주는 연예인과의 사진을 받아야했지만, 옆 자리 동기가 이별편지를 읽으며 우는 추한 꼴을 보며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군대에 간 사이, 형들은 언더에서 나름의 이름을 날렸고, 김남준과는 소식이 끊겼다. 생각보다 잘 적응한 군대에서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제대 날짜가 다가왔다.
기회는 빠르게 주어졌다. 제대하고 처음 만든 곡을 형들의 도움으로 한 신인아이돌에게 주게 되었다. 신인 아이돌은 생각보다 큰 히트를 쳤고, 나 역시 그 덕에 작곡가로서의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꾸준히 작업해왔던 곡들을 다듬으면서, 음악을 다시 시작했다. 그 아이돌과는 음반작업을 세번이나 더 했다. 마지막 방송 때는, 꼭 보러가겠다고 약속한 것을 후회하며, 방송사로 향했다.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이상한 봉들과 풍선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애들에게 문자를 하려고 휴대폰을 켰다. 누군가, 내게 부딪혔다. 휴대폰이 떨어지고, 어깨가 밀쳐졌다. 내게 부딪힌 사람은 무릎으로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 내가 그 사람에서 손을 내밀자, 감사하고 죄송하다며 내게 인사를 한 뒤 다시 뛰어나갔다. 어디서 본 듯한 뒷모습에, 멍하니 바라보다가, 급히 휴대폰을 주웠다.
대기실에 들어서자, 몇명은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고, 몇명은 놀고 있었다. 예의상 사온 아이스크림에 애들은 환호를 지르더니 같이 먹자며 나를 끌어 당겼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자, 애들은 방송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저 누나들 이쁘지 않아요? 형, 저 누나들이랑 작업했었죠, 어때요?
"별로야."
"에이, 저 누나들 완전 착하지 않아요? 방송에서는.."
"조끼소년단 준비해주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스태프라고 적혀있는 흰티와 검은 바지, 5년만의 너는,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뜻하지 않게 너를 본 뒤로, 하늘이 나를 돕는건지, 너와의 연결고리가 계속해서 생겼다. 김남준의 이번 작업에, 내가 참여하게 되었고, 네가 일하는 프로그램에서 계속해서 내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음악평론가라는 자리가 부담스러워서 계속해서 거절했지만, 우연치 않게 본 그 프로그램의 작가이름 끝자락에 아슬하게 걸린 네 이름이 내가 출연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남준이 내게 야구를 보러가자고 권했고, 생각없이 갔던 야구장에는 네가 앉아있었다. 김남준이 내게 표를 줬으니 당연히 가운데 앉겠거니 싶었지만, 내 옆자리에 떡하니 앉은 너를 보며, 야구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김남준은 야구 시작 내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 듯 했다. 쉽게 내 위치를 알려줄 수도 있었지만, 내 옆의 네가 떨어질까, 김남준의 연락을 무시하며, 모자를 더 세게 눌렀다. 김남준이 너에게 무슨 말을 한 뒤, 자리를 뜬 것 까지는 의도한 일이었다.
날 변태로 보는 네 눈빛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키스타임 역시, 전광판에 너와 내가 담기자, 아무 생각 없이, 너에게 다가갔다. 입술은 닿지 않았지만, 얼굴은 짝사랑하던 여자애에게 고백이라도 한냥 뜨겁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아무렇지 않을리 없었다. 괜히 틱틱대는 김남준은 안중에도 없었다.
치킨집에서 잠든 너를 깨워 나올 때, 분명 멀쩡히 걸어가던 네가 갑자기 뒤돌아 섰다. 헤픈 웃음을 내보이며, 내 목에 얼굴을 묻는 너는 내 쇄골부근을 아프지 않게 물었다. 며칠 잠을 못자서 나가있던 정신이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급하게 애국가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김남준은 나에게서 너를 떼어냈다. 차에 억지로 밀려 들어가는 너를 바라보다, 나 역시 네 옆에 탔다. 마음이 급한 김남준이 세게 코너를 돌 때마다, 너는 나에게 다가왔다. 다시끔 웃으며 내 볼을 잡는 네 손길에 나는 이성을 찾을 수 없었다.
+)우아아아아 독자님들!! 새해가 밝았어요!! 일단 절부터 받으세요~!! 새해인사가 많이 늦었네요ㅠ
특별편으로 윤기 과거를 준비해봤습니다, 마음에 드실련지 모르겠네요 ㅎㅎ
이해 안가시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혹시 있다면 댓글로 물어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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