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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ekend, Kendrick Lamar - Pray For Me 



아직도 나는 네가 나를 떠나가던 날을 꿈꿔. 


아침이 밝고, 유리창 바깥에서 들어온 햇볕이 나를 비추었을 때, 그 빛에 눈이 부신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옆자리에 가만히 누워 자던 너는 없었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디 있었냐는 듯, 네가 누운 자리는, 그 침대 시트는 그저 차갑게 식어 있었어. 


이후로 나는 너를 볼 수 없었어. 네 얼굴을 보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너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어. 너를 찾아 헤매고 또 헤매던 그 때, 누군가는 내게 미쳤냐고 물었고, 누군가는 내게 포기하라고도 했어. 어차피 너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떠나버린 사람이 두 번이고 못 떠날 것 같냐고. 모두 맞는 말이었어. 그때 나는 미쳐 있었고, 너는 돌아오지 않았어. 시간은 흘렀고, 나는 네가 없는 일상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결국엔,






"여기야, 지원."




[NCT/재현/쟈니] 우리들의 일그러진 001 | 인스티즈




영호씨는 다정한 사람이었어. 시카고에서 나고 자란 그는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편해 했어. 물론 그에게는 영어가 우리말이었을 거야. 시카고에 위치한 미국 본사에 입사해서 줄곧 일해오던 영호씨는 자기 부모님의 모국인 한국이 궁금했대. 미국인이었고, 미국에만 살았으면 됐고, 그렇게 일까지 해왔지만 그래도 궁금했대. 어떤 나라일까,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다를까. 그런 게 궁금했다고 했어. 그래서 한국 지사로 교환직원을 신청했고, 서울에서 일하던 직원이 시카고에, 시카고에서 일하던 영호씨가 서울로 온 거였어.


우리 만남은 자연스러웠어. 나는 직감적으로 영호씨가 내게 호감을 표시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이미 영호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말이야.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거든. 그리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영호씨는 내게 연락처를 물어왔고, 데이트 신청을 했고, 우리는 밥을 먹고 성수동을 걸었어. 때로는 해방촌의 루프탑에서 와인을 마시기도 했고, 논현동의 조용한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했어. 꽃과 책을 좋아하는 취향을 버리지 못한 나를 영호씨는 잘 맞춰주었어. 때때로 내게 꽃을 선물했고, 연남동 곳곳에 있는 독립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나를 기다려주기도 했어.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 날 강릉 바다에서 우리는 첫키스를 했고, 그날 밤을 처음으로 같이 지새웠어. 영호씨는 내게 맛있는 음식 해주기를 좋아했어. 스테이크가 올라간 크림 파스타를 만들기도, 따끈한 또띠아 위로 과카몰리를 올려주기도 했어.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 했어. 그렇게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다시 코 끝으로 시린 바람이 불어왔을 때, 영호씨는 내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어.





"봄에는 유채꽃을, 여름에는 수국을 안겨줄게."


"..."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선물할게. 겨울에는 동백을 보러 제주에 가자."


"..."


"그러니까... Would you marry me, 지원."





결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 영호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각자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큰 어려움이 되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서른이 넘고, 그리고 언젠가는 결혼을 할 생각이 있는 남녀가 만남을 지속한 지 1년이 넘어가면 둘 중 누군가는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고, 그래야 할 거라고 나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선뜻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지는 못했던 나를, 나보다 더 용기 있던 영호씨가 잡아주었어. 프로포즈를 받은 그 날로부터 바로 1년 후, 그리고 그 일주일 후를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의 결혼식 날짜로 잡고 우리의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어. 영호씨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어. 나는 거기에 내 취향 몇 가지만 덧붙이면 되는 정도여서, 준비랄 게 그렇게 어렵지가 않았어. 


연애는 순탄했고, 부딪히는 의견에 대해서는 내가 한 번 다시 생각하거나, 영호씨가 생각을 조금 바꾸면 해결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어. 연애를 한 지 일 년을 꼬박 채우고도 반 년이 더 흘렀는데도, 아직 이렇다 할 만큼 싸운 적이 없었어. 싸움 자체가 안 되었어. 영호씨는 대화를 하려고 했고, 나 또한 그 과정을 통해서 풀어갈 수 있는 게 많았어. 너와 나, 지독하고도 고약했던 그 때와는 달랐어.





"...누나."






그랬어. 그렇게 그냥 결혼을 할 줄 알았어. 그날 밤, 네가 나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NCT/재현/쟈니] 우리들의 일그러진 001 | 인스티즈





[NCT/재현/쟈니] 우리들의 일그러진
우리들의 일그러진 사랑, 그러나 영웅은 못 되는





뒤를 돌아보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나는 무모하게도 네가 언젠가 나를 다시 찾아올 거라고 믿었어. 그 누가 내게 너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 해도, 나는, 적어도 나의 육감은, 너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고 내게 말해주었어. 실제로 네가 돌아올지 안 올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어. 나는 그저 그런 믿음이 필요했던 거야. 훌쩍 떠나버린 네가 언젠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올 거라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그런 믿음 말이야. 그게 현실이 될지 아닐지는 내 생각의 범위가 아니었어.





"...누나."





그러다 보니 놀랐나봐. 네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는데도, 막상 내 등 뒤에 꽂히는 너의 서늘한 목소리를 들은 순간, 사지가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나봐. 자신이 없었어. 뒤를 돌아볼 자신도, 돌아서서 너를 향해 이야기를 건넬 자신도, 그간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물을 자신도. 아무것도 없었어. 그래서 돌아보지 못했어. 등 뒤로 닿아오는 너의 목소리를 모른 척 하려고 했어. 잘못 들었을 거야. 내가 너무 피곤한가, 이렇게 환청을 듣게. 그런 마음으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어. 그렇게 밀어올리던 순간, 너는 다시 들으라는 듯 나를 불렀어. 그렇게 닿은 네 목소리에 나는 무너졌어. 그렇게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힘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어.





"누나. 괜찮아?"





갑자기 숨이 가빠져 왔어. 누군가 내 목을 콱 잡은 채로 험상궂게 흔드는 느낌이었어. 심장에 타이어가 얹힌 것처럼 훅, 하고 무겁게 짓눌려졌어.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어. 쓰러진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어. 허어, 허어, 숨을 뱉긴 하는데 그 어떤 공기도 내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느낌이었어. 서 있던 너는 곧장 몸을 숙여 나를 안았어. 너의 냄새. 늘 빗물에 젖은 것 같던 너의 그 냄새. 그게 인지되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어. 그게 내 기억의 마지막이었어. 그 향과, 지원아. 지원아. 나 좀 봐봐. 눈 좀 떠봐. 하는 너의 조급한 목소리.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어.




[NCT/재현/쟈니] 우리들의 일그러진 001 | 인스티즈

사진 출처: https://m.blog.naver.com/smile3528/221365362350





눈을 뜨니 온통 하얀 천장이 보였어. 밖으로 난 창은 블라인드가 쳐져 햇볕을 온전히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아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리고 여기가 병원이라는 것도. 아주 아침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오전일 거라고, 짐작되었어. 고개를 돌려보니 내 오른손 끄트머리에 엎드려 잠이 든 네가 보였어. 밤새 옆을 지켰구나. 영호씨한테 연락을 못했는데 어떡하지.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어. 휴대폰을 찾으려다 낸 부스럭대는 소리에 네가 깼어. 제대로 못 자 푹 꺼진 눈으로 너는 내게 물었어. 괜찮아? 어젯밤 심장에 얹힌 타이어는 여전히 옮겨지지 않았구나. 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깨달았어. 이제는, 언제까지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지기는 힘들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 휴대폰. 연락해야 해."





너는 네 바지 뒷주머니에서 내 휴대폰을 꺼냈어. 오는 전화는 안 받았어, 라고 네가 말했어. 받아 들고 보니 영호 씨로부터 다섯 건의 전화와 그 만큼의 메세지가 와 있었어. 팀장님에게도 두 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렸어. 어제 집에 들어가는 길에 6년 만에 찾아온 전 애인을 보니 공황이 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일어나 보니 여긴 병원이고 아침이네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어. 전화는 해야 했고, 옆엔 정윤오가 있었어. 잠시 바라보았더니, 나갔다 오겠다며 자리를 피해주었어.





저예요, 걱정했죠. 요 며칠 무리했더니 피곤했나 봐요. 집에 들어가려던 길에 쓰러진 거 있지. 다행히 엄마가 119에 전화해줘서 바로 병원 왔어요. 어젯밤에 나는 실려 들어와서 방금 깼는데, 엄마가 영호씨한테 연락을 할 겨를이 없었나 봐. 응,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아니, 오지 않아도 돼요. 곧 출근할 거라. 이따 사무실에서 봐요. 응, 정말 괜찮아. 밥도 병원 근처에서 챙겨 먹고 갈게. 엄마랑 같이 있으니까. 응응. 이따 봐요. 나도 사랑해요. 오후에 봐요.

영호씨와의 통화는 종료되었고, 곧바로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했어. 오후에 출근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어. 나는 간호사를 호출했고, 간호사와 함께 정윤오도 병실에 들어왔어.





"환자 분 아직 안정을 취하셔야..."

"괜찮아진 것 같아서요. 출근도 해야 하고. 퇴원할게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보호자 분께 서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간호사 분은 나갔고, 정윤오와 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너도 당황했겠지. 이 상황에서도 너의 안부를 걱정하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그 큰 상처를 받고 나서도 어째서 나는 네가 나 자신보다 더 우선일까.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져 미간을 좁혔다. 정윤오는 가만히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눈을 감으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왜 왔니."





12시간쯤 전 우리 집 도어락 앞에서 물었어야 될 말인데. 공황과 구급차, 입원과 퇴원까지 거치고 나서야 이제야 물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갑자기 내 눈 앞에 나타나서 나를 놀래킨 저의가 뭔데.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나는 그게 궁금했다.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너의 눈빛이 뭘 말하는지 궁금한 게 아니었다.





"보고싶어서."

"......."

"보고싶어서 왔어."

"......."





어이가 없었다. 우리의 6년은, 아니, 너와 나 사이를 가른 이 6년은 도대체 뭐였을까. 나는 너를 보고싶지 않아서 안 찾았던 걸까. 너는 그 6년 동안 나를 한 번도 보고싶지 않았고, 이제서야 보고싶어져서 나를 찾은 걸까. 너의 그 한 마디에 내 머릿속은 넘쳐나는 질문들로 복잡해졌다.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를 몰라서 그저 정윤오를 쳐다볼 뿐이었다. 쳐다봤자 아무 답 안 나올 거란 걸 알면서, 매몰찬 질문을 뱉어내기엔 내가 너무 힘이 없었다.





"매일매일 보고싶었는데,"

"......"

"이제야 널 볼 자격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

"그래서 왔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네 말에 찍힌 마침표와 함께 내 눈에서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젯밤에 미처 울어내지 못했던 그 울음이, 지금에 와서야 엉엉,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소리로 터져버렸다. 내가 잃은 너를 찾아 헤매던 그 시간과, 그 시간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아보려 공 들여 쌓던 탑이 모조리 무너진 느낌이었다. 너의 등장은 이처럼 나에게 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잊고 살아내보려고 했던 나를 네가 이렇게 다시 짓밟아. 네가 없는 삶을 좀 살아보려니까 이렇게 다시 찾아와서 나를 또 지옥으로 몰아 넣어, 네가.





"...윤오야."

"......"

"...너 정말 잔인하다."

"......"

"돌아가. 너 있던 곳으로 다시 가. 가서 다신 돌아오지 마."





내가 윤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설령 마음 속에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많이 남았더라도, 그리고 그 말들을 하기 위해 긴 시간을 버텨온 거라고 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윤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정말이었고, 그래야만 했다.






더보기

오래간만입니다. 다들 잘 지내셨죠?

뒤틀리고 비틀린 사랑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 시리즈 또한... 다음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습니다.ㅠㅠ

모두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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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방금 ㅍㅌ에서도 봤어요!
3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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