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뷔 블랙킹덤 00.
"회장님이 찾으신다."
씨발. 좆 같네. 정국은 신경질적으로 손에 든 꽁초를 책상에 비벼 껐다. 오른손에 든 책과 왼손에 든 담배꽁초는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모처럼 독서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공부와는 영 인연이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정국은 느릿이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정국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어색했다. 그것은 아무리 회장인 석진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남들에게 정붙이지 않고 그들을 밟고 일어서 온 정국이었다. 허나 이 나이 어린 회장은 유독히 정국을 좋아했다. 어린 나이에 수많은 사람을 짓밟고 회장의 자리를 꿰어찬 그는 언제고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늘 웃는 얼굴로 사람을 엿먹였다. 그것은 참 재주였다. 그런 점에서 그 둘은 분명 다르지만 소름이 끼치게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정국이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회장실에 들어서자 회장자리에 앉아있는 석진이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뭘 쪼개세요, 미쳤나. 정국의 단호한 반응에도 그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왜 불렀어요."
"우리 민윤기 잡아야지."
민윤기라 함은 석진과 정국이 속한 무영회가 아니라 무영회의 라이벌 세력인 홍연회의 보스를 말했다. 석진은 냉철히 일을 잘 처리하는 성정이었으나 홍연회, 민윤기에게만은 그러지 못 했다. 수컷들의 세계인 이 검은조직 안에서 수컷들은 제 영역을 그리고 세력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많았다. 그것은 대개 홍연회와의 싸움에서 일어난 것이었고 그로인해 사내에서 치른 장례만 해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석진이 윤기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고, 넌 새 임무가 생겼어."
Black Kingdom
프롤로그
어린 나이에 들어온 무영회에서 정국은 인생의 모든 쓴맛을 맛보았다. 날 고기를 뜯고, 날 생선을 뼈째 씹으며 열여섯의 정국이 했을 생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상궂은 다른 조직원들에 비해 정국은 너무 호리호리하고 여린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조직원이라 해도 그런 점은 정국을 쉽게 보기 좋은 조건이었고, 그것을 빌미로 정국을 건든 조직원들을 상대해 정국은 번번이 보기좋게 이겨냈다. 그리고 그 무렵 정국은 지민을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우렁차게 인사한 그는 다른 조직원들에게 살갑게 대했다. 정국과 같은 나이에 마른 체구 그리고 어딘가 망개떡을 닮은 순한 외모까지는 정국과 별 다를게 없었으나 딱 하나 다른 붙임성으로 지민은 비교적 순탄히 조직생활을 적응해 갔다. 지민은 틈만 나면 정국에게 말을 걸었지만 정국은 깨끗이 무시했다. 그래도 지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국은 세 번째로 나간 임무에서 허벅지에 칼을 맞았다. 상대 조직원이 들고 있는 칼을 차 버리고 안심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입고있던 자켓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낸 상대 조직원이 정국의 허벅지에 긴 상처를 남겼다.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는 상처에 정국은 홀로 천을 찢어 다리를 동여맸다. 아무리 이 세계에 발을 담고 있다지만 정국은 겨우 열일곱이 되었을 때였다. 챙김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정국은 무영회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때는 지민이 혼자 낑낑거리며 붕대를 감고 있었다.
"..뭐 하냐?"
"야, 넌 뭘하다가 이렇게 심하게 다쳐서 쓰러져 ! 조심 안 하고."
"뭐 하냐고. 야, 박지민."
"어? 너 내 이름 아네? 그래. 나 박지민이다. 치료해주는데 고맙단 말은 안 받을 테니까 가만히나 있어 전정국."
"아!! 씨, 아파!"
힘 조절을 잘못해서 붕대를 너무 꽉 조인 지민이 정국의 엄살에 픽 웃었다. 매일 멋진 척만 할 줄 알았더니 정국도 영락없는 열일곱 남자 아이였다. 그것을 인연으로 지민은 정국에게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둘은 훈련도 같이 했다. 칼을 좀 더 잘 다루고 민첩하게 잘 움직이는 지민은 전방공격을 맡았고 예리하고 집중력이 높은 정국은 총기를 다루었다. 그리고 정국에게는 종종 조직이 운영하는 고리대금 값을 수금하는 임무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건 다 정국의 극악무도함 때문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금을 하고 돌아온 정국은 지민이 복부를 칼로 찔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국은 곧장 지민이 누워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지민은 괜찮다고 웃었지만 정국은 허벅지에 그인 상처가 얼마나 아팠는지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지민을 찌른 사람이 민윤기라는 것도 기억했다. 정국은 민윤기를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그 때의 정국은 열여덟에서 열아홉의 과도기를 거치고 있었다.
*****
마주앉은 정국에게 석진이 파일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어서 열어 보라는 듯 손짓해 보였다. 정국이 파일 안에 담긴 글을 대충 훑었다. 어떤 사람이 살아온 과정에 대한 것이었는데, 딱히 흥미를 끄는 대목은 없었다. 그냥 서류철에 불과한 일반 경력서였다. 심지어 현재는 중소기업에 갓 입사한 푸릇푸릇한 새내기였다. 정국은 어쩌라고 이걸 자신에게 주는 것이냐는 표정으로 석진을 바라보았다.
"김태형. 나이는 너보다 두 살이 더 많아. 홍연회의 스나이퍼였는데 얼마전에 총격전으로 머리부근을 맞아서 기억이 병신이 된 모양이더라. 가서, 홍연회에 대한 정보를 빼내 와. 그리고 기억이 온전히 돌아오면 죽여. 다시 총질을 시작하려고 할 테니까. 그게 네가 할 일이야."
"내가 전에 자질구레한 일, 시키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기억을 잃었고 쓸모가 없어진 1급 스나이퍼가, 민윤기 밑에서 멀쩡히 살아나왔다. 이상한 것 없어?"
"...잘난 척 돌려대지 말고 말해, 좀."
"민윤기의 최측근, 한마디로 아끼는 사람이였다는 건데, 연인이였다더라. 그래서 사회로 보내줬다더라고. 일반인 답게 살라구. 근데 우리가 그걸 가만히 놔두면 몸이 근질거려 살겠냐고. 신상이 눈에 띄면 안 사곤 못 배기는 너 처럼. 신발, 에르메스 신상이네? 컬렉션에도 아직 안 나왔는데. 여튼, 너 민윤기 보면 죽이고 싶다며. 박지민 복수 할 거라며. 김태형 이용해 먹고 죽여. 그럼 돼."
석진의 시선이 정국의 발 끝에 가닿자 정국은 뭔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신상 구두를 사모으는 희한한 취미가 있다는 것은 자신을 제외하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국은 옷이 아무리 좋아도 구두가 빛나지 않으면 별 감흥이 없었다. 구두를 사는 것은 정국이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이자 유일하게 돈을 아낌없이 쓰는 곳이었다. 그래 봤자 다른데에 쓰지 않아서 지출이 많지는 않지만. 자신이 아무리 반말과 존대를 섞어쓰며 무시해도 회장직에 앉은 스물다섯은 그냥 스물다섯과는 달랐다. 정국은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고 석진이 내민 태형의 사진을 받아들었다. 스물 셋, 스물 셋. 조그맣게 적힌 약력을 읽어가던 정국의 눈이 태형의 사진에 머물렀다. 나이에 답지 않게, 했던 일 답지 않게 웃는 모습이 해사하다 생각했다. 그것도 잠시, 태형의 사진을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 넣은 정국은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
안녕하세요 독방에서 조금 스포를 날렸었던 블랙킹덤..!입니다 그땐 제목을 정하지 못했었는데 급하게 정하게 되었네요 ㅎvㅎ) 지금은 석진 윤기 태형 지민 정국 까지 나왔지만 곧 일곱명이 다 등장할 예정이구요 연재는 언제언제 딱 정해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반응좋으면 힘내서 최대한 연재 서둘러볼게요~ 이번 편은 첫 화라서 많은 분들이 보시고 앞으로도 계속 찾아주십사 하는 맘에 포인트 0 입니다 앞으로 많이많이 보러 와주세요 !! 암호닉 신청 받구요, 신알신 많이 해주세요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