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나오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더 개운한 마음으로 걸어나올 수 있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성열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성종이가 나타났다가 다시 검은 화면이 나타나길 반복하다 성열은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보고선 한걸음에 달려나갔다. 오늘은 성열이 병원에서 3개월이 남은 시한부라는 판정을 받은 날이었다.
[열종] 멜로드라마 (melo drama)
성열 × 성종
영화 속에서만 보고, 듣던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속이 안좋아찾은 병원에선 정말 뜻밖에 소식을 전해왔다. 3개월. 무슨 유통기한처럼 성열의 인생의 끝은 어느 순간 정해져 버렸다. 허무하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속이 멍해지고 온 머릿속은 차분하게 가라앉아졌다. 카톡을 읽었는데 답이 없는 성종이와의 대화창을 보며 툭툭 액정을 가벼이 두드리던 성열은 자신의 뒤에서 살금살금 들려오는 발소리에 피식- 짧은 미소가 지어졌다.
3, 2, 1!
"워!!!"
등을 확 밀며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두 귀를 붉게 물들인 성종이 감기라도 걸린 것인지 앵앵거리는 거 같은 목소리로 성열을 놀라게 한다. 그런 성종의 모습이 하나하나 새로이 머릿속을 가득히 메우는 느낌에 성열은 어딘가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예쁜 애를 혼자 두고 가려니 조금은, 답답해지는 마음 한 쪽에 성열은 흐트러진 성종의 머리를 정리해주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성종아"
지금 말할까, 아님, 나중에 말할까…수 없이 고민하던 성열은 왜? 라고 물어오는 성종을 보며 그냥 의미없는 말을 던진다.
"너 이에 고춧가루 꼈어."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어디, 어디 하는 성종에게 앞니를 콕 가르쳐주니 금세 반 뒤편에 자리잡힌 거울로 달려나간다. 그런 성종의 모습 하나, 하나를 머릿속에 간직하려는 듯이 성종이를 따라 움직이던 성열이의 두 눈은 어느새 허전해진 성종의 왼쪽의 네 번째 손가락을 향했다.
"이성종, 반지는?"
"반지, 여기 있잖아!"
하면서 자신 있게 왼손을 펼쳐 든 성종이 텅 비어버린 네 번째 손가락을 보고선 헐, 하는 눈으로 성열이를 바라봤다. 분명 집안에 두고 나왔을 것이 뻔히 보이는 듯한 기분에 성열은 못 말린다는 듯이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었다. 성종이에게 멋없이 건넨 100일 반지는 성열의 목걸이가 되었고, 성종이에겐 반지가 되었다. 반지케이스도 없이 그저 쪽지 속에 감춰서 건넨 반지에 두 눈이 붉게 변할 때까지 울며 코를 훌쩍이던 성종이 아른거려서 성열은 또 한 번 이유 없는 미소를 지었다.
"성종아, 넌 내가 죽으면 어떡할래?"
어디서 또 드라마 보고 왔냐? 하는 성종의 물음에 성열은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성종의 근처로 다가섰다.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머리를 정리하던 성종이 자신의 뒤에 서서 내려다보는 성열의 볼을 살포시 꼬집었다.
"그런 말 하지 마. 이성열, 천년만년 같이 사랑하겠단 건 너였어"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성종이 이상하게 너무 사랑스러워서 성열은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성종의 어깨에 기댔다. 그런 성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성종은 앞문이 열리는 소리에 파드득 성열의 곁에서 떨어진다.
"안녕, 우현아!!!"
껄렁껄렁 자신의 자리로 향하는 우현에 인사를 한 성종이 아직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성열에게 손을 뻗었다. 머리를 두어 번 토닥토닥, 그러면 스르륵 고개를 든 성열이 웃으며 성종에게만 고정돼있던 시선을 떼고선 우현에 달려가 등을 가벼이 내려친다.
"안녕!!!"
그렇게, 오늘도 평소 같았다.
* * *
체육 수업 도중에 서로 가벼이 툭툭 주먹을 오가며 장난을 치던 우현과 성열이 선생님에게 걸려서 운동장 3바퀴 즈음 돌았을 때 평소완 다르게 헉, 헉 거리던 성열이 자리에 무릎을 꿇고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이성열!!! 꾀병 부리지 말고!!!"
불호령을 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성열이 덜덜 떨리는 두 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주먹을 꼭 쥐고선 어느새 열 걸음 정도나 앞서있는 우현의 곁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심장 소리가 마치 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흔들리던 시선 속에서 눈에 들어오는 성종의 모습에 성열이 철근 같은 다리를 움직여 우현의 곁으로 다가간다. 걱정하던 눈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아직은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다. 가벼이 뛰는 성열 곁에서 같이 뛰던 우현이 평소 같았음 그것도 못뛰냐 하며 실컷 놀렸을 입을 다물고선 조용히 성열의 페이스에 맞춰준다. 점차 펴져 가는 성종의 미간을 보고선 성열은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속으론 열심히 괜찮아…이 한마디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5바퀴 정도는 더 뛰었을까 싶었을 때 울리는 종소리에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집합시킨다. 열심히 뛰던 성열과 우현도 아이들 곁에 서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별 쓸모없는 선생님의 말씀을 끝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반을 향해 걸어갔다.
"괜찮아?"
멍해지려던 성열이 제 옆 가득히 찰랑거리는 성종의 청량한 향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브이를 만들어 제 얼굴 옆에 가져다 댔다.
"이 오빠의 연기에 속았구만, 또"
성열의 말에 성종이 헐-하고선 성열의 등을 한 번 가벼이 내려쳤다. 걱정했다며 투덜거리는 성종의 어깨에 팔을 올린 성열이 아직도 세차게 뛰는 심장을 천천히 진정시키며 별 의미 없는 성종의 투덜거림에도 하나하나 다 대답을 해주며 웃었다.
* * *
감기약이라며 먹던 성열의 모습이 쓱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 열심히 햇볕을 맞으며 꾸벅꾸벅 병든 닭처럼 졸고 있는 성열의 모습이 보인다. 옆자리면 어떻게라도 편하게 자게 해주고 싶은데, 저번 주까지만 해도 짝꿍이어서 서로 남몰래 손도 잡고 그랬던 게 생각나는 성종이 붉어진 두 귀를 진정시키며 자신의 옆 분단의 창가 자리에 앉은 성열이를 계속 뚫어지라 바라봤다.
'쾅-!'
기어코 책상에 머리를 박은 성열이 자신을 바라보는 반 아이들을 보며 멋쩍게 웃다가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을 보고선 조용히 뒷문을 향해 걸어갔다. 뒷문 근처에 무릎을 꿇고 앉은 성열이 자신을 보며 입을 삐죽이는 성종을 보고선 같이 입을 삐죽이다 이마 한가운데 박힐 듯이 다가오는 분필을 가뿐히 피하고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창피하다…한 두 번도 아니지만 3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멋진 모습 말고 이런 추잡한 모습만 성종에게 보이는 게 짜증이 난 성열이 한숨을 쉬며 어느새 앞을 향해있는 둥그런 뒤통수를 쳐다봤다. 저 뒤통수는 3개월 뒤면 더는 못 보겠지. 한숨 쉬던 모습도, 울던 모습도, 웃던 것도, 당황해서 붉어진 두 귀도, 새처럼 쪼는듯한 키스에 당황해 딸꾹질하던 모습도…얼마나 쳐다봤을까 점차 절여오는 다리도 못 느낄 만큼 아득한 기분에, 성열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 없는 눈물을 훔쳤다. 성열은 한숨을 내쉬고선 다시 성종을 쳐다보자 어느새 다시 성열을 바라보는 성종이 보인다.
'왜 그래?'
한 글자, 한글자씩 또박또박 입 모양을 만들어내던 성종이 성열보다 더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두 검지를 제 눈 밑에 가져가더니 '유유' 하는 입 모양을 만든다. 금세 둥실둥실 차오르는 따스함에 성열이 입꼬리에 두 검지를 가져다 대고선 그대로 웃는 모습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종이 성열이 한 것처럼 검지를 가져가선 웃는 모습을 만든다. 그런 성종의 모습에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남은 시간들이 왠지 모르게 점점 야속해지는 성열이었다.
* * *
오랜만에 꿈을 꿨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눈가가 축축한 걸 보니 딱히 기억하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아직도 새벽 4시밖에 안된 시각에 성열은 다시 자려고 누웠다가 휴대폰의 홀드를 푸니 성종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우르르 와 있었다. 성종이랑 카톡 하다 잠든 기억이 나면서 성열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에 병원에 다녀온 뒤로 점점 잠드는 시간이 빨라지는 것만 같아서 왠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성열아으헝헝헣나공포영화봄]
[아쥰니이번건무섭당]
[열아?]
[이성열나와라오바]
[자니?]
[전남친st]
[ㅋㅋㅋㅋㅋ]
[정말자?]
[성열아ㅠ]
[아..자는구나]
[나도 잘 거야!!]
[잘자, 성열아]
11:50분에 온 카톡이 마지막이었다. 하나, 하나 확인하던 성열이 얼굴 위로 사르르 미소를 띄웠다. 예전 같으면 그저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하루와 성종의 행동 하나, 하나가 요즘 성열에는 색다르게 다가왔다.
[ㅠ. ㅠ잠들었다이제깸]
[잘자♡]
충전기에 휴대폰를 연결해놓고선 협탁위에 올려진 탁상용 달력을 들어 올린 성열이 17일인 어제의 날에 엑스 표시를 해놓고선 벌써 20일이나 지나온 날에 인상을 쓰며 -22일 날 병원 가기- 라고 메모를 적어놓고선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성종이 자신의 집에 놀러 오자마자 붙여준 야광별들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며칠 전 휴대폰 배경을 바꾸겠다며 교정에 핀 하얀 꽃을 들고선 성열를 보며 방긋 미소를 짓던 성종이 생각나서 성열은 미소를 짓고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같이 브이를 하면서 찍은 셀카가 보였다가 다시 검은 화면을 비추길 얼마나 반복했을까, 갤러리에 들어간 성열이 백 장 가까이 되는 성종의 셀카를 보다가 떠오르는 추억들에 시큰거리는 눈가에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한줄기씩 흐르던 눈물이 어느새 휴대폰 안에 성종의 모습이 흐려질 정도로 눈가를 가득 채웠다. 사랑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 머리에 가득 맴도는 성종의 모습에 성열이 울음을 삼켜가며 눈물을 흘려보냈다.
* * *
몇 주 후면 입원하셔야 할 거 같아요…. 의사선생님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몇 주 후면, 성종을 보기가 조금 더 힘들어질 거 같다. 성종에게 둘러댈 변명거리를 생각하던 성열이 손에 깁스를 한 채 걸어나오는 우현과 맞닥뜨렸다.
"여!"
손을 흔들며 성열에 인사를 건네는 우현을 보고선 성열은 당황 감에 삑사리를 내며 우현의 인사에 답했다.
"손에 웬 깁스?"
"아, 별거 아니야. 아빠가 화나서 골프채로 내려쳤어. 뼈에 금간거말곤 뭐 없다더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우현에 성열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란히 우현과 함께 버스정류장 쪽으로 발걸음을 나란히 했다.
"너는 무슨 일로 병원에 왔냐?"
"아, 그냥, 별거아니야"
대충 얼버무리는 성열의 말에 우현이 더는 묻지 않고 그저 고개를 두어 번 까딱거렸다. 때마침 도착하는 성열의 집 쪽으로 향하는 버스에 성열이 우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야. 나 먼저 감"
"이성열. 이성종한테 말 못하는 건 나한테 해도 돼,임마"
그 말과 함께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서는 우현은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선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이성열, 학교에서 보자"
무언가 머리를 후려친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거 같았다. 버스 안의 아무 빈 좌석에 앉은 성열이 휴대전화기에 도착한 우현의 메시지에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급급해졌다.
'나도 네 친구야 인마'
그래도 말 못할 비밀이란 걸, 우현은 알까….
* * *
성열은 저번에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부모님께 드디어 자신의 시한부 인생을 전했다. 성열을 붙잡으며 통곡을 하시던 어머니 뒤에서 한숨과 함께 울음을 뱉어내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성열은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부모님 품에 안겨 펑펑 소리 내 울었다.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선 학교에 가니 소리 내 웃던 성종이 겨우 진정된 듯 성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슨일있어냐라고 물어보자 성열은 그저 평소처럼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물처럼 시간은 고요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성열은 병원에 가져갈 간단한 짐을 싸면서 아직도 성종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정리했다. 헤어지자고 할까…아님, 솔직하게 말할까…. 고민하던 성열이 휴대전화기를 들어선 빠르게 성종에게 만나자는 메시지 한통을 보내고선 어느새 짐을 싸던 가방 안에 가득 채워진 성종과 관련된 물건들에 성열이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눈물들을 쏟아냈다. 미안해, 성종아…
* * *
헤어지자는 성열의 말에 성종은 무릎도 꿇어가며 성열에게 매달렸다. 나쁜 놈, 개새끼, 씨발놈…별별 욕을 다하던 성종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려는 성열을 붙잡고선 가지 말아라 애원해봐도 성열은 싸늘한 눈을 한 채로 성종을 떠났다. 그 다음 날에 멍한 정신으로 어떻게 온 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성종은 자신의 반에 앉아 평소처럼 문제집을 풀다가 고개를 들면 보이던 성열의 자리를 쳐다보자 오늘따라 더 늦는 성열에 성종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들었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하다 침통한 표정을 한 채로 들어오는 담임선생님에 의해 휴대폰을 내려놨다.
"성열이가 자퇴를 했다."
술렁거리던 반 아이들 사이에서 성종은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며 성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그런 성종이를 한번 보다가 다시 웅성거리는 반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몇 번을 걸어봐도 들려오는 메시지는 똑같았다. 맥이 탁하고 풀려버린 성종은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다가 텅 비어 버린 성열의 책상을 보고선 왈칵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어제처럼 바보같이 울기만 했다. 그런 성종의 곁에서 토닥거리던 우현이 한숨을 내쉬며 마치 목을 조이는 것 같은 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하고선 성종처럼 답이 없는 성열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 * *
멍하니 병실에 누워만 있던 성열이 이제 한 달가량 남은 제 인생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성열의 곁에서 과일을 깎던 어머니는 예쁘장한 접시에 사과를 자르기 시작했다.
"성종군이 계속 찾아왔는데, 그냥 모른다고 했어."
성종의 이름에 성열이 크게 몸을 움찔하며 창을 쳐다보던 시선을 어머니에게 고정했다. 잔기침하며 푹 잠긴 목소리에 인상을 쓴 성열이 어머니가 내민 사과 한 조각을 입안에 넣고선 조금은 씁쓸하게 퍼지는 사과의 단항을 성열이 천천히 씹어냈다.
"앞으로 계속 모른다고 해줘, 고마워…엄마"
며칠 사이에 기운이 쏙 빠진 성열의 모습에 어머니가 금세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급하게 화장실 좀 다녀온다며 성열의 곁을 잠시 비웠다. 성열은 어머니가 가자마자 먹던 사과를 접시에 내려놓은 채 침대에 푹 기대었다. 성종이가 보고 싶다. 먹먹해지는 가슴에 곧 성종을 보러 뛰쳐나갈 것 같던 성열은 자신의 마음관 다르게 움직이지 않는 몸을 탓하며 가슴을 내려쳤다.
* * *
11월의 마지막 날 성종은 자신의 집 앞 카페에서 지금 만나자는 이름 모를 이의 전화에 겉옷을 챙겨 들고선 집을 나섰다. 푹 쉬어버린 목소리라고 해도 왠지 모르게 성열과 비슷한 목소리에 성종은 뭐에 홀린 것처럼 카페까지 뛰어가다시피 걸어갔다. 이상하게 자꾸 뛰는 가슴에 성종은 가벼이 심호흡하며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아늑히 퍼지는 원두 향과 함께 구석 창가 자리에 퀭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사람은, 꿈에서 그리워하던 성열이었다.
한걸음에 달려간 성종은 병원복 차림의 성열이를 보고선 자꾸 터질 듯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아닐 거라며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만 되뇌며 성열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안녕, 성종아"
퀭한 얼굴과 푹 가라앉아 볼품없어진 모양새를 하고 있던 성열이의 인사말에 성종은 점점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을 거 같단 불길한 생각에 촉촉이 땀이 나오는 손을 가벼이 잼 잼 하듯이 주먹을 쥐었다가 피며 겨우겨우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어디…갔었어?"
파르르 떨리는 성종의 목소리에 성열은 아려오는 가슴 한쪽을 꼭꼭 누르며 자신이 입고 있는 병원복을 가르쳤다.
"조금 아팠어…."
성열의 말에 성종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선 울음을 뱉어냈다. 그런 성종을 바라만 보던 성열이 마치 이 모든 게 꿈인 것만 같았던 마음들이 쫘르륵 정리가 되며 울고 있는 성종의 모습에 아려오는 가슴 한쪽을 꼭 누르며 아이같이 우는 성종의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울지마, 성종아…"
성열의 말이 기폭제인 마냥 지금보다 더 큰 울음을 뱉어내는 성종의 얼굴을 가리던 두 손을 내린 성열이 일그러진 성종의 얼굴을 보고선 볼을 쓰다듬었다.
"이…젠 괜찮아?"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밝던 하늘이 점점 노을이 져가는 모습에 성열은 성종의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나, 곧 죽어…성종아,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옆에 있어주면 좋겠어."
멍한 얼굴을 하던 성종이 차츰차츰 성열의 말이 이해가 되는지 그쳤던 울음을 다시 내뱉기 시작하자 성열이 성종의 옆자리로 다가가 꼭 성종을 안아줬다. 청량감 있게 성열의 온 마음을 감싸주는 성종의 향에 성열은 자그마한 성종의 어깨의 얼굴을 대고선 말라버린 것 같던 눈물을 흘렸다.
* * *
그날의 무리한 외출 때문인지 밤새 시름시름 앓던 성열이 잠에서 깨어나자 성종은 눈물을 닦고선 말도 잘 나오지 않는 것인지 그저 쉰 목소리만 뱉던 성열을 보고선 성종이 가까이 고개를 가져다 대고선 땀에 젖은 성열의 머리칼을 쓰다듬고선 볼품없이 마르고 찢어지고 하도 깨물어서 피딱지 앉은 입술 위에 짧게 입을 맞추자 성열이 그제야 웃는다.
'고마워'
예전의 그날처럼 성열이 한 글자 한 글자를 입 모양으로 말하자 성종이 "사랑해" 하고 소리 내 말했다. 그러자 자신보다 더 마른 손으로 간신히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는 성열에 모습에 성종이 웃으며 성열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성열아"
'나도 사랑해. 성종아'
성열의 입 모양을 본 성종이 푹패인 성열의 볼 위로 참새처럼 계속해서 쪼듯이 뽀뽀를 했다.
* * *
평소처럼 병원 앞의 공원으로 산책을 다녀와서 성종은 성열에게 성열이 없었던 그 후부터의 자기 일들을 이야기해줬다. 그러다가 1시쯤 되면 점심을 먹고 나서 성열의 옆에 누워서 낮잠을 청한다. 비좁은 1인용 침대임에도 서로에게 꽉 달라붙어 있던 성열과 성종이 어느 순간 잠이 들고 6시쯤 저녁을 먹기 위해 스멀스멀 잠에서 깬다.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하루지만 그래도 뭐가 좋은지 자꾸 웃는 성열에 모습에 성종은 같이 따라서 웃다가 서로 맞잡아 오는 두 손의 온기에 울컥했다가…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목을 가다듬는 소리에 성종이 휑한 1인실인 병실을 둘러보자 병실엔 자신과 성열뿐이다. 다시 두어 번 목을 다듬는 소리가 들리더니 성종의 손을 잡아오는 온기가 느껴진다.
"성종아, 고마워"
항상 쉰 목소리 혹은 아예 나오지도 않던 목이었는데 오늘따라 예전으로 돌아간 거 같은 성열의 목소리에 성종은 또다시 울컥하는 마음을 추스르기 바빴다.
"성종아, 정말 사랑해"
오랜만에 직접 듣는 사랑해란 말에 성종은 다 진정시켜가던 마음을 놓은 채 하나둘씩 떨어지는 눈물들을 닦아냈다.
"성종아, 내가 꼭 약속할게"
성종의 머리를 쓰다듬던 성열이 성종의 근처로 바싹 다가가 앉아 눈물들이 고여있는 두 눈에 짧게 입을 맞췄다.
"다음 생에 다시 꼭 난 널 만날 거야"
코끝,그리고 양볼에 입을 맞춘 성열이 거칠어진 성종의 입에 진하게 입을 맞췄다.
* * *
성종은 오랜만에 기분 좋게 잠들고 깬 느낌에 기지개를 피며 가만히 누워있는 성열을 가벼이 흔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성열의 몸에 성종은 덜컥 겁이 났지만,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성열을 다시 한번 가볍게 흔들었다. 그럼에도 일어나지 않자 얼음장같이 차가운 성열의 온몸에 입을 맞추던 성종이 자꾸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성열을 껴앉았다. 아직 못한 말이 너무 많았다. 사랑한다고, 만나지 못한 날까지 합쳐서 말해줬어야 하는데, 아주 고맙다고, 다시 자신을 찾아줘서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헤어지자고 말하던 그 순간도 난 널 사랑했다고, 그리고 다음 생에 꼭 만나자고…. 해줄 말이 너무 많은데 성종은 바보같이 사랑한단 말만 소리 내 말했다.
겨울비가 마치 성종을 위로하듯이 떨어지고 성종은 그날도 성열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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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하루 :
마지막 약속을 한다.다음 생에 꼭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이성열
라고 성열이가 말했다고 한걸 어디선가 주워듣고 쓰는 글...★ 근데 망함!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