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even days(7일 동안) # Thursday6
"태환, 우리 데이트 할까요?"
쑨양이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 주말 아침에 나온 말이었다.
심해지는 통증과 음식물 섭취를 제대로 못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점점 나빠지는 몸때문에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던 나였다.
근처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 외에는 집에서 나가지 않은 내가 안쓰러웠던 탓일까.
쑨양은 갑자기 데이트 제안을 했다.
"어디로? 비밀?"
"Yes, It's the secret!(네. 비밀이에요.)"
역시나 장소는 비밀이었다.
이제 궁금하지도 않다.
그런 내가 이상할 법도 하지만 익숙해진 상태라면 누구나 나와 같을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쑨양이 나에게 해가되는 곳은 데려가지 않을 것이고 아픈 나의 몸도 고려했을테니까.
그저 열심히 알아보고 선정했을 그의 노력에 행복을 느끼면 되는 것이다.
"이 비밀주의자!"
"하하하."
쑨양의 양쪽 뺨을 잡아 쭉 늘어뜨렸다. 그는 마냥 웃기만 했다.
아프지도 않은지 잘도 웃었다.
바보같은 사람,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
그의 웃음은 전염성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따라서 웃게 된다.
지금도 이렇게 웃고 있으니까. 전염률 100%이다.
"어서 준비하죠!"
"알았어요~"
다그치는 쑨양에게 떠밀려 씻은 후 쑨양을 욕실로 떠밀고는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인디핑크 색깔의 후드 티셔츠와 블랙 스키니진을 골라 입었다.
역시나 옷이 좀 헐렁했다. 스키니가 스키니 같지 않다.
금방 씻고 나온 쑨양에게 쑨양이야말로 어서 준비하라고 말하며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쑨양이 준비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 남자 꽤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침실에 콕 박힌 채 나오질 않고 있다.
이토록 준비시간이 길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는데, 의아한 내 생각도 잠시 곧 방에서 나오는 쑨양을 보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직 덜마른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주홍색 스티치가 들어간 하얀 라운드 티셔츠와 블랙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저번에는 윗옷을 커플로 맞추더니 오늘은 바지를 커플로 맞추기로 생각한 것 같다.
"어서 준비하라는 사람은 누군데, 왜 이렇게 늦어요."
"미안해요. 준비할게 많아서."
"준비? 그 가방 말인가요?"
쑨양의 손에는 커다란 가방이 들려 있었다.
사이즈를 보면 여행가방이었다. 데이트가 아니라 여행이라도 가는건가?
"태환은 몰라도 되요. 어서 가죠!"
"네~네~왕자님~ 원하는대로 소인은 따라합지요."
내말에 입술을 삐죽인다. 오랜만의 그 표정을 보니 새삼 웃음이 터져나왔다.
최근들어 내가 자주 했던 표정이 아닌가.
그 뾰루퉁한 표정은 다시 그에게로 되돌아갔나보다.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쑨양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커플티가 아니라 커플바지에요? 또 언제 산거에요. 블랙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산거 아니고 예전에 있던 거에요. 안 입었던 것 뿐이라구요."
"헤에~쑨양은 다리가 길고 예쁘니까 잘 어울리네요."
"태환이야말로 예쁘면서 왜 그러실까."
"쑨양이 더 잘어울린다니까요. 쿡쿡."
"왠지 비웃는 것 같은데..."
"아니 무슨 말을! 내 표정이 비웃는 것 같아요?!"
"아뇨. 흠잡을 때가 없는 예쁜 얼굴이죠. 무엇을 먹었길래 이토록 예쁠까 고민되게."
"으~~"
결국 쑨양의 말주변에 KO패 당한 나는 말꼬리 무는 것을 그만두었다.
말다툼하는 사이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쑨양의 손에 들린 커다란 짐에 대해 궁금해져 물었다.
"정말 어디가길래 그렇게 큰 가방을 들고 가요? 비밀이라고 하지 말고요."
"안돼요."
"칫. 치사하게."
이런 이런. 방금까지 쑨양에게로 되돌아갔던 뾰루퉁한 표정이 다시 내 얼굴에 강림했다.
마음껏 입술을 삐죽이면서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쑨양보다 먼저 성큼성큼 걸어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큰 그는 긴 다리로 금세 따라잡았다.
내가 쑨양보다 더 잘난게 뭐지? 나도 짧은 다리는 아닌데 평균을 넘어 괴물급인 그랑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에잇!
-
국도를 타고 달리던 자동차가 고속도로 입구로 진입했다.
"어? 밖으로 나가는거에요?"
"네~"
"쑨양..."
"왜요?"
"또...저번처럼 달리는..."
"안해요! 정말로! 저번에 약속했잖아요!!"
"그래도 운전석에 앉으면 달라진다던데..."
"저 못믿어요?"
내가 약속을 못미더워하는 것 같자 쑨양은 실망이라며 뺨에 바람을 넣어 부풀린다.
복어같은 그의 얼굴이 귀여워 손가락으로 뺨을 톡톡 건딜었다.
"믿어요. 쑨양."
농담조를 거두고 말하자 그제서야 얼굴에서 힘을 푼다.
톨게이트를 지나 본격적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곁눈질로 계기판을 보니 주행속도가 규정속도를 넘지 않았다.
짧게 웃고는 얼마 전에 날라왔던 과속 고지서를 떠올렸다.
마침 우편물을 찾으러 내려가던 옆집에 사는 이웃 남자에게 투덜투덜댔었다.
그 이웃남자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지 쉽게 긍정해주었더랬다.
이웃과 헤어져 집에 와서 벌금이 찍혀 있는 고지서를 들고 쑨양을 기다렸다. 그가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잔소리했었다.
결국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잘못했다고 낑낑되는 쑨양에게 다시는 과속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었다.
하지만 원래 국도는 속도를 내지 않던 그라서 고속도로는 어떠할지 긴가민가 했다.
그의 새로웠던 속도狂의 모습도 교외로 드라이브하면서 고속도로에서 격었던 일이니까 백프로 확신할 수 없었다.
다행히 쑨양은 그 약속을 지켰다.
차량밖을 내다보니 꽤 많은 차들이 함께 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말인터라 교외로 많이 나가는 모양이다.
혹 나들이 차량들로 정체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만큼 사이드미러 너머로 줄줄이 비엔나같이 줄지어 달려오는 차들이 보였다.
대체 쑨양은 어디로 가는걸까. 저번처럼 숲속의 찻집일까?
아니면 계곡이라도 가려나? 아직 몸을 담그기에는 추운 초여름이지만 가까운 계곡은 주말에 가족나들이로 자주 가는 단골장소였다.
일차선에서 한참을 달리던 자동차가 조금 속력을 줄이며 바깥라인으로 점차 차선을 바꾸더니 외곽길로 빠져나갔다.
곧 톨게이트마저 빠져나온 자동차는 국도를 타며 달렸다. 발안IC면 화성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화성에는 무슨 볼일인걸까. 좀처럼 연상단어를 떠올릴 수 없던 나는 그냥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이내에 잠이 들었다.
"...환."
"으음..."
"태환."
"아...쑨..."
"도착했어요. 이만 일어나요. 곤히 잘자던데요. 후후."
후아암~ 하품을 하며 손으로 눈가를 매만졌다.
운전석에서 내린 쑨양이 조수석으로 돌아와 문을 열때까지도 졸린 내색을 벗어내지 못했다.
"어서 내려요. 태환. 자면 안되요..."
결국 쑨양이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끼워 몸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대로 품에 안겨 그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우웅. 졸린데..."
겨우 잠에서 깬 나는 쑨양의 품에서 벗어나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주변의 경관을 볼 여력도 없이 쥐구멍에 숨고 싶어졌다.
차를 주차한 주차장에서 꽤 많은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완벽히 잠을 깨지 못한 나는 알아채지 못했었다.
각자의 자가용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 큰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잠을 못 깬 나머지 부축받아 차에서 내려와 껴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게이커플로 수근거리는 것은 상관없지만 방금과 같이 어린아이같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몹시 부끄러워졌다.
재빨리 후드를 머리에 푹 씌워 창피함에 후끈거리는 얼굴을 최대한 가렸다.
"태환? 왜 그래요?"
"...부끄러...워서..."
"뭐가요? 혹시 우리 둘이..."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방금 나 너무 애 같았잖아요. 서른이 다되어가는 남자가 이런 창피한 모습을...으~"
"풋, 푸흐...하하하."
오해하는 쑨양에게 서둘러 속마음을 말했는데, 무엇이 웃겼는지 폭소하는 쑨양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내 말이 웃겼나?
"..쑨양?"
"큭큭...태환 너무 귀엽네요. 사람들이 쳐다본 건 태환이 너무 예뻐서 그런거니까 걱정말아요."
"무슨 말이에요. 그게. 내가 바본줄 알아요!"
"정말이라니까요. 직접 물어볼까요?"
거기에서 '네'라고 대답하면 정말 사람들에게로 다가가서 물어볼 기세라 그의 팔을 잡아 끌었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견디며 걸어가다가 창피함에 주변을 볼 생각을 못했던 내 시야에 건물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여긴 어디에요?"
"모르면서 그대로 걸어간거에요?"
"......"
쑨양의 말에 대답하지 못한 나는 걸음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나의 어깨를 감싸며 천천히 걷는 쑨양의 보폭에 맞춰 따라 걸었다.
"여긴 온천이에요."
"온천이요?"
"흐음~ 정확히 뭐라고 해야하나. 온천수가 나오는 호텔?"
"호텔?"
"네. 일본처럼 노천탕이면 더 좋긴 하겠지만 방해없이 단둘이 온천하기에는 좋을 것 같더라구요."
"흐음..."
"요즘 태환이 몸이 많이 안좋아졌잖아요. 온천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온거에요. 유명해서 예약하기 꽤 힘들었던 거 알아요?"
이미 죽을 날짜를 받아놓은 암환자에게 온천이 얼만큼 좋겠냐마는 체력적으로도 약해진 내가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게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기분전화 겸 짧은 여행지로 이런 근교에 위치한 온천 호텔에 왔나보다.
어디든 상관없이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데, 그는 더 욕심이 많나보다.
나를 너무 사랑해줘서 오히려 고마운 나의 천사는 나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나보다.
그의 따뜻함에 무척 행복해졌다. 난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고마워요. 쑨양."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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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째네요..ㅎㅎ
오늘은 퇴근 후 시간이 많이 있어서 또 한편 올려봅니다^^
이번 이야기는 쑨과 태환의 마지막 추억쌓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원래 안넣어려다가 달달함을 좋아하는 독자님들을 위해 한번 넣어봤습니다^_^
★오타지적 환영!
암호닉+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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