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뷔/단편] 예쁘고 젊고 섹시하고
W. 블룸
"아저씨, 나 대학 붙었대요!"
너는 목도리를 두른 채 발갛게 달은 얼굴로 손을 호호 불며 내게 기쁜소식을 전했다. 추운 탓도 있겠지만 기쁨에 상기된 너의 얼굴에 나는 함께 기뻐할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입에서 아저씨라는 단어를 들어본적도 없거니와 그리 좋아하지도 않지만 너의 입에서 나오는 아저씨는 지독히도 아름다워보여서 나는 항상 아저씨였다.
나는 예쁘고 젊고 섹시한것이라면 뭐든 좋아했다. 예쁘다고 해서 예쁜여자를 좋아하고 따위의 것이 아니라 보고있으면 이쁜것들을 의미하는것이었는데 태형이는 내 방에 대충놓여져있는 장식품같은것의 공통점을 유추해내서 그것이 내 취향인줄로만 알고 계속해서 사왔었다. 내가 말하는 예쁨이란 그런것이었다. 김태형 같은 것.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세가지를 충족하는것은 김태형 뿐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사각사각. 사과를 깎던 손이 멈추고 칼을 내려놓았다. 나 역시 신문을 읽던것을 멈추고 너를 쳐다보았다.
"아저씨, 나 대학가면 이제 어떡해?"
"왜? 뭐가 어떡해?"
"여기서 살면서 학교로 출퇴근 할 순 없잖아-"
"우리 이사하지, 뭐."
나는 대수롭지 않았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내 성격상 실없는 소리따위 뱉지 못한다는걸 너도 잘 알것이였다.
"그럼 아저씨가 출퇴근을 멀리서 하잖아! 그렇게 아저씨한테 짐이 되긴 싫어. 나 그냥 친구들이랑 기숙사 들어갈게."
"그럼 나랑 잘 못 만날거 아냐. 기숙사는 너무 엄해, 너같은 애들은 못 견뎌. 원룸 구해다줄게."
한참을 생각하던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번도 떨어져 지내 본적이 없는 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일이었다. 태형이가 팔을 뻗어 내 목을 감아왔다. 아저씨 없으면 난 어떻게 살까, 하는 말이 선악과마냥 달콤하게 귓전을 울렸다. 나도 손을 들어 너의 뒷통수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와 잠시 떨어져있는다 해도 너와 나의 사이는 지금 이대로 만족스러울 것만 같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라는 말은 우리에게만 예외일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
대학에 들어간 너는 내게 이제 짐이 되고싶지 않다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 바람에 너와 만날수 있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의 그늘에서 점차 벗어나려하는 네가 또렷이 느껴져서 나는 언짢았다. 너는 평생 나에게 기대 사는, 나를 아저씨라 부르는, 유일한 나의 꼬마여야 했다. 그래도 나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행하려는 네게 불평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너와 잠시 만나는 그 꿈같은 시간들마다 너는 계속해서 나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나는 꿈에 취한 몽유병환자처럼 너에게 취해갔다.
"아저씨, 나 이제 잘 못 올지도 몰라."
너의 한 마디에 나는 허망하게 한여름밤의 꿈에서 깨고 말았다. 우리의 파라다이스는 우리가 함께여서 아름다웠던 것이지 네가 없는 파라다이스는 그저 내가 홀로 표류하고 있는 무인도일 뿐이었다.
"왜?"
반문하는 나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너도 그것을 느꼈을 테다. 너는 이윽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내게 안겨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에 가지 않았을거라고, 휴학계를 내버릴거라며 투정을 부리는 너를, 나 또한 투정을 부리며 그러라고 할 수가 없었기에 나는 또 한번 괜찮다며 품에 넣었다. 나에게 안겨 울음을 터트리는 너를 쓰다듬으며 나는 척추끝이 짜릿한 사랑을 느꼈다. 그래. 너와 나는 사랑하기에 괜찮다고 그렇게 이유도 듣지 못한 채 나를 위로했다.
*****
너는 그 날 이후로 정말 발길이 뜸해졌다. 네게 전화를 했을 때 너는 선배들이 자꾸 불러댄다며 나가기 싫다고 칭얼거렸다. 나는 네 선배들의 마음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나 친해지고싶고 누구나 소유하고싶은 너인것을 잘 알기에 나는 그렇구나,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뒤이어 태형아, 여기서 뭐해. 들어가자. 하는 말이 들려왔지만 그래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감히 나의 영역에 침범하는 사람이 있을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더더욱이 그것이 나에게서 하나뿐인 완벽한 너일거라고는.
그리고 너는 이제 전화조차 잘 받지 않았다. 회사일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네가 그럴리 없다고, 해사하게 웃는 너를 떠올리려 했지만 너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열이 올라 책상을 내리쳤다. 어디서 무엇을 하길래 연락도 한 통 없고 코빼기에도 보이지 않는지 신경질이 났다. 나는 참을성이 좋지 못한 사람임에도 너이기에 여기까지 참아왔다. 하지만 이제 더는 못 할 것 같았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역시 너는 받지 않아서 마지막에 나오는 삐소리에다 대고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지금 너희 학교로 출발해.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다짜고짜 너의 이름을 말했더니 어디어디 몇층에 있을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너를 잘 아는데, 너와 몇 년간 제일 가까웠던 나는 학교에서의 너를 잘 알지 못했다. 그것이 나를 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성큼성큼 너의 수업이 있다는 강의실 앞에 도착했더니 이제서야 나의 메세지를 들었는지 네가 수업중인 강의실 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팔에 전공서적을 한아름 낀 채 휴대폰을 꼭 잡고 놀란 눈을 한 너는 차가운 눈을 하고 있는 나와 마주쳤다. 복도에서 지나가던 학생들이 너를,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너의 손목을 끌고 수많은 인파를 헤쳐나갔다. 너를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그것도 혼자. 덩그러니 방하나만 얻어준채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잠시 잊고있었다. 너를 이미 소유했다는 나태함에 빠져 네가 지나는 곳마다 너를 바라보고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잠시 잊고 있었다.
"아 왜 이래, 아저ㅆ.. , 전정국!! 아파!"
너는 화가 났는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아저씨라고 부르는 네가 아니라 내 이름을 부르는 너의 모습조차 섹시해서 나는 전율했다. 나는 너의 반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너를 잡아 끌었다. 점차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너의 반항도 멎어들고 인적이 드문 곳에 당도했다. 너는 나를 한참이나 째려보았다.
"왜 전화 안 받아?"
"아저씨. 나 이제 아저씨 퇴근만 기다리는 애 아니잖아. 나 이제 사회생활 해! 아저씨 전화라고 항상 받아야 해?"
너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네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휴대폰을 빼앗아 들었다. 얼른 들어간 최근기록에서 너는 나를 제외한 사람들과 모두 통화를 하고, 문자를 주고받았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 통화를 하지 않아도 부족할 판국에 눈앞의 현실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너의 최근기록 속에서 나는 홀로 빨간전화기 표시를 갖고 있었다. 네가 애교스럽게 붙여 놓았던 하트표시도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김태형. 거짓말 하지."
"......."
"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알아."
"......."
"너도 날 다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넌 한참 멀었어."
너는 입을 꾹 다물고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딱히 반박을 하지 않는 네가 나는 오히려 더 불안했다. 차라리 아니라고 잡아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는 한참을 그러고 있다 입을 열었다.
"아저씨, 우리 헤어져요."
아저씨한텐 미안하지만, 나 우리 과 일년 선배랑 사겨. 사람 마음이란게 어쩔 수가 없는 거잖아. 아저씨한테 미안해서 전화고 뭐고 아무것도 못 했어. 내 맘 이해하지?, 나는 너를 전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나한테 들어간 돈은 내가 열심히 살아서 꼭 갚을게. 그동안 고마웠어, 하는 너의 말에 나는 이윽고 숨이 턱 막혔다.
"뭘, 갚아? 니가 어떻게 갚는데."
"내가 열심히 돈벌어ㅅ.."
"니가 돈벌어서 내 마음을 다 갚을거야? 뭘 할건데. 너 그거 다 갚으려면 평생 숨만쉬고 일만해도 못 갚아. 그런 어줍짢은 동정 줄 필요없어. 돈이라면 나도 차고 넘치니까. 니가 나를 벗어나서 번 니 돈 니가 다 가져. 그리고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가지고 살아."
"......."
"씨팔 다 키워가지고 대학까지 보냈더니 진짜.."
"......."
"니 눈엔 내가 돈이 필요한 사람 같아?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이해가 안 돼? 우리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이였나"
나는 매정하게 너를 돌아섰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우리의 사이가 그 누구보다 견고하다고 오만을 떨어왔다. 그 결과는 결국 너와 나의 파멸이었다. 우리의 이별로 김태형은 새로운 사랑을 얻었지만 나는 손해만이 가득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나의 연인과의 이별은 생각보다 큰 파동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비참하게 너는 나에게서 떠나는 순간에도 예쁘고 젊고 섹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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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와 그의 어린 연인.. 관계를 글로 써보고 싶어서 썼는데 너무 어린 연인으로 잡으면 철컹철컹.. 할 것 같아서 ㅋㅋㅋㅋㅋㅋ 대학생! 사실 전정국도 아저씨라지만 스물여덟~서른으로 생각했고 굉장히 잘생긴데다 능력도 있고 돈도 많은 그런 제 상상속의 전정국이고 태형이는 평소 태형이보단 다소 차분한 철부지 대학생으로 잡았어요
감사의 의미로 쓴 단편이라 읽으실때 포인트 0 !!! 연재하다 가끔 이렇게 .. 글 써 올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이게 상편이고 하편도 생각해 뒀었는데 쓰게 될 지는 모르겠어서.. 원래 제목에는 上 표시가 나 있었지만 없앴습니다 전 예젊섹 열린 결말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서...
앞으로도 블랙킹덤 많이많이 사랑해 주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