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죄송해요!!!!!!!!!!!!!!!!!!!!!!!ㅠㅠㅠㅠㅠㅠ
이청용은 막 벗겨낸 가죽의 역한 피냄새에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괴물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역겨움은 도무지 적응할수가 없었다. 특히 죽은 괴물의 진동하는 피비린내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것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의뢰를 수행한 뒤 마땅한 증거물을 가져가지 않으면 보상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그는 묵묵히 커다란 가죽을 어깨에 짊어지고 터덜터덜 걸어서 숲을 나왔다.
할수만 있다면 청용은 이 일을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목숨을 걸고 움직여야만 먹을것이 떨어지는 이 생활이 지긋지긋했다. 처음엔 활 쏘는게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멋지지 않았다. 화살 한발을 어떻게 쏘느냐에 따라 목숨이 오락가락했고, 젊은 유망주로 떠오르다가도 금세 실력좋은 모험가들에 치이고 치여 바닥끝까지 추락하곤 했다. 아무튼 이 바닥은 청용의 삶인 동시에 청용이 가장 도피하고 싶어하는 곳이었으며, 무엇보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곳이었다. 게다가 요즘 청용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숲을 나온 청용은 곧장 도시로 향하는 마차를 잡았다. 이 곳의 덜컹거리는 마차들은 외곽지와 중심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청용이 고른 마차는 마부가 앉을 앞좌석을 제외한 뒷자석에는 2명이 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마차였다. 천으로 된 지붕이 햇볕을 가려주면서 사방은 뻥 뚫려있는 낡은 마차는 그 마차만큼이나 비실비실해보이는 늙은 말 한마리가 끌고 있었다.
마부가 짐을 싣는것을 돕기 위해 마부석에서 내려왔지만, 청용의 짐이라고는 커다란 활과 화살통 그리고 아직도 피냄새가 나는 털가죽밖에 없었기에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마부석에 올라갔다. FC서울이요ㅡ 청용이 마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피곤함이 가득 묻어나는 청용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질문했다.
"FC서울? 모험가이신가보죠?"
"네."
청용이 짧게 대답했다. 마부의 두 눈이 흥미로움으로 빛났다.
"서울이라ㅡ 그 뭐냐, 그래, 3등급의 길드로군요, 나리. 저도 중급 길드들을 많이 알고 있죠. 거기 소속된 사람들이 이쪽 숲에 자주 오니까요. 서울, 수원, 전북, 울산, 제주… 물론 그 중에서도 서울을 제일 좋아합니다. 실례지만 나리, 존함이?"
"이청용이요."
마부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무언가를 떠올리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청용은 뒷좌석에 있었으므로 마부의 얼굴을 보진 못했다.
"이청용…. 아… 그러면 혹시 그 푸른색 활이 '블루드래곤'인가요?"
마부가 흘끗 고개를 돌려 청용의 옆에 놓인 활을 바라봤다. 청용은 왠지 물건을 감정하는듯한 그 눈빛이 싫었다. 또한 아주 피곤했으므로 계속 짧게 대답했다.
"네."
"오! 말로만 듣던 블루드래곤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영광입니다요. 그래, 길드간의 대결중에 이 활을 들고 이단 옆차기를 하셨다죠, 나리?"
청용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안그래도 그 일 때문에 골이 아픈데 이제는 마차의 마부까지 멋대로 들쑤셔대고 있으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마차나 잘 몰것이지 뭐 이리 말이 많아. 청용은 부디 이 말이 마부의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미안하지만 눈 좀 붙일테니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다행히 그 후로 마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차는 느리지 않았지만 그리 빠른편도 아니었다. 청용은 천천히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을 느꼈다. 마차가 지나다니는 길 옆으로 넓게 펼쳐진 들판에는 햇빛이 환하게 내리쬐었고, 연푸른 하늘에 둥둥 떠있는 구름은 평화롭고 느긋한 한낮의 분위기를 한층 돋구었다. 조금 전 숲에서는 울창한 나무들에 햇빛이 모두 가려 이토록 찬란한 낮인줄도 몰랐다. 그는 이제야 좀 임무를 마쳤다는 기분이 들었다. 달가닥거리는 나무바퀴소리만 조금 덜했더라면 금세 잠에 빠져들었을것이다.
청용이 잠깐 졸기도 하고 멍하니 앉아있는사이 어느새 마차는 도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청용을 FC서울 길드의 본부 앞까지 무사히 데려다주었다. 만원입니다! 마부는 그동안 말을 하지 못해 입이 근질근질했던지 유난히 큰 목소리로 값을 불렀다. 청용이 돈을 지불하고 주섬주섬 활과 가죽을 챙겨 마차에서 내리자 마부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다그닥 다그닥 다른곳으로 갔다. 휴ㅡ 고개를 돌려 서울길드의 대문을 보면서 청용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내가 속해있는곳은 여기구나.
좋았다. 이런 훌륭한 길드에 속해 있다는게. 그러나 그 사실은 무엇보다 청용을 힘들게 했다.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하게 했고, 더욱 더 강한 상대와 대결하게 했다. 일이 잘 되는 날에는 엄청나게 칭찬받다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곧바로 혹독한 대우를 받게 되는 냉정한 곳. 꼭 들어가야되나ㅡ 그런 고민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들어가야만 했다.
청용은 문을 열고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안에 처음보는 얼굴이 있었다. 뺀질뺀질해보이는… 키는 무지 큰… 저게… 누구?
*
"그럼 이따 여기서 만나자. 언제쯤? 저녁 먹고 만날까?"
"그래."
구자철과 헤어진 기성용은 FC서울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까 광고에서 정확한 위치를 보고 왔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또 다시 사람이 몰려있는 게시판까지 가자니 너무 귀찮았다. 해 지기 전까지는 도착하겠거니 하며 느긋하게 거리를 거닐었다. 옆에서 계속 같이 종알종알거리던 자철이 없으니 왠지 허전한 느낌이 밀려왔다. 성용은 그게 외로움이란걸 아직 몰랐다.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가를 지나는데 갈림길에 서있는 팻말이 눈에 띄었다. [FC서울-서쪽으로 약 1.5km]. 별로 안 남았네? 방향까지 알게됐고. 성용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곧 성용은 FC서울이라는 멋들어진 간판이 걸린 커다란 건물에 도착했다.
똑똑-
노크를 여러번 했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성용은 답답하면 직접 열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문을 열어젖혔다.
잠겨있지 않은 문이 끼익 열렸다. 성용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성용은 문을 닫고 천천히 내부를 둘러봤다. 들어가자마자 펼쳐진 커다란 응접실은 넓은 내부에 비해 가구가 별로 없어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나름대로 멋이 있었다. 문 바로 옆에는 카운터가 있었다. 거기 사람이 서있어야 할 것 같은데 비어있다. 정면 벽에는 붉은 바탕에 금빛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수호신이 수놓인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다른 벽 곳곳엔 FC서울의 모험가들이 수상한 상패나 그들의 사진 등이 있었고, 방의 가운데에는 둥근 탁자가 있었다. 탁자에 의자는 없었다. 4개 정도의 방문이 보였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었다.
성용은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일단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탁자 위에는 FC SEOUL이라는 글씨가 멋지게 적혀있었다. 흠. 이번에는 한쪽에 걸려있는 액자들로 다가갔다. 다른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기했다. 그 중 유난히 한 사람이 성용의 눈에 들어왔다. 짧은 단도를 손에 쥔 남자는, 사진속에 있음에도 아주 강렬한 눈빛으로 성용을 사로잡았다. 기성용은 한참동안 그 남자를, 아니 그 남자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
안으로 들어온 한 남자는 빤히 성용을 쳐다보았다. 성용도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커다란 검은색 털가죽을 어깨에 메고 있는 남자는 본인에 비해 키는 약간 작았지만 다부지고 탄탄한 몸이란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화살통이며 화살이며 한 눈에 봐도 궁수란걸 알 수 있었다. 왠지 지쳐보이는 이 남자는 이곳 FC서울에 소속된 사람인 듯 했다.
이청용은 키만 멀대같이 큰 이 놈이 웬 놈인가 싶었다. 누구냐! 라고 박력있게 외치려다 말고(혹시 다른길드에서 온 중요한 손님일까봐) 제법 점잖게 물었다.
"누구시죠?"
성용은 혹시 자기가 뭘 잘못했진 않았나 생각했다. 무단침입으로 벌받고 그러진 않겠지? …그래도 눈 앞의 남자는 나쁘게 생기지는 않았다.고 성용은 판단했다.
"검사인데요. 모집공고를 보고 왔는데 아무도 없네."
아. 그래요? 청용이 잠깐 생각했다. 뭐지? 이 촌놈은? 모집공고를 보고왔다고? 검사가 한 명 필요하다고 단장님이 말씀은 하셨는데. 보아하니 그리 대단할 것 같지는… 청용은 성용을 아래위로 쓰윽 훑어보고는 그에게 활을 쭉 겨누었다.
"뭐, 뭐야?"
"실력을 한번 봐야죠. 우리 길드가 그래도 중급길드중에서는 상위권인데."
청용은 망설이지 않고 활을 쏘았다. 화살이 향한 곳은 정확히 심장쪽이었다. 이정도도 못 막으면서 여기 들어올 자격은 없지. 청용은 그저 이 어이없는 방문객에게 한번 화살을 박아서 따끔한 맛을 보여준 다음 치료해주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기본적인 회복마법은 알고 있으니까.
으악! 성용은 냅다 칼을 뽑으면서 화살을 쳐냈다. 의외의 묘기에 청용이 놀랐다. 좀 하는데? 다른 화살을 또 활시위에 걸었다. 성용은 바짝 긴장했다.
챙
경쾌한 금속음과 함께 한번 더 칼이 화살을 튕겨냈다. 청용은 곧장 또다른 화살을 쏘았다. 챙! 챙! 챙! 챙! 챙챙챙챙챙채앷애챙채애챙채앷앷애앵챙ㅇㅇㅇ채앵ㅊㅇ챙!! 청용이 화살을 쏠 때마다 성용은 가볍게 받아내고 있었다. 그는 어릴때부터 줄곧 자철이 날려주는 조그만 마법한라봉을 베는 연습을 했던것을 떠올리며 자철에게 감사했다. 식빵도는 화살을 쳐낼때마다 빛을 반사하며 번쩍거렸다. 훌륭하게 화살을 막고 있는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이따금 쳐낼 자신이 없는 화살은 잽싸게 몸을 돌려 피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 화살은 날아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벽에 꽂혔다.
마침내 청용이 화살통에서 마지막 남은 화살을 꺼냈다. 성용이 살짝 미소지었다. 저게 끝이구나! 챙ㅡ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마지막 화살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미 성용의 주위에는 떨어진 은화살들이 마구 널부러져 있었다. 휴우ㅡ 기성용이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미소짓기는 청용도 마찬가지였다.
"바보세요?"
청용의 활 시위에 푸르게 빛나는 마법의 화살이 걸려 있었다. 아이고, 망할. 기성용이 신음했다. 처음부터 화살이 무한대였던 셈이다. 바보라는 소리에 기분은 나빠졌으나 할 말은 없었다. 원래 궁수들이 마력을 잘 다룬댔는데… 생각 못한 자신의 잘못이다.
마법의 한라봉은 몰라도, 화살을 벨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성용은 날아오는 마법의 화살을 향해 당당하게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식빵도가 갖고 있는 마력은 성용의 생각보다 강했다. 식빵도의 날 끝에서 화살이 스르르 녹아 사라졌다. 그러나 은화살때보다는 훨씬 힘이 들었다.
기성용은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시험을 당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언제까지 막고만 있을수는 없었다. 게다가 멀찍이 떨어져서 잘난듯이 화살만 톡 톡 쏘아대는 이 놈은 짜증났다.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외모도 잘 생겼다. 더욱 짜증났다. 성용은 화살 하나를 베어내며 살짝 앞으로 이동했다. 숨을 짧게 들이마시고 준비를 했다. 청용이 다음 화살을 쏘기 전에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성용은 그대로 이청용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이청용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크게 점프해서 물러나며 식빵도의 날을 피했다. 그리고 또 화살을 쐈다. 성용은 계속해서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며 다시 청용에게 다가가서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면 청용은 또 성용을 피해 물러나며 화살을 쏘고, 성용은 그 화살을 피해 또 청용에게 다가가고. 다가가고 물러나고 다가가고 물러나고…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것 같았다.
이쯤되자 이청용은 상대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기성용은 청용의 생각처럼 실력도 없이 마냥 모험가의 삶을 꿈꾸는 철없는 촌뜨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딱 거기까지. 청용은 동시에 세 개의 화살을 소환했다. 헐, 저걸 어떻게 다 막아. 기성용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식빵! ……어? 식빵?
기성용은 마법의 식빵을 만들어서 화살을 막았다. 비록 식빵은 바로 뚫리긴 했지만 화살을 한층 약하게 만들어 주었다. 기성용은 수월하게 세 개의 화살을 베어냈다.
뭐야 이자식. 마검사였어? 슬슬 끝을 내고싶었던 이청용의 자존심에 불꽃이 일었다. 세개고 네개고 닥치는 대로 화살을 만들어 날리기 시작했다. 허공에 생성되는 푸른 화살들은 활 시위를 거치지도 않고 곧장 기성용을 향해 날아갔다. 아오, 돌아버리겠네! 급격히 쏟아지는 화살비에 기성용도 미친듯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우수수 쏟아지는 화살들을… 자철이가 있었다면… 튼튼한 한라봉으로 막아줬을텐데… 친구야 보고싶다… 화살에 온 몸이 관통당하며 기성용이 생각했다.
마법의 화살은 엄청 아팠지만 피나 상처가 나진 않았다. 또한 진짜 화살을 맞는것처럼 피부가 뚫리는 심한 고통까지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성용은 기운이 모두 빠져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아, 식빵… 청용은 그런 기성용을 내버려두고 주변에 떨어진 은화살들을 주섬주섬 주웠다. 화살을 모두 화살통에 담고나서야 성용에게 다가와 말했다.
"별로 안 아프지? 마법의 화살이 원래 그래. 기운만 쏙 빼놓거든. 목숨을 끝내는 것, 그러니까 마무리는 이걸로 하지."
청용은 성용을 향해 은화살을 겨누었다. 그 와중에 기성용이 생각했다. 말이 짧아졌군….
짙은 패배감이 성용을 휘감았다. 카카오99%를 씹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싸움에서 져 본적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엎어져서 얌전히 화살을 기다리는 굴욕적인 패배는 해본적이 없었다.
한편 청용은 은화살을 쏠 생각이 없었다. 그냥 폼 잡아보려고 멋진 말 하면서 화살을 겨누긴 했는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되지? 여기서 그냥 활 내리는것도 어색하고, 음, 이자식이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아 씨. 괜히 폼 잡았다. 청용은 여전히 말 없이 화살을 겨누고 있었다. 솔직히 조금씩 팔이 저려왔다. 후회했다.
"세상에, 꼬라지가 이게 뭐냐. 이청용!"
그 때 문이 벌컥 열렸다. FC서울의 부단장이었다. 뒤에는 몇 몇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청용이 잽싸게 활을 내리며 꾸벅 인사했다. 부단장이 얼굴을 가득 찌푸렸다.
"좁은 건물 안에서 싸움을 하다니 생각이 있는거냐? 엉?"
청용은 살짝 주변을 둘러봤다. 그제야 엉망이 됐다는걸 알아차렸다. 여기저기 박혀있는 은화살, 마법의 화살이 박혔던 자국, 칼자국, 쓰러진 탁자, 한마디로 난장판.
"이 놈은 누구냐?"
부단장이 누워있는 성용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입단을 하고싶다며 찾아왔어요, 그래서 저는 실력을 테스트해보려고 싸웠는ㄷ…"
"그런 건 네가 안해도 된다!"
청용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부단장의 천둥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청용은 최대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채 죄송하다는 느낌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돈 받고 일하는 모험가라는 녀석이 힘 아낄줄도 모르고 함부로 쌈질을 해? 그것도 건물 안에서? 정신이 있는거냐 없는거냐!"
부단장은 청용을 꾸짖으며 몸을 숙여 성용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곤 쯧쯧쯧 혀를 찼다. 이청용 네녀석이 아주 이놈을 죽으로 만들어 놨구나.
성용은 쪽팔렸다.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길 바랐다. 제발…. 그런데 순간 따뜻하고 부드러운 솜이 몸을 쓸어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회복마법이었다. 그와 동시에 기운이 돌아왔다. 성용이 벌떡 일어섰다. 부단장이 물었다.
"괜찮냐?"
"예. 어, 꼭 힐링캠프라도 다녀온것같네요. 멀쩡해졌어요."
성용이 어색하게 대답했다.
"정확해. 회복 마법을 줄여 힐링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애송아. 이청용에게 처참하게 깨진 모습을 보였는데. 아직도 우리 길드에 입단하고 싶으냐?"
"…나가보겠습니다."
성용이 뒤돌아섰는데, 부단장이 소리치며 그를 잡았다. 잠깐!
"네가 엉망으로 만들어 둔 곳은 치우고 나가라. 이청용, 너도 이 녀석이랑 같이 청소해!"
혹시나 입단시켜준다고 할까봐 두근거렸는데… 김 샌 기성용과 아직도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는 이청용의 눈빛이 잠깐 마주쳤다. 그러나 둘 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부단장과 다른 사내(FC서울의 다른 모험가들인듯 했다)들은 뒷문을 통해 뒷뜰로 나갔다. 결국 응접실엔 다시 기성용과 이청용만이 남게 되었다. 정적. 정적.
이청용이 말없이 여기저기 박혀있는 화살들을 빼기 시작했다. 기성용은 뭘 해야될지 몰라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야."
이청용이 문쪽에 박힌 화살을 빼면서 기성용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말을 걸었다.
"왜."
기성용이 대답했다.
"너 이름이 뭐냐."
"기성용. 넌 이청용이냐?"
"그래."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잠시 후 꽉 박혀있는 화살을 겨우겨우 빼낸 이청용이 홱 기성용을 돌아보며 말했다.
"멍청하게 서있지 말고 좀 치우지, 기성용?"
그제야 성용은 떨어진 액자같은것들을 주워서 다시 걸어놓기 시작했다. 이청용이 기성용에게 빗자루를 던졌다.
"그거 다 치우고 빗자루질도 해. 닦는건 내가 할테니까."
"…어."
둘은 함께 쓰러진 탁자를 세우고 묵묵히 청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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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함께 청소하다 정이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