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가 났다.
작은 항구도시에서 일어난 쓰나미는 내 집 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까지 초토화시켰다. 물론 그 전에 대처를 잘 해놓은 터라 죽거나 없어진 사람은 없었다. 물론 조금 다친 사람들은 많았다. 그나마도 이장이신 한씨 아저씨가 아니었더라면 그 사람들은 물론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죽었을 테지만 말이다.
한씨 아저씨는 아직도 웅성이는 대피소 안을 돌아다니며 쓰나미가 재발하지 않을 거라며 안심시켰다. 사람들은 수긍했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믿는 자 없었다. 우선 이 마을의 3년차 이방인인 나부터가 그랬으니까.
한씨 아저씨는 그 집안 아들들을 시켜 외부와의 연락책을 찾고 식량이나 비상약 공급을 도우라 했다. 아저씨는 아들들을 밖에 보내놓고 연신 제 손을 괴롭히셨다. 밖으로 나간 아들들이 걱정되지만 애써 안 그런 척 하시는 아저씨를 보고 안쓰러웠다. 그래서 아저씨를 불러 잠시 쉬게 해드려는 찰나 그 집 막내 아들이 대피소로 뛰어 들어왔다.
밖에, 아부지, 밖에!
제 교복 무릎이 다 나간지도 모르는지 상혁이는 무릎을 꿇고 숨을 헐떡였다. 한씨 아저씨는 급히 상혁이 옆에 가 물었다. 무슨 문제냐, 또 쓰나미가 일어난 거냐 묻는 아저씨의 손이 벌벌 떨렸다. 그들 곁으로 마을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갔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의 이방인인 채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밖에 고래가, 큰 고래가......!!
마을 사람들은 상혁이의 말에 놀라 다들 밖으로 나갔다. 밖은 아직 위험할 수 있다는 아저씨의 외침은 외로웠다. 이미 사람들은 다 밖으로 나갔고 아저씨는 한숨을 쉬시며 상혁이의 어깨를 한 번 툭 친 뒤 그들을 뒤따라 나갔다.
나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상혁이에게 다가갔다. 상혁이는 날 보며 울먹였다.
누나, 누나 어떡해... 누나네 집, 고래가 먹었어.......
때묻지 않은 아이의 언어란 참 예쁘다. 나는 잠시 모든 걸 잊고 내 언어와 다른 상혁이의 언어에 즐거워했다. 그러자 곧 상혁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안았다. 사실은 안긴 게 맞았다. 덩치만 컸지 아직은 아이같은 상혁이를 안아주고 토닥였다. 누나는 집 같은 거 없어도 괜찮아 상혁아. 내 말에 상혁이는 더 울상이 되었다.
나는 일어났다. 그러자 상혁이도 일어났다. 나가려는 나를 막았다. 아직은 아부지가 위험하댔어, 꼬물거리는 입술이 참 귀여웠다. 그럼 같이 가자, 내 말에 상혁이는 놀랐지만 이내 눈을 휘며 웃었다. 누나 무서우니까 우리 손 잡고 가자. 내 말에 상혁이는 그 작은 얼굴의 반을 입이차지할 만큼 웃었다.
내 집 쪽으로 가는 내내 만난 마을 사람들은 이제 괜찮은 것 같다며 안심한 표정이었지만 대피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빨리 하셨다. 간혹 다치진 않았는지 내 안부를 물어봐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있는 상혁이에게 꿀밤을 먹이셨다. 이놈아, 고래가 어딨니 대체! 분명 봤다는 상혁이의 말에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는 고래를 대체 어디서 봤냐며 상혁이를 귀엽게 괴롭히셨다. 울상을 지은 상혁이를 뒤로 하고 나는 내 집을 향해 뛰었다.
상혁아! 먼저 들어가 있어!
같이 가자 외치는 상혁이를 마을사람들께 맡기고 먼저 오게 된 내 집은 참 처참했다. 바다와 맞닿아있어 좋아했던 그 벽이 무너져있었다.
어차피 집에 대한 미련, 그런 건 추호도 없었다. 돈 걱정은 딱히 안 되었다. 삶조차 포기했던 때가 있었는데 돈, 집,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런데도 눈물이 났다. 이곳, 나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피난처, 다 무너져있는 내 삶 같았다. 다 잃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시간 속에 살고 있었나. 나는 다 쓰러진 내 집 안에서, 바닥에 물이 차오른 그 집 안에서 무릎을 꿇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적막한 이 공간에 내 울음소리만이 가득 했다.
파드드득-
내 울음소리와 겹치는 이상한 물소리가 났다. 파도에 철썩이는 소리가 아니라,
파드드득-
인공적인, 마치 방금 물에서 나온 물고기의 지느러미 소리 같았다. 한숨을 쉬었다. 그래, 쟤도 살겠다고 날개도 아닌 지느러미를 파득거리는데, 내가 울어 무엇할까. 어차피 더 허탈할 수도 없는 삶이었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이 폐허에서 쟤라도 살려주자, 싶은 마음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파드득-
나는, 숨을 멈췄다.
웬 발가벗은 소년이 있었다.
소년에게선 짙은 바다의 냄새가 났다.
또 소년의 눈동자는 바다와 닮아 있었다.
어딘지, 그 시절 나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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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고래(?) 이홍빈 X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섬마을로 도망친 지 3년째인 별빛. 홍빈이는 몸의 절반 이상이 바닷물에서 나오게 되면 인간이 되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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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선 연작을 쓰면 안 된다고 하시기에 글잡으로 데려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정수리) 근데 누가 보긴 할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