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회의가 끝나고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은 점심시간. 무슨 심보인지- 또 뭐가 그렇게 뒤틀렸는지 팀장실에서 영 나오지 않는 우현이다. 서류정리를 하면서 힐끗힐끗 쳐다봐도 불투명 시트지 위로 살짝 보이는 검은색 생머리만 이따금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성규님, 우리 점심 먹으러 갔다 올 건데, 성규님은 밥 안 먹어요?”
“아…. 먼저 먹어. 나는 별로 생각 없어요.”
“알겠어요. 밥 챙겨 먹어요. 아참 아까 약국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디 아파요? 아프지 말고 밥이라도 잘 챙겨 먹어야죠”
아 잊고 있었다. 감기약.
“아 같이 나가자. 생각해보니까 약국 가야 하네”
“아잌 빨리와요. 명수 기다려요.”
“둘이 밥 먹어 나는 약만 사서 들어오려고”
“알겠어요.”
밥도 먹지 않고 일만 붙잡고 있는 우현이 영 걱정이 되어 약을 사와야겠다. 입고 왔던 코트를 챙기고 휴대전화를 챙겨 나가는 성규이다. 으- 추워 추워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오자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약국까지는 10분 거리 약국 옆에 죽 집이 있으니 우현이 좋아하는 죽이라도 포장해야겠다.
딸랑-
“어서 오세요~ 소망 약국입니다.”
“저…. 감기약이요. 종합감기약.”
“정확히 증상이 어떠시죠?”
성규가 환자인 줄 알았는지 빤히 쳐다보는 약사의 눈빛에 급하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아파 대신 약을 사러 왔다고 말하는 성규이다.
“그…. 머리가 아프다고 했어요. 요새 계속 불규칙하게 잠을 자서 피곤해 보였어요.”
“어디보자.. 여기 쌍화탕이랑 종합감기약이에요. 감기약은 두 알씩. 혹시 많이 졸려 하면 한 알씩만 복용해주세요. 4,200원입니다.”
“네…. 여기 5000원.”
하루에 두알..졸리면 한알.. 성규는 약사가 했던 말을 중얼 중얼 거리며 우현이 좋아하는 야채죽을 포장하러 죽집으로향하였다. 으춰춰 뭐라는지 모르겠는 외계어는 애교. 죽 집이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 덕에 점심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은 지금 회사에 도착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직 사무실에는 세네 명밖에 없는 것 같았다. 명수와 성열도 아직 오지 않은 것 같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눈속임 용으로 약봉지와 쇼핑백 위에 서류를 들고 팀장실을 노크했다.
“…. 들어오세요.”
탈깍
문을 닫고 성규는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우현의 상태를 살폈다. 많이 안 좋은 것인지 안색이 좋지 않다. 속상해…. 잘생긴 나무가 썩은 나무가 되었다.
“우현…. 아니 팀장님 이것 좀 드세요.”
우현이라 하려다가 아차 하고 팀장님이라 호칭을 바꿨다.
“아..이게..”
“약이랑 죽이에요. 아까 아프시다고 하시길래 사 왔어요. 약은 두 알 드시고 졸리시면 한 알 드시래요. 꼭 죽 먹고 약 드세요.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아까 약사가 했던 말을 기억해 내서 말 하고는 뒤돌아서 문을 열고 나섰다.
아니 나서려고 했다. 우현이 부르지 않았으면.
“성규씨..는.. 점심 먹었어요?”
점심? 물론 먹지 않았다. 지금은 점심시간이 끝나기 일보 직전. 생각이나 했겠는가. 온통 머릿속엔 우현 감기 우현 감기 우현 감기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아..먹..먹었습니다.”
아씨 거기서 말을 더듬으면 어떻게 하니 성규야. 거짓말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 안 드셨나 보군요. 이리 와서 한 숟갈 뜨세요. 죽도 많은데.”
“아..”
“얼른 문 닫고 와. 죽 식는다.”
어색..하다..왜냐면 처음이니까…. 돌연 회사를 때려치우고 우현의 회사의 입사한 후, 그니까 인턴과 팀장이라는 직위로 서로에게 일체 반말도 쓰지 않고 회사에서의 예의 아닌 예의를 지켜왔던 우현이었다. 물론 지은 죄가 있는 성규가 우현을 조금씩 피해 다녔던 것도 일조했지만 말이다. 머리가 아픈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의자를 하나 끌고 자신의 책상 옆에 놓고 툭툭 친다. 얼른 오라는 거겠지. 의자에 앉아 죽을 먹고 있는 우현 한번 죽 한번 쳐다보니 우물우물 죽을 먹으며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
“먹..먹을게. 너도 나 그만 보고 먹어.”
유독 우현이 빤히 쳐다보면 안절부절못하다가도 우현이 바라는 행동을 하는 성규이다. 허겁지겁 죽을 밀어 넣다 생각보다 뜨거웠던 죽에 입천장을 데고 말았다. 으 뜨거!!
“으어어..”
“그러게 왜 쑤셔 넣길 쑤셔 넣어. 내가 다 먹기라도 한데?”
“모아 뜨거어 (몰라 뜨거워)”
“더러우니까 다 씹고 말해.”
뜨거운 죽보다 우현이 농담하며 주물주물 거렸던 볼이 더 뜨거운 것 같다. 아니 너무 뜨거워서 내가 구분을 못 하는 건가? 얼추 죽이 바닥을 들어내고 밖이 조금 소란스러운 걸 보니 팀원들이 점심을 먹고 온 듯하다.이제 슬슬 나가 봐야지. 망할 남 팀장님이 내주신 자료정리도 해야 하고 말이다.
“팀장님 뒷정리는 알아서 할 줄 아시죠? 저 성열 씨랑 명수 씨 도와주러 가야 해요. 갑니다!”
“알겠어요. 좀 있다가 집에 갈 때 봐요.”
어쩐지. 죽이 잘못된 게 맞는 것 같다. 이상해 볼이 아직도 뜨거워. 아까 냉수를 잔뜩 마셨는데도 말이다.
그 분이 그 분이실 것 같지만 독자님 댓 달아주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