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붉은 참혹상
written by: 규피덴셜
state: 공유, 배포 xX
nick: 테라규, 감성, 씨규빠, 타라, 베긔, 체리펀치, 소라빵, 코알라, 모닝콜, 찹쌀떡, 뚜러뻥, 마카롱, 융유
붉은 참혹상 -17-
우현은 두준이 한 말을 한 번 더 곱씹어 보았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군부대라면 저런 일은 빈번하지만… 이상민 대령님이 저러는 건 처음인데.」이 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벨름 제국의 군부대에서 이런 강간이나 성추행에 관련된 일은 빈번하다는 것을 보아서 성규 형이 이상민 대령과 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서 더 충격을 받아야 했지만 그 뒤에 이상민 대령이 저러는 건 처음이라는 언급에 우현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만큼 성규 형이 무언가를 잘했겠지, 그만큼 이상민 대령이 성규 형을 좋아하나보지. 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그게 자신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는 전혀 다른 사랑이었기에 우현은 이해가 도무지 되지를 않았다.
한참을 쪼그려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문이 벌컥 열렸다. 문 옆에 쭈그려 앉아있던 우현의 머리 위로 성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저 멀리 가버릴 줄로만 알았던 성규는 예상 외로 다시 들어오라는 눈치를 주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표정도 느낌도 없었던 까만 눈동자를 보려하니 자꾸 아까 전 이상민 대령에게 처참히 당하고 말아던 성규 형의 눈물이 생각나서 더 이상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르는 게 어쩌면 더 당연했다. 그렇게 방으로 아무런 발자국 소리 없이 슬그머니 들어가자 아까 반나체 상태가 아닌 깔끔한 복장의 이상민 대령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진급.”
'예? 저요?'라고 말하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을 쭈욱 빼내어서는 자신을 가리켰다. 그랬더니 맞다고 하는 건지 입술을 쭉 내민 채로 끄덕이는 이상민 대령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우현은 벙쪘다. 이게 이렇게 손쉽게 일어날 수 있는건가? 그저 이렇게 몸만 대주고 섹스해주면 안될 일이 어디있어? 이렇게 일이 쉽게 순조롭게 일어나도 우리 군부대는 안전한건가? 아직 입학한 지 1년도 안 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나에게 진급을 맡기는거지? 우현은 혼란스러움에 이상민 대령은 벙 찐채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전쟁으로 많은 손실을 봤고 그 뜻은 높은 사람들이 죄다 땅에 묻히셨다고.”
“…….”
“나는 자네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스스로는 인정이 안 되는건가?”
신경을 전혀 안 쓴다는 듯이 눈썹만 이리저리 꼬물거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상민의 태도에 우현은 웃어야할 지 웃어야할 지 정말로 고민이 되었다. 우현이 성규의 반응을 보려고 곁눈질로 성규의 턱부터 시작해 천천히 얼굴을 눈으로 스캔하면서 우현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규의 눈물 맺힌 웃음이 얼굴에 한가득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진급이라는 사실 하나로 이렇게 사람이 퇴폐적으로 바뀔 수 있는 걸까? 분위기 상 우현도 어색하게 입꼬리를 겨우겨우 올려가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상민 대령을 쳐다보자 이상민 대령은 그제서야 딴눈 판 것처럼 도로록 굴리던 시선을 우현과 성규에게 고정했다.
“축하하네.”
*
훈련장에 들어가는 대문 옆에 붙어있는 공지 앞에 몰려든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전쟁의 영향 때문일까? 전보다야 웅성이는 그 소리가 약해진 듯 싶은 게 훈련병들이 사기가 죽은 건지 혹은 정말 인원 수가 줄어서 그런 건지는 눈으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성종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가 공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진급에 관련된 공지기에 성종은 그저 눈으로 스윽 훑을 뿐이었다. 글라디우스, 스쿠툼부터 시작해 이번에 새로 생긴 아우다시아 함대라니? 성종은 가만히 공지를 보다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령 이성종?”
글라디우스 부대는 공격 부대로 체력이 좋은 인물들이 보통 진급하기 마련인데 이상민 대령과 윤두준 중령은 전쟁에서 살아남아서 그대로 있다고 치지만 간호병이라는 이호원 훈련병이 소령으로 껴들어간 것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체력 하나는 이호원 훈련병도 죽지 않을 정도니까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소령으로 갑작스럽게 진급하게 된 부대는 다름 아닌 스쿠툼 부대였다. 머리를 쓰고 방어를 하기 위해서 부대를 옮기는 부대이기에 조금은 똑똑한 사람이 진급될 줄 알았는데 성종은 자신이 된 것에 대해서 매우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차라리 글라디우스 부대에 진급해서 싸움 속에서 영광스럽게 죽어가는 것이 성격에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스스로도 뱉어내고 살짝은 민망한 발언이었다. 그 말인 즉슨, 자신이 진급을 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스쿠툼 부대에는 누가 올라갔나 보자 오년 전 왕관을 훔쳤다던 오종혁 훈련병이 중령으로 진급한 점에 대해서 의문이었다. 오종혁 훈련병 같은 인재가 중령이면 도대체 대령은 누구지? 그렇게 대령의 이름을 보았을 때 성종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성규가… 대령?”
“어이없죠.”
옆에서 자신의 혼잣말에 끼어든 남자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니 자신보다 키가 조금 커 보이는 사내가 보였다. 다름 아닌 성열이었는데 성열도 이 공지 앞으로 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알지도 못하는 아우다시아 함대의 중령으로 진급을 한 이유에서부터였다. 성종히 감히 이유를 생각해보건데 이러하였다. 퓨르 제국은 벨름 제국이 육지 위에서의 군부대만 셌지 해군 쪽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해안가서부터 적은 양의 군인으로 많은 수의 병사들을 무찔렀다. 그렇게 대령관까지 올 수 있었고 생각에 벨름 제국의 대령관 근처까지 와서 전멸한 것만으로도 퓨르 제국의 계획은 대단했다.
성종은 사실 김성규가 자신의 윗 사람이라는 것이 더 불만이었다. 물론 훈련병에 입성한 햇수로 따지자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성종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옆에 있는 성열과 함께 일을 하고 싶어했다. 그 이유하면 전쟁 당시의 일 때문이기도 한 데다가 성열의 말솜씨에 현혹되었으며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둘은 나란히 서서 공지를 보다가 서로 눈을 맞추고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성종씨, 정말 저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요.」
응급차 안에서의 성열의 말은 처음에는 기가 막히도록 뻔뻔하게 들려왔으나 점점 성종을 설득시키는 것처럼 인정하게끔 만들었다. 애초에 김성규 대령이 가서 응급차를 불렀대도 성열이 지혈을 해주지 않았으면 곧바로 과다출혈로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가면서 약간은 유치하게 칭찬을 바라는 것 같기도 한 성열의 모습에 성종은 그저 허탈한 듯 웃으면서 성열을 마주대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생색을 내 가며 자신이 그만큼 소중했음에 대해서 설명하는 성열이 웃겼는지 성종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면서 성열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네요.」
「되게 말투가… 말투가 별론데.」
「진짜 고마워요.」
장난스럽게 말투가 맘에 안 든다는 식으로 눈썹을 치켜 세우면서 등을 돌리는 척 하는 성열의 모습에 또 성종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성열의 웃음에는 장난끼 다분한 어린 아이가 숨어있는 마냥 눈이 초롱거렸고 입은 쭉 찢어져 헤에 벌어져 있었다. 성종은 다친 다리를 가만히 눕혀두고 성열을 쳐다보았다. 저렇게 진솔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존재하기는 할까?
성종은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군부대 내에서 저렇게 친절한 사람도 보기 드물다는 것. 그러므로 약간의 의심 또한 해보는 것이 좋았을 터인데 너무 성열을 믿고 들어갔다. 성열이 성종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함은 오로지 벨름 제국의 군부대 정치를 반대하는 안티 벨름에게 거액을 건 조건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목숨이 달린 일일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희망에 모험을 건 상태였다. 그러기에는 점점 자신의 편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고 그 첫 번째 타깃은 성종이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훈련병 신분으로 잘 만나면서 훈련이나 받으며 점점 짬을 내서 군부대를 발칵 뒤집어놓으려던 차에 갑자기 진급이 된 경우에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일이 더 복잡해지는 것에 머리가 복잡해져왔다.
“그나저나 진급 축하해요. 함대까지 생긴 마당에 스쿠툼만 더 바빠지겠네요.”
“그럼요. 제가 성열씨한테 도움 받은 만큼 도움 드릴게요.”
“그 말 진짜죠? 믿겠습니다?”
끄덕이는 성종의 모습에 성열은 웃음이 결국에 터져나왔다.
*
서인국, 이성열, 남우현. 남자 셋은 결국 함대의 대령, 중령, 소령으로 뽑히게 되면서 퓨르 제국이 맨 처음 벨름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들어왔던 위치에 서 있었다. 세게 부는 바람이 뺨을 때리는 것처럼 내려치는데 거의 아플 정도였다. 바람 때문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인국은 성열과 우현에 비해서 인상이란 인상은 죄다 쓰고 있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글라디우스 부대로 진급하기 위해서 훈련병 생활을 거의 10년이 되도록 해왔는데 결국 대령이란 자리를 얻긴 했지만 전혀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는 아우다시아 함대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최초 아우다시아 대령으로써 더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 것이 맞았기 때문이었을까.
바람을 맞고 계속 서 있었더니 저 멀리에서 배가 들어오는 듯 싶었다. 여태껏 자신은 저 배를 타기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해왔나. 인국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막대한 책임감에 감각이 무뎌진 것 같다고 느낄만큼 애매한 기분이 들어 그것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러대었다. 그에 흠칫 놀란 성열과 우현은 인국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그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그저 저 멀리 천천히 오는 배를 쳐다보면서 바람 소리에 한숨 소리만 폭폭 묻혀낼 뿐이었다.
“왜 하필 우리일까.”
센 바람 소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인국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온 그 질문은 정말이지 그 둘도 궁금해지기 마련이었다. 왜 하필 훈련병 10년 경력 말썽을 가장 많이 부리기로 유명한 서인국이 대령이며, 훈련병이 겨우 되어서는 말짱 꽝 몸치를 붙잡고 큰 키와 긴 다리를 가지고도 허우적대서 매일 따로 남아서 훈련을 더 하는 이성열이 중령이며, 아무 것도 모르는 사관학교 학생이었던 우현이 이유 불문의 진급 통보로 소령이 된 것일까. 정말 환상의 조합이다. 읊조리고서는 박수를 퍽퍽 쳐대는 탓에 성열과 우현은 영문도 모르고 같이 박수를 따라쳤다.
조그마한 배가 저 멀리에서 오는 듯 싶더니 시간이 지나자 벌써 세 남자 앞에 서서는 바람에 펄럭거리는 소리를 우렁차게 내보였다. 천천히 배에 올라타서는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 세 남자는 계속 배 안을 구경했다. 나름대로 편안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아 인국은 부족한 수면을 채우기로 결심. 곧바로 침대에 누워서 눈을 붙혔다. 성열과 우현은 그저 멍 하니 배 위로 올라와 팔자 다리를 하고 앉아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앞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함대를 만들어서 될 것이 있을까? 싶음에 조금은 우울해지는 저녁이기도 했다.
“사관학교 학생이었댔죠.”
“네.”
성열은 그렇게 우현에게 질문을 해놓고서는 답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저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을 뒤로 넘겨가면서 시선을 공중에 띄워놓은 채로 입을 쩌억 벌리더니 하품을 해대었다. 우현도 또한 그런 성열의 하품이 옮기라도 했는지 똑같이 입을 쩌억 벌리고 하품을 성열보다 길게 늘여놓았다. 그 때서야 성열이 우현과 눈을 마주치고 약간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고개를 돌려가며 눈을 서로에게 정확히 맞추었다.
“어떻게 소령으로 진급을 그렇게 빨리해요? 공부 잘 해? 집안 좋아? 실력이 좋아?”
“셋 다요.”
성열은 그 말을 듣고서는 약간 우현이 재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아까 바로 전에 하품을 해서 그런지 눈물만 삐쭉 튀어나올 뿐 하품이 더는 나오지 않았다. 하품이라도 하면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고 입을 벌렸지만 결국 턱이 아픈 걸로 바로 입을 닫아버렸다. 재미가 없었는지 성열은 결국에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배 안에서 계속 왔다갔다 걸음을 했다. 저기 끝에서 여기 끝까지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보고 나름 자기 맘에 들었는지 갑자기 씨익 웃기도 했다.
“시끄러워. 이 망할 놈아!”
성열은 밑 층에서 서인국 대령이 자고 있을 거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한 행동인데다가 우현 또한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성열이 돌아다니고 뛰어다니는 대로 혼자 '귀엽네'하고 가만히 있는 상태로 서인국 대령의 듣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두 눈은 동그래져서는 여기저기 눈알만 도로록 굴려대었다. 언제 어디에서 서인국 대령이 튀어나와서 우리를 쥐어 팰 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약간 담임 선생님을 잘못 만난 느낌이랄까.
결국 성열도 걷기를 포기 따분함을 택한 채로 가만히 앉아있는데 그 와중에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남자를 발견하였다. 누군지 몰라서 허리만 곧게 쭉 편 채로 기웃거리면서 저 먼 곳을 쳐다보는데 당연 그 거리가 육안으로 보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기웃거리면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알아본 인상은 다름 아닌 이상민 대령의 인상이었고 아무도 없이 홀로 온 것에 의아해하며 성열과 우현은 곧바로 일어나서 꾸벅 인사를 했다. 따라서 목례를 해가며 배 위로 오른 이상민 대령은 세찬 바람을 맞아가며 성열과 우현을 쳐다보았다.
“서인국 대령은?”
“배 밑으로 들어가 주, 주무시고 계십니다.”
*
연필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놓고 돌릴 용도로 쥐고 있는지 무언가 종이에 쓰려는 용도인지 계속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두 남자들의 침묵을 뚫고 명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빨리 말해주고 싶어서 침도 겨우 삼켜가며 헐떡이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홍진호, 장동우, 김명수. 이 셋은 글라디우스, 스쿠툼 부대나 아우다시아 함대와는 전혀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안티 벨름이었다. 즉, 리베르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그들은 안티 벨름이라는 소주제의 이름에 걸맞게 벨름 제국의 군부대 정치를 반대하며 세상을 돌릴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생각, 생각났다니까요.”
“뭔데.”
“홍단의 왕관을 빼돌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