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의 실수
없던일이라, 어찌보면 차라리 잘됐다싶기도 하다. 사실 자존심상했거든.
"...."
말하려던 의도와 다르긴 했지만 수습할 생각은 없었다. 둘다 의미 없던 일이었던 것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아니, 나만 의미있었던 일이라고 인정하기에 너무 부끄러웠던 것 뿐이다. 그렇잖아. 나는 얼굴이 몽땅 빨개진 채로 허둥지둥 일어났는데 무덤덤하게 일어나서 내 팔을 붙잡던 네 모습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보여서 그랬어.
춥다. 골목골목 파고드는 바람이 매섭다. 팔짱을 꼬옥 끼며 몸에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뭔데?"
"..."
"아까 부승관이랑 너랑 분위기 장난 아니더만."
골목에서 잠시 등을 기대고 있다가 문득 생각난 경리에게 전화를 하니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눈치 보여서 동방으로 옮겼다더라. 자연스레 나도 동방으로 향했다. 소파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젖히자 그위로 얼굴을 들이미는 경리를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뒤로 넘어간 경리는 자연스레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추궁하는 눈빛의 경리를 무시하자 경리는 아까 부승관과 나의 분위기가 장난아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완전 불꽃튀는 줄.' 하는 경리에게 코웃음을 치며, 오버한다고 혀를 찼다.
"아, 진짜 너 이럴거야?"
"뭐가."
"나 궁금해 죽겠다고."
"몰라. 물어보지마."
내 신경질에 경리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지금 너 삐진게 문제가 아니거든.
'그래 그럼.'
'...'
'없었던 일로 하면 되겠네.'
..화났겠지. 부승관. 평소엔 볼 수 없는 화난 모습이었다. 내가 대출을 부탁했을때, '박경리는 얻다 써먹고 나한테 해달래. 나 여자목소리 내니까 주변에서 얼마나 웃었는 지 알아?' 화내는 얼굴에도 싱글벙글 웃음기가 가득했는데. 오늘처럼 화난 모습은 또 처음이다. 사실 화내는 모습에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겠지. 너는 나를 그냥 친구로밖에 안보는 걸. 아까 달큰한 커피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입안에는 원두의 쓴맛만 남았다. 쩝, 입을 다시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어디가게."
"그냥. 너랑 여기서 이러고 있어봤자 뭐해. 도서관가서 공부할래."
"미친.. 김여주 부승관이랑 썰 다 안풀고 가?"
씩씩 거리며 묻는 경리에게 혀를 내밀고 문을 열었다.
"야! 너랑 부승관이랑 뭔데, 대체!"
"됐다고! 부승관이랑 나랑 아무 상관도 없거든!"
"김여주!"
"걔는 원래 아무하고나 그러는 놈인가보지! 짜증나!"
툭, 내 본심이 나왔다. 너는 오늘 아침에 왜 그렇게 무덤덤했어? 부스스한 모습에서 당황한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단 말야. 그냥, 그냥 너는 아무하고나 그럴 수 있어? 나는 그렇게 못해. 자존심 상해. 괜히 경리에게 빼액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얼빠진 경리는 '허, 저게 나한테 화풀이야.' 하면서 내게 주먹을 들어보이는 모습을 뒤로하고 다시 방에서 나가려고 고개를 돌렸다.
"..."
"..김, 김여주 안녕."
..부승관. 마침 동방에 들어오는 길인듯 부승관은 책을 손에 쥐고 김민규와 동방 문앞에 서있었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는데 못 들었을리가 없겠지. 애꿎은 김민규만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냈다. 애가 얼마나 당황했으면 서로 이름만 알지 초면인 사이에 인사를 했을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틀어 그들을 지나쳤다. 가슴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너는 나를 잡지 않았다. 나 또한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뒤돌아 왔으면서 서럽다. 씨이, 학교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갔다. 아까 말 그렇게 하지말걸. 아니 차라리 어제 너랑 술마시는게 아니었는데.
.
.
.
하필이면 오늘 술을 마시러간다더라. 몸이 안좋다며 빠지려고 했는데..
'여주, 승철선배 복학하는데 서운하시겠다.'
'그래. 그 선배가 너 얼마나 예뻐했냐.'
부추기는 선배들의 말에 울며 겨자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독 날 잘챙겨줬던 승철 선배의 복학. 여동생이랑 나랑 닮았다면서 과제든 뭐든 이것저것 잘 챙겨주셨다. 에잇, 술안마시려고 했는데 인생이 날 안도와줘! 이렇게 된거 그냥 마시자. 하는 마음이었다. 하필이면 부승관도 나오는 바람에 최대한 멀찍이 떨어진 구석에 자리잡고 앉았다.
'야 너 왜 안와.'
'나 오늘 남자친구 생일. 아까 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가버려서 말 못했다.'
문자로 타박하자 경리는 남자친구 생일이라며 답장했다. 하필이면 조금 친하다 싶었던 애들도 죄다 부승관 근처에 있는 바람에 낄 수도 없었고. 누가 보면 아싸인줄 알겠다. 괜히 술만 홀짝이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나와 지나가던 승철선배가 날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아녕하세여.' 인사했다. 아 벌써 혀꼬인다. 그는 잠시 내 뒤에 쭈그려 앉고는 몇마디 말을 건넸다.
"왜 거기서 혼자 그러고 있어."
"..그냥요."
"왜 나 왔는데 인사안해?"
"아까 사람이 많아가지구우.. 이따가 인사하려고 그랬지여."
"아하하, 그랬어?"
내 머리를 꾸욱 누르듯 쓰다듬은 선배는 끙차, 소리 내며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지금 선배들이 나 찾고 있어서 이따 다시 올게. 적당히 마셔."
"네에."
일어서는 승철선배의 뒷모습을 보는데 내 옆에 있던 다훈선배도 몸을 일으켰다.
"야, 너 어디가."
승철선배의 말에 다훈선배는 '나 현지 옆으로 가려고. 너도 알지, 내가 현지 좋아하는거.' 그말에 승철선배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현지 좋아하는 거 현지빼고 우리학교 사람들 다알아, 인마."
"그니까 내가 그렇게 티를 내는데도 답답해 죽겠네."
아 맞다. 다훈선배 현지 좋아했지. 대충 넘겨들으며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다시 불판에서 타오르는 고기를 보고 있었다. 아 잠깐. 아까 현지 옆에는....
"야 승관아. 나랑 자리좀 바꾸자."
"네, 형."
부승관이었잖아! 뜨악하는 마음에 머리를 잔뜩 헤집으며 눈알을 굴렸다. 어색하지 않게 자리를 바꾸는 방법도 고민했고 화장실에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에서는 묵직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늦었어.. 꼭 몸에서 소금이 굴러나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 몸이 내몸이 아닌 느낌이랄까. 고개만 푸욱 속이며 손톱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가 손을 뻗어 술잔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괜히 마시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입술만 적시며 홀짝였다. 부승관이 옆에 있으니까 숨쉬는 것도 의식되고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조금 들이킨 술도 화끈거리며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
부승관은 잠시 고개를 숙인채로 한숨을 쉬더니 이내 날 보고는 작게 말했다.
"그만 마셔."
"..시러."
뭉개진 발음으로 말하는 나를 부승관은 어이없는 듯 쳐다봤다.
"보지마.."
그런 부승관의 어깨죽지를 툭 밀면서 칭얼거리자 부승관은 고개를 휙 돌렸다.
"너 진짜 답답하다."
"씨이.."
"너도 알아, 김여주? 너 답답한거."
몰라, 자식아. 조금씩 취기가 올라오는지 얼굴도 화끈거리고 아까까지만 해도 빳빳했던 몸이 느슨해졌다. 생각해보니 내가 왜 위축돼야 해? 쌍방과실이잖아.
"내가 답답하든 말든 네가 뭔상관이야."
눈을 부릅뜨며 부승관을 노려보자 부승관은 '허.' 작게 웃음을 흘렸다.
"술마시고 왜 추태야."
"..."
"좀 적당히 해. 너는 여자애가 자기 제어도 못하면 어쩌자는 거냐, 진짜."
부승관도 술잔을 집어들며 날 흘겨봤다. 덧붙여 말하길,
"그래서 너 어젯밤도.."
라고 하다가 제 실수를 눈치챘는지 날 한번 슬쩍 보는거다.
"..."
"김여주.."
부승관은 혀로 입술을 한번 축이고는 나를 불렀다.
"돼써. 내가 제어 못한건 사실이니까."
정신을 차리고 똑부러지게 말하고 싶은데 꼬인 혀가 원망스럽다. 들고있던 젓가락을 그냥 내려놓았다.
"나 갈게."
짐이라고는 별거없이 작은 핸드백을 쥐고 일어났다. 잠깐 휘청이긴했지만 곧 꼿꼿하게 설 수 있었다.
"..데려다 줄게."
부승관은 한숨을 쉬며 내 손목을 붙잡았다.
"..."
잠시 잡힌 손목을 내려다봤다. 티 안내려고 했는데, 나는 네가 좋다. 이젠 친구인척 하는 것도 지치고, 나 혼자 신경쓰는 것도 자존심 상한다. 그냥 그만 할래.
"놔줘. 나 혼자 갈게."
"..야, 너 지금 휘청거리잖아."
다른 손으로 승관이의 손을 밀어냈다. 승관이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다물었다.
"신경써줘서 고마워."
벽을 짚고 걸어가는 나를 승관이는 그저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여주, 지금 가는 거야?"
"네. 원래 안오려고 그랬는데 선배 서운할까봐 잠깐 앉아있었던 거에요."
승철선배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잠깐만.' 말하고는 휴대폰을 챙겨 다시 내게 왔다.
"괜찮아여. 저 혼자 갈 수 있는데."
실실 웃으며 말하는 날 보고는 승철선배는 피식 웃었다.
"못 가. 너 지금 이런데 어떻게 혼자 보내. 데려다 줄게."
"그치만 지금 선배가 주인공인데 빠지면 어떡해.."
곤란한 눈빛을 본 승철선배는 자기 뒤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지금 현지가 눈치챘거든. 다훈이가 자기 좋아하는 거."
"헐. 드디어?"
입을 틀어막으며 묻자 승철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정수리를 헝클었다.
"지금 주객전도 돼서 저기가 불판이거든. 난 잠깐 나갔다 와도 모를거야."
"..네, 그럼. 감사합니다아."
꾸벅 고개를 숙이자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닌데.' 하는 모습에 마음이 편해진다. 신발을 신고 승철선배와 함께 문을 나설때였다.
"형. 제가 여주 데려다 줄게요."
- 하룻밤의 실수
부승관과 밤길을 수없이 함께 걸었지만 이번처럼 조용하고 말없기는 또 처음이다. 조금 차가운 밤바람에 코를 훌쩍이자 부승관이 가만히 내려다 보더라.
"추워?"
그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승관은 머뭇거리더니 제 목에 감긴 빨간 목도리를 벗고는 내게 둘러주었다.
"필요 없는데?"
내 말에 부승관은 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랑 같이 있는 부승관은 한숨만 쉰다.
"그냥 좀 해주면 잠자코 받으면 안돼?"
"...."
그말에 그냥 고개를 조금 숙여 목도리에 코를 박았다. 승관이향기와 밤바람 냄새가 미약하게 섞여있었다. '고마어.' 웅얼거리며 전한 감사인사에도 부승관은 말이 없었다.
"얘기, 다시하면 안될까."
"...."
얘기는 어쩌다보니 부승관네 집에서 하게 됐다. 마침 걷던 길이 카페라곤 하나도 없는 주택가였고 거기서 제일 가까운 건 부승관네 집이었다. 딱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만 흐트러진 부승관의 집. 어색하게 앉아 발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잠시 외투를 벗고 짐을 풀고 온 모양인지 부승관은 방에 있다가 나왔다. 내 옆에 앉긴 앉았지만 부승관또한 빳빳하게 경직돼있는 것 같았다.
"아무일도 없었던 걸로 하기로 했는데,"
"..."
"너는 왜 날 피할까."
부승관이 혼잣말 하듯 풀어놓았다.
"네가 피하는게 싫어서 아무일도 없던 걸로 하자고 한거였는데."
그말에 잠깐 움찔했다.
"물론 조금 속상해서 그런것도 살짝 있고."
그리고는 낮은 웃음. 딱히 즐거운 웃음은 아니었다.
"나는 의미없는 일 아니었어."
툭, 가볍게 흘러나온 그 말이 둥, 내게 무겁게 울린다. 나는 여전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너는 내가 아무하고나 그럴 놈으로 보여?"
"..."
"너는 나를 오랫동안 봤으면서 날 그정도밖에 몰라, 왜."
"..승관아."
용기를 내어 네쪽을 쳐다보자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바로 두 눈이 맞물렸다. 승관이는 옆으로 흘러내린 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이번엔 술마시고 그러는 거 아니야."
"..."
"싫으면 피해. 싫지 않으면, 내가 아무하고나 이럴 사람인지 확인해봐."
승관이의 옅은 숨결이 다가왔다. 조금 흔들리는 내 눈빛을 승관이는 보지 않고서도 알아챘다. 그 가깝지만 복잡한 거리에서 승관이는 나를 잠시 기다려주었다.
..싫지 않아. 눈을 감자 그 숨결은 내 입술을 맴돌았다. '승관아..' 벌어진 틈으로 그 숨이 흝고 지나간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감았던 눈을 뜨자, 내 기척을 느낀 승관이 또한 눈을 떴다.
"왜."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너때문에 내가 얼마나 애탔는지 넌 몰라, 김여주.
그말을 끝으로 다시-
우응, 뜨거운 숨을 토하며 눈을 떴다. 아, 목말라. 어제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또 토나올 것 같아. 쩍쩍 갈라지는 목을 부여잡고 오만상을 쓰며 탁자를 더듬었다. 이상하게 손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자 내 주변엔 낯선 침대, 낯선 가구, 낯선 천장. 왠지 한번 겪어본듯한 낯선 감정. 칼칼한 목때문에 물이나 마실까 하고 침대를 짚고 일어서려는데 턱, 내 손목이 잡혔다.
"어딜 가려고."
부승관이었다. 말끔한 얼굴로 턱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부승관은 엉거주춤하게 일어서 있는 나를 제쪽으로 끌어당겼다.
"..승관아."
"어."
그리고는 날 품속에 가두고는 아무렇지 않게 잠을 자려는 듯 몸을 뒤척였다.
"없었던 일로 못해, 이번엔."
"아니 그게 아니고."
승관이는 잠시 날 떼어내면서 쳐다봤다. '그럼?' 하고 묻는 그말에 승관이를 보며 답했다.
"좋아한다고."
말안했는데 내가 더 애탔을 걸.
그날 밤
"양파도 먹으랬지."
"우웅, 시러어.."
하여간 김여주 쟤는 애같은 짓은 다한다니까. 소세지만 쏙쏙 집어먹는 모습에 볼을 누르며 입을 벌려 양파를 밀어넣자 인상을 쓴다. 그 모습도 귀엽긴하지만.
"아 지짜 기분 좋은데. 양파때문에 망해쟈나."
뭐라고 하는건지 겨우 알아들을 발음이 귀여워 픽 웃으니 자기도 덩달아 베시시 웃는다. 그 웃는 입 안으로 양파를 밀어 넣으니 표정이 급격히 굳었지만. 딱히 내가 양파를 싫어해서 널 먹이는 건 아니야.
"아, 양파 다먹었다. 잘해찌?"
빈 그릇을 내보이며 자랑스럽게 웃는 모습이 웃겨 조금 웃었다.
"응. 잘했어."
"근데 나 아직도 입이 심심해."
가스레인지에서 오징어를 구우면서도 웃겨서 피식피식 웃었다. 요리해서 갖다 바치고 오징어 구워서 갖다 바치고. 나만큼 김여주한테 잘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먹기 좋게 몸통을 북북 찢으니 김여주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를 부르니 또 흥이 오르는지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아, 좀 가만히 있어봐."
사실 귀여워서 좀더 보고싶은데 괜히 틱틱거렸다. 안그러면 금방이라도 좋아한다고 말할 것 같아서.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여주는 어깨로 나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여! 승가니도 해볼래? 재미써!"
너는 어깨춤을 계속 추며 날 밀어댔다.
"그만 하지?"
말리는 내말은 소용이 없었다. 여주가 계속 더 강도높게 어깨를 부딪쳐서. 그 동그란 이마를 툭 밀어내자 더 기를 쓰고 어깨를 밀어대는 통에 방심하고 있다가 뒤로 넘어갔다. 술을 마셔서인지 나또한 텐션이 높아져있었다. 그냥 여주랑 있어서인지도 모르겠고. 하여튼 기분이 좋아서 나도 막 웃었다. 뒤로 넘어갔다가 몸을 반쯤 일으켰을때였다.
쪽-
김여주가 입맞춘건.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주를 쳐다보자 아무것도 안한척 능청스럽게 오징어를 먹을 모양인지 손을 뻗더라. 그 손목을 낚아채자, 이번엔 자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승관아?' 내이름을 불렀다. 내게 잡힌 그 손목을 끌어당겼다. 작게 흔들리며 내게 넘어온 너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다시한번 승관아, 내 이름을 부르는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여주는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너의 양볼을 쥐었고, 다시 입을 맞물렸다. 내 양손에 자리잡은 그 보드란 볼을 한번 쓸었다. 살짝 벌어진 네 입술에서 나오는 더운 숨결이 입술을 간지럽혔다. 그러다 너를 꽉 끌어안았다.
"널 어떡하면 좋아."
김여주, 나 너때문에 애타. 죽겠어 지금.
키스 후의 성인남녀. 게다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단순한 소꿉친구 사이였던. 이상하게도 우리는 술때문인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고 있다가, '숨막혀.' 내 등을 퍽 때리는 네 손에 아쉽지만 나는 손을 풀었고. 너는 편안하게 오징어를 씹으며 '그래서 그때 경리가 그 언니한테, 언니는 아주 제가 만만하죠? 웃겨. 이러는거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응. 그랬는데."
"그니까 다정언니가 너 지금 내가 재수했다고 무시하냐? 이러면서 화를 냈다?"
"어. 그래서?"
사납기로 유명한 선배의 흉내를 내면서 말하는 네가 귀여워 가만히 들었다.
"근데 솔직히 경리가 어이없자나. 그 언니 자료준비 하나도 안해서 어쩔 수 없이 발표 하는 주제에."
"그러네. 어이없었겠다. 박경리 성격에 가만히 못있었겠네."
"웅. 근데 내가 일 커질까봐 데리고 나와찌."
"잘했어."
내게 브이자를 보이며 웃기에 뒷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자 그길로 내 품을 파고든 여주는 '나 졸려.' 한다.
"..어?"
"졸리다구."
미친다, 진짜.
졸리다며 칭얼거리는 여주를 대충 침대에 눕혔다. 하여간 김여주 나 없을때 술먹이면 안되겠다. 계속 옆에 붙어있어야지. 너는 알까. 널 볼때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마음이라는 걸. 이불을 목끝까지 끌어올린 여주는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그 웃는 모습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겼다. 너는 그 손길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받아들였다.
"잠이 안와. 아깐 졸렸는데."
진짜인지 아까만해도 뜨는둥 마는둥 했던 눈이 말똥말똥하게 떠있었다.
"노래 불러주라."
"..."
"응? 승관아아."
내 이름끝을 늘이며 부르는 모습이 귀엽다. 평소에는 애교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왜이렇게 예쁜 짓만 골라할까.
"싫은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아아, 승관아아아아."
네가 예쁠까.
어쩔 수 없이 항상 져주는 쪽은 나다. 고개를 끄덕거리자 몸을 옆으로 움직여 자리를 만들어준 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듣고 싶은 노래 있어?"
"응."
"뭐."
"디지몬 친구들 렛츠고 렛츠고."
"시끄러."
"..치."
너에게 뭘 불러주어야 좋을까 한창 고민했다. call you mine. 너한테 들려주고 싶어. 눈을 감고 가만히 듣는 네 모습이 예쁘다.
"승관아."
"응."
노래를 뚫고 들려오는 네 목소리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 노래는 초라해진다.
"너랑 친구하기 싫어."
그런 네 목소리가 더 사랑스러운 말을 늘어놓는다.
"그럼, 여주야."
"응."
"눈 뜨고 일어나면 친구하지말자."
네 손을 꼭 쥐고 깍지를 꼈다. 작은 네손은 내 손을 힘주어 잡았다. '응.' 웃으며 말하는 네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Call you my own
and can I call you my lover
Call you my one and only girl
call you my everything call you my baby
I remember this night we had
하룻밤의 실수
fin
여주님(; 뭐야 이거 글숨김 왜 안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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