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주인님! 이제 오세요?"
성규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강도는 성규를 꽉 껴안았다.
"으아아아.. 아?"
'주인님..?'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비명이 막혔다. 이건 무슨 상황일까.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성규에게는 궁금한게 더 먼저였다. 성규는 눈을 살짝 뜨고 눈 앞의 상황을 살폈다.
어..일단 난 죽도로 강도를 제압하려다가 걸렸고, 강도는 홀랑 벗고 있네? 아 강도가 아니라 변태였나? 요즘 우리 아파트에 속옷 도둑이 든적 있다고 들은 것 같던데.. 그건 그렇고.
"으아아아아! 너 누구야...요!"
짧은 순간에 대충 상황을 파악한 성규는 몸서리를 치며 강도를 떨쳐냈다. 하지만 성규를 껴안은 강도는 팔을 풀지 않고 더 앵겨왔다.
"뭐야, 왜이래요. 저리가!"
성규는 정신없이 팔을 휘젛었다. 강도와 떨어지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던 성규는 강도의 발에 걸려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덜그럭.
성규가 넘어지면서 묵직한 유리그릇 엎어지는 소리가 났다. 뭔가 깨진건 아닌가 싶었지만 성규는 그런 사소한 것에는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엎친데 덮진 격으로 성규가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강도도 그 위로 같이 엎어졌다. 넘어진 충격에 잠시 아파하던 강도는 성규를 보고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 저 모르시겠어요? 계속 같이 있었는데..."
엉덩방아를 찧은 것도 모자라 전라의 강도가 자신을 여전히 껴안고 있자 성규의 정신은 나갈데로 나가버렸다.
"으아아- 나 너 몰라..요! 이것 좀 놔주세요. 제발!"
성규는 혼미한 와중에도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싹싹 빌었다.
'때리려나? 제발 그냥 떨어저라 제발..'
성규는 눈을 질끈 감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왜 빌어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도의 따뜻한 맨몸이 자신에게서 떨어져만 준다면 뭐가 어떻든 상관 없었다. 의외로 순순히 성규를 짓누르던 따뜻한 몸둥아리가 떨어졌다. 최소 때리거나 더한 것(?)을 당할 줄 알았던 성규는 눈도 뜨지 못하고 몸을 웅크렸다.
"저 나무에요, 주인님이 키우시는.."
강도는 해맑은 얼굴로 자신을 나무라고 소개했다.
"나무?"
그제서야 성규는 눈을 뜨고 강도를 바라보았다. 창 밖의 가로등 빛이 성규와 조금 떨어진 곳에 쭈그려 앉은 강도의 모습을 어렴풋이 비췄다.
"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ㅇ.. 응?"
힐끔힐끔 강도를 훑어보던 성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했다. 전라인 것은 둘째치고 강도의 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발이 있어야 할 곳에는 떡하니 화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화분에 심겨(?)있다는 걸 제외헤고는 머리부터 발목까지 완벽한 사람이었다. 앉아 있어서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지만, 떡벌어지고 각잡힌 어깨에 근육도 적당히 붙어있어 딱 봐도 부러운 몸이고..
'내가 지금 왜 외간남자 몸이나 감상하고 있는거야?'
자신도 모르게 강도의 몸을 찬찬히 훑어보던 성규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내가 왜 그랬을까.. 혼자 소름끼쳐하던 성규는 남에 몸을 뚫어져라 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강도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강도는 성규가 뭘 하든 안중에도 없고 성규를 보고 실실 웃고있었다. 그 모습이 꼭 주인을 보는 강아지같기도하고.. 참 기분이 묘했다. 강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성규는 가장 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기요, 제 나무는요?"
성규는 이 질문을 하면서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걱정했다. 암만봐도 양발을 화분 속 흙에 파묻고 있는 것이 제성신은 아닌 것 같았다. 얼굴은 멀쩡하게 생겨서 말이야. 성규는 혀를 쯧쯧 찼다. 하얗게 질려서 벌벌떨던 아까의 모습은 어디갔는지 이제는 강도보다 우위에 서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제가 그 나무라니까요? 저 진자 못알아보시는거에요? 생일선물로 저 받으셨잖아요"
강도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 표정을 보니 정말인 것 같기도하고..혼란스러웠다.
성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조금 전, 넘어지면서 쏟아진 약간의 흙만 빼고는 나무는 커넝 잎파리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에이. 말도 안돼."
성규는 이 상황을 어디까지 받아드려야 할지 심히 고민했다. 성규는 우선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보이는 강도를 설득해 창문으로 몰래 내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단 일어나보세요. 아씨, 옷은 어따 벗어 둔거야."
성규는 강도의 팔을 잡고 끌어 올렸다. 강도는 순순히 성규가 이끄는데로 일어섰다. 일어난 강도는 중심을 잡을 양발 대신 화분이 있는 바람에 바로서지 못하게 휘청거렸다. 결국 성규는 찝찝함을 참고 자신의 의자에 강도를 앉혀두는 걸로 합의를 봤다.
'어떻게 잘 말해서 내보내지? 우리집 이층인데 창문으로 내보내도 되나? 옷은 어디다가 둔거야. 어디서 저런 변태가 들어와서..'
성규는 강도가 벗어뒀을 옷을 찾아 방안을 뒤적거리고 창문 밖으로 높이를 가늠해보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동안 강도는 얌전히 앉아 성규가 하는 모양세를 지켜보았다.
"성규야 안씼어? 방에서 또 게임하니?"
엄마가 보시는 드라마가 끝났는지 거실이 조용해졌다. 잠시 존재를 잊고있었던 엄마의 목소리와 성규의 방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거실에서 방까지 몇 초 안되는 짧은 시간. 성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라의 남자가 방에 있는 모습은 엄마가 보시기에는 썩 좋은 관경같지는 않았다.
'어떡하지?'
발소리가 멈추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성규는 온 힘을 다해 방문으로 몸을 날렸다.
쾅-
막 열리던 문과 성규의 오른쪽 어깨가 충돌하며 큰소리를 냈다. 다행히 성규의 엄마는 방안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성규야! 놀래라 진짜!"
문 너머로 엄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미안, 나 옷갈아 입다가 넘어져서 그래! 나 지금 팬티만 입고 있으니까 들어오면 안돼 엄마."
성규는 혹시나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실까 아픈 어깨를 살펴보지도 못하고 문을 막은 채로 서있었다.
"주인ㄴ.."
성규가 문에 어깨를 부딪치자 강도는 놀라서 콩콩 뛰어오려고했다.
'오지마 왜 와. 가만히 있어!'
성규는 기겁을 하며 음소거로 강도의 접근을 막았다.
"옷 갈아입는 것 가지고 유난 떨기는.. 성규야 엄마 잔다. 너도 일찍 자."
"바로 잘게."
다행이 성규의 엄마는 별 의심 없이 자로 들어가버렸다. 성규는 귀를 문에다 붙이고 안방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성규는 안방문히 닫히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문에 등을 대고 주저 앉은 성규는 강도쪽을 바라 보았다. 강도는 성규가 의자에 앉혀 놓은 자세 그대로 쭉 성규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다가 저런 강도가 내 방에 들어온거야..진짜 어디 모자란 사람 아니야?'
성규는 진심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잠시 고민하던 성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쪽.. 진짜 나무 맞아요?"
성규의 물음에 강도는 성규가 자신을 나무로 봐주지 않는게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진짜 나무 맞아요, 주인님. 봐봐요. 뿌리도 있는데."
강도는 억울한 표정으로 발목을 덮고 있는 흙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두,세주먹의 흙이 바닥으로 옮겨지고 드러난 모습에 성규는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분명 발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발 대신 굵은 나무 뿌리가 엉켜있었다. 잠시 벙쪄있던 성규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나무뿌리를 만져보았다. 나무뿌리는 흙 속에 오래 묻혀있어서인지 약간 촉촉했고 소름끼치게 따뜻했다. 그리고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진짜'였다. 그 말인 즉슨 성규의 눈 앞에 있는 강도는 정말 성규가 기르던 나무일지도 모른 다는 거였다.
"그럼 지금.. 어떻게 사람처럼 하고 있는거에요? 뭐 우렁각시 같은 건가..?"
"각시? 우렁각시가 뭐에요? 어.. 이 집에 와서부터 나무였다가 원하면 이렇게 나올 수 있게 됐어요! 왜 그렇게 된건지는 모르겠어요. "
강도나무는 순진한 표정으로 술술 대답해 주었다. 에상은 했지만 너무 말도안되는 내용이라 성규는 눈으로 보고 만져봤으면서도 의심이 갔다.
"아, 예. 그러시구나. 그럼 나무요정 같은건가?"
성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충 맞장구 쳐주자 강도나무는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나 싶은지 활짝 웃었다.
"그렇죠! 나무 요정인 것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무는 맞아요. 그런데 주인님! 말편하게 하세요. 저 아직 태어난지 얼마 안됐어요. 아! 저 궁금한게 있는데요."
"뭔데요? 가 아니라 뭔..데?"
"제 이름이 뭐에요? 아직 한번도 못들어봐서..헤헤"
"이름?"
성규는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주인님께서 지어주신 제 이름이요!"
강도나무는 기대에찬 표정으로 성규를 바라보았다. 성규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눈을 피했다.
'이름..이름은 무슨 나무가 나무지 또 무슨 이름이 필요한데?'
라고 말하기에는 저 순진무구한 눈빛이 신경쓰였다. 종류라도 알면 대충 지어서 넘어갈텐데.. 이 와중에 자신에게 이런 엄청난 골칫거리를 떠안긴 장동우가 떨올라 짜증이 나려고 했다.
'장동우 이새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식으로 사람을 엿먹여? '
성규는 이름 고민은 잠시 뒤로 제치고 내일 야자를 째는 한이 있어도 동우에게 화분을 돌려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니지, 그냥 주면 안되지, 돌려주는 김에 죽도로 몇 대 때려줘야지.'
"주인님?"
성규가 동우의 처우에 대해 고민하느라 말이 없자 강도나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성규를 불렀다.
"응? 아 맞다. 이름? 어.. 나뭉나뭉이야 나뭉나뭉이."
"나뭉나뭉이요?"
"응. 하하.."
성규는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참 형편없는 작명센스였다. 성규는 이름을 너무 막지었다고 강도나무가 화를 낼까봐 슬쩍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강도나무는 화를 내기는 커녕 몇 번 자신의 이름을 읍조려 보더니 만족한 듯 헤헤하고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성규는 처음 강도나무을 만났을 때 부터 느끼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거 설마 바보 아니야?'
옷만 제대로 입고 화분에서 뽑아 놓으면 어디가서 절대 꿀리지 않게 생겼는데..하는 짓은 성규의 열 살 짜리 사촌동생 성훈이 나이 또래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파괴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놀러오는 족족 성규의 물건을 하나씩 망가뜨리고 가는 성훈이와 달리, 이 강도나무는 순진하고 착해빠져서 누가 사탕준다고 하면 헤헤헤 웃으면서 쫓아 갈 것만 같은 정도? 맞다 생김새도 다르지, 이쪽은 내 또래로 보이고 성훈이는 딱 봐도 초딩이니까. 여기까지 강도나무에 대한 결론을 내린 성규는 눈앞에 마주 앉아있는 강도나무를 쳐다보았다. 강도나무는 바닥에 주저앉아(정확히 말하자면 화분에 쪼그려 앉아) 아까 넘어지면서 흘린 흙과 조금 전 뿌리를 확인시켜 주면서 바닥에 내려놓은 흙을 주워담고 있었다.
"저기, 강도나무..가아니고 나뭉나뭉아?"
성규는 사나운 개를 부르듯 조심스럽게 강도나무의 이름을 불렀다.
"네?"
성규가 이름을 불러주자마자 나뭉나뭉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성규를 쳐다보았다. 원래는 너 말고 너처럼 사람으로 변하는 나무가 또 있는지, 동우는 네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걸 알았는지 등을 물어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뭉나뭉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악몽같았던 지난 한달 간의 밤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혹시.. 너 나 잘때 옆에 붙어서 집적거렸었냐?"
지난 기억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성규도 모르게 말투와 표정이 절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뭉나뭉이는 성규가 자신을 드디어 기억해줬다고 착각하고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신의 범행사실을(?) 시인했다.
"네! 이제야 기억나신 거에요? 주인님이 기억 못하시는 줄 알고 완전 서운할 뻔 했어요."
"아, 서운할뻔 했구나아."
성규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아까 떨어뜨린 죽도를 주워들었다.
"매일 주인님 옆에 붙어 자서 완전 좋았어요."
"그래? 그럼 왜 그동안 내 앞에 안나타났던 건데?"
성규는 죽도 손잡이를 단단히 쥐었다.
"그건, 어, 부끄러워서.."
나뭉나뭉이는 수줍은 새색시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 부끄러웠구나 그랬구나. 하핳하하."
나뭉나뭉이가 부끄럽다는 말을 함과 동시에 성규의 머릿속에서 이성이라는 가느다란 실이 뚝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성규는 들고있는 죽도를 나뭉나뭉이에게 마구 휘둘렀다.
딱-딱-!
"아, 그러셨어요? 나무주제에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워! 잠깜만, 미친.. 너 그럼 밤마다 알몸으로 나한테 붙어잤었냐?"
성규의 갑작스러운 구타에 나뭉나뭉이는 제대로 피하지도 못했다.
"악, 아악, 주인님 왜 그러세요? 악 잠시만! 전 원래 아무것도 안입어도 돼요!"
그동안 눈앞의 건장한 남정네가 알몸으로 매일 밤 자신에게 앵겨있는 걸 상상하니 성규의 팔에 오돌오돌 소름이 돋았다.
"아악! 이 미친 변태새끼가!"
딱-! 딱-!
규나가 알바를 끝내고 돌아올 때까지 한동안 맑은 죽도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성규의 방안에서 작게 울려 퍼졌다.
"너 한번만 더 내 옆에 붙어 자면 뿌리채 뽑아서 불태워 버릴줄알아."
"허허헝, 주인님 진짜 잘못했어요..."
나뭉나뭉이의 훌쩍이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성규는 귀 밝은 규나가 무슨소리냐며 방문을 열고 들어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일이 커지기 전에 일단 나뭉나뭉이의 울음을 그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성규는 나뭉나뭉이의 옆에 쭈그려 앉아 손끝으로 나뭉나뭉이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야, 야, 아씨..누나 왔어 그만 처 울어."
"훌쩍, 네. 킁."
양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던 나뭉나뭉이는 성규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잠시 손으로 눈물을 닦던 나뭉나뭉이는 죽도를 피해 콩콩 도망다니면서 흘린 흙들을 화분에 주섬주섬 주워담았다. 방금전까지 화나서 난리를 치긴했지만 바보같이 자신 말은 잘듣는 나뭉나뭉이가 영 맘에 안들면서도 신경쓰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내적갈등을 하던 성규는 결국 옷장을 뒤져 안입는 반바지와 후드를 꺼냈다.
"입어. 그리고 징그러우니까 이제부턴 내 앞에서 알몸으로 다니지 마."
나뭉나뭉이는 성규가 옷들을 내밀자 감동받은 표정으로 성규를 올려다보았다.
"왜,왜이래. 그런 표정도 짓지마. 부담스러워."
"절 위해 옷까지 주시다니.."
나뭉나뭉이는 또다시 강아지같은 얼굴이 되어 성규를 쳐다보았다. 성규는 애써 화난 표정으로 나뭉나뭉이를 째려보았지만 결국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밀려 고개를 돌려야했다.
'어떻게 저런 표정을 아무렇지도 안게 짔냐? 차라리 영악한 성훈이가 났다.'
성규가 속으로 궁시렁대고 있는데, 작게 나뭉나뭉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왜."
성규는 다시 화난 표정으로 나뭉나뭉이를 돌아보았다.
"제 신체 구조상 이건 못입을 것 같아서..죄송해요."
나뭉나뭉이는 우물쭈물하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성규는 뭔소린가 싶었다.
'아..'
후드는 어찌어찌 입었는지 몰라도 양 발대신 뿌리가 있어 바지는 입을 수 없는 신체 구조였다. 양 다리가 사람의 다리처럼 각각 분리되어 있긴 했지만, 바지를 입으려면 뿌리를 파내야했다.
'아 진짜. 바지를 못 입으면 어쩌잔거야. 윗도리만 입혀놓을 수도 없고..'
초면에는 무섭고 놀라서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차분한 상태로 보니 아무것도 안 입은 나뭉나뭉이의 건장한 몸은 참 보기 민망했다. 상의만 입고 성규를 말똥말똥 쳐다보는 나뭉나뭉이를 보자니 편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아씨.."
잠시 망설이던 성규는 나뭉나뭉이에게 가만히 있을 것을 당부하고는 방을 나왔다. 바로 베란다로 간 성규는 널린 빨래들 중에 규나가 입는 치마들 중 손에 잡히는 데로 아무거나 집어 왔다.
"일단 이거라도 입고있어."
나중에 치마가 없어진 걸 알면 누나가 엄청나게 성질 낼게 뻔했지만, 성규에게는 안구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 저 변태나무에게 아무거나 입을 걸 주는 게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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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썼으니 가볍게 봐주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