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장마 A
a : 우리는
bgm : Virginia To Vegas - Palm Springs (the way you made me fe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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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till see you in my dreams and everything I do
내 모든 행동들, 내 꿈속에서 여전히 네가 보여
Virginia to Vegas - Palm Spr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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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끝은 보슬비가 내리는 초겨울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연애였다. 누구보다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너와 나로 돌아가게 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느 커플들이 맞는 이별과 다를 바 없었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서로에게 찾아온 권태기. 둘 중 어느 누구도 우리의 사이를 예전처럼 설렘 가득하게 돌려낼 의지가 없었다. 우리는 그저 최대한 불편하게 끝내지 않으려 둘 중 누구도 소위 '쓰레기' 라 칭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어느새 생존신고만 주고받는 말풍선으로만 가득한 채팅창 속에서도 끝맺음의 신호를 주고받진 않았다. 설령 보내더라도 애써 모르는 척하기 바빴다.
이별 뒤에는 전화번호도 바꾸지 못했다. 더 이상 마주치지 않을 구실조차 찾지 못했다. 그래도 미련은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너와 스쳐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았고 단톡방에 올라오는 프로필 사진을 봐도 그저 그랬다. 권태기에 느꼈던, 설렘이라고는 없는 그 감정 그대로였다.
나는 너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좋았는지를 가끔 떠올린다. 쭈뼛거리며 말을 걸던 그 얼굴, 자연스레 내 짐을 받아들던 그 손, 내 느린 걸음을 맞춰주던 그 발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사실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어도 나는 너를 사랑했을 것이다. 이유도 모르는 채로 이끌렸을 것이다. 저 당시에 나는 그랬다. 운명처럼 내게 다가오는 너를 끝끝내 밀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네 덕분에 사랑을 알았고, 사랑을 배웠고, 서툴러도 소리 내어 우는 법을 배웠고, 감정을 토해내는 방법을 배웠으며 밀려오는 감정을 이겨내는 법도 배웠다. 너를 만나며 나는 참 많이도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변하지 않은 건, 비 오는 날이 너무나도 싫다는 것이다. 겨울날의 비도 싫지만 한 여름에 습한 기운을 달고 내리는 비가 정말 싫다. 창을 뚫고 들어오는 빗줄기도, 온 집 안 바닥을 끈적하게 만드는 습기도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막을 새도 없이 들이닥쳐선 내 공간을 순식간에 바꿔버리던 네가 생각나는 날씨다. 나는 그래서 장마가 싫다.
여름에는 대학가 주변에 붙어있으면 안 된다. 또 어디선가 카페 알바를 하고 있을 너를 마주친다면 그날에는 내 계획이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것이다.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 네가 일하던 카페 근처를 지나가며 아메리카노를 머금고 있으면 어디선가 네가 튀어나와 커피 좀 그만 마시라며 내 손에 든 물 맺힌 아메리카노를 가져갈 것만 같다. 카페인 탓인지 절로 말라가는 입술에 손톱으로 촉촉하게 일어난 각질을 뜯고 있으면 가방을 뒤적거리며 그렇게 많이 사준 립밤이 다 어디로 갔냐며 타박하면서도 언제나 챙겨 다니던 것처럼 내게 립밤을 발라줄 것 같다. 우산을 놓고 나온 비 오는 날이면 끔찍이도 비를 싫어하는 내 탓에 날씨를 보는 게 습관이 됐다던 네가 우산을 들고 나타날 것만 같다. 이래서 여름이 싫다. 여름날이면 네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어 너를 떨쳐내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자꾸만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네가 그리운 것은 아니다. 그저 여름이면 다정했던 네가 떠오를 뿐이다.
비 오는 날이면 네 생각을 지긋지긋하게 하게 되는 나 자신도 싫어진다. 다 잊었다고 생각하던 게 꼭 비가 오는 날만 되면 이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름엔 유난히 네 생각이 자주 난다. 여름 방학이라는 건 참 좋다. 줄곧 네 생각으로 가득 찬 여름날에 네 얼굴이라도 볼 수 없게 만들어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마 여름에 계절학기를 듣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건 내가 너를 온전히 지워냈다는 뜻이겠지. 해가 꼭 태워 죽일 듯이 내리쬐는 날이면 빗소리가 그립다 가도, 비가 오는 날이면 네 생각으로 가득 차 지난날의 생각을 후회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문득문득 네 생각에 잠긴다. 네 일상 속에도 아직 내 자리가 남아있을까. 나만 이런 거라면 괜스레 억울해져 너도 나와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이별은 벌써 반년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여름이면 네 생각을 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내가 가장 싫어하는 한여름의 장맛날이면 네 생각에 잠겨 허우적댄다.
나는 너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걸까, 지워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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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드립니다. 프롤로그로 먼저 인사를 드리게 됐어요. 블로그에서 동일한 제목, 동일한 필명으로 동시 연재할 예정입니다.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독방에도 잠깐 들렀었는데 그 때 보신 분도 계실 것 같아요 이것도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완결까지 쭉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은 글을 쓸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