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음날,
성규는 담임과 야자감독 쌤의 눈치를 봐가면서 겨우 야자를 뺐다.
터벅터벅-
"햇살이 내리는 사이 마다, 흰 구름 흐르는 사이 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문을 나서는데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엄마에겐 온 문자였다.
'오늘 계모임 갔다 늦게 들어갈거야. 집 오면 드라마 좀 녹화해놔.'
문자를 보는 성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싸."
안 그래도 화분 가지러 집에 들릴 때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고민하고있었는데..하늘도 자신을 돕는 것 같아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삐삐삐삐삐- 띠로롱, 철컥
집 안은 아무도 없는 것 처럼 조용했다. 엄마도 없고, 이제 얼굴 텄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줄 았았는데.. 무슨 사고라도 쳤나 잠시 의아해하던 성규는 그냥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영원히 안볼 사인데.. 뭘하든 상관 없지.'
성규는 방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성규의 방은 불도 켜져있지 않고 조용하기만 했다.
'다시 나무로 돌아갔나?'
성규는 고개만 빠끔 내밀어 조심스럽게 방안을 살펴보았다. 어떻게 달래서 동우네까지 데려가야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다. 방 안에서 아무 움직임이 없자 성규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화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약간의 흙만 떨어져 있을 뿐, 사람 탈을 쓴 변태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어디 갔어.'
설마 다시 돌려보낼 걸 알고 도망이라도 쳤나?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바닥에 흩어진 흙가루를 보며 잠시 고민하던 성규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범인은 현장에 단서를 남긴다고 나뭉나뭉이가 움직이는 데로 흙가루가 쭉 이어져 있었다. 성규는 흡사 탐정과 같은 모습으로 차분하게 흙가루의 흔적을 쫓았다. 창가 밑에서 부터 이어진 흙가루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으로 다시 성규의 옷장 앞까지 이어졌다.
"아씨, 서랍도 뒤져놨어, 변태새끼가 진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건만, 나뭉나뭉이는 오늘도 성규 책상 위의 물건을 가지고 놀고 옷서랍장 역시 뒤져본 것 같았다. 특히 옷서랍은 왜 이걸 들어오자마자 발견 못했나 의문이 들 정도로 층층마다 서랍이 열려있고 옷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순간 짜증이 나려고 했지만, 성규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짜증을 가라앉혔다. 성규는 다시 흙가루를 추적하다가 중요한 단서(?)를 하나 발견했다. 방안에는 어제 성규가 입으라고 던져줬었던 후드티와 규나의 치마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아직 사람으로 있다는건데..'
성규는 그 건장한 몸뚱아리가 숨을 만한 곳이 있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혹시 엄마가 없는 틈을 타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지는 않았는지 방 밖으로 나와 거실과 안방을 살펴보았다.(규나방은 뒷감당이 두려워 열어보지는 않고 문 밖에서 안에 소리가 나는지만 들어보고 말았다.) 그러나 성규의 방을 제외하면 그 어느 곳에서도 흙가루가 발견되지 않았다.
"어디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방안으로 돌아온 성규는 나뭉나뭉이를 불러야하나 고민했다. 강아지마냥 좋아서 뛰어올 모습이 두려워 부르고 싶지 않았는데, 이러다가는 오늘 안에 돌려보내지 못할 것 같았다. 성규가 채념한 채로 막 나뭉나뭉이를 부르려는데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분명 개고 나온 이불이 다 펴져있는 것도 모자라 낮은 언덕 마냥 봉긋 올라와 있었다. 성규는 빠르게 침대 밑을 살펴 보았다. 침대 밑에는 책상 앞과 옷서랍 쪽 보다 월등하게 많은 양의 흙가루가 떨어져있었다. 성규의 손이 이불을 거칠게 걷었다. (그 과정에서 먼지 같이 자잘한 흙가루들이 공중에 휘날렸고 성규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야! 안일어나? 내가 침대에 올라가지 말랬지!"
규나의 치마와 성규의 회색 후드티를 입은 채, 성규 대용으로 추정되는 베개를 꼭 끌어안고 꿈나라를 헤매던 나뭉나뭉이는 성규의 고함에 벌떡 일어났다.
"으응.. 뭐야, 주인님? 언제 오셨어요? 주인님 엄청 기다렸는데."
놀라서 어리둥절하던 나뭉나뭉이의 얼굴이 성규를 보는 순간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나 성규는 나뭉나뭉이의 환영을 받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성규는 표정을 더욱 굳히고 본격적으로 나뭉나뭉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기다릴 거면 니 자리에서 기다리든가. 왜 여기서 쳐 자고있는데? 그리고 너 변태냐? 남의 옷장은 왜 뒤져?"
"아니, 저기, 그게.."
기세에 눌린 나뭉나뭉이는 말도 제대로 못했고 성규의 잔소리가 거세질수록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그리고 나무 주제에 침대에는 왜 올라와. 내가 올라오지 말라고 했잖.."
성규는 혼내는 김에 아주 버릇을 고쳐놓으려다 말았다. 더 이상 혼내봤자 나뭉나뭉이는 말대꾸한번 못해보고 죄송해요 아니면 잘못했어요를 남발할게 뻔했고, 이제 곧 동우가 학원에 갈 시간이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었다.
"됐다. 그만하자. 앞으로는 그러지 마, 그건그렇고 너 빨리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혼나는 내내 꼭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나뭉나뭉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성규를 쳐다봤다.
"네? 왜요?"
"나랑 어디 좀 갈 데가 있어서 그러니까 빨리 변하기나해."
"진짜요? 주인님하고 같이요? 어딘데요? 어디가요?"
외출한다는 말에 나뭉나뭉이는 신나서 어쩔줄 몰라해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어르고 달래야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데리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성규는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 같이 나가. 늦게 변하면 놓고 나간다."
"네!"
성규의 말이 끝나자 마자 나뭉나뭉이의 몸이 나무로 변하기 시작했다. 다리, 몸, 얼굴 순으로 변했다. 가슴까지는 나무의 몸통이 되었고 팔은 여러갈래로 갈려 가지가 되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가지로 흩어져 나뭇잎이 되었다.
"우와.."
성규는 사악한(?) 계획도 잊은 채 벙쪄서 나뭉나뭉이가 변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어느 정도 나뭉나뭉이가 사람의 탈을 쓴 나무라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무로 변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해지고 꼭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나뭉나뭉이를 보고있던 것도 잠시, 성규는 곧 정신을 차리고 주저 없이 화분을 들고 방을 나섰다. 나무 화분이 꽤 묵직했지만 기분탓인지 오늘따라 정말 가볍게 느껴졌다. 신발장 앞에 앉아 룰루랄라 신발을 신던 성규는 옆에 내려 놓은 나뭉나뭉이의 얼굴로 추정되는 곳을 향에 말했다.
"너 밖에서 사람으로 변하지마. 옷도 없으니까."
성규의 단호한 말에 나뭉나뭉이가 가지를 사락사락 흔들었다.
'대강 알아들었겠지.'
신발끈을 다 묶은 성규는 잠시 고민했다. 정말로, 만에 하나 나뭉나뭉이가 밖에서 사람으로 변한다면? 성규는 급히 방으로 뛰어들어가 종이가방하나를 찾아 규나의 치마를 담고 침대 옆에 세워둔 죽도를 챙겨들었다.
집을 나서고 성규가 아파트를 벗어날 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동우네 집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나 길고양이 같은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보일 때마다 나뭉나뭉이는 가지를 격하게 흔들며 온몸으로 신남을 표현했다. 그 때마다 성규는 짜증을 내는 대신 나뭉나뭉이의 이파리를 하나씩 떼어줌으로써 나뭉나뭉이의 움직임을 잠재웠다.
**************************************************************************************************************
삑삑-
성규는 동우가 사는 아파트 앞에 도착해 1203호를 누르고 세대호출 버튼을 눌렀다.
"누구세요?"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 동우 어머니가 집에 계셨다. 성규는 최대한 예의바른 목소리로 인사드렸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저 성규요!"
"어~ 잠깐만~"
아파트 유리문이 열리고 성규는 나뭉나뭉이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막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데 나뭉나뭉이가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보는 사람은 없지만 움직임이 너무 격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엘리베이터 안의 CCTV에 찍힐 것 같아 성규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나뭉나뭉이에게 속삭였다.
"야, 쫌! 움직이지좀 말라고, 대패로 밀어버린다."
다행이 성규가 잘 타이른(?) 덕분인지 나뭉나뭉이는 얌전해졌다. 수 초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성규는 얌전해진 나뭉나뭉이를 들고 동우네 집 앞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 성규는 걸리적거리는 죽도와 나무화분을 문 옆으로 안보이게 놔두었다.
딩동- 딩동-
"어머, 성규야 오랜만에 얼굴본다. 고등학생되고나서 처음보는 것 같네~"
동우 어머니께서는 오랫만에 보는 성규를 무척 반가워하셨다.
"아, 네, 하하. 근데요, 아줌마 지금 동우 집에 있어요? 동우가 저희 집에 놓고 간게 있어서.."
"그래? 근데 어쩌지. 지금 동우 집에 없는데."
'벌써 학원갔나?'
집에서 나뭉나뭉이를 혼내는데 시간을 낭비해 동우를 못만난 것 같아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왕 온거 목적은 달성하고 가야했기에 잠시 짜증을 누른 성규는 누나한테만 안통하는 특기인 '착한아이처럼 보이는 눈웃음'을 시전했다.
"그럼 맡겨두고 갈게요! 동우 학원 끝나고 오면 전해 주세요."
성규의 말에 동우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우리 동우한테 얘기 못들었나 보네. 지금 동우가 미국으로 어학연수가서 아마 6개월은 있어야 올거야."
이게 무슨 어이없는 전개야..성규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유학이요?"
'유학? 유학이라니? 그럼 나무새끼는 어쩌고? 하하하...'
"동우가 진짜 말 안했나 보네? 동우가 고등학교 들어가기전에 빨리 다녀오고 싶다고 하도 졸라대서.."
그 순간 며칠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약 2주 전쯤, 성규가 롤을 한참 하고 있는데 동우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그때 미국 어쩌고 하긴 한 것 같았는데.. 롤에 정신이 팔려서 대충 어, 그래. 알았어 잘 가 안녕. 하고 끊어버렸었다.
'아 젠장! 김성규 이 바보새끼야!'
성규는 혼자 있었다면 자신의 뺨이라도 때렸을 만큼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성규야 괜찮니?"
성규의 표정이 눈에 띄게 암울해지자 동우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성규는 당황한 것을 숨기기 위해 어색하게 웃어야했다.
"아! 맞다. 얘기했었는데 제가 깜박했었나 봐요. 하하하. 아! 놓고간 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니까 안 맡겨도 될 것 같아요.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계세요!"
"그래 잘가렴. 동우한테 가끔 이메일도 하고 그래줄래? 공부한다고 핸드폰 로밍도 안하고 갔거든."
비싼 해외 통화료를 낼 각오하고 전화로 욕이라도 퍼부어 주려고 했는데.. 성규의 마지막 희망까지 바스러지는 말이었다.
"네..."
잠시뒤,
성규는 넋이 나간 상태로 동우네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벤치에 한참 앉아있었다.
'이제 어쩌지.'
사실 성규는 나뭉나뭉이를 동우 아줌마께 맡겨버릴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나뭉나뭉이가 사람으로 변해서 돌아다닐 걸 생각하니.. 착하시고 평소 성규를 예뻐해줬던 동우 아줌마를 봐서라도 포기했다.
성규는 십년은 늙은 얼굴로 나뭉나뭉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해결책을 찾은 성규는 오래 망설이지 않고 결연한 표정으로 나뭉나뭉이를 들고 일어섰다.
얼마나 지났을까, 성규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에서 죽도만 손에 든 채로 나왔다. 그 아파트는 재계발 구역으로 얼마 뒤 철거될 예정이었다.
"cause your my destiny~"
샤워를 하는 성규의 입에서 노래가 절로 나왔다. 비록 흙으로 어질러진 침대와 바닥을 치우느라 롤 접속을 못했어도, 방 치우느라 드라마 녹화를 깜박해 엄마한테 등짝을 맞았음에도.아주 상쾌하고 홀가분한게 꼭 커다란 혹덩어리를 떼어낸 기분이었다. 룰루랄라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온 성규가 기분 좋게 침대로 다이빙했다. 옆에서 집적거리지도 않고 강아지같은 눈으로 부담스럽게 밤새 쳐다보는 일도 없고 정말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이었다.
그러나 홀가분함도 잠시 불을 끄고 눈을 감자 마음 속에서부터 찝찝하고 묘한 무언가가 성규의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성규는 찝찝함을 떨쳐내고 자기 위해 양도 세어보고, 편한 자세를 찾아 이리저리 뒤척여도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지금 사람탈 쓰고 있을라나? 동우네 갈 때 일부러 돌아돌아 갔으니까 집까지는 못 찾아 올 거고.. 무섭다고 찌질하게 울고 있는거 아니야? 아이씨,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자자 김성규!'
잠을 자려는 노력이 무색하게도 한 달만에 익숙해져 버린 나뭉나뭉이의 얼굴이 계속 눈 앞에 아른거렸다.
'주변에 사람이 안살기는 하는데.. 큰소리로 울다가 주민신고 당해서 경찰서에 잡혀갈라나? 아니면 사람으로 변하는 나무라고 막 납치당해서 맞거나 실험대 위에 묶여서 사이코 과학자한테 해부당하는데 수액대신 빨간...'
"시발!"
상상이 극에 달한 성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몇 분 뒤, 대충 옷을 챙겨 입은 성규는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왔다.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가 안방문에 귀를 대보니 엄마는 낮게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규나 방 앞에서도 똑같이 확인을 마친 성규는 조용히 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성규가 빠른속도로 뛰어나왔다. 지하 주차장에 버리고 온지 5~6시간은 지나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을 까봐 마음이 더 급해졌다.
"시..발, 헥헥 미치겠다."
체육시간에하는 단거리 달리기 수행평가 때의 기록을 갱신시킬 정도로 빨리 달린 덕분에 숨이 턱 끝까지 찼올랐다.성규는 폐아파트 지하주차장 앞에 쭈그려 앉아 가쁜 숨을 진정시켰다. 후하후하 숨을 내벹던 성규는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폐아파트를 볼수 있었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괴물 입 속 같이 시컴했고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발걸음 하나하나가 크게 울렸다.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던 성규는 결국 양심의 편에 섰다. 심호흡 한번을 마지막으로 성규는 지하주차장 안으로 사라졌다.
위험요소를 발견하면 바로 뛸 각오로 한발한발 신중하게 걷고 있는데 성규의 귀에 희미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찾던 성규는 핸드폰 조명앱을 켜고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어갔다. 폐건물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스산한 분위기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지하주차장 전체에 웅웅 울리는 나뭉나뭉이의 울음소리 덕분에 성규는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진짜 어둡네, 나오지 말걸..'
조명을 벗어나면 너무 어두컴컴해서 가끔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기둥에 놀라기도 했고 멀리서 굴러다니는 쓰레기의 잔재에 소리를 지르며 도망갈 뻔 했던 것도 여러번이었다. 이쯤되니 그냥 돌아가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규는 자신의 자아와 싸우면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걷는 방항으로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자 성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성규는 얼마지나지 않아 나뭉나뭉이를 버렸던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성규의 핸드폰에서 뻣어나온 빛의 끝자락에 나뭉나뭉이의 실루엣이 걸렸다. 나뭉나뭉이는 옆에 놓고 갔던 규나의 치마를 입고 펑펑 울고 있었다.
"엉엉 엉엉~. 주인님.. 어디가셨어요. 엉엉~"
"하아.."
성규는 한숨을 쉬며 나뭉나뭉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렇게 귀찮고 짜증을 유발하는 혹 같았는데 막상 자신을 찾으며 울고있는 나뭉나뭉이르 보니 조금은 미안... 은 아니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야, 일어나."
성규는 핸드폰 조명을 나뭉나뭉이에게 비추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밝은 빛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하던 나뭉나뭉이는 곧 성규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는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성규를 올려다 보았다.
"엉엉어ㅇ.. 주, 주인님?"
"
우느라 엉망이 된 나뭉나뭉이의 얼굴을 보자니 양심이 심하게 푹푹 찔려왔다. 성규는 찔리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더 퉁명스럽게 말했다.
"주인님! 허어어엉."
나뭉나뭉이는 벌떡 일어나 성규를 와락 껴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마부 비볐다.
"야, 야! 이거 새 옷인데! 얼굴 안 치워?"
성규는 새로 산 아끼는 후드티에 나뭉 나뭉이의 눈물, 콧물이 잔뜩 묻어나자 짜증이 나려고 했다. 달라 붙어있는 나뭉나뭉이를 떨쳐내고 싶었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모질게 대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흐엉.. 이제부터는 주인님 침대에도 안 올라가고... 옷도 안뒤질게요! 잘못했, 훌쩍, 어요."
찔리는 양심도 감당하기 벅찬데 나뭉나뭉이의 사과가 이어졌다. 결국 성규는 어색한 동작으로 나뭉나뭉이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절대 불쌍해서가 아니라 울음을 빨리 그치게 하기 위해서 라고 자기 위안을했다.
"그만 울고 빨리 나무로 변하기나해. 더 늦기전에 집 가야 돼."
"네, 훌쩍."
조금 전까지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지하주차장이 떠나가라 울던 나뭉나뭉이는 집에 가자는 말 한 마디에 금새 얼굴이 밝아졌다.
잠시 뒤, 성규는 나무로 변한 나뭉나뭉이를 안아들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성규의 얼굴은 후련한 듯 하면서도 안색이 어두웠다.
'내 팔자가 이런가보지. 젠장...'
성규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에가는 내내 나뭉나뭉이의 나뭇가지는 신이나서 사락사락 흔들렸다.
------------------------
등장인물 나이
성규 : 고1
동우 : 중3
* 성규누나의 이름은 '김 성규누나' 입니다.(본명을 몰라서..절대 짓기 귀찮아서는 아니고...ㅋㅋㅋ) 줄여서 '규나'
13년도에 쓴글인데 bad 뮤비에 적절한 짤이 있네요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