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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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스핑
1. 첫 만남
헐레벌떡 학교를 향해 뛰어가던 아이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옆으로 문을 드르륵 열자 헐겁게 달려있던 2-3이라 써진 팻말이 흔들렸다.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과 서로 어색한듯 다른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그 중에는 벌써 친해진듯 서로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꽤나 늦은 시각에 이미 대부분의 자리는 임자가 있는듯 가방이 올려져있거나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벨이 울리고 아이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던 아이는 결국 남은 두 자리중 벽과 떨어진 자리에 앉아 제 가방을 책상 옆에 걸어놓았다. '부 승 관' 이름표가 달린 새 가방이 승관이 발을 살작 흔들때마다 달랑거렸다.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자 아이들이 잔뜩 긴장한채로 가만히 앉아있다가 이름을 부른 아이를 쳐다보았다. 부승관. 승관의 이름이 부르자 승관이 네! 하고 손을 들었다. 우와, 부씨래. 아이들의 관심에 승관의 어깨가 조금 으쓱해졌다. 최한솔. 선생님이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돌아오질 않았다. 최한솔? 선생님이 다시 한번 이름을 불렀지만 여전히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하네.. 눈썹을 하나 들어올리고 갸웃거리던 선생님이 다음 이름을 불렀다.
아이들의 이름을 다 부르고 나자 교실 앞문에서 똑똑, 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죄송해요 선생님. 애가 아침잠이 워낙 많아서요." 서툰 한국어 발음을 가진 여자의 목소리에 반 아이들이 술렁겨렸다. 뭐야, 외국인인가봐. 외국인이 우리 학교 오는거야? 금세 시끄러워지는 교실에 선생님이 손을 들어 아이들을 제지했다. 네, 조심히 돌아가세요. 아이의 학부모에게 인사를 한 선생님이 아이를 이끌고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한솔이가 오늘 좀 늦었네. 다음부턴 안그럴거지? 저기 남아있는 자리로 가자.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솔이 곧장 승관의 옆자리로 걸어갔다. 잘생겼다.. 여자아이들의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여전히 잠에 취한듯 반쯤 풀린 눈으로 승관을 바라보고 베시시 웃어보이는 모습에 승관이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옆자리에 앉아 악수를 건네는 한솔의 부드러운 손을 맞잡았다.
2. 첫 발렌타인
승관이 두근대는 마음으로 눈을 꼬옥 감고 학원 교실 안데 들어섰다. 텅 비어있는 책상에 승관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야, 부승과안. 언제나처럼 말꼬리를 늘리며 제 이름을 부르는 한솔을 승관이 원망스러운듯이 바라보았다. 오늘도 잘생긴 얼굴에 승관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역시 너무 불공평해.. 뭐가?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을 들었는지 한솔이 물었다. 아, 아니야. 자연스레 한솔의 손에 들린 몇개의 포장된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자리에도 꽤 쌓여있는 초콜렛들을 보고 승관이 그 옆의 제 책상에 볼을 눌러 고개를 파묻었다. 진짜 너무하네. 승관이 괜히 발을 굴렀다. 야, 이거 다 먹을 수 있긴 하냐? 승관의 말에 한솔이 어깨를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글쎄. 한솔의 말에 승관이 입을 열었다. 나도 초콜렛 먹을 줄 아는데. 한솔이 박스 하나를 열자 떨어진 쪽지에 승관이 그것을 집어들었다. 오빠, 너무 멋있어요. 저랑 사귀어주세요. 진지한 표정으로 승관이 읽어내리자 한솔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질투하냐? 한솔의 물음에 승관이 고개를 저었다. 대학가면 여자친구 생긴대. 승관의 말에 한솔이 손가락을 들어 세었다. 우리가 지금 예비 중1이니까 6년 남았네. 좀 기다려야겠다?
한솔의 비꼬는 말투에 승관이 입술을 씰룩이다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쳇. 부럽다.. 아냐. 부승관. 아직은 내가 더 키도 크니까 대학가면 한솔이보다 더 이브고 착한 여자친구가 생길거야. 그럼. 승관이 생각했다.
학원을 나와 바로 옆 아파트에 사는 한솔과 함께 집으로 가며 초콜렛을 하나씩 까 입에넣은 승관이 우물대며 다른 초콜렛을 뜯었다. 와. 이건 직접 만든건가봐. 예쁘다.. 하트모양으로 꾸며진 수제 초콜릿을 바라본 승관이 다시 포장지를 닫았다. 왜 안먹고. 한솔의 말에 승관이 고개를 저었다. 너 좋아하는 애가 만든건데 내가 먹으면 미안해서. 승관의 말에 한솔이 웃고는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애도 아닌데. 먹어도 돼. 다시 포장을 열어 초콜렛을 승관의 입안에 넣어준 한솔에 승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야, 너 좋아하는 애 있어? 아니, 말이 그렇다는거지. 좋아하는 애가 준거면 난 그냥 싸구려 초콜렛도 남들 안주지. 나도 못 먹을거 같은데. 한솔의 말에 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멋있는 자식.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방바닥에 내던지고 겉옷을 벗어 옷장에 걸었다.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 승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방을 열어 책을 하나 둘 꺼낸 승관이 멈췄다. 어? 작은 상자와 그 위에 붙여진 편지를 발견한 승관이 그걸 꺼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한솔이꺼랑 헷갈렸나? 뒤적거리던 승관이 위에 부승관이라 써져있는 편지봉투를 보고 편지를 꺼내었다.
승관아, 너 못 받을거 같아서 하나 샀어. Happy valentine's day. :D
익숙한 글자에 승관이 와하하 웃었다. 작은 상자를 열자 제가 지난달 먹고싶다며 찡찡거렸던 비싼 브랜드의 초콜렛이 승관을 반겼다. 와.. 초콜렛을 하나 들어 입 안에 넣은 승관이 헤헤, 하고 웃었다. 달콤한 향이 온 몸에 퍼졌다. 베란다로 나가 한솔에게 전화를 했다. 뭐. 한솔의 목소리에 승관이 베란다.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베란다의 문이 열리고 한솔이 나왔다. 겨우 1미터 남짓 안되는 거리를 두고 승관이 말했다. 고마워. 뭐가. 한솔의 말에 승관이 말했다. 엉아는 너 글씨 다 알거등? 아이고, 내새끼.. 한국 처음와서 친구없다고 나한테 매달리던게 어제같은데 이제 이렇게 선물도 사고.. 승관의 요란에 한솔이 피식 웃어보였다. 맛있게 먹어. 엉. 너 하나도 안줄거임. 승관의 말에 한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추운줄도 모르고 꽤 오랫동안 둘은 베란다에 서 있었다.
3. 첫 감정
"아들, 요즘은 한솔이 안 데려오더라." 엄마의 말에 승관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 대강 대답한 승관에 첫째 누나가 거들었다. "싸웠냐?" "뭐야, 한솔이랑 싸웠대?" 큰누나의 물음에 되묻는 작은누나에 승관이 고개를 저었다. 안 싸웠어. 그럼 이따 좀 데려와서 밥 먹고 가라고 해. 한솔이 동생도. 부모님이 잠시 엄마 고향 갔다며. 밥도 잘 못 챙겨 먹을텐데. 승관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설거지를 하며 말하는 엄마에 승관이 대답했다. 물어볼게.
싸웠나 싶을정도로 같이 안 다닌건 맞다. 솔직히 저만 같이 안다닌게 맞지. 한동안 피해다녔더니 한솔이도 이젠 익숙한듯 인사만 하고 제 갈길을 간다. 지금처럼. 석민, 순영선배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매점에서 나와 복도에 들어서자 한솔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근데 너 최한솔이랑 친하지 않았음? 석민의 말에 순영이 끄덕였다. 그랬지. 내가 방송부 부장이고 한솔이랑 승관이가 내 직속후배잖아. 작년 중1땐 엄청 붙어다니길래 친한줄 알았더니 요즘 데면데면 하데? 남은 음료를 빨대로 쪼르륵 빨아들인 순영이 석민과 어깨동무한 팔을 풀고 복도 끝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음료수 곽을 던졌다. 골인~ 호들갑을 떨며 춤을 추는 순영과 그런 순영을 보고 마치 심판인양 휘슬을 부는 시늉을 하다 둘이 껴안고 방방 뛰는 모습에 승관이 혀를 끌끌 찼다.
운동장에선 농구시함이 한창이였다. 파란색 스포츠용 조끼를 체육복 위에 걸치고 이리저리 코트에서 뛰어다니는 한솔을 바라본 승관이 어,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농구공이 깔끔하게 네트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덩달아 신이난 승관이 저도모르게 웃고있었다. 같은 색의 조끼를 입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한 한솔의 시선이 승관에게 향했다. 손을 흔들어보이는 모습에 승관도 손을 흔들었다. 시합이 끝났는지 아이들이 하나 둘 돌계단으로 향했다. 여자아이가 서서 기다리다가 한솔에게 물을 건냈다. 여자아이와도 하이파이브를 한 한솔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승관이 저도 모르게 입술 안쪽 여린살을 깨물었다.
야, 부승관 뭐봐? 석민이 물어보며 승관의 옆에 바짝 다가갔다. 어깨동무를 해오는 석민의 팔에 승관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한솔의 눈이 다시 한번 승관의것과 맞았다. 고개를 휙 돌려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한솔을 보고 승관도 다시 몸을 돌려 복도로 향했다.
"야, 부승관." 평소와 달리 이름을 늘려부르지 않는 어색한 말투에 승관이 고개를 돌렸다. 너 요즘 나 왜 피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한솔에 승관이 고개를 숙였다. 어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승관의 눈이 도르르 굴러갔다. 사실 요즘의 저는 정말 이상했다. 아니, 사실 조금 유치한 이유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솔직하게 한솔에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아달라는 말을 할 순 없었다. 애초에 나랑만 친했던 애가 친구가 많아지먼 좋아해줘야하는게 아닌가?
모르겠어. 승관의 말에 한솔이 물어왔다. 응? 퍽 다정한 말투에 승관의 눈이 아려왔다. 미안.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게 중2병인가? 승관의 말에 한솔이 피식 웃으며 승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 난또.. 한솔의 말에 승관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훌적 커버린 한솔은 저보다 반뼘 쯔음 더 커있었다. 뭐가. 승관의 말에 한솔이 고개를 저었다. 절교라도 당하는줄 알았다 새끼야. 헤드락을 걸어오는 한솔에 승관이 한솔의 등을 아프지 않게 툭툭 쳤다.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셨다며. 가자. 집. 한솔이 승관을 이끌었다.
4. 첫 키스
야, 야. 엉아가 좋은거 가져왔다. 우쭐거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 그 위를 주먹으로 툭툭 쳐보이는 민규의 모습에 숙소 방 안에 있던 남자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역시 수학영행 하면 이거지. 쨘. 하며 소주 네병을 가방에서 꺼내는 모습을 바라보던 한솔이 관심없다는듯 여전히 승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핸드폰에 시선을 돌렸다. 야, 진실게임 하자 진실게임. 누군가의 말에 아이들이 모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승관또한 일어나 자리에 앉아 머리를 바닥에 부딛힌 한솔이 신음을 내곤 제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고있는 승관에 한솔이 일어나 느릿느릿 승관과 민규사이를 꿰찼다. 자, 그럼 명호부터 할까? 오늘 장기자랑에서 제일 멋있었던건 민규, 승철선배, 원우선배였다. 아니, 하고 단호하게 대답한 명호가 싱글 웃으며 병을 돌렸다. 술이 가득찬 병이 느릿느릿 돌아 한솔을 가리켰다. 야, 나 물어볼거 있어. 찬의 흥분한 목소리에 명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어보라는듯 손짓을 하자 찬이 물었다. 너 우리 반 영희 좋아하냐? 찬의 물음에 모두의 신선이 집중되었다. 꿀꺽. 승관이 침을 삼켰다. 아니. 웃으며 말한 한솔이 병을 돌렸다.
병이 돌고 돌아 대여섯번정도 다른 아이를 가리킨 후에야 승관을 향했다. "부승관. 너 좋아하는사람 있냐?" 찬의 물음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미묘한 표정의 승관에 아이들이 승관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뭐야, 표정 뭔데. 승관이 입을 열려는듯 입을 오물거리자 아이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어, 글쎄.. 아직 어리기도 하고.. 승관이 머뭇거리자 옆에 앉은 찬이 깔깔 웃으며 승관의 등을쳤다. 이제 열일곱인데 뭔 어리긴. 큭큭대며 웃는 찬에 승관이 머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좋아하는거 같은 애 없어? 우리반에 이쁜 애들 꽤 있잖아. 세은이도 있고. 야, 세은이는!! 민규의 말에 버럭 화를 내는 찬에 애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그래서 부승관 너는 좋아하는애 없냐고! 화제를 돌리려는듯 찬이 물어오자 승관이 고민하는듯 고개를 숙였다. 야, 찬아, 너 설마 세은이랑 승관이랑 친하니까 떠보는거 아냐? 민규의 말에 다시 한번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승관이 말하려는듯 입술을 달싹이자 앞에 놓인 술을 뺏어든 한솔이 술을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쓴 맛에 한솔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야. 승관이 놀라 소리치자 한솔이 빈 잔을 탁 내려놓았다. 와- 최한솔 남자다잉. 찬의 말에 한솔이 타는 목에 고개를 털었다. 야, 내가 술 마셨으니까 넘어가자. 뭐해 부승관. 빨리 돌려. 멍하니 한솔을 바라보던 승관이 그제서야 병을 돌렸다.
술이 반병 남았을 쯔음 시간은 새벽 세시를 향해 가고있었다. 우리반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는 물음을 받은 한솔이 술에 반쯤 취해 고개르 끄덕였다. 누구야, 누구? 아이들의 추궁에 고개를 저은 한솔이 다음 사람. 이란 말과 함께 병을 돌렸다. 야, 술 얼마 안남았는데 몰빵하자 몰빵. 민규의 말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민규가 병을 돌렸다. 승관을 가리키는 병에 승관이 앉은다리를 하지 못해 쭉 편 다리를 달달 떨었다. 민규가 입을 열었다. 부승관. 너 우리반에 좋아하는 사람 있지? 진지하게 물어오는 민규에 승관이 어쩔줄 몰라 바닥을 집고있던 손을 바닥에 탁탁 쳤다가 입술을 물어뜯었다. 대답하기도 전에 남은 술을 뺐어든 한솔이 남은 술을 몽땅 들이켰다. 한번에 술병을 비운 한솔이 머리 위로 술병을 들고 탈탈 털었다. 미처 마시지 못한 술 몇방울이 한솔의 반곱슬 머리를 타고 흘렀다.
야, 이제 술 없으니까 그만하고 자자. 한솔의 말에 찬이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에 취해 금세 잠에 빠져든 아이들을 뒤로하고 한솔과 승관이 방에서 나왔다. 거실바닥에 깔린 이불 위로 누운 승관이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한솔에 제 옆자리를 탕탕 쳤다. 한솔이 대신 마셔주기도 했지만 저도 마신지라 술기운이 조금씩 올라오는듯 몽롱해졌다. 말없이 우두커니 서있는 한솔에 승관이 한솔아? 하며 한솔을 불렀다. 저벅저벅 걸어들어와 승관의 옆에 누운 한솔에 승관도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옅은 갈색 눈동자에 승관이 등을 돌렸다. 눈을 감자 금세 졸음이 밀려왔다. 한솔이 좋아한다는 아이에 대한 의문도 함께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나한텐 왜 안말해줬지. 섭섭함도 피어났지만 졸음에 점점 잠기고 있었다. 잠에 들락말락한 때에 한솔이 승관을 불렀다. 부승과안- 자? 한솔의 말에도 승관은 잠에 빨려들어가느라 대답할 수 없었다. 자? 자는구나..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승관의 어깨에 잠들었다고 생각됬는지 한솔이 뒤에서 승관을 껴안았다. 잘자- 술에 잔뜩 취해 한껏 허스키해진 한솔의 목소리에 잠이 달아났다. 저를 감싸안는 따듯한 온기에 승관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설마 이게 좋아하는건가. 승관이 한솔에게 심장소리가 들릴까 무서워 제 손을 조용히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4. 첫 뽀뽀
고등학교 1학년이 점점 끝나고 있었다. 아, 나도 이제 예비 고삼이야.. 승관의 찡얼거림에 승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게임기를 만지던 한솔이 눈썹을 위로 올렸다. "아, 내년에도 같은 반 되면 좋을텐데." "우리 지금까지 다섯번이나 같은 반 된거 알고 말하는거야?" 승관의 말에 허벅지로 머리를 파고든 한솔이 살짝 나온 승관의 배를 꾹 찌르고 말했다. 같은 반 되기 싫냐? 난 좋은데. 장난기 서린 말에 승관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선생님이 들어오자 한솔이 일어나 자리에 바로 앉았다. 여전히 책상 아래로 승관의 손을 간지럽히던 한솔이 선생님이 나가기 무섭게 승관의 어깨에 기대었다. 무거워 임마. 승관의 말에 한솔이 짖궃게 웃으며 아예 몸을 기대었다. 멋모르고 두근대는 가슴에 승관이 힘껏 한솔을 밀어냈다. 아, 자기, 변했어. 능글맞게 말하는 한솔에 승관이 입을 앙 다물었다. 너만 편하면 다냐. 심장이 목까지 올라온것 같은 기분에 승관이 손으로 목가를 지분댔다. 아, 진짜.. 달아오른 귀를 만진 승관이 탄식을 내뱉었다.
수업할 내용도 없는지 선생님들은 돌아가며 영상을 틀어줬다. 지루한 영상들에 엎드려 자던 승관이 제 몸을 흔드는 한솔에 고개를 들었다. 뭐야, 언제 끝났어? 방금. 오늘 단축이잖아. 한솔의 말에 멍청하게 아.. 하고 대답한 승관이 겉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가방을 메고 기다리는 한솔의 옆에 서 나란히 걸어갔다. 학교가 끝난 시간이 좀 지났는지 학교는 텅 비어있었다. 아.. 춥다. 승관이 숨을 내쉬었다. 빽빽한 김이 승관의 입에서부터 피어올랐다. 한솔이 조용히 제 목도리를 승관의 목에 둘러주었다.
집으로 가는길은 평소와 달리 조용하고 어색했다. 다른 날들과 다르게 무엇을 말해야할지 도통 떠오르지가 않아 승관이 속으로 자신을 욕했다. 어느새 집 앞에 다다른 둘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어, 눈이다. 하늘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눈을 본 한솔이 입을 열었다. 붉은 입술위로 눈송이가 하나 둘 떨어져 녹아내렸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목도리에 가득 베인 한솔의 향에 취할것만 같았다. 아니, 취한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어느새 한솔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대고 있었으니까.
5. 첫 키스
쪽, 짧은 뽀뽀가 끝나자마자 승관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제 집으로 향했다.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한솔이 멍하니 서 있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입술 위로 가져다 대었다. 허, 하고 내뱉어진 이유모를 한숨에 입김이 뿌옇게 올라왔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머리에 눈이 얇게 쌓인걸 손으로 툭툭 턴 한솔이 반대쪽으로 뛰어 제 집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느린 엘레베이터에 한솔이 입술을 물었다. 다리를 덜덜 떨던 한솔이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제 집으로 향했다. 평소엔 눈 감고도 열수 있었던 도어락을 몇번이나 잘못 누르고서야 한솔이 겨우 문을 열었다.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베란다로 향했다. 급히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건 한솔이 베란다로 향했다. 전원이 꺼져있어- 여자의 목소리에 한솔이 핸드폰을 방바닥에 던지고 베란다로 나갔다. 난간위로 올라가 건너편의 베란다로 뛰어넘어간 한솔이 유리문에 똑똑, 노크를 했다.
부승관, 나 지금 너무 추워서 얼어죽을거 같은데, 안 열어줄거야? 부승과안- 한솔이 우는 시늉을 하며 소리치자 그제야 유리문을 가리던 커튼이 살짝 젖혀졌다. 얼굴이 홍시처럼 잔뜩 달아오른 승관이 고개를 푹 숙인채 유리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한솔이 승관을 껴안았다. 얼굴을 숨기는 승관을 붙잡은 한솔이 승관의 턱을 잡아 올렸다. 쪽, 하고 승관이 했던것처럼 짧게 뽀뽀를 하자 승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키스했어? 승관의 물음에 한솔이 베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뽀뽀지 바보야. 너는 왜 했는데?
좋아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한솔이 부러 못 들은척 되물었다. 뭐라고? 좋아서.. 좋아해 한솔아.. 이내 얼굴이 잔뜩 붉어진채 눈물을 쏟으려는 승관을 한솔이 꾹 껴안았다. 나도 좋아해 부승관. 한솔이 엄지로 승관의 눈을 쓸며 말했다. 이번엔 두 손으로 얼굴을 잡고 깊게 입을 맞추었다. 미처 흘러나오지 못한 눈물이 승관의 붉은 볼을 타고 흘렀다.
[암호닉]
샤다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