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우리
w.1억
"어때? 누나 괜찮지않아?"
"응. 완전."
"그렇다니까. 그 누나가 3년 전부터 너한테 관심 보였어."
동연이 기대하는 눈을 하고선 주혁에게 말했고, 주혁은 웃으며 고갤 끄덕이다가도 금세 표정이 안 좋아진다.
제 4화
잊혀지는 것은
출근을 했을 땐, 테이블 하나를 두고 남주혁이 어떤 여자와 함께 마주 앉아있었다. 예쁘네.. 만나는 사람인가.
"내일부터 나올 수 있는 거죠?"
"네. 그럼.. 9시에 출근해서 6시 퇴근인 거죠?"
"네. 그럼 내일 봬요."
"네에..!"
아.. 알바 구했구나.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고선 나가는 여자는 20대 초중반인 것 같았고, 나보다 훨씬 예뻤다. 그런 사람이랑 같이 일하니 기분 좋겠네 남주혁. 나 갈 곳 없는 거 알면서도 금방 알바 구한 너도 미운데. 그냥 내가 심보가 못돼서 그러나 싶었다.
"알바 구했어?"
"응."
"그럼 오늘 물건 다 챙겨갈게."
"편한대로 해. 큰 물건들은 나중에 가져가도 되니까."
"최대한 빨리 가져갈게."
"그리고 오늘은 한시간 더 일찍 퇴근해."
"왜?"
"피곤해서 일찍 퇴근 좀 하려고."
저 말을 끝으로 나를 지나쳐가는 남주혁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보나 마나 새벽까지 게임했네. 헤어졌는데.. 완전 남인데 나는 네가 왜 괘씸하고 미울까. 나한테 이렇게 매정한 게 맞는 건데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밖에 날씨 미쳤어요. 가을 시작된 지 얼마나 됐다고 살인 바람이야."
"선호씨 오늘도 출첵 하셨네요."
"그럼요. 여기가 내 집이다~ 하고 출첵 하는 거죠."
"오늘도 아메리카노 샷추가 맞죠?"
"네."
"그럼 잠깐 기다리세요."
"네?"
"오늘은 제가 쏘려구요."
"네? 어유.. 아니에요!"
"저 내일부터 여기 안 나오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이니까! 선호씨 사주고 싶어서 그래요."
"아고... 그럼 열린씨 집 앞에서만 볼 수 있는 거예요? 너무 슬픈데."
"영혼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잠시만 기다려줘요."
"ㅎㅎ 네."
장난스런 열린이의 목소리에 선호는 흐뭇하게 열린을 바라보았다. 커피를 받은 선호가 계산대 위로 종이가방을 올려두고선 열린이에게 '갈게요'했고, 열린이 급히 선호를 부른다.
"이거 두고가셨어요..!"
"두고 간 거 아니에요. 간식들인데 심심할 때 먹으라고."
"허얼... 고마워요.. 뭐야 진짜."
주혁은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대어서 열린을 본다. 저렇게 좋을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거면서 바보처럼 저렇게 계속 웃어대. 어쩌면 오늘 우리가 이렇게 볼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일 텐데. 아무런 대화도 없어. 이게 당연한 거지만. 이상하게 서로가 미워보일 뿐이다.
살이 다 빠져서 마른 열린이의 아버지를 내려다보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하나있는 딸이라고.. 아빠 다 죽어가는데 얼굴도 안 비추네. 사고나 안 치고다니면 몰라."
"납둬.."
"……."
"걔가 이유없이 사고치는 거 봤어..?"
"…지 때문에 당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르고. 결혼 한 번 하라는 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손주 하나 낳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그냥.. 하고싶은 거 하게 납둬. 열린이가 더 힘들 수도 있어."
열린과 주혁은 서로 아무 표정도 없다. 작은 물건들을 가방 안에 담아서 나갈 준비를 하던 열린이 뒤돌아 주혁에게 말했다.
"잘 지내."
"……."
너에게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너와 만난 게, 내 세월을 버린 게.. 거의 10년인데 이렇게 한순간에 10년을 잃었다는 게 너무 아쉬워서.. 그게 아쉬워서라도 너에게 잘 지내라고 인사를 한 것 뿐이다. 너에게 대답을 바래서 인사를 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로 인사도 없이 쳐다만보는 너를 보니 조금은 후회가 되면서도 후련했다. 이제 진짜 끝이다.
개새끼.. 인사 한 번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잘 지내라는데 그걸 개무시하고.. 혼자 쒸익 거리며 맞은편에 있는 백화점을 보았다. 아, 선호씨 여기서 일한다고 했었는데.. 지금 집 가면 혼자고, 혼자 있으면 잡생각 들 것 같은데. 백화점 구경이나 할까.. 백화점에 들어서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호씨가 여기 어디 있을 건데.. 이러다가 백화점 8층까지 다 뒤져보게 생겼네.. 직원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혹시요.. 여기 김선호씨라고.."
"아, 선호씨요? 1층에 경호 하시는분 있으시긴한데.. 지금 잠깐 어디 갔나봐요."
"아, 네에. 감사합니다."
경호원? 판매왕 경호원...? 그럴 수가 있나? vip가 왔는지 꽤 좋은 대접을 해주는 직원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고객을 보았다. 이야.. 온몸에 금을.. 구찌에..난리 났네. 나는 저런 거 들고 있어본 적도 없는데. 마침 언니에게서 전화가 오기에 급히 전화를 받는다. 타이밍도 참.
"응. 언니."
- 이 언니~ 구찌 지갑 질렀다~?
"뭐야 목소리 왜 그래?"
- 뭐가 이 자식아.
"우아한 척이야.. 재수없어."
- ㅋㅋㅋㅋ죽을래 길열린?
저기? 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듯 뒤를 돌아보자, vip고객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무언가 되게 기분이 많이 상한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거 지금 나 들으라고 한 소리지?"
"네? 아니.. 저 통화중이었는데요.."
"데놓고 내 욕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믿어? 요즘 아가씨들은 이게 문제야. 자기가 가진 게 없으니까, 애꿎은 윗사람들 흉보고. 어??"
"저기.. 제가 왜 그쪽을 흉봐요."
"저기 아가씨."
"왜요 아줌마."
"아줌마? 여기 회장 어딨어! 당장 불러. 이런 하찮은 고객들 받아도 되는 거야? 완전 싸구려 아니야."
"같은 사람끼리 값 따지는 거 우습지 않아요?"
"새파랗게 어린 것이 뭐가 잘났다고 눈 크게 뜨고 쳐다보는지.. 회장 빨리 불러. 얘 내쫓아."
말도 안 되게 1층에서 경호원들이 내 쪽으로 다가왔고,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진짜 미친 아줌마네.. 그리고 저 아줌마 말에 날 끌고 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다 미쳤어.
"나가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눈치를 보며 나가라고 하는 경호원에 그래도 이해가 안 가지는 않았다. 그래... 위에서 시키는데 어쩌겠어.
"저기요 아줌마. 나가기 전에 한마디 더 합시다."
"뭐?"
"아무리 돈이 많다고해서 품격있는 사람이 되지 않아요. 아줌마같은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더러워지는 거구요."
"얘가 지금 뭐라는!.."
갑자기 내 앞으로 누군가 섰다. 넓은 등에 고개를 한참 들어야지만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어, 대표 왔네. 마침 잘 왔어.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 최고의 백화점을 만들고 싶다며. 근데 그런 백화점에 이런 촌년이 있어도 돼?"
"들어보니까 아가씨라는 분이 말 잘했던데요."
"뭐? 너.. 정신이 나갔구나?"
"얼마전에 그쪽 아들분께서 저희 백화점에서 사고친 건 알고계시죠? 직원 폭행하고 깽판쳤잖아요."
"……."
"앞으로 저희 백화점 출입통제할 겁니다. 제가 문제 많은 사람을 고객이라 부르는 걸 싫어해서요."
"지 아버지가 회장이라고 간땡이가 부었구나? 내가 회장한테!"
"제가 아버지한테 쌓아 온 신뢰가 있어서 아주머니 말은 안 들으실 거예요. 끌려나가실래요, 직접 나가실래요?"
"야!"
곧 경호원들이 고객을 끌고 나갔고, 선호씨와 나는 눈을 맞췄다. 아니 이게 도대체.
"퇴근시간도 아닌데 왜 여기있어요?"
"…일찍 끝나서요."
"그럼 일찍 끝난김에 나 보러 온 건가?"
"……."
"집가는 길이면 같이가요. 집에 들러야 돼서요."
"…네?"
"가자구요."
"와 어떻게 몇분을 그렇게 쳐다보지?? 좋기는 한데 되게 신경쓰이네요."
"왜 판매왕이라고 거짓말했어요?"
"판매왕 맞잖아요."
"…아니..그건 또 그렇네요."
"괜찮아요?"
"네?"
"갑질하는 사람들 한 명씩 꼭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열린씨 처럼 발로 차버려야 돼. 내가 오늘 열린씨한테 배운 게 좀 많습니다."
"치.."
"겁나 멋있던데."
선호씨는 나를 걱정하는 듯 표정이 안 좋다가도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웃어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괜찮지 않은데.. 선호씨가 내 편이어서 그게 너무 괜찮았다.
"대표님이 집을 다 데려다주고 전 다 살았네요."
"그러지 마요.. 어우.."
"어쩐지 집도 좋더라니.. 1분에 몇천만원씩 버나???"
"아유 정말."
"어머 진짠가봐."
"운전대 잡고있는 사람 저인 거 몰라요?"
"협박을 되게 신박하게 하시네.. 어유 무서워라!"
우리는 또 서로 마주 보고 웃고있었다. 서로 볼 때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계속 신기해서 그를 바라보면, 그가 부끄러운 듯 자꾸 시선을 피했다.
"선호씨 되게 멋졌어요."
"알아요."
"에?"
"저는 언제나 멋지니까요."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 진심으로 인상쓰시는데."
"진짜요?"
"네. 아니 뭘 진짜요예요 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칭찬하니까 부끄러워서 저러는 것 같은데 너무 귀엽네.. 더 칭찬해 주려다가 귀까지 빨개진 그를 보고선 그냥 웃고 말았다. 웃다가 밖을 보았는데.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까지. 근데 왜일까.. 왜 눈물이 나려고하는 걸까. 되게 씁쓸하네.. 라디오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조용히 밖을 보며 그에게 말했다.
"소리 조금만 키워주세요. 좋아하는 노래라서.."
"그래요."
노래가 끝날 때까지만 조금만 진정해야겠다. 울면 안 되는데.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아.. 아, 집에 들러야 된다고 하셨죠?"
"아뇨? 나 열린씨 데려다주려고 거짓말한 건데."
"치.. 자꾸 선호씨한테 신세만 지고.."
"열린씨가 저한테 신세만 지면 나는 완전 땡큐인데."
"왜 땡큐예요.. 나는 엄청 막.. 좀 그런데."
"엄청 막 그래도. 상관없어요. 계속 신세 져서 갚는다 생각하고 계속 만나면 되니까."
"…참나."
"조심히가요. 코앞이지만."
"네에.. 고마워요."
그는 항상 내게 웃어준다. 그에 따라서 나까지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사람 참.. 해피바이러스네.. 차에서 내려서는 그에게 손을 흔들려고 했을까, 그가 창문을 열었다. 치.. 완전 사귀는 사이 같아. 이런 설레임도 되게 오랜만이네.
"열린씨."
"네?"
"우는 것도 예쁜데, 웃는 게 더 예뻐요."
"……."
"아, 몰라. 그냥 다 예뻐요."
"……."
"갈게요."
그러고선 가버리는 그에 나는 결국 웃음이 또 터져버렸다. 그러다 눈물이 고인다. 참 이게 뭐람.. 누군가에게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슬플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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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일 못 와.... 주쥰 글은 생각나는대로 글 써서 낼 거!!!!!!!!! 그리고 사계절은 낼모레 새벽ㅇㅔ 올라올 듯..? ㅠㅠ류ㅠㅇ뉴뉴뉴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