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동생인 징어가 모델인 썰
짹짹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 피곤해 죽겠네. 누워있는 상태에서 기지개를 켜고는 이불을 걷었다. 채 다 젖히지 못한 블라인드 사이사이로 옅은 햇빛에 잠시 동안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누군가. 나는 왜 사는가. 진지한 소리는 개뿔, 정수리를 긁적이며 베란다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시간을 확인하니 6시 30분. 일찍 일어났. 헐, 미친. 문득 어제 저녁에 학교 가도 된다는 인기스타의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자기전에 정수정한테 학교간다고 쌩난리를 쳐놨는데 오랜만에 가는 학교에서 정말 오랜만에 받을 벌점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존나 째질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울리는 벨소리에 고개를 틀어 휴대폰을 확인하면 마이졍♥이 액정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 어, 어. ”
ㅡ “ 언제 와? 언제? 응? 응? ”
“ 나 지금 늦게 일어났어. ”
뭐? 발랄한 정수정의 목소리 뒤로 그늘진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와, 빨리. 찡찡대는 정수정의 말에 알았다고 무한반복을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자마자 욕실로 후다닥 들어갔다. 샤워를 끝내고 나와 로션을 바르고 옷장에 처박아둔 교복을 꺼내들었는데, 이게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다. 원래 19살이 교복이랑 어색한 사이라는게 정상적인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전신거울을 보다가 이럴시간이 없다는 걸 느끼고는 재빨리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텅 빈 가방을 메고 휴대폰 배터리를 챙겼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정수정의 카톡에 생머리를 열심히 휘날리며 버스를 탔다.
ㅡ “ 도착했어? ”
“ 허으, 이제 버스탔어. ”
숨이 차서 곧 죽을듯이 헥헥거리고 있는데 쉴틈없이 걸려온 전화에 마른 침을 삼키며 패드를 밀었다. 아, 언제오는데에! 어유, 좀 기다려. 벌써 학교야? 아마도 정수정은 복도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소리를 치자마자 웅웅 울리는 통에 귀에서 휴대폰을 살짝 떼고 사람이 많은 버스에 몸을 집어넣었다. 중간중간 스치고 지나가는 나를 뒤돌아 보는 학생들도 몇몇 있었다. 너 와있는 줄 알고 일찍 왔지. 나쁜년. 이런 날에 늦게 일어나기나 하고. 툴툴대는 정수정의 말에 보채는 어린아이를 우쭈쭈하는 듯이 어르고 달랬다.
ㅡ “ 아, 빨리와아. ”
“ 알았어, 금방 갈게. ”
무슨 애기 키우는 엄마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내려야 할 정거장이 다가오자 휴대폰을 치마 주머니에 넣고 내리는 문 앞에 봉을 잡았다. 맞다니까! 에이, 아니라니까. 김OO가 여기 왜있냐? 학교가는거 맞다니까. 교복도 맞잖아. 멍하니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뒤에서 김OO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두 여학생의 토론이 들렸다. 맞다니까VS아니라니까에서 점점 걸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맞다고, 미친아. 아니라니까 병신새끼야. 저러다가 주먹다짐 하겠네. 슬쩍 뒤를 돌아 여학생들을 쳐다보자 아니라고 주장하는 쪽과 눈이 마주쳤다.
“ …헐. ”
“ 맞다고 했. …잖아. ”
존나 멋진 타이밍에 문이 열렸다. 무심한 눈길로 여학생들을 쳐다보고 버스에서 내렸다. 나 존나 멋있었어, 진짜. 와 어쩜 저렇게 개시크할수가 있지? 나란년.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한쪽 귀에 꽂고 발랄한 발걸음으로 학교 정문까지 다다랐다. 오랜만에 보는 학주선생님에 반가움을 표시하기 위해 손을 흔드려다가 내 옆을 쌩하고 지나가는 학생들에 의해 나도 모르게 같이 뛰었다. 그래, 시발. 난 지금 지각위기에 처해있었다.
“ 김OO. ”
“ 아, 앙녕하세요! ”
종치기 1분 전, 내 이름를 부르는 학주선생님께 어설프게 웃어놓고 냅다 뛰었다. 뒷문을 열자마자 종이 쳤다. 세이브. 숨이 턱턱 막혀 뒷문을 잡고 잠시동안 멍하니 자리에 서있었다. 이게 몇개월만에 교실이야. 손을 내리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자 무슨 나를 이방인처럼 보는 듯한 아이들의 시선에 뻘쭘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 앙녕? 인사를 하니 그제서야 자리에 못 박힌 듯 멍하니 있던 아이들이 신기하다며 내가 서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 와, OO야. ”
“ 너 진짜 예쁘더라. ”
“ 연예인 봤어? ”
“ 살 빠진거 봐. 다이어트 하나보다. ”
“ 네가 카이 동생이라는 거 방송 보고 알았잖아. 왜 말 안해줬어? ”
말하면 왠지 우리 집에 찾아 올 거 같아서. 슬슬 부담스러워지려는 찰나에 화장실을 갔다온건지 손을 털며 교실로 들어오던 정수정이 애들 사이에 둘러싸인 날 보고 쿵쾅대는 걸음걸이로 앞까지 다가왔다. 야, 비켜. 웅성대던 애들이 정수정의 등장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아, 뭐야. 존나 친하면 다야? 간간히 정수정을 향한 말이 들렸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왜냐고? 그래, 친하면 다다. 정 꼬우면 너네가 나보다 먼저 김OO 만나서 친구먹던가. 왜.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더니 연예인 되니까 신기하냐? 붙고 싶어? 존나 별 같잖지도 않은것들이. 이럴 걸 알고 있었거든.
“ 정문앞에서 전화하라고 했지. ”
“ 언제? 나 벌점 먹을까봐 빨리 온다고 못봤어. ”
하여튼, 망할년. 꿍얼대던 정수정이 자리에 앉았다.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어색한 내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와, 기분 존나 이상해. 아직도 앞에서 나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수군대는 애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오랜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를 하니까 느낌이 존나 어색하다고 해야되나.
“ 밥은? ”
“ 못 먹었어. 늦게 일어났다니까. ”
턱을 괴고 있던 정수정이 다른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댔다. 몸을 틀어 정수정의 필통을 갖고 노는데 잠깐 놓친 사이에 안에 들어있던 펜이 우르르 떨어졌다. 뒤질래? 이를 꽉 물고 말하는 정수정의 목소리가 들리자 급히 고개를 숙여 펜을 주워들었다. 헣ㅎ헣헣, 먄. 어? 수줍게 사과를 하며 필통 내장에 펜을 집어넣는데 어디서 많이 본 형광펜이 눈에 띄였다. 야, 이거. 정수정에게 노란 형광펜을 들어 보여주자 뭐. 라며 시큰둥하게 굴던 정수정이 형광펜을 보자마자 아. 졸.리.다. 라며 어색하게 책상에 엎어졌다.
“ 야, 이거 내가 중2때 네 생일선물로 준거잖아. ”
“ 잔다. ”
“ 자는 척 하지말고, 이년아. 이거 존나 오래됐는데. 나오긴 나오냐? ”
책상 서랍에 있는 안내장 아무거나 집어들어 형광펜을 쓰자 진하게 나와야 할 노란색이 비실비실한 옅은 색으로 나오다가도 안 나오고 그랬다. 다썼으면 좀 버려. 이게 뭐라고 아직까지 갖고 있냐? 그러고보면 정수정은 내가 준 것들은 하나하나 다 소중하게 챙기는 듯 했다. 몇년 전 쯤에 정수정이랑 번화가로 놀러갔다가 인형뽑기 기계에서 4000원을 털어넣어 작은 곰인형을 뽑아준 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 정수정 집에 놀러 갔을 때 그 곰인형은 뽑은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상태로 정수정의 베개 맡에 있었다. 그거 아직도 있으려나. 그 외에도 별거 아닌 작은 선물들을 몇 개 준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아마 다 보관하고 있을 것 같았다.
“ 귀찮아서 못 버린거야, 귀찮아서. ”
“ 매일 수업시간마다 이거 보면서 내 생각하는 건 아니고? ”
“ 내가 미쳤냐, 돌았냐, 약 먹었냐? ”
무슨 세번씩이나 부정을 해. 요 앙큼한 기집애ㅋ 아, 너 때문에 나 오늘 존나 일찍 일어났음. 잔뜩 졸린 눈을 비비던 정수정이 건들이지 말라며 다시 엎어졌다. 야, 너는 나 보고싶다고 빨리 오라던 년이 이제는 봤다고 다시 가라는 거냐? 하여튼. 부동도 않는 정수정을 째려다보다가 입술을 씰룩이며 앞으로 몸을 틀었다. 시간이 지나자 자리에 앉으라는 반장의 말에 우르르 몰려있던 반 애들이 하나, 둘 씩 제자리에 앉았다. 자습시간인데 뭐 할까. 숙제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진도는 또 어디까지 나갔으며. 어휴, 고3인데. 땀난다 땀나. 대충 책상 서랍 안에 있는 책을 꺼내놓고 까만 글씨를 무작정 읽었다.
“ 어? 김OO. 오랜만이네. ”
“ 안녕하세요. ”
“ 요즘 TV 틀면 나오는 얘기가 다 너더라. 인기스타야, 아주. ”
데헷. 앞문을 열고 들어오신 담임선생님께서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웃으셨다. 그래도 임마, 학교를 이렇게 자주 빼먹으면 어떡하냐. 내 정수리를 톡톡 두어번 두드리던 선생님이 다시 교탁위로 올라가셨다. 우리 반 스타 피곤하실테니까 쓸데없이 이것 저것 아이돌 질문하지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네. 선생님.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고에여? 감덩임미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쳐다보다가 종이 치자 아이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 불안하다.
“ 나 진짜 하나만 물어봐도 돼? ”
“ 어, 어? ”
“ EXO 멤버들 얼굴 다 봤어? 실물 어때? 존잘이지? ”
“ 어, 응. 봤긴 봤어. ”
그 중에 변백현이랑 썸도 타고 있고.
“ 와, 존나 부럽다. EXO가 너 뭐라고 불러? ”
“ 그냥 이름 불러. ”
이름 있어, 예쁜이라고. 시발
“ 그럼 번호도 다 알겠네? ”
“ 어, 응. 뭐. ”
야, 너 분명 하나만 물어본댔다. 벌써 3개 물어봤어, 꺼져. 대답을 해주자 진짜 싱기방기 동방신기 라던 여자애들이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였다.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자 옆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시발, 저건 뭐야. 어떻게 소문이 난건지 다른 반 애들까지 몰려서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나와 눈이 마주칠때마다 대박, 미쳤다며 욕하는 소리가 복도에 시끄럽게 울렸다. 1교시 뭐냐. 이와중에 걱정되는 수업시간을 보자 1교시 부터가 문학이였다. 보나마나 자겠네. 책상 서랍에서 두꺼운 문학책을 책상위에 올려 놓고 멀뚱멀뚱 가만히 있었다.
“ 그럼 EXO 말고 다른 연예인 번호는? ”
“ 병신아, 모델이니까 에스팀 모델 번호 알겠지. ”
“ 헐, 미친. 개쩐다. ”
왜 자꾸 번호는 물어 봐. 너네가 그런 눈으로 쳐다본대도 나는 안알랴줌ㅋ
“ 얘들아, 종친다. 자리에 앉아! ”
덕분에 반장 목만 죽어라 고생이다. 우리 반 애들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이제는 아예 이 근방에서 좀 논다는 다른 반 애들까지 우리반에 들어와 내 자리 근처에 자리 잡고 앉으셨다. 존나 시룸. 그냥 학교 오지 말 걸 그랬나. 아까의 설레임은 개뿔, 지금은 우글거리는 이 아이들이 그저 불편하기만 하다. 빨리 반으로 돌아가라는 반장의 말에 저마다 한마디씩 말 뒤에 욕을 붙이던 일진님들이 뒷문을 강하게 열고 나가셨다. 시발, 존나 무섭네.
“ 뭐야, 뭔 소란이야. ”
“ 깼냐? 와, 나 아까 진짜 죽을 뻔 했다. ”
시끄러운 소리에는 절대 안 깨던 정수정이 조용해지니까 슬슬 일어났다. 몰려가지고 나한테 막 뭐라뭐라 물어보는데 시발, 그 중에 일☆진도 있었다고. 한바탕 소란이 가시자마자 몇 분 안돼서 문학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출석부를 부르던 문학선생님께서 김OO에 네. 라고 대답하는 걸 듣고서 멈칫했다. 응? 김OO? …네? 아, 오늘 학교 왔네? 놀랍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문학선생님께서 데뷔 축하한다며 늦은 축하를 전했다. 아, 감사합니다.
“ 너 잘나가는 거 보니까, 내가 다 뿌듯하더라. ”
“ 핳. ”
선생님, 제 데뷔 스토리를 들으시면 기가 차실걸요? 정수정 대타뛰다가 데뷔하게 된 사연을 읊을 순 없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정수정이 웃으며 내 등을 쿡쿡 찌르는게 느껴졌지만 모른 척 하고 수업에 열중했다. 샤프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점점 없어졌다. 아, 이러다가 잠들겠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정신은 이미 꿈나라에 가있는지 꾸벅꾸벅 졸았다. 아, 수업 들어야 되는데…. 수업 들어야 하는.
“ 일어나, 점심 먹으러 가자. ”
“ …엉? ”
입가를 닦으며 눈을 떴다. 4교시 내내 퍼질러 자더라. 머리를 정리하던 정수정이 내 이마를 툭쳤다. 헐, 그럼 나 1교시부터 쭉 잔거야? 어. 개멘붕. 어떻게 내내 잘 수가 있지? 다른 의미로 내 자신이 대단해졌다. 교과 담당선생님들께서도 너 피곤하다고 깨우지 말라고 하셨어. 역시 스승의 은혜는 굉장하다. 어쩐지 너무 조용하다 싶었다. 열성적으로 칠판을 지우고 있는 주번과 그 친구를 제외하고는 교실이 텅 비었다. 밥 먹으러 가자니까?
“ 어, 엉. ”
“ 지금 안가면 또 기다려야 돼. ”
이미 늦었지만. 뒷말을 붙이며 나를 째려보던 정수정이 내 손목을 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오랜만에 급식실로 내려가니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학교 급식 존나 맛있지롱. 제 입에 맞는 것 외에는 손도 안 대던 정수정도 학교 급식은 맛있다며 칭찬까지 했었다. 계단을 내려가서 꽤나 긴 줄을 섰다. 하품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던 남학생이 가던 길을 멈췄다. 뭐야. 정수정이랑 영양가 없는 대화를 하다가 자꾸만 내게 꽂히는 것 같은 시선에 옆을 돌아보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남학생이 보였다.
“ 너 김OO? ”
“ 어, 응. ”
헐, 쩐다. 존나 반갑다. 제 머리를 털며 웃는 남학생의 명찰을 보니 김태형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나를 아는 척 하는 남자애를 물끄러미 보다가 정수정을 쳐다보니 얘도 뭔 영문을 모른다는 듯한 표정이였다. 너 얘 알아? 정수정이 묻자 나는 그저 고개짓만 했다. 아니, 전혀 초면인데.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데, 내가 기억이 안나서. 네가 누군데? 하고 물으니 나 햇님반 김태형. 이라고 대답했다. 햇님반? 햇님. …헐.
“ 야, 너! ”
“ 나 기억나냐? ”
같은 유치원 출신이다. 김태형. 와, 이놈새끼. 잘생겨진거 봐. 뜻 모를 감탄사를 내뱉으며 반갑게 인사를 하자 너 TV 나오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 하고 웃던 김태형이 대뜸 하이파이브를 했다. 근데 너 유치원 졸업 하고 나서 이사 가지 않았어? 응, 대구로. 근데 고등학교 올라와서 다시 전학 왔어. 오랜만에 만난 유치원 동창생에 이야기를 하다보니 까마득하게 쩌리가 되어가고 있는 정수정을 생각 못 했다. 한창 신나서 방방 뛰는데 내 옆구리를 소심하게 찌르는 손에 옆을 보니 정수정이 잔뜩 토라진 얼굴로 급식실 입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 어, 가자. ”
“ 밥 맛있게 먹어라. 먹고 너네반 갈게. 너 몇 반이냐? ”
“ 야, 좀 천천히. 6반! ”
내 손목을 잡고 급식실 안으로 끄는 정수정 때문에 제대로 말도 못 했다. 대충 6반이라고 소리 지른 다음에 안으로 들어갔다. 왜 이렇게 심술이야? 내가, 뭐. 혹시 삐졌어?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굴에 왕삐침이라고 써있구만. 식판을 들던 정수정이 아니거든. 하면서 내게 넘겨줬다. 다시 식판을 꺼내 들고 밥을 받은 정수정이 내가 밥을 다 받기까지 기다렸다가 발걸음을 뗐다. 기집애, 아닌 척 쩌네.
“ 와, 오랜만에 왔다고 미역국까지 주네. 나 미역국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
“ 시끄러워. ”
삐친게 분명하네. 하여튼 정수정 귀엽기는ㅋ 정색을 하고 국을 떠먹는 정수정을 내려다보며 웃다가 수저를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조용히 식사를 끝내고 싶었는데 하나, 둘 씩 알아보고 점점 몰리는 탓에 밥을 먹는건지 그냥 구경하는건지 그렇게 좋아하던 미역국도 별로 먹고 싶어지지 않았다. 는 무슨ㅋ 애들이 보든 말든 그저 묵묵히 먹었다. 다들 그냥 보기만하지 직접적으로 와서 뭔가를 하는건 없어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에도 개의치않고 식판을 깨끗히 비웠다.
“ 다먹었냐? ”
“ 엉. 근데 넌 아직도 휴지로 입닦고 다니냐. ”
“ 영 찝찝해서. ”
다 먹고 고개를 들자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는지 치마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입가를 정리하던 정수정이 익숙하게 나머지 한 장을 내게 넘겨줬다. 그래도 좋네, 오늘은 휴지 두 장 챙길 수 있어서. 무심하게 툭 던져 놓은채 식판을 들고 일어서는 정수정 때문에 가슴이 살짝 먹먹해졌다. 야, 뭔 말을 그르캐 하냐? 눈물 나게 시방. 먼저 앞서걷는 정수정을 쳐다보다가 깨끗한 식판을 들고 식판대로 향했다.
“ 아, 빨리 와. ”
“ 엉. ”
밍기적 거리고 있는 내게 손짓하던 정수정이 계단을 올라갔다. 야, 계단 조심ㅋ 놀리는 듯한 내 말에 아씨, 뒤질래? 라던 정수정이 그러면서도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섰다. 말은 참 잘들어요, 우리 수정이.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책상에 엎어졌다. 와, 오랜만에 진짜 많이 먹었다. 제 책상위에 올려진 공주거울을 보며 입가를 정리하던 정수정이 나를 보며 픽 웃었다. 그러니까 학교 좀 자주 출석하시라고요.
“ 네, 네. ”
“ 야, 김OO. ”
거울을 보는 정수정의 머리카락을 건들며 장난치고 있는데 앞문에서 들리는 내 이름에 앞을 쳐다봤다. 뒤에 따라 붙은 제 친구들을 떼놓고서 들어오던 김태형이 내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나 너 TV에서 보자마자 바로 졸업앨범 뒤져봤다니까. 올ㅋ? 나 유치원 졸업사진 존나 해맑게 나왔을텐데. 어, 이러고 있던데? 얼짱 각도에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는 졸업 앨범 속 내 사진을 재연하는 김태형 떄문에 성대가 찢어져라 웃었다.
“ 아이고, 웃겨. ”
“ 넌 어릴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게 없네. 종인이 형은 잘 지내냐? 형도 데뷔 했던데. ”
“ 엉. 뭐, 그놈이야 일하느라 매일 피곤하게 살지. ”
신기하다, 내가 알던 사람들이 연예인이라니. 그러게. 어렸을 적 김태형은 워낙 착했다. 굳이 내가 김종인을 보호해주지 않더라도 김종인이 당하고 있으면 김태형이 그 꼬마들을 혼내주기도 했었다. 그 외에도 어렸을 적 이야기 꽃을 피워가고 있는데 어째 정수정이 조용했다.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김태형에게 맞장구를 쳐주며 뒤를 슬쩍 보자 팔짱을 끼고 나와 김태형을 번갈아 쳐다보는 정수정이 보였다. 그러다 나랑 마주치자마자 눈을 홉뜨는데 아, 존나 무섭다.
“ 종인이 형은 아직 나 기억하려나? ”
“ 어, 뭐. 기억하겠지. ”
정수정 눈치를 슬쩍 보며 대답을 해주자 그런 나를 보며 왜 그러냐고 묻던 김태형이 시선을 돌려 정수정을 쳐다봤다. 저러면 정수정이 또 한소리 하겠. …. 지가 아니네. 쟤 왜 저러지. 이상하게 정수정이 말이 없다. 예전 같았으면 뭘 보냐고, 찝쩍대지말고 조용히 꺼지라고 할텐데 지금은 김태형의 눈을 피하고 있다. …얘 봐라? 야, 김태형! 축구하러 안가냐? 어, 어. 먼저 내려가있어! 금방 갈게. 정수정을 요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던 김태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친구랑 축구 내기 하기로 해서 가봐야겠다. ”
“ 어, 응. ”
“ 나중에 또 보자. ”
쿨하게 손을 흔들고 사라져가는 김태형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정수정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야, 뭐냐 너? 은근 섭섭한 기분에 슬리퍼를 벗고 정수정의 종아리를 툭 치자 어? 뭐라고? 라던 정수정이 멍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허. 얼씨구? 야, 너 지금 볼이 심하게 발갛게 물들어가고 있는 거 앎? 내 말에 기겁을 하며 거울을 보던 정수정이 설마 나 아까 걔 있을때도 이랬어? 라고 물었다. 아니, 소리쳤다는게 더 맞으려나.
“ 걔? 걔가 누군데. ”
“ 아까 쟤있잖아. ”
“ 그러니까 쟤가 누구냐고. ”
“ 아씨, 김태형! ”
…어? 순간 뒷문을 열고 들어오던 김태형이 멍한 표정으로 정수정을 쳐다봤다. 미친. 김태형을 발견한 정수정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터벅터벅 이쪽으로 걸어오던 김태형이 내 옆자리에 있는 하얀색 수건을 챙겨들었다. 아, 축구한다고 챙겨왔는데 깜빡 놓고 가서. 저를 쳐다보는 나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정수정을 번갈아보며 말을 하던 김태형이 다시 뒷문으로 돌아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 근데 나 왜 불렀어? ”
“ ……. ”
“ 정수정. ”
김태형의 입에서 정수정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난 봤지롱, 어깨 흠짓 떠는 거. 김태형의 목소리는 그냥 이름만 불러도 달달했다. 그래서 그런지 안그래도 발그레했던 정수정 얼굴이 더 발갛게 타오르는걸 보고 있으니까 웃겨 죽을 지경이였다. 미친, 정수정한테 이런 면도 있었다니. 저 놀라운 경이로움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아, 아니야.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하는 정수정 탓에 가까이에 있는 나조차도 뭐라고 꿍얼거리는지 간신히 들리는 정도였다.
“ 어? 뭐라고? ”
덕분에 약간 미간을 찡그리며 정수정에게 가까이 다가온 김태형이 고개를 푹 숙인 정수정을 갸웃거리며 보다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아마도 너에게 첫눈에 반한 것 같아. 쯤은 되겠지. 정수정을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나를 의문스러운 눈길로 보던 김태형이 눈을 꿈뻑였다. 알긴 아는데 말해주기는 싫지롱. 어깨를 으쓱이며 모른다는 제스쳐를 취하자 고개를 기우뚱하던 김태형이 나, 간다. 하고는 반을 나갔다. 뒷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정수정이 배부르다며 점심 먹은 후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여자애들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 와, 얼굴 봐라. ”
“ 아, 미친. 놀리지마. ”
“ 김태형이 그렇게 좋았냐? ”
미쳤냐? 조용히 해라. 그래도 아니라고는 안하네. 18년 살면서 정수정의 얼굴이 저렇게 발갛게 물든건 처음본다.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김태형 번호라도 따주리? 이쯤에서 약 빨았냐고 소리질러야 할 정수정이 어째 잠잠하다. 야, 너 오늘 진짜 이상한. 정말? 번호 따줄거야? …진짜 제대로 꽂혔구나, 너. 거울을 보며 홍조 띈 얼굴을 가라앉히던 정수정이 번호를 따준다는 내 말에 거울을 내려놓고 고개를 쭉 빼서 내게 붙었다.
“ 와, 너 진짜냐? ”
“ 아, 몰라. 근데 진짜. ”
잘생기긴 잘생겼다. 뭐, 이정도면 거의 사랑병이네. 결국 정수정 때문에 운동장 스탠드로 내려왔다. 내가 이게 뭐하는 짓이냐. 지금 내 썸남도 연락 올까 말까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남의 썸이나 도와주고 앉았고. 어? 저깄다! 매의 눈을 가동해서 김태형을 찾던 정수정이 내 팔뚝을 때렸다. 어떡해, 존나 멋있어. 저게 멋있냐? 내 눈에는 그냥 캥거루 한마리가 촐싹 대는 것 같은데. 강압적으로 나를 스탠드에 앉히는 정수정 때문에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 앉았다. 와아, 잘한다. 김태형. 영혼없는 응원에 나를 째려보던 정수정이 내 팔을 직접 돌려주며 응원을 했다. 내 팔이 야구 응원할때 쓰는 막대풍선이냐.
“ 아, 근데 얘네 언제 끝나? ”
“ 종치고 나서 끝날 걸. ”
눈에 콩깍지가 씌여도 심심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하품을 하던 정수정이 내 팔뚝에 얼굴을 기댔다. 어깨도 아니고 팔뚝이 뭐냐, 이년아. 부비부비 하는 듯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던 정수정이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냥 네가 운동장 나가서 번호 받아오면 안 돼? 이 미친년이 장난치나, 지 친구가 저 엄청난 공에 맞을지도 모르는데 말리지도 못 할 망정 오히려 나가라고 부추기고 앉았다. 친구를 헛사귄게 틀림없다.
“ 안 돼. 내 몸 소중해서. ”
“ 지랄. ”
그래, 지랄인 건 맞긴 맞는데 그래도 공 맞아가면서 번호 따는 건 심했잖아. 티격태격 하는 사이에 예비종이 쳤다. 저기 들어오네. 가져간 하얀 수건으로 땀이 베인 머리카락을 털며 친구와 장난치는 김태형이 보였다. 자, 정수정 출동이요. 내가 왜, 네가 따준다며. 스리슬쩍 넘어가려는데 딱 걸렸다. 아씨. 머리를 긁적이며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제 친구의 어깨를 퍽치며 수건을 머리에 올리던 김태형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 경기 보고 있었어? ”
“ 어, 어. 다 봤어. 너 잘하더라. ”
“ 우리 팀이 이겼지롱. ”
브이를 그리며 웃던 김태형을 쳐다보다가 따라 웃었다. 제길, 이럴때가 아니지. 김태형한테 다가가 번호 좀 줘. 하고 말하자 땡그란 눈을 떠보이던 김태형이 정말? 이라며 물었다. 엉? 뭐가? 정말 네가 내 번호 궁금한 거 맞냐고. 딴 사람이 아니라. 예를 들면 정수정이라던가, 수정이라던가. 역시 김태형 눈치 100단. 내가 달라고해도 안 줄 것 같은 분위기에 씩 웃으며 다시 스탠드로 걸어갔다. 별 수확없이 등장한 내 모습에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정수정이 번호는? 줬어? 안 준대? 하고 물었다.
“ 네가 가. ”
“ 뭐어? ”
저기 너 기다리고 있네. 운동장을 가르키며 이야기하자 한가운데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는 김태형을 발견한 정수정이 너한테 안주는데 내가 어떻게 가서 받아. 하고는 시무룩 해졌다. 나라서 안주는 거 일수도 있지. 꼭 한 사람에게만 주고 싶다거나, 뭐 그런거. 뭔 개지랄이냐는 듯한 표정의 정수정을 밀었다. 얼떨결에 운동장으로 걸어나가던 정수정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 김태형에게로 걸어갔다. 아, 구경하는 맛도 꽤 쏠쏠하네.
“ 아, 저기. ”
“ 응. ”
“ 나 정수정인데. ”
“ 응, 알아. ”
번호 좀, 주면 안돼? 제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수정을 보던 태형이 낮게 웃었다. 내 번호가 왜 궁금한데? 예상치 못한 태형의 질문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수정이 그, 그냥 궁금해서. 하고는 뭉뚱그렸다. 아, 귀엽다.
“ 어떻게 줄까? 너 지금 휴대폰 없잖아. 볼펜이 있는것도 아니고. ”
“ 아. …맞네. ”
“ 음, 그럼 이렇게 하자. ”
오늘 마치고 너네반 갈게. 태형의 말에 어쩔 줄 몰라하던 수정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 어? 집에 데려다 줄테니까 번호 주는거다. 수정의 머리를 푹하고 누르던 태형이 저를 부르는 친구들에게 뛰어갔다. 쯔쯧, 저거 또 유체이탈 상태구만. 스탠드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OO가 수정에게 발걸음을 돌렸다. 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않던 수정이 OO가 제 어깨를 치자 그제서야 유체이탈 상태에서 벗어났다.
“ 왜? 김태형이 너 별로라고 번호 안준대냐? ”
“ …쟤, 장난아니야. ”
진짜 설레 죽을 뻔했어. 설레면 설레는 거지, 죽을 건 또 뭐.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나도 변백현에게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 종쳤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청아한 종소리에 아직도 멍해있는 정수정의 손목을 잡고 뛰었다. 교실로 들어가 시간표를 보다 한국지리를 꺼내들었다. 야, 정신차려. 생각없이 앉아있는 정수정의 팔을 툭툭 치다가 저러다가 곧 혼날 것 같아 정수정의 사물함에서 한국지리를 꺼내 책상위에 올려뒀다.
“ 정수정. ”
“ …네, 네? ”
“ 수업시간에 무슨 생각하니? 남자친구 생각해? ”
“ …네. ”
뒤로 나가. 어휴, 저 병신. 하필이면 노처녀쌤한테 걸려가지고는. 결국 마이졍은 5교시가 끝나고, 6교시, 7교시. 보충 수업이 다 끝날때까지 한동안 현실세계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뒤로 김태형이랑 정수정이랑 어떻게 됐냐고? 어떻게 됐기는, 사랑하고 있겠지. 뭐.
♥
애정합ㄴ니당 S2s2
글속에서는 연애냄새 쩔게 나는데 난 무ㅓ함ㅋ...
글은 다 픽션잉ㄴ거 아시졓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허헝ㅎ
음, 이제ㅔ 슬슬 완결 냄새가 나..ㄹ...걸...?
암호닉 안 받아요~
S2암호닉S2 |
똥강아지 백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