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얼떨결에 직장을 잃고, 외주 제작국을 찾아온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절대 익숙해질 것 같지 않던 새로운 장소, 새로운 이름,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어쩌면 조금은, 행복한 것 같기도 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첫 만남, 그리고 우연하게 이루어졌던 두 번째 만남, 이후 여러 번의 기획 회의와 촬영들. 그 시간들 속에서 '리얼 엑스 다이어리' 그리고 여섯 멤버들은 나의 삶 속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 들어왔다. 박찬열과 변백현은 그 날 시끄러운 홍대 거리에서 강제 친구 선언을 한 이후로, 자신을 놀리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았다. 툭하면 핸드폰 배경화면을 자신들의 셀카로 바꾸어 놓았고, 지나갈 때마다 머리를 톡톡 치며 어, 너무 작아서 거기 있는 줄 몰랐어! 하며 얄미운 짓을 했다 (후자는 대부분 박찬열에 의해서 자행되었다). 비열하게 태생적인 한계,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키 차이를 이용하다니. 김준면은 나름대로 오빠랍시고, 이런 저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챙겼다. 가끔 언니들에게 구박받는 상황에서 슬쩍 빼줄 때는 뭐, 고맙기도 했다. 만날 때마다 그 때 해장국 맛있었냐며, 해장국 끓여주겠다는 것만 빼면 뭐. 도경수는 같이 빠른 93년생인 주제에 어딘가 시크한 구석이 있어서 아직은 쪼금 어색했다. 먼저 말을 걸기에는 뭔가 무섭달까. 김종인은 생긴 건 까칠하게 생겼는데, 의외로 여린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가끔 쪼르르 달려와서 누나 누나, 하며 이런 저런 얘기하는 거 보면 좀 귀엽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오세훈은, 뭐 여전했다. 여전히 뻔뻔하고, 잘생겼다. 젠장.
< < R E A L - X - D I A R Y > >
Episode 03. "D e b u t"
[ D-1. 청담동 SM 사옥 내 연습실. ]
"아으! 힘들어!"
노래가 끝나자마자 지친 멤버들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평소 같았으면 카메라만 가까이 대도 신나서 멘트를 하거나, 장난을 치거나 할텐데, 아무래도 데뷔의 압박감이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었다. 카메라를 발견한 종인이 그제서야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한 마디를 한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내일 드디어 데뷔라서...오늘 이렇게 밤새 연습 중이네요."
"설레긴 한데, 일단 힘들어 죽겠어요오..."
하지만 곧 이어 트레이너가 들어오자, 좀비마냥 널부러진 몸뚱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났다. 딱 두 번만 더 하고, 자러 가자. 오케이? 넵! 연습실 거울 앞에서 이미 수백 수천 번을 반복했을 안무를 하는 멤버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절실하겠지. 그렇지 않을 리 없지. 마냥 웃고 떠들던 멤버들이 진지하게 연습에 임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이상해졌다. 데뷔. 시작. 처음. 그런 말들은 사람들에게 큰 힘을 가진다. 때로는 설렘을, 때로는 걱정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시작'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에너지를 준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 그래, 그런 거다. 들뜨는 만큼, 처음을 망쳐버리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과 부담감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바가 못 된다.
문득 첫 드라마가 떠올랐다. '첫 드라마' 라고 해봤자 고작 몇 개월 전에 종영된 바로 그 드라마였다. 들어온 지 고작 몇 개월 된 신입 작가가 작품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크지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딱 피곤해 죽기 직전까지 밤을 새우며 대본을 쓰고, 수정을 보던 것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 다만, 나의 처음이 아름다웠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10년 차 작가 선배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일지라도, 시청자들에게는 수요일 밤을 적당히 웃으며 보낼 수 있게 해주는 드라마 한 편일지라도. 그건 나의 첫 작품이었으니까. 그렇게 애정을 쏟은 작품이 종영된 지 일주일, 드라마국을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다. ㅇㅇ는 어렴풋이 그 감정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 때느꼈던 감정은 아마도, 배신감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아마, 멤버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몸이 부셔져라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일거라고.
막내야, 밖에 냉장고에 생수 있거든? 애들 숫자 맞춰서 좀 갖다줘. 옙. 분부가 있겠습니까. 그래, 오늘은 왜 안 나오나 했네, 그 놈의 막내. 사실 이쯤 되니까 그렇게 치를 떨며 싫어했던 막내 작가라는 말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안 불러주니까 서운하기도 하고 말이야. 냉장고에서 차가운 생수 여섯 병을 꺼내 두 팔 가득 안고 가는데, 난관에 봉착했다. 이거, 문 어떻게 열어? 연습실 문 앞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뒤에서 뻗어 나온 팔에 의해 문이 열렸다. 안 들어가고 뭐하냐? 어, 도경수다.
"아, 아니 그게...손이 없어서."
"이리 줘."
두 팔에 한 가득 들려 있던 생수병들을 대충 정리하더니 옮겨 드는 도경수였다. 야, 아니야. 내가 할게! 너 얼른 가서 연습해야지. 그러자 땀에 젖은 까만 머리를 훅, 하고 불어 넘기더니, 생수병 하나를 집어 손에 쥐어준다. 자, 내 노동력에 숟가락 하나쯤은 얹게 해줄게.
"헐? 내가 여기까지 다 들고왔거든?"
"문 열어준 거 누구야."
"...너요."
"내가 짠 하고 나타나서 문 안 열어줬으면 너 들어갔어 못 들어갔어."
"...못 들어가나?"
"잘 아네."
아니, 의문문이라고! 못 들어갔을까? 못 들어갈 수 밖에 없었을까? 뭐 이런 거라고! 물병 내려놓고 문 열고 들어갔으면 될 거 아냐! 타이밍을 놓치고 속으로만 씩씩 대고 있는데, 피식 하고 웃더니 이내 성큼성큼 연습실로 들어선다. 야 이 하마들아 물이나 마시고 해라. 뭐야, 너 지금 드립 친거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보자 뭘 봐, 라며 아무렇지 않게 생수를 바닥에 내려놓는 도경수. 내 예감이 맞았어. 도경수는 무서운 애였다. 저런 엄청난 드립을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치다니. 차가운 생수병이 도경수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닿자마자, 사막에서 한 일주일 쯤 고생하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처럼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멤버들이었다. 야, 천천히 좀 마셔. 체할라. 잠시 멈춘 카메라 덕에,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변백현의 등을 토닥 토닥 두르려주자 왠지 엄청나게 감동받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불길하다.
"헐. 막내야. 너 지금 나 걱정해준거야? 와 진짜 감동. 나 진짜 목마른데, 너 생각해서 여기 대나무 잎 떠 있다 생각하고 1분에 한 모금씩만 마실게."
됐으니까 그냥 원샷하세요, 원샷. 물 마시다 체해서 응급실 실려가보던가 말던가. 백현에게 대답하기도 전에, 막내야! 왜 백현이만 챙겨? 나도 물 급하게 마시고 있었는데. 하며 아니나 다를까 딴지를 걸어오는 찬열이었다. 내가 말했지. 얘네 나 놀리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고. 이러다 스트레스로 수명이 짧아지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데, 마침 딱 문을 열고 들어오는 트레이너 선생님. 와, 쌤 나이스 타이밍!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휴, 내쉬며 카메라 앞으로 다시 뛰어 왔다. 야, 딱 한 번이다! 마지막이니까 열심히! 트레이너 쌤의 밝은 목소리와 멤버들의 지친 목소리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불쌍한 것들. 쯧. 아이돌 안 하길 잘했지.
"와아. 끝났다!"
"어윽. 죽을 것 같아..."
"딴 데 새지 말고 바로 숙소 들어가!"
마지막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밤 늦게까지 이어지던 연습도 마무리가 되었다. 숙소로 향하는 멤버들의 피곤하지만, 들뜬 얼굴을 마지막으로, 카메라도 꺼졌다.
[ D-Day. 여의도. 음악 방송 스튜디오 대기실. ]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의 멤버들이 대기실에서 저마다 메이크업이나 헤어를 받고 있었다. 대기실에 맴도는 일종의 전운과도 같은 살벌한 기운에 덩달아 긴장한 매니저, 스텝들, 그리고 촬영팀까지 침을 꼴깍, 삼켰다. 곧 리허설입니다, 대기하세요! 문을 덜컥 연 스텝의 방정 맞은 목소리를 기점으로, 대기실 안이 더욱 부산스러워졌다. 카메라들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처음을, 화면 속에 잘 담아내기 위해서.
"경수 씨. 곧 있으면 데뷔무대인데, 기분이 어때요?"
"어우. 너무 떨려요. 제가 앞에 고음 파트가 있어서, 실수할까봐 긴장 되네요."
"형이 그 부분만 얼마나 연습했는지 몰라요."
"김종인 너는 목 괜찮아?"
"어제 뜨거운 물 많이 마시고 잤더니..."
"얘는 보컬도 아닌 주제에 목이 나가가지구. 으휴. 말썽꾸러기에요."
"하하. 제가 목을 많이 쓰는 파트가 있어서...잘 되겠죠!"
"그럼, 당연 잘 돼야지!"
종인과 경수의 대화를 지켜보던 준면이 뒤에서 한꺼번에 둘을 끌어안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 형! 자신들을 끌어 안고 놓아주지 않는 준면에게 투정을 부려보는 종인과 경수였지만, 준면의 말에 내심 안심이 되는지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준면의 역할이 팀의 '엄마' 라더니,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가보다. 작게 웃으며 카메라를 돌리는 ㅇㅇ였다.
"찬열 씨는 어때요? 지금 기분."
"와. 모르겠어요. 진짜 심장이 막 쿵쿵거리는게,"
"유~메잌 미! 바운스! 바운스!"
"아오 비켜 좀! 인터뷰 중이잖아!"
비글 두 마리는 여전하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멤버들이 머리부터 의상, 그리고 신발까지 모든 세팅을 마무리하고, 리허설을 하고, 점심을 먹고, 조금 졸다가, 다시 일어나서 안무를 맞춰보고. 그렇게 방송 시간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불안한 듯 자신의 랩파트를 반복해서 연습하고 있는 찬열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잘 해! 잠깐 놀란 듯한 표정의 찬열이 이내 씨익, 능글맞게 웃었다.
"오빠만 믿어라."
"뭐야. 나는 왜 오빠 아닌데!"
"둘 다 오빠 아니거든요?"
"막내야 찬열이 말고 우리도 있는데..."
"맞아 우리는 왜 잘 하라고 안 해줘요?"
"아, 아니 그러니까...하려고 했어! 지금! 막!"
옆에서 찡찡대는 변백현을 비롯한 여섯 멤버 모두에게 에너지를 팍팍 불어넣어주고서야, ㅇㅇ는 간신히 대기실을 나섰다. 이제 곧 진짜 무대니까, 아무래도 조용히 내버려두는 게 좋겠어.
다음은, 여기 이 무대에서 최초 공개되는 대형신인! EXO 입니다! MC 의 소개 멘트와 동시에, 무대가 시작되었다. 카메라 화면을 계속 체크하랴, 멤버들의 모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피랴, 시선이 바쁘게 움직였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 서서 각잡힌 군무를 추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헛되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잔뜩 힘이 들어간 동작들에서 그런 감정이 생생히 전달되어, ㅇㅇ는 괜히 아무 것도 없는 노트를 한 번 들여다보았다.
무대는 함성 속에서 끝이 났다. 자신들을 향해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지, 약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정신 없이 무대를 내려오는 멤버들의 등을 토닥였다. 수고했어. 고생했어요! 경수야 너 고음 짱! 엄지를 척 치켜 들어 보이자, 씨익 웃으며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지나가는 경수였다. 어두컴컴하고 바글바글한 복도를 뚫고 대기실에 돌아와서야 멤버들 한 명 한 명의 표정이 자세히 보였다. 뿌듯하고, 들뜬, 저마다의 미래를 꿈꾸고 있는 얼굴들.
"오빠 좀 멋있었냐?"
푸흡.
"응. 멋있었다."
그 놈의 오빠. 진짜 집착 쩌네. 그래서 변백현의 되도 않는 오빠 소리에도 타박이나 핀잔 대신, 어깨를 한 번 두드려줬다. 수고했어 다들. 오늘은 연습 없다! 매니저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와아악! 하며 어느새 다시 해맑은 소년들로 돌아온 멤버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ㅇㅇ는 속으로 씨익 웃었다. 데뷔 무대를 잘 치러낸 멤버들을 위해 준비된 깜짝 파티를 떠올리며.
숙소 방향으로 향하는 듯 하던 차가 한강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에, 준면이 가장 먼저 사색이 되어 일어났다. 어? 이 길 아닌데... 형! 이 길 아니에요! 하지만 조금 뒤의 서프라이즈를 위해, 준면의 말은 살포시 무시해주고. 다음으로 깬 경수도 창 밖의 어둠을 살피며 잠꼬대 비스무리한 말을 해댔다. 뭐야. 우리 어디가? 우리 멸치잡이 배에 팔려가는 거에요? 이건 헛소리니까 무시. 곧 이어 나머지 멤버들도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깰 무렵, 차가 부드럽게 한강변에 멈추었다.
"여러분. 리얼 엑스 다이어리 제작진이 여러분을 위해서 준비한 게 있어요. 다들 차에서 내려주세요!"
PD의 말에 하나 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 멤버들의 앞에, 반짝이는 한강물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풍경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명당 자리에 세워진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그 위에 놓여진 갓 구워 따끈따끈한 김 폴폴 나는 치킨까지! 순간 멤버들의 눈이 먹잇감을 찾은 세렝게티 초원의 표범마냥 반짝였다. 헐!
치느니이임!
"피자도 있어!"
"아사하기 직전이었는데. 진짜 맛있겠다."
"흐흥. 치느님! 치느님!"
어때요, 소감이?
"리얼 엑스 다이어리 사랑해요!!!!!!"
약속이라도 한 듯 터져나온 대답에, PD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섯 멤버를 포식시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지출한 자신의 사비 따위 이미 기억 저편으로 밀어둔 채였다.
"야, 건배하자. 건배!"
"맥주 없어?"
"음주 방송 할 일 있냐."
"그럼 콜라라도. 치콜! 치콜!"
엑소! 사랑하자! 준면의 선창과 함께, 종이컵들이 맞부딪혔다. 닭다리 내꺼! 내꺼거든? 잔을 내려놓자마자 시작된 닭다리 쟁탈전은 결국 박찬열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 와중에 조용히 날개를 들고 간 도경수가 조금 더 똑똑하긴 했지만. 찬열에게 빼앗긴 닭다리를 아련하게 바라보던 백현이 아쉬운 듯 맥주를 홀짝이다, 아! 하며 맥주를 한 잔 더 따랐다. 너도 건배하자, 건배. 그러니까, 데뷔 기념이긴 한데, 뭐 친구 기념이기도 하고. 아무튼. 잔을 내미는 변백현의 표정이 마치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도원결의하던 장비의 얼굴마냥 결연해서 하는 수 없이 잔을 받았다. 야 치사하게 너만 하냐! 나도 해! 그리고 세트처럼 딸려 온 박찬열. 왜 안 나타나나 했네. 얘네는 가만 보면 마트에서 파는 원 플러스 원, 뭐 그런 것 같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둘 중 누가 첫번째 '원' 이고, 누가 딸려오는 '원' 이냐며 아웅다웅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굳이 입 밖으로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너희 건배해? 막내야, 속상하게 오빠 빼놓는거야? 거기다 김준면까지. 앞으로 막내가 오빠한테 오빠 대접하기를 기대하며! ...짠. 오빠 대접은 무슨.
"늙은이들끼리 완전 주책이네."
도경수의 말 한 마디에 순식간에 굳은 표정이 된 셋이었다. 야 젊은 애들끼리도 한 번 해, 하며 오세훈과 김종인도 어느새 도경수의 편에 섰다.
"막내야. 너 쟤네랑 건배하면 우리 늙은이 취급하는 거라고 생각해도 되지?"
"얘가 건배를 하든 말든 그건 그냥 사실이거든?"
"와. 도경수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완전 쪼끄맣고 귀여웠는데..."
"그 때도 형은 이겼어."
자연스럽게 나뉜 늙은이 팀과 젊은피 팀의 대결 구도에 나는 자 이제부터 배틀 시작! 이라도 외치고 존나 튀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아..하하, 어색하게 웃고만 있는데 가만히 있던 김종인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소리쳤다. 건배 안 하면 한강 입수! 위하여! 그리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간 손. 그러니까, 어, 지금...나를 향해 싸늘한 미소를 날리는 늙은이 팀의 셋이 보였다. 아니, 제가 이걸 자의로 한 건 아니고, 그, 그게.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김종인의 얼굴은, 마치 내가 순수하고 귀엽기도 하던 초딩 때,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해서 꼭 나를 이겨 먹고는 빙글대며 웃던 오빠의 환생을 보는 것 같았다.
"...나 상처 받았어."
"고작 스물 둘인데 늙은이라니..."
멤버들의 푸념을 뒤로 하고 잽싸게 스텝들 사이로 돌아왔다. 문득 돌아본 강물 위로 새하얀 달빛이 물감처럼 번졌다. 고생 뒤의 달콤한 만찬은 카메라가 완전히 꺼지고도, 밤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택시를 탈까 하다, 밤바람이 시원해 마음을 바꿨다. 뒷정리를 마치고, 촬영분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즈음에는 이미 버스가 끊긴 터라 어쩔 수 없었다. 물리적인 거리로만 따지자면 집까지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초겨울 밤이라 그런지 날씨가 갈수록 쌀쌀해졌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택시비 아끼다 길에서 얼어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뭐. 이미 다 온 거, 물릴 수는 없지. 걸음을 빨리 하는데 우연히 시선이 옆의 포장마차에 꽂혔다. 그 날,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에게 '꽐라녀' 라는 별명을 가져다 준 날이자,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 없을 흑역사를 기록하게 해준 날. 그 날부터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이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포장마차를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 괴상한 버릇이. 그리고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건 아마도 여러 번의 우연적인 사건들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ㅇㅇ는 자신도 모르게 포장마차 앞에 설 때마다, 말도 안 되는, 그러니까 드라마 같은 상황들을 속으로 가정해보곤 했던 것이다. 가령,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 그 사람이 포장마차의 비닐 문을 열고 나온다든지... 응?
에이. 말도 안 돼. ㅇㅇ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미쳐서 환상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라면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오세훈이, 또 있을리가 없잖아. 그런데 눈을 비비적거려봐도 앞에 선 형체는 사라지기는 커녕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홀로그램인가? 아무 생각 없이 뻗은 손 끝이 세훈의 단단한 팔에 닿으며 멈췄다. 으익! 진짜 살아 숨쉬는 오세훈이잖아! 선명한 감촉에 오히려 제가 더 깜짝 놀라서는, 뒤에 차도가 있는 줄도 모르고 뒷걸음질 치는 ㅇㅇ의 팔을 턱하니 잡은 세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서 뭐해요?
"...아, 그, 촬영 끝나고, 집 가고 있었어..."
"촬영 끝난지가 언젠데."
"저, 정리하고 왔지. 그리고 니가 까먹었나 본데, 여기 우리 집 앞이기도 하거든?"
"아."
짧고 어색한 정적. 고개를 끄덕이던 세훈이 살짝 고갯짓을 한다. 잠깐 들어왔다 갈래요?
얼떨결에 따라 들어온 포장마차 안은 바깥과 다르게 훈김으로 가득했다. 오뎅 국물의 달큰한 냄새, 싸한 알코올 향, 그리고 앞에 앉은 오세훈의 시원한 체향. 그런 것들이 한데 뒤섞여 기분이 알딸딸해졌다. 아까 한 모금 마셨던 맥주 때문인가. 아닌데, 내가 그렇게 술이 약할 리가 없는데. 자잘한 안주 몇 가지와 소주 한 병을 시킨 세훈이 말 없이 술을 따랐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오늘 나 좀 멋있었죠, 하며 뻔뻔한 말들을 늘어놓았을 텐데, 왜인지 조용하다. 눈치를 흘끔 봐도, 세훈은 가지런한 앞머리만 연신 넘기며,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술잔이 몇 번 쯤 비워졌다, 다시 가득 채워지고. 그렇게 한 병이 꼬박 다 비워져 갈 때 즈음. 잔 끝에서 아슬하게 찰랑이는 투명한 액체를 바라보고 있던 ㅇㅇ가 먼저 입을 뗐다.
"너 괜찮아?"
우연하게 만나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던진 질문 치고는 뜬금 없었다. ㅇㅇ 스스로도 무엇이 괜찮다고 묻고 있는 건지, 무엇이 궁금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냥. 왠지 지금의 세훈이 조금 불안해 보여서. 그 불안감의 이유를 스스로 드러내 보이기에는 술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기도 했다. 짧은 쉼표, 그 뒤에 꽤나 긴 대답이 이어졌다. 술기운 때문일까, 세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솔직해 보였다.
"...그냥. 심란하다."
"..."
"나 연습생 하다가 데뷔 앞전에 두고 무산된 적 많아요."
"..."
"그래서 데뷔하면 괜찮을 줄 알았거든요?"
담담하게 말하던 세훈이 앞에 놓인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근데 더 이상해."
불안하고, 막막하고. 내일 아침에 눈 떴는데 이게 꿈이면 어쩌지. 잠시 마주친 눈이 얼핏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래, 그러니까 너도...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세훈의 손 위로 손을 겹쳤다. 괜찮아질 거라는 식상한 위로, 힘내라는 알량한 격려,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도 너와 같다는, 일종의 동질감에 기반한 공감. 그러니까, 우리는 청춘이었다. 누가 뭐래도, 또래보다 조금 일찍 세상에 눈 떠버렸어도, 인생의 쓰라림을 이미 알아버렸어도. 아직 우리는 청춘이다. 20 대 초입, 우리가 지금 서 있는 페이지는 그런 것이었다. 확신 따위 없는 불안, 끝없는 경쟁, 누구를 상대로 하는 것인지 모를 투쟁.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때로 웃고, 때로 울며 저마다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것은, 함께이기 때문에.
"...꼭 성공할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할 수 있어. 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말들이 꽉 잠긴 목 안에서만 맴돌았다. 왜인지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텅 빈 술잔 안에, 소주 대신 포장마차의 열린 비닐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달빛이 잠겼다. 맡잡은 손 사이로 미지근한 열기가 번질 때 까지도, 누군가 먼저 손을 놓지는 않았다. 자주 들러서 안면이 튼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가 마침 골뱅이 한 접시를 들고 오며 어머, 둘이 사귀나봐? 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요! 안 사귀는데!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온 외침에 옆에 있던 세훈이 고개를 숙이고 크흡, 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님 말고...저번에도 그렇고...둘이 잘 어울리길래 그랬지. 사귀는 거 아니면 이번 기회에 연애해봐요! 총각, 이 아가씨가 참 싹싹하고 성격도 좋고 아주... 아, 아줌마! 계산! 계산할게요! ㅇㅇ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내 월급...
♥~내 사랑들~♥
홍홍내가지금부터랩을한다 / 두비두바 / 향기 / 홍홍 / 하마 / 비타민 / 쟈나 / 똥백현 / 젤리 / 망고 / 니니 / 정은지 / 핑꾸색 / 홍차 / 펭귄 / 눈누난나
/ 태긔 /플랑크톤 회장 / 됴륵 / 호현 / 영찡 / 옌니 / 봄빛 / 비타오백 / 우럭아우럭 / 미역 / 루루 / 카스텔 / 둉글둉글 / 햄버거 / 라인 / 텐더/ 성탄절
/ 콩콩 / 미미 / 코코팜 / 펑키첸첸 / 짱구짱아 / 조무래기 / 백호 / 윤아얌 / 거북이 / 요망징 / 위아원 / 다루 / 순백이 / 캐민 / 유민 / 비글비글 / 조디악 / 봄구 / 생일이겨울 / 기린뿡뿡이 / 막냉이 / 크림치즈 / 됴르르 / 길라잡이 / 눈두덩 / 쟈쟈됴됴 / 소희 / 늑대와민용 / 호유 / 토익 / 준나 / 라망 / 수면바지 / 타오야내옆에있어 / 봉봉봉 /
준배삐삐 / 우유 /
(암호닉 신청은 계속 받습니당! 혹시라도 안 추가 되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작가의 말~★
와 오늘은 드뎌 엑소 데뷔!!!!!!!!
근데 몬가 아련하고....우울하고....쫌 그르네여 흡....평소랑은 느낌이 쬐끔 다르죠ㅠ_ㅠ
엑소 멤버들도 그렇고, 여기 나오는 ㅇㅇ이, 그러니까 징어도 그렇고 다들 또래보다 일찍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힘겨운 일들, 복합적인 감정들... 요런 거에 주목하면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당~ㅎ_ㅎ!!!!
앞으로 펼쳐질 뜨거운 청춘의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내 사랑들!
아 그리고 저녁 때 제가 임시저장 누른다는 게 실수로 확인 눌러버려서 잠시 올라갔었죠T_T..죄송해요 흡 인티에 쓰다보니까 요런 실수를 가끔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