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도경수X너징] PD인 너징이 기획한 프로그램에 내레이션 넣는 도경수 썰 (부제: 새벽의 녹음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녹음에 스탭들은 모두 지쳐있는 듯 보였다. 하긴, 지금 며칠 째 밤샘 작업을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되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위해 전국을 발로 뛰고, 밤새 영상을 편집 하던 날들이 문득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번 다큐의 내레이션으로 발탁된 것은 도경수. 아이돌 출신인 실력 없는 애를 빽으로 갖다 쓴다 뭐다, 말도 탈도 많았었지만 얼마 전 시작된 내레이션 작업에서 그가 보여준 역량은 가히 놀라웠다. 베이비 페이스와 어울리지 않는 저음의 목소리가 귀에 착착 감겼다. 오늘은 그 내레이션 작업이 막바지로 다다르는 날이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 도경수에게 녹화 스케줄이 있었던 것이다. 늘 그렇듯이 연장되고 또 연장되는 촬영에 열 한시에 끝났어야 할 촬영이 한참이 지난 새벽 한 시에야 마무리가 되었고, 그로부터 30분이 지나서야 도경수는 방송국에 도착했다. 살인적인 스케줄에 그도, 스탭들도 많이 지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포함한) 스탭들은 귀신처럼 산발한 머리에, 텅 빈 눈동자, 까슬해진 피부까지. 완벽한 좀비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나야 뭐, 아직 조연출 이름표를 달고 있으니 PD님 만큼 바쁠 것도 없었지만, 온갖 잡다한 일들이 막내인 내게 몰린 덕에 어제도, 그저께도 끝내 밤을 새고야 말았던 것이다. 낮에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이긴 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사흘째 되니 핫식스고 뭐고 에너지 드링크도 약빨이 더 이상 안 받는다. 붕붕 드링크라도 제조해야 하는 건가..
결국 오늘 분의 내레이션을 모두 따지 못한 채로 새벽 두 시가 되었다. 대여섯 명 쯤 남은 스탭들 모두 거의 실신 직정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오..오늘 이거 다 따야 되는데.."
박 PD님의 한 마디에 스탭들의 귀신 저리가라 할 피폐한 얼굴들이 모두 피디님 쪽으로 돌아갔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딘가로 향한다. 저.. 저기요. 다들 어디 보시는 거에요. 저 보시는 거 아니죠?.. 아니, 다들 왜 이러실까. 하하. 나에게 쏠린 열 두개의 동태 눈깔들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발사했다. 하하..하...
"ㅇㅇ아. 오늘 분 까지만 좀 따다주라. 전에 녹음 해본 적 있지?"
"아..네..있긴 있는데.."
"야, 잘 됐네. 원래 이런 건 혼자 하면서 배워 가는 거야."
"맞다, 맞아. 경수 씨한테 싸인이라도 한 장 받고. 응?"
환하게 웃는 작가 언니의 얼굴이 이렇게 소름끼치게 보인 적은 처음이다. 경험은 개뿔.. 싸인은 개뿔.. 귀찮으니까 당신들이 할 일 나한테 떠넘기겠다는 거잖아!! 결국 만만한 건 막내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울며 겨자먹기로 고개를 끄덕이자, 결국 박 PD님을 필두로 한 오늘의 담당 녹음팀이 모두 자리를 뜨고, 텅 빈 컨트롤룸에 나 혼자 남았다. 녹음실 안에 있는 도경수와, 나. 그것도 새벽 세 시에. 이 무슨 지랄맞은 상황인고..
"아..하하..경수 씨. 제가 남은 분량 담당하게 되어서요.. 저.. 빨리 녹음하고 저희도 퇴근해요!"
"네, 죄송해요. 제가 오늘 스케줄이 너무 늦게 끝났죠."
"아..아이고. 아니에요. 무슨 그런 소리를! 저 멀쩡합니다!"
애써 활기차게 얘기해 보이자 녹음실 안에서 나를 향해 씨익 웃어보이는 도경수였다.
"그럼 아까 끊긴 데부터 갈게요!"
다시 시작된 녹음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진행되고 있어서 나는 대본보다, 도경수의 목소리에 조금 더 집중해버렸다. 그리고.. 헤드셋을 통해 전달되어 오는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래서.. 깜빡 잠이 들었다. 정말 순간이었다. 30초..아니, 그것도 안 됐을 것 같은데.. 갑자기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이질적인 말에 나는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졸려요?"
졸려요? 졸려요? 대본에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잠깐의 정적. 그리고서야 잠깐 집을 나갔던 정신이 제대로 돌아왔다. 허겁지겁 대본을 뒤지려던 손이 그제서야 부끄러움을 느끼고 멈췄다.
"아...헐..죄송합니다.."
이 미친 나란 년.. 아무리 졸려도 그렇지. 녹음 중에 잠이 드냐, 잠이..
"죄송해요 진짜.. 아.. 내가.. 아니.. 아.. 제가 왜 그랬지.."
유리로 된 투명한 창문 넘어에 있던 도경수가 손을 들더니,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뭐.. 뭐지? 들어오라는 건가? 허겁지겁 녹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도경수가 갑자기 마이크와 헤드셋을 다 빼고 일어섰다. 아..아니.. 지금 설마 녹음 파토내는 거 아니시죠?.. 저.. 아니.. 나.. 내 목숨..ㅠㅠ. 애써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억지로 말을 꺼냈다.
"뭐.. 뭐 문제라도 있으세요?"
"음.. 조연출이 내가 스케줄 다 끝나고 피곤해 죽겠는데.. 녹음하는 거 듣지도 않고 졸고 있는 거?"
듣고 싶지 않은 말이 귓가를 먹먹하게 때렸다. 나만 바쁜 것도 아닌데.. 나만 졸린 것도 아닌데.. 염치 없게 녹음실에서 쳐 졸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피디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녹음실이 너무 조용하다. 아무 말이 없는 도경수가 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살짝 들자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수가 보였다. 뭔가...웃음을..참는 듯한...그런....나를 조롱하는 듯한...그런....쉬발..??
"푸하하하하하핳ㅎ카핳ㅋ"
뭐지? 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 보고 있자 갑자기 빵 터져서는 바닥을 구를 기세로 맹렬히 쳐 웃는 도경수였다. 시부럴? 뭐죠 이건? 이건 마치... 끊임 없는 혼돈의 카오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도경수는 한참을 쳐웃다가, 아마도 굉장히 괴상했을 내 표정을 보더니 다시 빵 터져서는 웃기 시작한다. 스 ㅣ바.. 뭐하세요? 더욱 굳어지는 내 표정에 겨우 웃음을 멈추는 데 성공한 도경수가 피식 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아, 표정 대박."
??????????????????? 웟 더??????
"느에?"
"ㅋㅋㅋㅋㅋㅋㅋ믿었어요?"
"뻥이에요!!!!!!!?!?!?!???"
"내가 그렇게 몰인정한 사람으로 보여요? 와.. 실망."
그러면서 오히려 제가 우는 흉내를 내는 도경수였다. ㅅ..ㅅㅂ. 장난.. 치세요..? 정말 어이가 털리다 못해 동네 일진에게 지갑의 돈을 탈탈 털린 초딩 지갑이 되어갈 무렵, 그제서야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장난이에요. 장난."
"아...장난을..쳐도...진짜..."
사실 왜 눈물이 났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상황이 굉장히 빡치고 재수 없고 짜증 나고, 짜증 나고, 또 짜증 났을 뿐이다. 여기서 내가 울어버리면 굉장히 그림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안간힘을 써서 참으려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 또 눈치 하나는 빠른 도경수는 그런 내 고개를 잡아서 살짝 들어버린다. 내 눈에 그렁히 맺혀 있는 눈물을 보더니 이내 당황한 빛이 스친다.
"어, 왜 울어. 어? 아, 아 미안해. 어?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진짜."
한낱 스탭에게 베풀어주는 위로와 서툰 사과가 굉장히 고맙기도 하고... 그 동안 고생했던 게 한꺼번에 떠올라버려 나는 결국 폭풍같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막내라서 방송국에서 혼자 고생했던 일들... 여자여서 피디로 힘들었던 일들... 그동안 말도 못하고 혼자 고민했던 일들... 그런 것들을 하나 하나 의식의 흐름대로 간증하며 펑펑 울었다. 그 시간 내내 도경수는 그냥 거기 서서 나를 안고 토닥거려주고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북받쳤던 감정이 조금 사그라 들었다. 하지만 정신이 들자 가장 먼저 밀려오는 것은 엄청난... 쪽팔림. 그래서 거의 그친 울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다 울었어?"
다정한 목소리. 그것에 또 안심이 되어 그저 고개를 끄덕 거리고 떨어지려는데, 도경수가 나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준다. 빠져나가려고 할수록 더욱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에, 점점 당황스러워질 무렵.
"고생했어. 힘들었겠다."
그 말이 왜 그렇게... 고마웠는지. 또 지조를 잃고 감동을 받아버린 내 눈물샘에, 도경수가 나를 보더니 피식 하고 웃는다.
"어. 또 울어? 이거 완전 애네, 애."
"놀리지마요!!"
"완전 애기구만."
"하, 참. 아니거든요? 다 큰 어른한테 실례에요!!"
"아이고, 알겠어요. 피디님. 오늘은 녹음 접고 그냥 갑시다. 내일 일찍 나올게요."
그러면서도 은근히 나를 배려해주는 말에 결국 같이 퇴근을 하기로 했다. 극구 사양하는 내 말에도 고집을 꺾지 않는 도경수는 끝내 제 차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줬다.
"아...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핸드폰 줘요."
"...네?"
어정쩡하게 핸드폰을 내밀자, 번호를 꾹꾹 누르는 그.
"또 방송국에서 막내라고 누가 괴롭히면 내 이름 대. 이래뵈도 나 꽤 괜찮은 빽이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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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 언제지..심타였나.. 경수 라디오 디제이 대신했을 때 목소리 듣고 와 진짜 개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울면서 끄적여놓은 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