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남자, 우도환
무너지는 그녀를 지나칠 수 없는 남자, 정해인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 이도현
비극의 완결
w. 잇킷
02
"야야, 김여주 아니야? 무슨 일로 학교를 다 나왔대."
"짤릴까봐 나왔나보지. 쟤 출석일수 간당간당 하잖아. 스케줄 없을때도 일부러 안나온다며?"
"진짜? 으, 연예인병 지독하다."
인간을 움직이고 떠들게 만드는 것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마음 한 켠의 부러움과 동경.
나는 늘 그런 감정들에 둘러싸인 채 살아왔었다.
이유는 갖가지였다.
유명세를 가진 연예인이라서, 예뻐서, 나이와 맞지 않게 너무 잘 나가서 그런데다가 심지어
"오는 줄 알았으면 마중이라도 나가는건데. 전화 하지."
"오, 김여주. 진짜 왔네."
"마중은 무슨. 아직도 내가 애냐."
모두가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들이 둘 씩이나 내 곁을 지키고 있어서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지 그럼. 신발끈 풀린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는데."
"참나, 귀찮아서 안묶은거거든."
"스케줄 끝나자마자 온거야? 촬영장에서 밥은 챙겨주냐. 매점 가자."
"밥 챙겨주지 나 배불러. 커피 사줘."
도환이야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면, 도현이는 처음부터 친했던 건 아니었다.
도환이는 잠시 부모님을 뵈러 2년 정도 미국에 가있었고
나는 17살이 되던 해에 드라마가 대박이 나면서 유명세를 얻음과 동시에 친구들을 잃었다.
아, 원래도 친구라고 할 만큼 가까운 존재는 없었지만
그나마 옆에서 가끔 알짱대던 사람들조차 사라지니까 괜히 심심하기도 하고 그런 이상한 기분이었거든.
옥상에서 도현이를 처음 봤을 때는 뭐랄까, 표정이 텅 비어있었다고 해야할까.
난생 처음 보는 그 표정이 마음에 꼭 들었던 것 같다.
더 이상 인생에 무엇도 남은게 없어 텅 빈 그 얼굴이 앞으로 내가 채워갈 도화지 같이 느껴졌다고
그렇게 말하면 다들 나를 이상하게 보더라고.
네게 그 말을 해줬을 때 너는 예쁘게 웃어줬었는데.
"그런 표정으로 이런 곳에 서있는 사람 보면 어떻게든 말리라고 하던데 다들. 말려줘? 죽지말라고."
"배우라 그런가. 평소에 말하는 것도 무슨 드라마 같네."
"비꼬는거지?"
"걱정하는건데. 평소에도 매번 그렇게 날이 잔뜩 서있나 해서.
그냥 서 있는 사람을 죽을 사람 취급하지 않나, 너 그거 직업병이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찍었어."
"까고있네, 븅신."
"븅신? 야 연예인이 그런 말 써도 되냐? 내가 어디 글이라도 쓰면 어쩌려고."
"너처럼 당장 이라도 죽고 싶은 사람이 쓸데없이 그런 글을 왜 쓰냐."
따뜻한 마음을 주는 법이라고는 몰랐다.
차갑게 툭 던지는 말 속에 숨겨진 온기를 그가 알아줬으면
그리고 나를 찾아와줬으면 내심 바랬을 뿐.
그는 내 바람을 찰떡같이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야, 얼굴 창백한거 봐라. 일주일만에 학교 나와서는 걱정만 시키네."
"화장 지워지니까 얼굴 놔라. 마치고 스케줄 있다."
도환이가 아닌 다른 친구가 생긴 건 처음이었다.
학교만 가면 그와 붙어 다녔고, 그게 좋았다.
어느새 부터는 학교에 오는 것이 내 인생에 가장 기대되는 일이 됐을 만큼.
"와, 올 해 첫눈이네. 너 오니까 딱 내리는거 봐. 천상 연예인이긴 하다, 어떻게 눈도 네가 좋대?"
"매년 겨울에 나랑 있어 그럼. 첫눈은 나랑 맞게 해줄테니까.
10년 후 쯤에는 첫 눈 보면서 낭만도 좀 즐겨보든지. 그 땐 나도 이딴 스타 놀이 그만하고 매일 너랑 놀게."
"음, 생각 좀 해보고?"
"야,"
"여주야, 난 살아 있는 한 늘 네 손 닿는 곳에 있어. 그러니까 약속 같은 건 하지 말자.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거 되게 안좋은거더라. 그 약속 하나가 자꾸 생각나고, 거기에 얽매이게 하거든."
"그런 말 하지 말랬지."
"그러니까, 약속은 하지 말자. 못 지켰을 때 할 수 있는 변명이 없을 것 같아 내가."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너를 붙잡고 아등바등, 그렇게 사랑했지.
내가 너를.
"뭐 하는데 사람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그러고 있어."
"언제 왔어? 나 그냥 생각 좀 하느라."
"너 집에서 또 밥도 안먹고 있을까봐 왔지. 오늘 쉬는 날이지? 배달 시켜 먹자. 뭐 먹을래?"
"너 먹고 싶은 거 시켜. 나 별로 생각 없어."
"시키면 잘 먹을거면서 넌 꼭 나한테만 선택 미루더라."
"만약에 그 때 네가 미국에 안갔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난 너랑 놀았겠지? 도현이랑 가까워지는 일은..."
"그럼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겠지. 널 못 만났으면 도현이는 더 빨리 죽었을지도 모르고. 그랬든 아니든 똑같이 네 잘못은 없어.
김여주, 그런 생각 그만해 이제."
"...알겠으니까 떨어지지? 이러다가 입술도 닿겠다."
"그럼 더 좋고. 은근 노린 거였는데 티 났어?"
"뭐래. 나가서 커피 사올테니까 너 먹고 싶은 거 시켜놔."
몇 년을 봐도 저 능글거림은 어이가 없다.
모자를 푹 눌러 얼굴을 가리고는 패딩을 챙겨 밖으로 나오는데
"아, 지갑을 안챙겨나왔네."
저 남자가 왜 여기 있을까.
"여기서 뭐하세요?"
"어? 안그래도 이거 커피 사서 여주 씨 뵈러 갈려고 했는데. 아 그보다 미안한데 계산 좀 해줄 수 있어요?
지갑을 두고 왔는지 없어서, 돈은 제가 다음에 드릴게요."
나는 커피를 사려고 했고, 이 커피는 원래 내게로 올거였다니까 뭐 일단 계산은 하는데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건지.
"저 보러 오셨다구요? 왜요?"
"지난 번에 말씀 드렸다시피 이도현 씨에 대한 일이 궁금해서요."
"그 때 제가 할 말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왜 할 말이 없어요? 두 분, 연인 사이였잖아요. 이상하지 않아요?
사랑하는 남자가 죽었고, 살인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고, 본인이 그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될지도 모른다는데 여주 씨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네요.
뭐라도 알고 있던 사람처럼."
"... 저기요"
"기억력도 나쁜데, 표정도 잘 못 숨기시네.
이렇게 아무한테나 티 내고 다니지만 않으면 도와드릴게요, 그 날 일 그냥 이렇게 묻을 수 있게."
"대체 뭔데요 그 쪽이, 뭔데 자꾸..."
"난 그 쪽 편이에요. 내가 굳이 이런 거짓말 할 이유는 없잖아.
그러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그 커피 캐리어 안에 번호 적어서 넣어놨어요."
"이건 좀 오지랖일 수도 있는데,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고."
그 남자가 내게 다가와 내 패딩 후드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는데 다시 그 남자의 향기가 코 끝을 감쌌고,
동시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도현이와 처음 눈을 맞았던 그 날로부터 무려 10년 후의
첫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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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왔죠?
글이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다보니 헷갈릴까봐 말씀드리자면
도현이가 나오는 건 과거의 이야기
해인이가 나오는 건 현재의 이야기 입니다 !
내용이 조금 어려울 수 있어서 혹시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질문 남겨주시면 내용 스포가 아닌 질문에 한해서 답 남길게요 !
제 글 읽는 모든 여러분 오늘도 감사하구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