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남자, 우도환
무너지는 그녀를 지나칠 수 없는 남자, 정해인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 이도현
비극의 완결
w. 잇킷
3.5 번외 (그 날의 일)
이도현은 나 때문에 죽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도현을 죽였다.
"넌 그 때 죽었어야 했어."
""
잊혀지지 않는 마지막 네 얼굴은 가슴 속 깊은 곳에 박혀 빠지지도 않았지.
그 말만 안했더라면,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 날만 잘 넘어갔더라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가정들만 늘어놓으며 지옥 속에 살면서도 차마 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따라갈 수도 없는 기분은 견딜 수 없이 처참했다.
.
나도 가족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가졌을 때가 있었다.
그냥 뻔한 얘기다.
딸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빠, 나만 있으면 세상이 무너져도 좋다던 엄마
아빠의 사업이 잘된 덕에 그리 부자는 아니었지만 부족함 없이 살던 우리 집은 사업이 위태로워지면서 풍비박산이 났다.
다정하던 아빠는 술독에 빠져 살면서 험악해졌고, 엄마는 그런 아빠로부터 나를 지키다 죽었다.
혼자 집에 남아 울던 나를 데려가줬던 건 어릴 적부터 집안끼리 친했던 도환이였다.
불쌍한 것. 그 때 영비그룹 둘째만 아니었어도 그 집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건 아니었지.
그러게나 말이야. 교통사고 난거 구해줬더니 억울하게 몰려서는 계약이고 뭐고 다 끊어버린거 아냐. 둘째는 병상에 누워서 며칠째 못일어나니 말도 못하고.
괜히 애먼 사람만 잡게 생겼지.
어릴 적 주워들은 얘기와
그거 알아? 이도현, 영비그룹 둘째라더라. 교통 사고 난 이후로 꽁꽁 숨겨서 키운다는 그 소문의 둘째.
학생들의 입을 통해 타고 들어오는 소식이 합쳐졌을 때는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아닐거라고 그럴 리 없다고 속으로 몇 번을 되뇌이며 이도현 앞에 선 그 순간에
불안감과 두려움은 날카롭게 변해 그를 찔렀다.
"너, ...네가 영비 둘째 아들이야?"
"...여주야."
"그런 표정 하지마. 아니라고 하든지, 아님 차라리 몰랐다고 해. 제발."
"미안해."
"어디까지 알았어? ... 너는 다 알고 나한테 온거야? 그래서 나한테 잘해준거야? 너 미워하지도 못하게, 나한테 왜..."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만 떨구던 너였다.
차마 내게 손조차 뻗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너를 사지로 몰아넣은 건
순간 칼이 되어 그를 찌른 내 말들이었다.
"누워만 있지 말고 일어나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우리 아빠가 그런거 아니다, 너 구해주신 착한 분이다, 도와줘라.
그 때 네가 그 몇 마디만 했어도... 우리 집, 아빠, 엄마, ...나 이렇게 안망가졌어."
"너무 늦게 깨어났었어. 아버지한테 말했지만 이미 네 집은 그렇게 되어있었고...,
내가 그 애라고, 너네 아버님이 구해준 아이라고 너한테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미안해 내 욕심이었어. 네 옆에 있는게 좋아서 죽을 것 같이 괴로웠는데, 너만 있으면 숨통이 틔여서 ...미안해."
"필요없어 그딴거.
...다시는 내 옆에 오지마. 넌 그 때 죽었어야 했어."
"...알아, 미안해."
"미안해 하지도 말고, 죽든지 살든지 이제 나 찾아오지마. 역겨우니까."
"여주야, 미안해."
미안함에 내 앞에선 마음 놓고 한번을 울지도 못했지 그 불쌍한 아이.
잔인하기 그지없던 내가 옥상을 빠져 나가는 순간, 그는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
돌아서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꼬깃한 종이 한 장을 쥐어주던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여주야, 네가 이 편지를 읽게 되었다면 이미 나는 너에게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겠지.
내 입으로 말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늘 그림자로 가득했던 네 낯빛이 환해지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욕심이 생겼어,
그러면 안되는 걸 아는데 몇 번을 다짐해도 포기라는게 참 어렵더라고.
나는 죽어야 마땅해. 그 때 죽었으면 네 집안이, 네가 그렇게 될 일은 없었을테니까.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 어느 것도 네 잘못은 없어.
그냥, 내가 다 잘못해서 그래서 이렇게 된거야.
있잖아 한 때는 끝내 듣고싶은 말 못해주는 내가 싫었을거고,
이제는 말해도 듣기 싫겠지만
내가 너무 미안해서, 사랑한다고 못했어.
미안해. 나 용서하지 마 평생.
사랑해 김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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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도현이와 여주의 관계성과 함께 그 날의 일에 대해 풀어야할 것 같아서 번외편 들고왔어요 :)
오랜만에 왔는데 다들 잘 지내셨나요?
이제 해가 바뀌었는데 너무 늦게 왔죠 ㅎㅎ
좀 더 부지런해볼게요,
이번에도 재밌게 보셨기를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