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남자, 우도환
무너지는 그녀를 지나칠 수 없는 남자, 정해인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 이도현
비극의 완결
w. 잇킷
03
"저기 여주야, 나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뭔데?"
"도환이한테 이거 좀 전해주라. 여자들이 주는 선물 같은 거 잘 안받는대서...,
나 도환이 오랫동안 좋아했거든. 도와줄 수 있어? 너랑은 친하잖아..."
"글쎄, 전해줄 수야 있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뭐...?"
"아 기분 나빴으면 미안. 근데 좀 웃기잖아. 받는다고 해도 내가 줘서 받는건데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냐 그런 말이었어.
네가 줬다고 하면, 나 먹거나 버리라고 할텐데. 괜찮겠어? 도환이 주려고 밤새 만든 거 내가 먹어도."
"이거 완전 미친년 아니야? 야."
"참아. 넌 평소에 연예인이랍시고 내 뒷담, 앞담 가릴거 없이 해대면서 이렇게 뻔뻔하게 부탁이나 하고 그럴거면
내가 이 정도 하는 건 참아야지. 사회 생활은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 원하는 거 얻으려면 원래 성질도 좀 죽이고 그래야 하는거거든."
"어우, 우리 여주는 어쩜 말도 저렇게 잘해요."
"도환아, ..."
"아, 엿들으려던 건 아니고 김여주랑 밥 먹으려고 왔더니 시끄럽길래."
"들어버렸으니까 거절도 지금 해도 되지?
난 내가 좋아하는 거 같이 좋아해주는 사람이 이상형인데,
내가 김여주를 너어무 지나치게 좋아해서 넌 안되겠다. 미안."
독기와 못됨으로 무장해 약해지지 않으려고 악바리처럼 살았던 때였다.
내가 받은 상처는 반드시 돌려줘야만 하는 성격은 본능 같은 거라
그런 내 주위에 남아있는 건 늘 우도환 뿐이라고 해도.
"나 다음 주에 미국 가. 길게 있을거야, 한 2년 정도."
"... 싫어."
"내가 더 싫어. 그래도 가야해, 알잖아 우리 엄마."
"그럼 난? ...사귈까 우리? 그럼 나랑 있어줄거야? 너 가면 난 어떡하는데?"
"이미 결정된거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어. 너 지금 실수하는거야 그만 말해 김여주."
"왜? 너 나 좋아하잖아."
"이젠 아주 대놓고 무기로 쓰겠다네."
"안갈 수 있었던 거 알아. ...왜 간다는 거냐고."
"가야지. 네가 이러는데. 이렇게 사람 마음 아주 가지고 노는데도 좋은데. 내가 어떻게 네 옆에 있어."
"네 옆에 평생 있을게. 갔다 와야, 내 마음 참을 수 있게 돼야,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내 세상은 그런 도환이가 떠나고 도현이를 만나게 된 그 순간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었다.
세상에 오직 도환이와 나, 두 사람만이 전부였던 내가 도현이를 만남으로 인해 선 밖으로 발을 내딛였을 때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하긴. 당시에는 돌아갈 마음조차 없었으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인생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눈길을 주었던 인생이 있었다.
"오빠 잠깐만. 차 좀 세워봐."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나는 바빴고, 다음 스케줄로 이동하는 동안 잠시 눈을 붙히려 창문에 머리를 기대는 순간
창 밖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신경쓰이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저기요, 여기서 뭐해요."
""
교복 차림으로 다리 위에 아슬하게 서 있는 그 남자가
쓸쓸히 학교 옥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도현이와 너무나도 겹쳐 보여서
도무지 모르는 척이 안됐고,
본능적으로 차에서 내려 그를 잡아 끌었던 것 같다.
"... 그, 오늘 영하 14도라는데 혼자 여기서 뭐해요."
"무슨 상관인데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죽을거 아니니까."
"어떻게 신경을 안써요, 죽을거잖아. 딱 그럴 얼굴로 서 있잖아요."
"저기요. 연예인이죠? 그냥 계속 빛나는 것만 보고 사세요, 나 같은 사람한테 마음 쓰지 마시고."
"맞아요 나 연예인이라 이러고 있으면 곤란하거든요. 차에 타요, 데려다줄게.
뭐 때문에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해봐요. 그거 진짜 못할 짓이에요."
"그딴 거 없다고요. 남겨질 사람 같은 거, 난 없다고. 그니까 그냥 내버려둬 달라구요."
"... 내가 해줄게요 그럼. 친구 하자. 남겨질 사람 이제 나 있어, 그러니까 일단 타요."
이렇게까지 남을 설득해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었다.
누가 옆에서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거라 내게 손가락질 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보면 뒤집어졌을지도 모르지.
내가 생각해도 그 땐 꼭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았으니까.
나는 도현이를 끝내 잡지 못할 걸 예상했던거다. 그래서, 미리 죄책감을 덜고 싶어 죽으려는 그 남자를 잡아준 거였다면 나는 나쁜 사람일까.
내 말에 입을 꾹 다물고 차에 올라타던 그 남자의 눈동자가 눈물을 머금고 있는 걸 봤을 땐
사실 마음 속으로 뿌듯함까지 느껴봤는데.
내가 그래도 됐을까?
.
"정해인..., 맞아 그 향이었지."
그를 잡아 끌어내던 순간에 확 풍겨왔던 달달하면서도 시원한 향,
그 남자였다.
"와, 그래도 기억은 났나보네. 다행이다. 말해도 기억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그 날 이후로 미친듯이 열심히 살았어요 나. 어떻게 해야 생명의 은인한테 멋있게 나타날 수 있을까, 해서."
"하...,"
"한참 지나서 연락했더니 바뀌었더라고 번호가. 어쩌면 당연한거겠지만."
"나한테 남겨질 사람 해준다더니, 왜 이도현 씨한테 남겨졌어요. 마음 아프게."
"아무튼 나 이제 확실히 김여주씨 편 맞죠? ...지켜줄게요, 이번엔 내가."
그 남자가 왔다 첫 눈과 함께,
마치 이도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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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저 왔어요 :)
아시겠지만 이번 화 엔딩이랑 저번 화 엔딩이랑 연결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 전의 내용은 다 과거 회상이구요 !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댓글 하나 하나 읽을 때 마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기분이 벅찹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모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