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저택. 그 안에서 밝은 빛과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울타리들. 그런데 그 울타리를 겁 없이 넘어가는 한 사람이 있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몸에 꽉 달라붙는 검은색 쫄쫄이. 잔머리 없이 꽉 뒤로 하나로 묶인 긴 머리카락. 얼굴의 반을 가려 눈만 보이게 하는 복면. 그리고 허리춤에 달려있는 리볼버 하나. 그 사람은 고양이처럼 담벼락을 가뿐히 넘고 가볍게 착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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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지금은 진짜 젠장이라는 소리 밖에 안 나온다.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벽 너머와 대비되게 지금 이곳은 오로지 본능과 문의 틈으로 조금 새어 나오는 빛에만 의존해야 하는 어두침침한 곳이다. 이미 어둠에 적응된 지라 앞이 잘 안 보이지는 않다. 지금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경호원들이다. 분명, 이재환이 오늘 경호원들 별로 없을 거라고 했는데, 없긴 개뿔 정말 심하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한 국회의원의 엄청 부티 나는 저택이다. 물론 내가 이곳에 와 있는 이유는 어떤 단서를 하나 빼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냥 일개 패기 넘치는 도둑인 것은 아니다. 나는 Jekyll이라는 조직에 소속된 요원이다. Jekyll은 국가 기밀 조직이고, 나름 합법적인 조직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우리가 깨끗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몰래 침입해 물건을 빼돌릴 때도 있고, 총으로 사람을 죽일 때도 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이 소음기 달린 리볼버가 그 증거이다. 첫 탄이 공포탄인 경찰의 총기와는 달리 우리는 처음부터 완전한 실탄이다. 실제로 사격훈련과 신전 테스트도 받는다. 소음기까지 달렸으니 말은 다했지. 그렇기 때문에 Jekyll에는 여자가 진짜 극소수다. 그렇지만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 남자들과 같은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육탄전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 있다. 쨌든 이걸 설명하려 한 것은 아니고.
오늘 작전에 투입된 것은 나 한 명. 별로 어렵지 않은 작전이었다. 경호원들과 집주인의 시선이 파티에 가있는 동안 나는 조용히 몰래 침입해 단서를 빼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내 귀에 연결된 통신기로 서포트는 해주고 있지만.
「지금 숫자가 너무 많은데?」
"어디 어디 있는데."
「1층 쪽 연회장 빼고는 쫙 깔렸고, 2층도 한 30명쯤.」
"30명?! 장난해, 지금?!"
「아, 몰라. 그래서 지금 본부도 난리 났어. 아마 지원 갈 것 같아.」
"젠장, Hyde 쪽이 냄새를 맡은 거야?"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오늘 파티 참석자 중에 간부가 있어.」
"Hyde 쪽?"
「어. 의도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달고 온 게 많나 봐.」
"아, 나 욕 나올 것 같아..."
「일단 잘 숨어 있어. 대장이 지원 보낼 거야.」
"하, 알았어."
Hyde. 우리와의 반대 조직이다. 우리가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Hyde라고 칭하면서, 정치나 온갖 곳에 손을 뻗는 녀석들이다. 어디든 더러운 냄새가 나는 곳은 전부 백이면 백, 다 Hyde와 연관되어 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여기 집주인이 Hyde와 연관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온 것이고. 그런데 이 파티에 Hyde의 간부가 왔다는 것은 완벽한 증거지. 자, 이제 탈출만 하면 되는데... 이렇게 사람도 많은데 굳이 소란을 피우면 나만 불리해지니깐 조용히 숨어있다가 지원 오면 탈출해야겠다.
"침입자다!!"
하지만 이런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열심히 손전등 들고 나를 찾던 경호원에게 발각당했고 또 조용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타닥-
사방에서 발소리들이 들린다. 아까 소리를 지른 경호원 덕분에 다른 경호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도 그에 맞춰 열심히 달렸다. 뒤를 힐끗 보니 벌써 대 여섯 명 따라붙었다. 젠장, 오늘 탄알 별로 안 챙겼는데. 점점 가까이 오는 경호원들을 망설임 없이 리볼버를 그들을 향해 조준했고, 소음기 덕분에 소리 없는 탄알들이 발사되어 그들의 급소에 정확하게 박혔다. 순식간에 경호원들이 우수수 쓰려졌다. 열심히 도망치며 머릿속에 이 집 안의 설계도를 한번 떠올렸다. 아놔, 이놈의 집구석은 왜 이렇게 넓은 거야. 머릿속으로 탈출 루트를 찾았다. 분명 어딘가 있을 텐데... 조금만 있으면 본부에서 지원이 올 것이다. 그러니깐 몸을 숨기다가 지원 오면 탈출하자 시퍼 일단 아무 방에 들어가 있자 싶었다.
그새 따라붙은 3명. 망설임 없이 또 리볼버를 들었다. 그들 역시 저항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쓰러진다. 죄책감이 들만한 장면들이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죄책감이란 감정이 사라진지 오래다. 내가 사는 세상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 곳이니깐. 일단 눈앞에 보이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대로 숨으면 완벽했겠지만 들어가서 문을 닫자마자 이상한 물체에 부딪혔다. 그 물체는 꽤 세게 부딪혔는데 1도 흔들림 없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넘어질 뻔한 나를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어?
훈련 덕분에 어느 상황에도 눈을 감지 않는 능력을 키운 내 눈앞에는 검은 세상이 펼쳐졌다. 물체 뒤에 있는 창문을 통해 방안을 밝혀주는 파란 달빛은 이 방안과 그 물체에게 더 몽환적인 느낌을 주었다. 눈앞에 보이는 검은색의 정장은 누가 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침을 꿀꺽 삼키고, 조금씩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시발.
훤칠한 키. 날렵한 콧대. 애교살이 넘치는 눈이지만 그에 반대되는 강렬한 눈빛. 처음 본듯하지만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다. 젠장, 늑대를 피하려다가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격이잖아. 그대로 그 녀석을 밀쳐 그 품에서 벗어났고,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리볼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총알 이제 없을 텐데...
잠시 나와 눈을 맞추고는 혼자 피식 웃는다.
"눈빛을 보니, 날 알아봤나 봐?"
"... Hyde 소속, 코드네임 Hyuk. 본명 한상혁."
눈빛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담담히 뱉어내는 나를 보고는 입가에 있는 웃음이 더욱 짙어진다.
"크- 요즘 Jekyll도 대단하다네. 본명까지 알아내고."
"......"
끝까지 자신을 노려보는 나의 눈빛을 보더니 입에 걸려 있는 미소를 싹 지우고 나와 같은 눈빛으로 나를 봤다. 속으론 움찔했지만 이런 기싸움에서 질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나도 계속 노려봤다. 소문대로 눈빛 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진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 자리에서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을 만한 눈빛이다. 하지만 꿈쩍도 않는 나를 보고는 또 한번 웃으며 말한다.
"이 따분한 자리에서 이런 재미난 물건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치?"
"......"
"너 그렇게 계속 쳐다보니깐 꼭 고양이 같아. 눈만 내놔 가지고."
"......"
그때였다. 문 바로 뒤편에서 경호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없어?"
"없는데. 쥐새끼처럼 어딜 간 거야."
큰일 났다. 한상혁 때문에 숨는 것을 까먹었어. 그대로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눈빛이 흔들렸다.
"보아하니 쫓기는 모양인데,"
허리를 숙여 키를 낮춰 내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더 굳어버렸다. 맞다, 늑대랑 호랑이랑 한 편이였지. 내 옆에서 의미 모를 미소를 짓고 있는 한상혁은 이대로 문을 열고 나를 넘길 것 같았다. 이대로 도망쳐야 하나? 총알도 없는데, 창문..? 탈출 루트를 생각하고 있는데 한상혁의 말이 내 고막에 흡수됐다.
"숨겨줄까?
놀랍게도 호랑이가 한말은 지금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말이었다. 그런 내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무 말 없이 나의 손목을 잡고 방안으로 이끈 뒤, 나를 옷장 안에 넣었다. 나는 당황해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한상혁의 손길을 그대로 받았다.
"여기 있어, 고양아."
"......"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옷장의 문을 닫았다. 타이밍 좋게 옷장 문을 닫자마자 방문이 열렸다.
"뭐야."
"죄송합니다, 침입ㅈ"
"죄송한 걸 알면 하면 안 되지. 목숨이 아깝지 않나 봐."
"... 죄송합니다."
아까 나한테 한 말투와는 완전히 다른 말투였다. 차갑고, 위협적이었다. 저게 Hyuk 인가... 그리고 그 위협적인 말투가 경비원한테도 통한 건지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내가 분명 조용히 해달라고 했는데,"
"......"
"내 말이 우스웠나 봐?"
".... ㅇ, 아닙니다."
"2층에 있는 애들도 다 치워. 발소리가 시끄럽잖아. 모두 차에서 대기시켜."
"..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 내 방에 함부로 들어온 죗값은 제대로 치를 줄 알아."
"... 알겠습니다."
"이만 나가봐."
그 후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대충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옷장 문을 열고 나왔다. 그를 예상했다는 듯이 문 열자마자 내 앞에 서 있는 한상혁을 똑바로 쳐다봤다.
"너 진짜 고양이 같아. 움직일 때 소리가 안 나네."
"......"
"고양아, 말 좀 해봐."
"... 뭐."
"눈도 예쁜데 목소리도 예쁘네, 우리 고양이."
아까 경비원과 한 말투와는 다른 말투로 다정하게 웃으며 말하는 한상혁을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직도 내가 경계대상이야? 내가 너 도와줬는데."
"...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 뭐라고 고양아?"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보는 한상혁이다. 어이는 내가 없지. 내가 Jekyll 소속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숨겨준 저의가 뭘까. 이런 내 눈빛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여는 한상혁이다.
"아, 내가 너 숨겨줬으니깐 상주겠다는 뜻이야?"
"... 뭐?"
뭐지 이 새끼는.
"그런 거면 진작 말하지."
자기 혼자 뿌듯해하며 나한테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에 따라 나도 뒤로 물러났지만 뒤에 있던 옷장이 나를 막았다. 한상혁은 나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허리와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면서 나를 더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거 안 놔?"
"응. 안 놓고 싶은데."
나를 보고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한상혁이다. 아까의 날카로운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순수한 눈빛, 하지만 치명적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 개새끼가 진짜."
"개새끼?"
"어, 개새끼. 너 개새끼 닮았어."
"난 강아지고, 넌 고양이야? 좋네."
빡치라고 한 소리를 듣고 오히려 좋아하는 이 개새끼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결국 이 방법 밖에 없는 건가.
"안 놓으면 그대로 니 대가리 날려버린다."
내 오른손에 잡고 있던 한상혁의 머리에 리볼버를 대고 위협을 했다. 그런데 한상혁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더 자신과 밀착시키면서 웃었다.
"총알 없는 리볼버 따위가 나한테 위협이 될 것 같아, 고양아?"
"......"
젠장, 상대는 Hyde였다. 우리보다 더 총을 많이 사용하는.
그대로 내 목덜미를 잡던 손을 총을 잡은 내 손을 감싸더니 내 총을 뺏어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린다.
"그리고 이런 야한 쫄쫄이 복 입고, 그런 말하면 너 진짜 섹시한 거 알아?"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를 감쌌던 손으로 내 허리 선을 쓸어내리는 한상혁이다. 수치감에 총을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한상혁의 손목을 잡아 중재시켰다. 하지만 내 목덜미를 잡고 있던 손에 의해 내 복면이 풀어졌다. 아뿔싸, 이걸 노린 거였구나.
"이제 더 예쁘네, 우리 고양이."
내 목덜미를 잡은 손을 옮겨 내 턱을 잡고 올렸다. 그리고는 눈부터 입까지 천천히 뜯어보더니 나를 보더니 한 소리가 저거다. 얼굴을 보이면 안 된다는 방침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양손으로 한상혁을 밀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런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틀며 점점 한상혁의 얼굴이 나와 가까워졌다.
「지원 도착했어. 어디야?」
그때 통신기를 통해 그렇게 듣고 싶었던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얼굴과 5cm도 안되는 거리에 있었던 한상혁도 그 소리를 듣고 말았다.
"지원?"
"......"
"진짜 심술궂은 고양이네. 그 뭐였더라... 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쳇셔 같아."
이상한 별명이 하나 더 붙어버렸다.
"좋아, 챗셔. 니가 소원 들어준 다고 했지."
"......"
아까와는 다르게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 그는 조심스레 내 볼을 쓰다듬더니 내 귀에 꽂혀있는 통신기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그대로 내 입술로 돌진했다. 거칠게 부딪혔지만 닿은 그의 입술은 부드러웠다. 거칠게 다룰 줄 알았던 것과 달리 그는 부드럽게 내 아랫입술을 물었다. 거세게 저항하는 나를 달래듯이 허리에 있는 손으로 토닥거리고는 고개를 더 돌리며 조금씩 내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입안에 느껴지는 이질감에 열심히 두 손으로 그를 밀어냈지만 그는 거대한 바위같이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내 허리는 세게 잡고 있으면서 부드럽게 나를 다루는 그에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느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내 입안은 그에게 완전히 정복 당했고, 내 정신도 조금씩 몽롱해지는 듯했다.
「야, 너 왜 그래!!! 」
바닥에 떨어진 통신기를 통해 자그마하게 들리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얼른 한상혁을 밀쳐냈다. 예상외로 그는 쉽게 밀쳐졌다. 참아왔던 숨을 쉬며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 너 진짜 좋다."
낮게 웃으며 조금 흘러내린 잔머리들을 귀 뒤로 쓸어넘기는데 이 세상에 뱀파이어가 있다면 한상혁일 것이 분명하다. 그 정도로 한상혁은 치명적이었다.
「야!!!!! 쳇셔!!!!」
서로의 눈빛만을 주고받으며 정적을 유지하고 있는데 우렁찬 이재환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빠져나왔다.
"뭐야, 너 코드네임이 쳇셔 였어?"
"......"
"나 꽤 정확하지 않아?."
큰일 났다. 얼굴도 들키고 코드네임까지 들키다니.
"아, 맞다. 챗셔."
"......"
다시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 한상혁에 동공이 커졌다.
"소원 들어준다 그랬지."
"......"
매혹적인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조심스레 내 턱을 잡아들었다. 그의 숨결이 다 느껴질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오고는 내게 속삭였다.
"너, 내 고양이 해라. 계속 내 옆에 있어, 챗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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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Code name : Chat - Sh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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