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혁씨, 밥 먹었어요? 안 먹었으면 저…."
"밖에서 먹고 왔어요."
"아…, 그래요? 누구ㄹ.."
쾅, 그가 문을 닫는다. 그에게 뻗은 손은 천천히 내린다. 큰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굳게 닫혀버린 문이 그 같아서 웃음이 나온다. 씁쓸한 웃음이.
머쓱해져서 손가락을 매만지다 매번 그래왔던 거처럼 밥 그릇을 하나만 차려 놓는다. 아…, 오늘은 같이 먹나 했는데.
미리 준비해둔 따뜻한 밥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분명, 좀 전에만 해도 따뜻했었는데.. 언제 식었더라. 그를 얼마나 기다렸었는지 식은 밥이 알려준다.
나와 마주하는 앞자리에 놓인 숟가락과 젓가락을 집어서 수저통에 넣는다. 꾸역꾸역, 내 마음도 넣어버린다. 티 내지 마, 성이름.
깨작깨작 밥을 먹다 싱크대에 모조리 버려버린다. 철퍽 철퍽. 요새 속이 쓰려서 죽을 했는데 확실히 아플 때 먹는 죽은 맛이 없다.
아니, 나 혼자서 먹는 밥이라 그런가? 하하…, 나도 뭐라 하는 건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하고 웃어 보인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듯 꽃무늬가 그려진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한다. 달그락 달그락, 조용한 거실에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는 설거지할 때와 티비를 볼 때가 가장 좋다. 왜냐면, 그때가 가장 시끄러운 시간이니까.
설거지를 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아, 좋다. 흘러가는 물 소리도.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도. 뽀드득하는 고무장갑 소리도.
.
.
설거지를 다 하고 고무장갑을 식기 건조대 옆에 걸어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거실 테이블을 톡, 톡 건드린다. 어떻게 할까.
내가 밥을 먹고 나서 항상 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상혁 씨의 방으로 가 간식을 챙겨주는 일.
챙겨 준다는 거도 부끄러울 정도지만…. 이렇게라도 해야지 상혁씨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상혁씨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문득, 내가 너무 비참해져 보인다. 내가 불쌍해, 내가 가여워. 물밀듯 밀려오는 애처로움이 나를 힘들게만 한다.
왜, 왜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나. 왜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했을까….
아아, 어리석고 또 어리석구나. 바보 같은 나….
얼굴을 손에 파묻고 흐느낀다. 흐흑, 어느새 눈가는 붉게 달아오르고.
방울방울 눈물이 맺혀온다. 주륵, 손에 차가운 눈물이 느껴진다.
처량해. 처량해….
덜컹.
"성…, 뭐야"
아, 상혁씨다. 내가 간식을 챙겨주지 않아서 나와보신 건가.
그래, 평소처럼 챙겨드려야지. 끙 차. 굽혔던 무릎을 피고 소파에서 일어선다. 얼른, 얼른 드려야지...
평소처럼 행동하자. 평소처럼. 너가 잘하는 평소처럼. 손등으로 고인 눈물을 슥- 닦아내고 테이블에 놓아둔 쟁반을 번쩍 들어 올렸다.
"...상혁씨, 늦어서 미안해요. 잠깐 생각 좀 하느라."
그의 앞으로 걸어가 쟁반을 건네주었다. 상혁씨의 넓은 어깨가 보인다. 상혁씨의 얼굴이 궁금하지만…, 참아야 해.
아…. 짧게 탄식하는 그에 고개를 갸우뚱하다 쟁반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얼른 안 받고 뭐 하세요?
그는 뭔가 곤란한지 뒤통수를 벅벅 긁다가 이내 왜 우냐며 내게 묻는다. 왜 우냐고? 이걸 뭐라 대답해야 할지..
"그냥.. 그냥 좀 힘든 게 생각나서요."
그를 향해 씩 웃어 보인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가 덜덜 떨린다. 자, 상혁씨 얼른 받아요. 팔 떨어질 거 같아.
"... 잘 먹을게요."
꾸벅,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간다. 쾅. 문을 닫는다. 하아-, 급하게 숨을 들이마신다.
잘 먹겠다는 그 한마디가 왜 그렇게도 내 마음을 가만 못 두는지. 숨을 못 쉬게 하는지.
손을 마주 잡고 두 눈을 꼬옥 감는다.
그나저나, 내가 들어올 때 상혁씨 문 닫히는 소리가 안 들렸는데.. 뭐, 잘못 들은 거겠지.
---
정략결혼.
그와 나의 관계를 정리하는 단어.
.
.
.
아, 눈 부은 거 좀 봐…. 어떡하니.
어젯밤, 방에 들어오고 잠시 멍 때리다 침대로 달려들었다. 푹신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는 소리 없이 계속. 계속 울었다.
쉽게 그치지 않는 눈물이 계속해서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래로, 아래로.
그에게 서운해하다 잠깐, 잘 먹겠다는 그 말 한마디에 잠깐 설렜던 자신이 멍청해서. 이런 나 자신이 초라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
사람이 너무 슬프면 눈물조차도 안 나온다던데 사실인가 보다. 나중에는 너무 슬픈데, 마음이 미어지도록 아프고 슬픈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끅끅, 숨넘어가는 소리는 들리는데 눈물이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텅 빈방. 나 혼자서 우는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상혁씨, 일어나요.. 얼른..."
아직도 붉어진 눈을 가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시계를 보니 곧 상혁씨가 일어날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지.
부은 눈을 미처 가리지도 못하고 상혁씨의 방으로 갔다. 똑똑, 상혁씨 들어갈게요. 하지만 대답은 없다. 상혁씨.. 저 들어갈게요?...
상혁씨, 상혁씨. 일어나요.. 응? 그의 어깨를 잡고 좌우로 흔들어 보이지만 그는 여전히 일어날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이걸 어째…, 안절부절 못 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뭐야, 당신이 방에는 왜 들어와?"
..아, 상혁씨 일어났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털어냈다.
그가 늦잠을 잘 때도 있구나. 새로 알게 된 모습에 기뻐하며 그에게 말했다.
"상혁씨 깨웠는데 말이 없길래 들어와 봤어요."
"아니, 그래서. 내 방에는 왜 들어왔냐고."
"…네?"
"이름씨,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비록 우리가 결혼 한 사이긴 하지만 서로의 방에 들어오지는 말자고."
"아, 그…. 미안해요…."
"됐고, 빨리 나가기나 해요."
"…네. 밥 차려 놓을게요.."
탕! 그의 방 문이 다시 닫힌다.
문이 닫히면서 보이는 그 틈새, 짧은 시간에 보인 건 시발. 욕을 하던 상혁씨의 입이었다.
...상혁씨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나 부쳐야겠다. 터덜터덜, 부엌을 향해 힘 빠지게 걸어갔다.
상혁씨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응, 계란말이나 부치자.
그에게 말을 꺼내야 할까 말까. 계란말이는 부친지 오래.
아까 욕을 하던 상혁씨가 자꾸만 떠올라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떡하지, 진짜.
떨리는 손에 겨우 힘을 줘 주먹을 쥐었다. 그래, 말하자.
"상혁씨! 밥 다 차려놨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상혁씨 방문이 열린다. 상혁씨, 아침 먹고 가요.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무표정으로 나를 흘끔 보고 신발을 갈아 신는다. 그리고 문을 박차고 집을 나선다.
아.. 음. 주먹을 쥔 손에 힘을 푼다. 그리고 식탁 의자에 앉는다. 오늘 아침은 계란말이네. 맛있겠다.
준비한 젓가락을 집어 든다. 아직 따끈한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 문다.
"…맛있다."
♡ 암호닉 ♡
라일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