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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단편/조각 팬픽 만화 고르기
기타 세븐틴 이준혁 방탄소년단 데이식스 백현 &TEAM 허남준 김선호
무저갱 전체글ll조회 2381l 8

 

때때로 손에 땀이 쥐어질 때가 있다.

꼭 긴장할 때가 아니더라도 그 종류는 많다. 무의식적인 당황이라던가, 인생의 무언가에 있어 중요한 일이 생길 때, 갑작스러운 깜짝 쇼에 대한 놀라움의 표시, 그 외에도 여럿 상황들은 인간에게 있어 흥분이라는 감정과,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킨다. 루한은 지금 자신이 어느 중요한 기로에 놓였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건네는 대마를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중국에서 루한은 뱅글이 뿔테 안경을 썼다. 착실하게 교복을 입고 샤프 펜슬을 손에 쥔 채, 얌전히 서 있으면 모범생이 되었다. 북경의 하루하루가 그랬다. 평탄한 나날이 평이하면서도 지루하다 생각할 지도 모르나 루한은 밤마다 아비¹처럼 시궁창을 거닐었다. 낮과 밤이 달라졌다. 어쩌면 루한은 구룡성채²를 동경할 지도 몰랐다. 루한은 어줍잖은 아비였고, 북경의 밤은 까맣고도 길었다. 걸으면서도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친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결과로 이룩된 상처로 얼룩진 젊은 날의 과오는 그렇게 열여덟까지 이어졌었다. 그렇게 끝났다고 생각한 열여덟 이후 일체 손을 대지 않았던 마약이다.

 

" 그래, 고마워. "

 

그러나 어째서 그것을 다시 받아들였는지는, 다름아닌 루한 자신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루한은 눈을 가늘게 떠 누군가와 마주한다.

닮았을까?

그것은 저 뒤에서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는 세훈의 기묘한 두 눈이었다.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손바닥에 놓인 대마의 존재는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것이었다. 손이 달달 떨렸지만 이내 익숙한 듯이 입가로 그것을 가져가는데 찬열이 불을 붙여주려 라이터를 가져가는 것을 누군가가 막았다.

 

" 제가 할게요. "

 

세훈은 익숙한 듯 불을 붙인다. 팔에 난 주사 자국이 루한의 손등을 떨리게 한다. 제 몫의 대마에 불을 붙여 루한의 것과 마주 대는 그 모습이, 루한은 그 예전 아비정전의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서글픔이라고 생각했다.

눈길이, 서로 맞닿는다.

한 모금을 들이마신다.

그 짜릿한 순간, 루한은 세훈에게서 완벽한 아비를 목격한다.

 

 

 

[카찬/백도/세루] 시계태엽 오렌지 03

시계태엽 02

 

망설임 없이 대마를 받아든 루한을 마지막으로 심지에 불은 붙여졌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 다음은 선을 넘어버렸다.

우선, 준면은 썩 훌륭한 관찰자라 표현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사건의 중점을 벗어나 있다. 무리들의 선봉장 노릇을 하지 않는 준면은 동시에 그들의 이성이었다. 마지막 끈을 아슬아슬하게 놓지 않고 있는 두 사람 중 하나인 준면은 이 모든 사건들을 전부 방관하는 동시에 지켜보고 있다. 준면에게는 태엽이 없다. 그는 단지 바라볼 뿐이다. 젊은 날의 마지막 끄트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존재들의 곁에서.

 

 

백현은 주저없이 코카인을 들이마시면서 내일 가기로 계획한 클럽 안의 여자들을 생각한다. 백현은 여자와 뒹구는 것을 좋아했다. 문란하게 뒹군 다음 누운 여자들에게 수표 몇 장을 던져주면 그만이었다. 백현의 일상은 지독히도 무료하고 진부했했다. 여자와 뒹구는 것도 그랬다. 다만 백현은 그 여자를 걸레라 생각하며 섹스 자체에 흥미를 두기보다는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데에 더 열심이었다. 눈길은 이내 앞의 경수에게로 향한다. 경수는 담배를 피면서도 손을 떠는 버릇이 있었다. 발발 떨면서 연기를 내뱉는데, 경수를 줄곧 바라보는 백현은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성역은 지켜져야만 한다. 감히 자신이 그를 할퀴고 더럽힐 자격은 없었다.

 

경수의 시선은 종인에게로 고정되어 있다. 오늘 낮의 일화 이후로 경수는 종인에게 호감을 가진 상태이다. 종인의 말이 단순한 건성이 아닌 것 같아서 더 그랬다. 경수는 언제나 진심을 최우선으로 취급했다. 무심하게 던진 말에는 은근한 진심이 묻어나서, 경수는 종인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은근히 가슴 안에 와닿는 느낌이 들었다. 피어오르는 설레임은 매사 침착하고 단정한 경수에게도 쉽사리 거부할 수 없는 충동이며 혈기였다. 하얀 불꽃이 속내에서부터 튀었다. 경수는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애써 밀어내며 종인을 관찰하는 데에 열심이었다.

 

마지막으로, 종인과 찬열은 서로의 시선을 교차했다 피했다를 반복한다.

찬열은 종인의 몸짓을 능숙하게 훑어본다. 대외적으로 그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젖은 담배 필터를 문 입술을 축이고 있다. 찬열의 몸짓은 그 상태로 멈추어져 있다. 미세하게 틀어진 고개와, 종인을 훔쳐보는 시선을 그 누구도 보지 못하고 있다. 종인은 조용히 코카인이 든 통을 뒤지고 있다. 찬열은 그 느릿한 행동거지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종인이 자신을 눈치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 치도 하지 못하고서.

 

그러나, 종인은 고개를 든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한다.

헉 하는 비명소리를 억지로 삼켜냈다. 찬열은 그가 오롯한 맹수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종인의 시선은 찬열에게 날카로운 칼이다. 치명적인 독이요, 유유히 흐르는 수맥을 순식간에 집어삼킬 커다란 파도에 가까웠다. 찬열은 그의 앞에서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뛰는 가슴이 그에게 발견될까 두려웠다.

 

종인은 찬열의 일렁이는 두 눈동자를 잠시나마 마주하자 흥미가 일었다.

서둘러 시선을 피하는 찬열의 흰 목덜미가 눈에 들어온다. 다분히도 종인의 취향이었다. 큰 체격과 달리 얼굴과 몸선은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다. 유심하게 전신을 살피는 종인의 내면은 찬열을 지켜보라 속삭인다. 흥미어린 시선은 구미를 당기게 한다.

 

" 하지, 마. "

 

그 소리없는 암전은 세훈이 코카인에 손을 대자 종인의 시선을 애써 피하는 데에 성공한 찬열이 그를 말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 선은 지켜야지. "

" 그냥 놔둬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

 

평소에는 별 말을 하지 않던 세훈은 무언가 화가 난 얼굴이었다. 찬열이 말리는데도 듣지 않자 옆의 경수가 거들었다. 세훈아, 당분간은 하지 마. 백현은 아무런 의견도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종인이 나섰다.

 

" 알아서 하겠다는데 그냥 놔둬요. 쟤 말처럼. "

" 너도 그쯤 해. "

 

과한 건 몸에 안 좋은 거 알잖아.

찬열의 표정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종인이 비식거리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뭐? 그래서요.

 

" 그거 걱정이에요? "

 

아무런 표정 없이 물어오는 종인의 얼굴에 찬열의 말문이 막혔다.

그냥 그렇다는 거야, 자중해 너도. 대강 말을 얼버무린 찬열을 바라보는 경수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진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세훈은 새삼 스스로가 이상해졌다.

기관지가 약한지 색색거리며 한 모금을 들이마시는 루한의 모습에 무언가 기분이 나빠졌다. 루한은 이제 세훈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실랑이가 끝난 무리들, 그중에서도 찬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에도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 때, 루한이 시선을 돌린다. 똑똑히 세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지 못한 세훈이 루한의 팔을 잡아 베란다로 이끈다. 루한이 팔을 빼내려 반항하지만 헛수고다.

 

" 왜 그래, 세훈. 이거 실례야. "

" 왜 받았어요? "

" 뭐? "

" 대마, 왜 받았냐고요. "

 

루한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다. 내가 뭘 잘못했어? 그렇게 말하는 듯한 순수하고 동그란 눈이 세훈을 이상하게 만든다. 그렇게 여겼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그렇게 있는 모습은 세훈에게 있는 내면 안의 무언가를 자극시킨다. 당신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요, 그렇게 말하는 듯한 세훈의 두 눈을 보자 루한이 나직히 한숨을 내쉰다. 그러고서는 입술을 연다.

 

" 왜 화가 났는지, 그것부터 알고 싶어. "

 

또렷하고 정확한 한국어다. 말해줘, 그렇게 말해오는 올곧은 두 시선과 마주한 세훈의 눈이 미약하게 떨린다. 왜 이러지, 가만히 루한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확실히 그는 남자가 볼 때도 나쁘지 않은 얼굴이다. 그래서 당신의 표정 하나하나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일까?

 

" 홀렸어요. "

 

그쪽한테.

아니라면, 그렇게 부아가 치밀 이유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냅다 들이박다시피 한 세훈의 한 마디에 루한의 두 눈이 동그래진다. 작은 얼굴 위의 두 눈이 둥글둥글해지다 세훈을 향해 새침하게 깜빡인다. 세훈, 네? 내가 여우야? 아.. 그제서야 제대로 된 설명을 못 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데, 그 순간 루한이 제대로 세훈의 정신을 흐트렸다.

 

" 솔직해져, 세훈. "

" 무슨.. "

" 질투 난다는 거잖아. "

 

머릿속이 하얘졌다.

동그란 루한의 두 눈을 응시하던 세훈이 곧바로 등을 돌린다. 붉어진 귓볼 같은 거, 보이고 싶지 않다. 삐그덕거리는 듯한 몸을 이끌고 사라지는 세훈을 향해 루한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잘 가, 루한이 세훈을 보내고 곧이어 때맞춰 들어온 존재에 눈을 치켜뜬다. 적의도 호의도 아닌 미묘한 얼굴이다.

 

" 우리 이야기 좀 할까? "

 

찬열아.

세훈이 밖으로 나가고 베란다에 들어온 찬열을 주시하는 루한의 얼굴이, 알 듯 모를 듯 애매모호했다.

 

 

 

 

" 왜 줬어? "

" 으응? "

" 루한..아니다. "

 

나한테, 대마 왜 줬냐고.

그냥 줬다고 하는 걸 믿을 만큼 순진하진 못하니까 사실대로 말해줘. 또렷한 한국어가 찬열의 귓가를 파고든다. 아까 건넨 대마를 넙죽 받는 것도, 지금의 또렷한 한국어도. 루한에게는 어쩐지 미묘한 구석이 있다. 가늘게 뜬 두 눈은 이상한 마력이 있어서, 찬열은 대답을 주저했다. 이내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낸 찬열을 보는 루한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 예쁘다고, 했잖아. "

" 응? "

" 그래서 줬어요, 선물. "

 

은근슬쩍 덧붙인 존댓말까지, 루한이 조금 놀랐는지 두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린다. 깔깔대는 목소리를 애써 제어하려 입을 막는데 막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나보다. 찬열이 괜찮냐며 팔을 뻗는데 루한이 아니라며 손사레를 쳤다.

 

" 아니, 아니야. 너무 웃겨서. "

 

한참을 웃던 루한이 웃음을 뚝 그치고 찬열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담긴 시선은 명백한 호의였다.

 

" 넌 선을 알아. "

" 뭐? "

" 그래서 마음에 들었어. 그런데 귀엽기까지 하네. "

 

두 번째 수확이야.

활짝 웃는 얼굴이 당당하다. 찬열의 손을 잡아오는 루한의 표정이 아까와는 너무 달라서, 순간 자신이 헛것을 보았나 착각할 정도였다.

 

" 선물 고마워. "

" 저.. "

" 나도 나중에 보답을 해야겠지. "

 

그때는 네가 직접 골라.

말을 마친 루한이 추운데 서둘러 들어가자며 찬열의 팔을 잡고 이끈다. 찬열은 그저 따라 이끌려갈 뿐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일행들은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냐며 루한이 그들을 전부 배웅했다. 세훈의 자리가 비어있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모두들 돌아가고 마지막으로 찬열만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나가기 직전 찬열은 아직도 의문이 가시지 않은 채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잘 가. "

" 저, 선물이란 게.. "

" 기간은 무한제야. "

 

잘 생각해, 난 보기보다 꽤 너그러운 사람이니까.

더 알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한 찬열까지 집을 나가면서 모두가 조용해졌다. 루한은 텅빈 집을 보고 그제서야 짐 정리를 시작했다. 양심은 있는지 벌려놓은 판은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세훈은 맞아서 엉망이 된 채 외마디 신음을 내뱉으며 매질을 참아냈다. 아버지의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었고, 세훈은 그것을 담담히 받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술과 약에 취해 돌아올 때마다 맥없이 맞아야만 했던 존재는 세훈이었다. 세훈이 조금이나마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얄짤없이 내려쳐지는 채찍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육체의 아픔은 느껴지는데 속이 타들어가는 금단 현상 때문에 그런 것인지, 정신은 도통 멍하기만 하다. 세,훈아. 다 죽어가며 우는 어머니를 감쌌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없는 엄마, 세훈이 텅빈 눈을 한 채 아버지의 몰매를 모조리 다 받아냈다. 온몸에 피가 줄줄 흐르는 것 같았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무슨 액체가 제 등허리를 타고 내려가는 촉감이 적나라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러나, 어차피 도망칠 수 있다. 이 집에 굳이 다시 온 이유도 따로 있었으니까.

 

하나, 둘, 셋.

틈을 노린 세훈은 탁자에 있는 물품을 들고 서둘러 도망쳤다. 손에는 제조한 코카인이 들어있는 봉지가 들려 있었다.

뜀박질은 빨랐고 발걸음은 느리지 않았다. 숨이 찰 때 쯤이야 세훈은 걷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고문이라도 당한 것 같은 사람의 처참한 몰골이었다. 세훈은 텅빈 눈으로 들려있는 봉지 안 코카인을 바라보았다. 지금 속이 마구 탄다. 맞아서 그런가 온몸은 간지럽고 긁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온몸이 벌레로 물어뜯는 것 같은 참혹한 고통에 세훈은 물도 없이 제조된 코카인 세 봉지를 한꺼번에 뜯어 씹었다. 쓴맛이 났다. 기분이 이상했다. 코로 들어마시던 평소의 코카인과는 좀 달리 반죽해서인지, 이상한 아스피린 맛이 나서인지는 세훈도 잘 몰랐다. 이대로 종인의 집에 가면 그는 별 말 없이 세훈을 받아줄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마구 끓어오른다. 머리가 어지러워 출혈 때문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고통이 아니라 그것은 명백한 성적인 흥분이었다. 세훈은 당황했다. 코카인의 영향으로 눈앞에서 이상한 광경이 보이는 그 순간에 세훈은 가까스로 봉지에 씌여진 글자를 보았다. 비아그라 코카인, 두 개를 섞어버린 셈이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온몸이 짜릿하면서 누군가와 섹스하고 싶어졌다. 세훈은 섹스를 잘 즐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 왜 화가 났는지, 그것부터 알고 싶어.

 

그리고, 어째서 이 순간에 보이는 존재는 당신인건지.

귓가에 루한의 목소리가 윙윙거리며 울려온다. 고개를 흔들고 떠지지 않는 눈을 떠내자 눈앞에는 루한이 있다. 피를 뚝뚝 흘리는 몰품없는 모양새의 세훈을 구원하겠다는 마냥 손을 들어 세훈의 뺨을 쓰다듬는 모양새에 어이가 없어졌다. 쓰다듬는데, 이상하게 감촉이 안 느껴진다. 세훈은 여전히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 환각이 사람을 돌아버리게도 하는 것 같았다.

 

- 솔직해져, 세훈아.

 

질투, 난다는 거잖아.

루한이 사라졌다. 세훈은 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을 용을 써 비척 비척 걸어갔다는 편이 더 옳았지만. 세훈은 필사적으로 뜀박질을 했다.

그가 자신을 구원하든, 아니든 그를 만나야 했다.

 

 

 

 

 

루한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멍하게 풀린 세훈의 두 동공을 시야에 담았다.

피가, 피. 세훈, 너 피. 세훈아. 잠결에 들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보이는 건 공포영화에서나 볼 법한 피범벅의 세훈이다. 문을 열자마자 자신에게로 쓰러지는 세훈에 놀라 등허리를 감싸 지탱한 루한은 제 손이 무언가에 흥건하다는 사실을 곧바로 눈치챘다. 피가 손바닥 전체에 잔뜩 묻어나왔다. 그나마 멈춘 모양이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엄청난 출혈이다. 치료하자, 응? 루한. 다급히 세훈을 불러보았지만, 자신과는 전혀 달리 평온한 당사자에게서 나직히 불려지는 제 이름 두 자에 루한이 온몸을 덜덜 떨었다. 잠깐 동안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선은 치료가 먼저였다.

 

" 어서, 어서 약 가져올게. 피 멈춰서 다행이다. 우선, 치료부터 세훈아. "

" 솔직해지면, 대답 해줄 수 있어요? "

 

파랗게 질린 루한이 울상인 얼굴로 세훈을 바라보았다. 세훈아, 제발. 제발 말 하지 마. 자신은 이다지도 평정을 찾지 못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멀쩡하게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다. 이대로 세훈이 잘못이라도 된다면 루한은 맨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세훈아, 세훈아. 두 손으로 그의 몸을 흔들었지만 옷깃을 잡은 손은 곧 자신의 입술을 제 입술로 덮어버리는 세훈으로 인해 맥없이 풀려버렸다. 맞닿은 입술에서는 찝찔한 피맛이 났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눈물인 것도 같았다.

단순히 피맛이라기에는 그 농도가 너무나도 짜고 쓰렸기 때문이었다.

 

입술과 입술을 맞대는 어설픈 키스가 끝이 났다. 루한은 무언가에 제어당한 것처럼 세훈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세훈이 루한에게로 기대진 제 몸을 일으켜 똑바로 그와 얼굴을 나란히 한다. 말 들어 줘요. 잠깐 비틀거리긴 했지만, 세훈은 여전히 담담하게 제 할말을 계속 이었다.

 

" 당신은 이상해요. "

" 너, 너.. "

" 비아그라를 먹었는데 당신 생각이 났어요. "

" 오세훈. "

" 솔직해지는, 게, 좋다면서요. "

 

그런데 왜, 대답 안해줘요.

대답해 줘요, 대답해 주세요. 이상한 목소리로 보채며 세훈은 루한의 육체도, 내면도 전부 흔들었다. 그러다 다시 몸을 못 가누더니 루한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세훈아! 이름을 불렀지만 세훈은 대답하지 않는다.

 

" 당신이 말하는 거 보면 화가 나요. "

" 세훈아, 제발.. "

" 엄마를 생각할 때처럼 화가 나요. 대마를 받을 때는 정말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

" 제발, 말 그만하자. 응? "

" 근데 자꾸 생각이 나요. "

 

엄마는 잊어버리면 되는데, 당신은 자꾸 생각이 나요.

당신 때문에 병에 걸렸어요. 너무 화가 나서, 당신을 포함한 모두를 잊고 싶어서 약을 했는데 당신 생각이 났어요.

세훈은 이제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만 염두한 채 아무렇게나 속내의 말을 내뱉었다. 언뜻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기절이나 졸도의 부류가 아니라, 마지막 이성의 끈이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피투성이 팔 아래 손이 루한의 팔목을 단단히 붙들어 온다. 루한은 이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홀렸어요. "

" ……아, 나, 나는. "

" 섹스하고 싶어요. "

 

나는 당신과 섹스하고 싶어요.

세훈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루한의 입술에 키스했다. 십대의 혈기와 어리숙함은 결국 마지막 이성의 줄마저 끊어놓고야 말았다.

제 입안으로 들어오는 세훈의 혀를 피하지 못한 루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 엄마는 잊어버리면 되는데, 당신은 자꾸 생각이 나요.

 

아아, 아비.

너는 아비구나.

나의 아비.

나만의 아비.

 

섹스하고 싶어요.

루한은 여전히 반항하지 않았다. 그의 사고는 이제 완전히 원점의 어린아이로 돌아가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 두 팔을 세훈의 목께에 감는 게 전부였다. 일체 반항할 수 없었다.

 

- 홀렸어요.

 

아니, 못했다.

 

 

 

 

¹ 아비 - 왕가위의 영화 아비정전의 주인공, 홍콩의 뒷골목 젊은이인 동시에 난봉꾼인 그는 여러 여자를 거쳐가고, 달콤한 말로 여자를 꼬시고 버리는 데에 능숙하다. 여럿 인물에게 상처를 입히고 홀로 필리핀으로 떠난 그는 결국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는데, 생모를 찾으러 떠났던 그는 결국 생모에게도 버림받고 전화 박스 안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늘상 여자를 단순 파트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말해오던 그의 생애치고는 너무나도 씁쓸한 결말이었다. 남자는 끝까지 외로웠다. 그 역시 생모에게 버려진 상처를 안은 발없는 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명대사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

발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속에서 쉰대.. 평생에 꼭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² 구룡성채 - 지금은 철거된 홍콩의 빈민가, 1993년 철거되기 직전까지 잔존했던 홍콩의 슬럼가, 무법 지대로 아편과 도박, 섹스업소와 각종 범죄가 판치는 진정한 빈민가에 속했다. 무법 지대였던 탓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었고, 오직 룰은 흑사회에 뜻에 따라 돌아갔다. 자리가 없어 높게 쌓아올린 건물이 특징이며, 일명 건물의 숲이라 불린다. 홍콩의 '씬 시티'로 불렸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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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ㅠㅠ무저갱님ㅠㅠㅠㅠㅠㅠㅠ안녕하세요 저 미녜입니다ㅠㅠㅠㅠ너무너무 기다리고 있었어요ㅠㅠㅠㅠㅠㅠ어쩜 이리도 서로 아슬아슬한지ㅠㅠㅠㅠ아이고 세훈아 루한아ㅠㅠㅠㅠㅠㅠ아 정말 작가님 시계태엽 너무 재미있는거 같아요ㅠㅠㅠㅠㅠ짱이십니다!bb
12년 전
독자2
안녕 X 오랜만에 인티 들어왔으니까 무저갱 글 정주행하고 가야겠다 수고수고
12년 전
무저갱
너톡좀해라
12년 전
독자3
샤프예요.......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헐ㅋ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뭐예요?우와.............막설레!!!!!!!!!!!!추석이라어른들다모여계신데서이어폰끼고미친듯이읽었네요......우와..............스케일대박이네요.......우와우와........
12년 전
독자4
으엌행쇼에요아진짜 이번편은 세루 편인듯 세훈이가 루한이한테 흡..씬이없어..는 아니고 세훈이는 자기 마음이뭔지 단번에 알고 행동하는 모습 진짜 좋았어요 물논 잘못먹은 약의 힘도있지만..ㅋㅋ마지막에 '너는나의아비구나 나만의 아비' 이부분!!! 이거보고 뭔가 욱했다해야하나? 이번편에서 제일 좋은?좋은?맞나 그런 글이여ㅛ어요ㅠㅠㅠㅠ너무 좋아요ㅠㅠ정마류ㅠ누워서 두번읽음 다음편 진짜 궁금해요!!ㅋㅋㅋㅋㅋㅋ기다릴께요 짱bb
12년 전
독자5
1호팬이에요! 시계태엽오렌지라니...마침 심심할때 글이 올라오다니 좋아요~그대~ 가족들 다 모여있어서 속독으로 빨리빨리 스크롤 내리긴 했지만 쩌네요ㅠㅠㅠㅠ 세루가 포인트였네요ㅠㅠㅠㅠㅠ 빨리 집에가서 다시 찬찬히 읽고 싶어요ㅠㅠㅠㅠ 엉엉ㅇ
12년 전
독자6
우옹.....이걸왜이제봤지;;;;;신알신이요!!!일편부터읽고오겠슴당!!
12년 전
독자7
와.................작가님 정말 사랑해여.......너무좋다 진짜........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좋다는말밖에 못하겠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표현하고싶은데 표현이안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전율돋네여....실제로 소름돋았어여..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8
헐....무저갱님 포비에여.....ㅠㅠㅠ아 시계태엽오렌지 완전 기다렸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와우.....명대사......저 구절을 한 다섯번은 더 본것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뭔가 멍.....해진 느낌 ㅠㅠㅠㅠㅠㅠ아진짜 무저갱님은 날 실망시키지않아ㅠㅠㅠㅠㅠ시골가는 지루한 도중에 인티들어오길 정말 잘했네요........♥무저갱님도 행복하고 좋은 추석보내세요~~~ㅎㅎ담편도 기대하겠슴다♥♥♥
12년 전
독자9
작가님, 이제 안 오시나요...
10년 전
독자10
ㅠㅠㅠㅠㅠㅠㅠ다시 연재되기를 기다릴게요ㅠㅠㅠㅠㅠㅠ과거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해여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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