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과의 첫만남은 서로가 아주 어릴 때다. 그 날은 추운 겨울이었고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들뜨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분위기는 들떴다. 나도 덩달아 들떠서 부산스레 떠들며 나갈 준비를 했다. 냉정한 표정의 엄마는 내 외투를 단단히 잠궈주며 당부하듯 말했다.
" 엄마가 항상 말했지. 너한테 남동생 한 명 있다고. "
" 응. "
" 그러면 잘 대해줘야 해? 못 되게 대해야 해? "
" 잘 대해줘야 돼. "
어려서 그런지 심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에서 키울 강아지를 한 마리 더 데려온다는 마음과 같이 마냥 들뜨기만 했다. 처음 만나는 동생. 엄마가 다른 남자와 자서 만든 아들. 어린 나는 마냥 들떴다. 동생이 어떻게 생겼을지도 궁금했고. 착할지도 궁금했다. 온갖 상상을 하며 도착한 곳은 아이스링크장이었다. 나는 여기 동생이 있어? 라고 물었다. 여기에 왜 있어? 라고 한 번 더 물으니 엄마는 짜증을 냈다. 가보면 알아.
나는 박성훈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자애들 사이에 스케이트날에 의지해 빙상장을 가르는 남자애. 나는 밖에서 기대 박성훈을 대놓고 구경했다. 박성훈은 내가 뚫어지게 저를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훈련에만 몰입했다. 그런데 공중에서 도는 턴을 몇 번이고 실패해 넘어졌다. 무릎 다 나가겠는데? 나는 동생에 대한 첫 번째 생각이 들었다. 그건 걱정이었다.
" 엄마. 동생 아프겠다. "
" 저건 남들도 다 하는 거야. "
남들도 다 아프니까 너도 아파도 된다. 무슨 마음인지 알겠지만 아들에 대한 너무 무책임한 마음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애들도 구경했다. 다른 여자애들도 넘어지긴 했다. 그런데 박성훈은 동생이 될 애라 그런지 더 눈에 밟혔다. 남자애는 몇 번째인지 세기도 벅찰 만큼 얼음 위에서 넘어졌다. 이번에 좀 크게 넘어져서 미끄러졌다. 나는 저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에 박성훈의 손가락이 잘릴까 무서웠다.
그리고 박성훈이 턴을 돌다가 또 넘어졌다.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고 고개만 들었다. 그런데 일어설 힘은 없는지 한참 앉아있었다. 차갑고 딱딱한 얼음 위에서 아주 지친 표정으로. 저 나잇대에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애가 몇 명이나 될까. 나는 더 못 볼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안은 따뜻했다. 손이 녹았고 뺨에 혈색이 돌아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리고 여전히 넘어질 동생이 당연스레 떠올랐다.
항상 저렇게 살았던 걸까. 아마 친남매였으면 나도 박성훈이 겪는 아픔처럼 익숙해서 저 애를 연민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직도 하지 못 하고 산다.
***
너희 남매, 진짜 꼴사납다. 그 말이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다. 이건 이희승이 내 상황이 아니어서 그렇다. 그냥 홧김에 한 말이겠지. 누구든 타인의 상황을 겪어보기 전까지 말을 쉽게 한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 말이 심하다. 너도 형 있잖아? "
" 형은 있잖아. 평생 보는 맞선임 관계 같은 거거든. 그런데 너희는 심해. 이부남매라고 쳐도. "
" 뭐가 심해? 우리가 자길 했어? 뭘 했어. "
이희승이 무얼 상상하는지 알 것 같아서 먼저 선수를 쳤다. 그런 거 종종 보았다. 성별이 다른 남매가 서로를 사랑하는 막장 이야기들. 주변에선 당연히 못 보고 인터넷에 찾으면 찾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댓글은 단 하나다. 주작ㅋㅋ 그래. 주작 소리를 듣고 사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내 인생에 대입시키는 이희승에 화가 솟구쳤다. 그래서 뱉어지는대로 말을 했다. 커플이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남자친구 이희승에게.
" 야. ㅇㅇㅇ. "
이희승은 화난 얼굴을 하다 표정을 이내 지웠다. 그리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다 겨우 입을 연다.
" 우리 잠깐 시간 좀 가지자. "
" 잠시만. 이야기 좀 해. 너 무슨 상상하는 거야? "
" 하....... 미안한데. 너랑 성훈이 그렇고 그런 관계 아닌 거 알아. "
근데 더 싫은 건 뭔 줄 알아? 이희승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두 팔을 붙잡고 말했다. 두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가서 팔이 아파왔다.
" 나를 자꾸 그런 상상하게 만드는 너희 둘의 행동이 너무 싫어. "
박성훈과 내가? 웃기지 말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그런 상상을 하게 내가 만들었다는데. 여기서 말을 더 붙이면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희승은 내 팔에서 손을 스르르 떼며 나즉하게 말했다.
" 다음 주까지 짐 빼서 나가줘. 옮기는 건 도와줄게. "
***
덕분에 가장 먼저 한다는 피겨 시합은 보지 못 했다. 나는 눈물을 질질 흘리며 공항으로 갔다. 박성훈이 아니라 다른 애를 만나러. 그 애는 목에 화환을 목걸이처럼 걸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훌쩍거리며 그 애의 빛나는 모습을 멀찍이 구경했다. 땀을 쏟아내며 남을 공격하여 점수를 얻는 태권도라 그런가. 밝아 보인다.
" 누나! "
" 정원아...... "
" 누나 울어요? "
양정원은 우는 나를 끌어안고 토닥여주었다. 기자들 많으니까 제 집이라도 가요. 택시를 타고 가면서 겨우 진정이 된 나를 보며 양정원은 내게 건내주다 남은 휴지를 손바닥에서 접고 접다 찢으며 말했다.
" 성훈이 형은 내일 오는데 나 만나러 온다고 해서 놀랐네. 무슨 일이에요? "
" 남자친구가 집에서 나가래. "
" 아........... "
" .......... "
" 근데 우리 집은 안 돼요. "
" 야! 재워달라고 할 생각 없었거든? "
양정원은 박성훈보다 더 어릴 때 아는 사이였다. 맞벌이인 양정원은 항상 집에 혼자 있었는데 내가 챙겨주었다. 집에 있는 간식 나눠 먹고. 가끔 우리 집에 데려와서 인스턴트 라면 끓여주고. 놀이터에 가서 놀고 한 게 다지만. 양정원의 부모님은 그걸 내게 무척 고마워했다. 그래서 가족식사 자리에도 몇 번 불렀고 지금도 스스럼 없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솔직히 박성훈보다 양정원이 더 편하다, 나는.
" 헤어지자고 한 이유는 뭔데요? "
" 됐어. 그걸 너한테 말해서 뭐 해. 메달은 땄냐. "
" 은. "
" 은? "
" 2등 했어. "
" 잘했네, 새끼. "
양정원은 고개를 저으며 창밖을 보았다. 금을 못 딴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하긴 스포츠는 1등을 하지 않으면 인정을 안 해준다. 그래서 박성훈도 죽어라 훈련을 나갔지. 1등을 하기 위해서. 그 메달 하나를 따기 위해 세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박성훈과 양정원처럼 띠를 매고 도장에 나가고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위를 가를까. 내가 기분을 풀어주려 양정원의 팔을 툭 쳤다. 마른 팔이 단단한 게 아프다.
" 너 군대는 가야겠네? "
" 그것 때문에 우울한 거니까 말 걸지 마요. "
" 배고프지. 밥 시켜줄게. "
" 됐어요. 싹싹 빌기나 해요. 누나 남친 나쁜 사람 아닌 것 같던데. "
양정원은 캐리어를 택시에서 내리고 나와 집으로 갔다. 빌라 1층. 양정원이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느라 자취를 하던 곳. 할머니 손에서 커서 그런지 부모님과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데면데면하다고 혼자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양정원은 어지럽게 옷가지가 늘어진 집안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언제 다 치우냐. 딱히 나보고 치우란 말은 아니지만 나는 이희승과 둘이 살며 청소는 내가 전부 맡았던 짬으로 빨래를 줍고 세탁기에 재빠르게 넣었다. 집안이 한껏 깔끔해졌다. 누나 땡큐. 양정원은 바닥에 앉으며 갑자기 생각 났다는 듯 말했다.
" 누나 근데요. "
" 어. "
" 성훈이 형 발목 다친 거 알아요? "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대할 줄 모른다는 그런 죄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