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전해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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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입 찢어지겠다. 박지민. 다 알면서…. 다 알면서! 확인사살 하지마. 속으로 외치는 단말마. 사이에 끼인 찌질한 난
"수지 닮았다나 뭐라나 그 절구통같은 여자애있잖아."
무슨 죈데.
말은 이래도 몸매는 절구통에 -그래. 잘 빠진 콜라병이다.- 얼굴은 A급. 남자 꽤나 울렸을 법한 여자들.
고백을 전해주면 너는 항상 웃었다.
그 표정이 너무 싫은데 주위에서 옆구리를 찌르는 여자애들 손가락 때문에 이런 일을 억지로 해준다.
너에게 내가 고백을 전하는 종달새역은 얼마나 고역인지. 귀찮기도 하고, 왜 얼굴 보자마자 이런 소리나 해야되는지 모르겠다.
"야. 너 표정 관리 해."
"무슨 관리. 내 표정이 어떤데."
네 표정이나…!
이런 일은 지치고 지나친 열량 소모에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특히나 마지막엔 네 표정이 신경질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20년 고추친구 주제에 날 가지고 놀았다.
사실 앞에 열거했던 말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박지민이 신경 쓰인다는 거. 신경 쓰여서 하루에 몇 십 번 떠올리고 머리를 쥐어뜯는 짓은 창피했다.
박지민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투덜대며 폰을 만지작댔다.
"친구 뺏긴 얼굴도 아닌데…. 아 그래!"
할 것도 없는데. 연락 올 사람도 얼마 없는데. 엄마, 아빠, 친구 녀석들. 각자 일 바빠서 한가한 건 나 뿐이잖아.
힐끔 옆에 기분 들뜬 박지민을 훑고 시선을 떨궜다. 혼자 신났네. 홀쭉해진 턱선이 처음 눈길에 들어왔다.
왜 역변한 거야. 도대체 왜! 살이 빠진 거냐고. 다이어트 할 때 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난 눈치가 어두워서 주위에 변화를 눈치 못 챘다.
네 볼에 붙은 살이 빠지는 것도 모르는 건 당연했다.
이렇게 멀끔한 사내 자식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냐.
"나 좋아하냐?"
"……."
"박지민!"
그리고 무의식 중에 박히는 주위 여자동기들 말이 내 마음 전구에 발전기 기능을 할 줄은.
내가 박지민 따위를 왜 생각하냐고. 가끔씩이면 좋았을 것을. 하루 빠짐없이 들려오는 주입식 박지민 이미지 메이킹에 나도 모르게 뻑이 갔다. 그것도 20년 친구놈한테.
"야! 나 간다. 집에서 보자."
저 멀리 놈을 기다리는 김태형이 보인다. 요즘따라 저거 주위에도 여자들이 바글바글하다. 소개팅 주선하고 다닌 소문을 들었는데 그 소굴에 박지민이 들어가는게 아닐까.
은근시리 걱정이 되고 조급한 건 내 마음 뿐이겠냐. 이미 몸은 뇌보다 먼저 삐뚤어져서 엇나간다.
"뭔 집. 나 오늘 외박이야."
"얼씨구? 됐고, 땅콩. 강의고 뭐고 마치면 집으로 곧장 와라."
"네가 뭐라고."
"어차피 올 거 잖아. 나 간다."
지도 땅콩이면서. 머리를 어린 새처럼 쓰다듬고 가버리는 박지민은 어쩐지 키가 컸다. 성인이 돼도 남자는 키가 큰다더니. 박지민 정말 이상해졌다고.
사람을 보는 눈빛부터 달라졌다. 이상하게 애정 어린 눈빛으로 보질 않나, 어른스러워진 말투도. 동기 여자들만 아니었으면 이 마음또한 모르고 박지민을 꾸준히 동성 친구로 생각 했을텐데.
오늘 할 일도 없는데 입에선 외박이라고 외쳤었다. 터덜터덜 이른 시각에 술집에 가 제일 구석 자리에 앉았다.
깡소주를 따고 술잔을 두 개 올린다.
한 잔은 원래 박지민. 그냥 희망상 박지민 자리. 짜증났다. 여자애들은 너를 떠보려고 내게 접근해 숟가락을 퍼게 만들었다. 그러면 어느 정도 반응을 하는 박지민. 그저 웃는 애매한 반응은 뭐란 말인가? 앵무새처럼 옮겨주는 일도 시덥지 않다. 차라리 좋아해 그 말 뒤에 라고 '전해달래.' 이거 붙이지 말고 뜸이라도 들여서 널 떠볼 걸.
한 잔 털고 꽉 찬 바로 앞 잔을 또 비운다. 더블 잔은 사람을 더 빠르게 미친 사람으로 만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이랑 다니지 말고 나랑 좀 있어주지.
그래 바쁘겠지! 소개팅이니 뭐니!! 그러겠지! 그렇게 네 이상형에 맞는 여자랑 폴인럽 하시겠지! 아, 인생. 나도 운동할까.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겠는가. 하물며 박지민이 나에게 눈을 들이겠어? 고추친구!! 그놈의 고추친구. 못 볼 거 다 본 사이. 젠장!
오늘 술고래가 되어서 집에 들어가렵니다.
그렇게 두 잔 연달아 마시고 저승길을 달린다.
*
비틀비틀. 술에 잘 쩔지도 않는 이런 멋진 맷집을 타고난 나란 탄소. 도움이 안 된다. 술 8병 까고도 몇 시간만에 정신이 돌아온다. 동네 벤치에 앉아 신발을 바둥거리며 벗었다.
이상하게 발이 뜨겁네. 얼마나 걸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오는 경로의 필름은 아무 필요 없어서 아무 생각이 없다. 찹찹한 밤공기에 코를 킁킁 물기를 맡았다. 멍하게 있다 점퍼 주머니를 뒤져 폰을 꺼냈다.
페이스북.
-김태형 님이 올린 동영상.
김태형: 너 왕따라서 술 혼자 마신다며?
박지민: (웃음)
김태형: 근데 오늘 왜 그렇게 달리셔? 박지민이 대신 계산하고 나온 거 아냐?
@O탄소
댓글은 보지 않고도 알 것 같았다. 나를 놀리는 그런 뻔한 내용. 박지민은 동영상 안 까지도 말 없이 웃는다.
아니, 계산하고 나오셨으면 나를 깨웠어야 될 거 아니냐. 무슨 키다리 아저씨여? 에이씨-. 폰을 껐다. 발을 콘크리트 위에 구르고 오만 짜증을 내다 문득 박지민의 타임라인이 궁금해졌다. 물씬 눈 가리고 괴롭게 아웅거리다 폰을 다시 켰다. 김태형을 타고 들어가 박지민을 누르자 역시나 여자 애들.
새 글이 있다.
@O탄소.
아무 글 없이 바꾼 프로필 사진. 댓글은 찬양글 뿐이다. 나는 왜 태그하세요? 페북에 들어간지 오래라 확인 못 했다. 뭐, 내 경쟁자 보라고? 댓글을 보면 프로필 사진이 뽀사시하게 하얀 애들이 많다. 예쁜 애들도 많고, 나란 호박은! 나란 고추친구는 박지민과 걔네 무슨 무지개 다리나 하라고? 더는 안 되겠다. 참을 수 없다. 혹은 내가 지금 술이 덜 깬 건지 지금 씩씩거리며 집으로 들어간다.
오밤중에 옆집에서 사는 박지민네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야! 박짐니!!! 나와 짐니 나오라고! 개떡이 새끼!!"
몇 분 걸리지 않아 가디건을 걸치고 나온 박지민이 쉿 조용히 하란다.
"야. 지금 몇 신 줄 알고 그래. 조용히 해. 아파트 울리잖아."
"지금 아파트 울리는게 문제야?"
"그럼. 피해주잖아."
네가 나한테 준 피해는 생각 없으셔? 발음이 꼬여서 계속 박지민을 짐니로 말한다. 더듬거리면서 모양빠지게.
"야, 박짐니. 너 말해봐."
"집에 들어가. 들어가서 자. 늦었어."
"대답해보라고. 앙?!"
"오늘 진짜 너 왜 그래? 알았으니까 내일 해. 어서 들어가."
"싫어! 너네 집에서 잘거야."
"뭐야. 왜 외간 남자 집에 들어오려고 그래?"
"네가 외간 남쟈냐?"
"당연히 남자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서 주춤거렸다.
"너한테 나는 남자가 아니야?"
그래. 남자네. 다 컸네. 위에서 내려다보는 박지민의 이목구비가 아주 또렷하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컸네. 익숙한 얼굴이 낯설어지고 멀어지는게 무서워. 더 말 못 하고 난 집 구멍으로 도망쳤다. 술기운이 다 깨버려서 부끄러움이 몰려온 건지 몰라.
신경쓰여서, 생각나서 난 순수하게 확인해보고 싶었다. 네 생각보다 내 마음이 확인되버려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게 확실해져서 부끄러웠다.
너를 계속 되새겨보면 너만한 남자가 없다는 걸 깨닫고 깊게 파고 들었다.
넌 나와 오래된 친구일 뿐인데.
시끄럽게 아파트 주민들을 깨워 눈치 받을 내일보다 박지민을 볼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
"어이, O탄소."
"말 걸지마."
"오늘은 무슨 바람으로 까칠하게 구셔, 이 가시나."
"저리가."
"우리 탄소 얼마나 컸는지 볼까요~?"
비몽사몽 강의에 늦을까 자다가 뛰어나갔다. 10분만에 도착해 벙쪄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박지민. 씻지도 않은 얼굴을 만지고 찔러대는 지민이를 무시하고 수업을 들었다.
가까이 있으면 다 느껴진다. 박지민과 나로 집중된 저 알듯 말듯한 시선들이. 정확히 말하면 혹시 사귀게 될까봐. 박지민이랑 내가 잘 될까봐. 내가 얘랑 뭐가 잘 돼. 하나두, 정말 하나두 아무 변화 없구만. 변한 게 있다면 줄어든 스킨쉽. 박지민 품에 안겨서 내가 부비적대는 짓이라던지 박지민이 나를 안고 노는 행동이라던지. 그래, 좀 변했네. 가까워 진 건 아니잖아! 필기를 하다 엎어져서 소리없이 앓았다. 가장 편한 사이면 뭐해. 짜증나. 만사가 짜증났다. 또 여자애들이 나한테 와서 (나한테 온다는 미끼로 박지민한테 접근하겠지) 말 시킬 건데 도망쳐야겠다.
수업이 끝나자 마자 주섬주섬 챙기고 빠르게 일어나자 박지민이 잡았다. 이느므 시끼! 떼찌! 놔라!
"오늘은 오빠야가 놀아줄게. 혼자 소주까면 뭔 재미로 마시냐?"
"저리 꺼.지.세.오. 그럴 기분 아니니까."
"근데 어제 내가 계산 했는데…."
"알았다. 나가. 나가서 얘기 하자."
"네 시간 미리 계산했으니까 튀시면 맞는다."
"알았으니까 나오라구여."
억지 미소를 짓고 박지민을 끌고 나갔다.
씩씩하게 대학로를 벗어나니 나를 세운다. 그리고 오히려 박지민이 뒷덜미를 잡아서 카페로 들어갔다. 야, 나 아직 눈꼽도 못 뗐어 심색키야.
딸랑거리며 들어온 카페 안 여자들이 박지민을 보고 눈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옆에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비웃는 소리에 박지민이 나를 신경쓰는지 내 손목을 잡고 카페 중앙 테이블로 갔다.
"……."
꾹 눌러 앉히고 앞자리에 앉은 박지민은 줄곧 진지한 모습을 유지했다.
"하고 싶은 말 없냐."
"나 눈꼽 좀."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짓는 박지민이 휴지를 준다. 아무리 고추친구라도 그렇지, 이젠 마음이 불편해서 화장실로 가려고 했다. 화장실갔다가 눈치보고 바로 튀셔야지.
"어디가."
"화장실."
"네가 나한테 잘 보일 일 있어? 여기서 해."
쿠크 바스락.
"세, 세수라도."
"앉아."
"응."
순한 양처럼 고이 앉으니 표정을 푼다.
"자. 네가 나한테 듣고 싶은 게 뭔데."
"어제 말하는 거야?"
"당연하지. 술 혼자 여덟 병 까고, 행패부리고 갈 일이라도 있어?"
손을 꼼지락 거리다 물을 마셨다. 목이 타 물만 마시고 있으니 박지민이 알바 직원에게 오렌지 주스를 시킨다. 홍조를 띈 여자 알바생이 신속히 주스가 찬 두 잔을 들고 나온다.
"감사합니다."
또, 웃어주는 박지민에 여자는 좋아라 속을 감추지 못 하고 웃으며 폰을 내민다.
"혹시 번호 좀…."
"아, 여자 친구 있어서요."
여자 친구? 아쉽다는 얼굴로 돌아선 알바의 시무룩한 등이 좁아 보였다.
그리고 주스를 마시는 멀쩡한 박지민. 여.자.친.구? 어제 바로 여자친구를 만드셨나보네요. 나한테 말도 없이? 어떻게 나한테 말 없이 여자 친구를 만들 수 있어? 배신감에 꽉 차 오른 얼굴은 울그락붉으락. 말 없이 여자친구를 만든 거에 화가 난게 아닌데 친구라면 그런 것에서 찌질하게 화를 내야했다. 그런 우스운 얼굴로 한 마디를 뱉었다.
"유감."
"뭐가."
"저 여자 예쁜데."
"왜~? 별로 유감 아닌데? 저 여자보다 내 여자 친구가 더 예뻐서."
"콩깍지 단단히 쓰셨군."
담담하게 말하면서 주스를 마시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눈동자 아래에 머금은 눈물을 눈꺼풀로 가리고 폰을 만지작거리며 일상처럼 말했다.
"네가 먼저 고백했어?"
"아니."
"어떤 여잔데?"
"예쁘대도."
"많이?"
"어. 억수로 예쁘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 전해주던 여자애들중에서 한 명이야?"
"그 중에서 제일 자주 말하던 애."
대화가 끊겼다. 내가 폰 화면을 열고 나서부터 부진하는 대화 소리는 멎었다. 눈물을 숨기기 위해선데 눈꼽을 떼는 척 훑어냈다. 박지민은 동 난 내 주스잔에 주스를 나눠줬다.
"넌 쓸 데 없이 친절해."
그럴려고 그런게 아닌데 울음에 찬 목소리가 나왔다. 가래인 척 큼큼 거리고 별 짓을 다한다. 계속 있다 네가 떠나면 목 놓아 울 것 같아 자리에 일어나려고 하자 재빠르게 내 손목을 잡아세우는 박지민. 또 먹먹히 시야를 가리는 눈물에 고개를 올렸다. 훌쩍 큰 박지민은 나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 내가 왜 널 생각해. 내가 왜 널 좋아해. 왜 하필 너를 좋아해. 쪽'팔리게시리. 네가 신경쓰여. 이제라면 눈치챌텐데. 나한테 말이라도 해주지. 티가 난다고.
눈물을 벅벅 닦고 고개를 아래에 처박고 있으니 박지민이 내 머리를 쓰담는다.
"나 너한테 말할 거 있어."
"뭐를."
"좋아해."
"……뭐라고?"
번쩍 뜨인 시야에 올려다보니 여전히 보던 웃는 얼굴.
"라고 전해달래."
"…장난치지마."
"장난 아닌데?"
바로 시무룩해져버린 목소리에 박지민은 픽 웃고 내 볼살을 늘어뜨렸다.
"그럼 누가 그러던데."
"내가."
여자 친구도 있다는 자식이 사태 파악 못 하고 장난 쳐. 눈이 붉어져 심통난 족제비처럼 노려봤다. 대조적으로 여유롭게 볼을 콕 누른 박지민이 무심하게 말한다.
"너, 다른 애들 말 전해주는 척 은근히 돌려 말했잖아."
"…아니거든!"
"아니긴 뭘. 내가 20년 친군데 그럴 모를리가,"
없잖아.
실로 눈빛은 말투에 비해 무심하지 않았다.
"나 너 좋아해."
너같으면 내가 좋아하는 애 앞에서 번호를 주겠냐. 거절할 좋은 구실이 바로 앞에 있는데.
비록 거짓말이긴 하지만
"네가 내 여자친구하면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