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재생을 추천합니다)
“ㅅㅂ... 여기가 어디야...” *4시간 전,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 국제공항 “이사님 오늘 일정은 라파예트 백화점에 방문하신 뒤 바로 호텔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비행시간 동안 힘드셨을텐데 1시간만이라도 주무세요. 도착하면 깨워드리겠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그 나라의 수도는 항상 바쁘고 어지러운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나마 오늘은 일정이 하나라는 거에 만족해야지.. 이따 호텔가서도 내일 계약서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이번 미팅에서 꼭 우리 백화점과 선점 체결권을 따내야 되는데.. 일단 눈이라도 붙이고 다시...zz . . . . “이사님,이사님” “뭐야..벌써 도착한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저희 앞 다리에서 교통사고가 크게 났나 봅니다. 차로 이동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 같은데 근처에 있는 고속철도로 이동할까요?” “그래” “바로 예약하겠습니다. 그리로 이동하시죠” 첫날부터 시작이 별로 좋지 않다. 기차역 입구에서 자기는 짐을 마져 가져오겠다며 먼저 가 있으라는 김비서는 대체 언제 오는지.. 성수기 시즌이라 그런가, 사람도 너무 많다. 해외를 몇 번이나 가도 적응 되지 않는 시차 때문에 눈이 자동으로 감긴다. 김비서야 알아서 잘 오겠지... 아까 제대로 못 붙인 눈이라도 감았다. 나는 이날 기차에서 졸지 말아야 했다. 저 단잠이 내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일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 . . . . . “..ady, Lady, Are you okay? We’ve arrived at the last stop.” (..님, 손님, 괜찮으세요?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김비서는 대체 뭐하ㄱ..? 김비서가 없다. “Excuse me, Didn’t you see the man next to me who wears the suit and glasses?” (실례하지만 제 옆에 있던 정장입고 안경 쓴 남자는 못 보셨나요?) “I’m sorry. but you’ve been alone since this train started. Do you want me to check your ticket?” (죄송하지만 손님은 이 열차가 출발할 때부터 혼자 계셨어요. 혹시 표 한번 확인해 드릴까요?) “!! This ticket is for the opposite train. We’re sorry. We didn’t check it properly when you were on broad.” (!! 손님 이 표는 반대편행 열차입니다. 죄송합니다. 탑승하실 때 저희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거 같습니다.) 이런 개같은 경우가.. 핸드폰을 보니 배터리도 없어서 비서에게 바로 전화를 걸 수도 없다. 일단 내려서 충전이라도 해서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Ah.. Then where am I now?” (아.. 그러면 여기가 어디죠?) “This is Bordeaux Station.” (여기는 보르도역입니다.)
*2시간 전, 프랑스 보르도 역 누군가 항상 내 옆에 있었기에 방향치이자 길치인 내가 지금까지 살아가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긴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딱딱한 정장차림에 힐을 신고 오랜 시간동안 있으니 피곤이 만땅이다. 일단 폰을 충전하기 위해서 인포데스크로 향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 역 직원인듯한 사람이 와서 자기가 길을 안내하겠다고 내 가방을 들고 앞섰다. 그래서 따라갔더니 역 출구에서 내 가방을 들고 갑자기 뛴다?! ㅁㅊ 잘못 걸렸다.. 외국에는 소매치기가 많다는 것은 5살 꼬마도 알텐데.. 어쩐지 가방을 들겠다고 하더니.. 저 가방에 돈이랑 휴대폰이 다 들어있어서 일단 앞뒤 생각 안하고 소매치기를 뒤쫓아 달렸다. 저 자식.. 골목골목으로 가더니 금세 나를 따돌렸다. 세상은 왜 방향치인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결국 돈도 핸드폰도 길도 잃었다. 골목에 있는 상점에 가서 역으로 갈려면 어떻게 가는지 물어보니, 영어를 못한다고 하더라.. 하.. 내가 할 수 있는 언어중에 왜 프랑스어는 없을까.. 일단 큰 도로로 나가면 뭐라도 보일까 싶어 40분째 골목을 걸었다. 다리도 너무 아프고 힐 때문에 발목도 까져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거지같이 한 와인상점 출입문 계단에 엉덩이를 붙였다. 배도 고프고 잠도 오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그렇게 한 15분이 지났을까..이대로 길거리에서 자야하나 싶었을 때, 나는 예수를 보았다. 기독교를 믿지는 않지만 예수가 있다면 분명 저렇게 생겼을 것이다. 와인상점 문을 열고 나온 나의 예수는 정장을 입은 동양인 여자가 계단에 쪼그려 앉아있는 것을 불쌍히 여기셨는지,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주셨다. “Why are you sitting here? Have you lost your way?” (왜 여기에 앉아계세요? 길을 잃어버렸나요?) “Yes.. How can I get to Bordeaux Station?” (네.. 혹시 보르도 역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나요?) “It's late, so I think you have to go back to the station tomorrow. Do you want me to reserve accommodation for you?” (시간이 늦어서 내일 다시 역으로 가야할 거 같은데 숙소라도 잡아드릴까요?) “Oh.. thank you..” (그러면 너무 감사하죠.) 그렇게 예수를 따라 여러 호텔과 모텔의 남은 방을 찾아다녔지만 계속 허탕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전화도 동원되었지만 역시 방이 없는건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I’m sorry.. Maybe because of the peak season, there are no rooms in the nearby hotel.” (어쩌죠..성수기라 그런지 근처 호텔에 방이 없다고 하네요.) “There's nothing we can do. Thank you for helping me.” (어쩔 수 없죠.. 도와주신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진짜로 이대로 길바닥에서 자는 건가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Umm.. Well, if you don't mind, why don't you come to my house with me? I live with my family. My identity will be guaranteed at that store.” (음.. 괜찮으시다면 같이 제 집에 가시는 건 어때요? 가족이랑 같이 살아요. 제 신원은 저 상점에서 보장해줄거에요.) 길거리에서 자는 것보다 따라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Yes라고 말했다. 그렇게 예수를 따라 그의 트럭을 타고 시골의 나무가 많은 그의 집으로 갔다. 트럭에 타니 그제서야 정신을 조금 차리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그의 복장을 보니 하늘색 남방에 폼이 넉넉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과 피지컬인건가.. 복장은 단출했지만 그 모습이 촌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포근하고 맑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 같았다. 이름을 물어보니 예수의 이름은 카이라더라.. 소년 같은 그의 얼굴과 잘 어울렸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적은 26살 이었으며 파리에서 살고 있지만 주말에 가끔 부모님을 뵈러 보르도로 내려온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의 집으로 이동하면서 왜 길을 잃어버렸는지부터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그의 가족은 대대로 포도농장을 운영하면서 와인을 팔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아직 만난지 2시간도 되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더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그가 내리라고 문을 열어줬다.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눈 앞에 포도나무가 빽빽한 넓은 과수원이 드넓게 펼쳐졌다. 그는 분명 소규모 와인사업을 한다고 했는데.. 거짓말 같다. 세상 평화롭고 혼란스러움과는 단절된 세상 같은 포도밭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작게 중얼거렸다. “ㅅㅂ...여기가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