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제가 이거 사느라 돈 다 썼으니깐 꼭 혼자 드셔야 해요!"
"오빠, 이거 드세요!"
3월 14일. 끊임없이 생겨나는 사탕들에 오늘이 무슨 날인가 하고 인터넷에 쳐 봤더니 화이트 데이란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한테 주는 날. 아니, 근데 남자가 여자한테 주는 날이라면서 왜 여자애들이 난리냐구요. 딱히 내가 기분 나쁠 이유는 없는데 괜히 기분이 나빴다. 인기 드럽게 많네. 여자애들 꺅꺅 대는게 듣기 싫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배가 나를 붙잡았다.
"어디 가?"
"..."
"나 구해주고 가야지."
"제가 선배를 왜 구해줘요."
선배의 손을 쳐내며 교실을 나왔다. 아, 이렇게 차갑게 쳐 낼 필요는 없었는데. 괜히 민감하게 굴었다. 한참동안 교실 문 앞에 서 있는데 덜컥 열리는 문에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아아, 쪽팔려. 쪽팔림에 얼굴을 가리고 무작정 앞으로 걷는데 선배의 목소리와 함께 내 발걸음이 멈췄다.
"좀만 더 가면 벽에 부딪히겠다."
"아."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다. 방향을 틀어 도망치자 금새 따라잡아 내 옆에 서서는 쫑알쫑알 말을 하는 선배에게 그만 좀 따라오라며 소리를 쳤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아이들의 시선이 윤기 선배와 내 쪽으로 쏠려 있었다.
"아, 그게, 선배 화 났,"
"왜 화를 내고 그러냐."
활짝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려 앞으로 걸어가는 선배가 무서워 손만 만지작 거렸다. 차라리 화를 내라. 겁나 무섭네.
"왜 화를 내고 그래."
".. 죄송해요."
"나는,"
"..."
"너 귀여워서 그런 건데."
"..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너 아까 교실에서 내가 사탕 많이 받아서 짜증났지?"
"어우, 아뇨! 제가 선배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아, 그래? 나는 여채껏 니가 나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 아, 아이 씨!"
오늘도 어김없이,
"같이 가, 탄소야."
나는 윤기 선배한테 휘둘린다.
22살 고딩 민윤기 03
"너 민윤기 좋아하냐?"
"푸흡!"
"아! 아 씨! 다 튀겼잖아! 존나 더러워!"
"아, 아니, 그러게 왜 그딴 개소리를 하고 지랄이야, 지랄은!"
"니가 너무 노골적으로 저 형만 보니깐 그렇지."
"내가 언제 선배만 쳐다봤어!"
"야, 내가 개코야. 개코. 그거 하나 모를 것 같냐?"
거기서 개코가 왜 나오냐구요. 전정국에게 손에 쥐고 있던 물병을 던졌다. 그걸 또 받아내는 전정국에게 박수를 쳤다. 오, 정호석은 그거 못 잡는데. 그 말에 또 웃으면서 자기가 이런 사람이라고 말 하는 전정국의 머리를 한 대 때리며 개소리 좀 그만하라고 말했다.
"아, 왜 때려!"
별로 세게 때리지도 않았고만 때린 부위에 손을 올리며 아프다고 징징대는 전정국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우선 대화 주제는 돌렸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징징대는 전정국이 쪽팔려 조금 떨어져 앉았다. 강당이라 안 그래도 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아 그러보니깐 나 아까 엄청 큰 소리로 말 했는데 들은 거 아니야? 그러면 진짜 역대급 수치플인데? 갑작스래 밀려오는 쪽팔림에 머리를 쥐어 뜨고 있는데 주위에서 피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응? 뭘 피해?
"공 피해!!"
"공?"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농구공에 피하려 했지만 이미 공과 얼굴이 마주해서 피해도 소용이 없었다. 코가 아파서 코를 잡고 바닥에 누웠다. 아, 진짜 아파. 옆에서 전정국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죽일까.
"괜찮아?"
".. 아니, 너무 아픈 걸."
처음 보는 남자애가 내게 와 괜찮냐고 물었다. 너 같으면 괜찮을 것 같냐? 라는 말을 순화 시켜서 말을 했다. 선배가 뛰어와 남자애를 밀치더니 나를 일으켰다. 선배가 내 손을 치워내더니 흐르는 피를 보고 주머니에서 이상한 검은 곰돌이가 박혀 있는 손수건으로 내 코를 막아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미안. 너한테 던지려 한 게 아니였는데 잘못 던졌어."
"..."
"많이 아파?"
".. 네니오."
"보건실 가자. 너 피가 너무 심하게 난다."
"아, 정국이랑 갔다 올게요."
"이 오빠가 특별히 같이 가준다! 는 무슨 나 바빠서 미안."
"야, 야! 전정국!"
"아나, 무섭다고! 붙잡지 마라고!"
개새끼야! 나 선배랑 있으면 부끄럽단 말이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 할 말을 삼키며 선배의 등에 업혔다. 기어코 걸어가겠다는 걸 안 된다며 지랄하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 나보다 3년이나 더 다닌 선배님한테 내가 뭘 어쩌겠냐고. 그나저나 나 무거울텐데. 긴장 해서 몸을 힘을 주자 내 다리를 툭툭 치며 선배가 입을 열었다.
"힘 풀어."
"무, 무거운데."
"안 무거우니깐 힘 풀어."
그 말에 또 설레 얼굴이 화끈 거려 선배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아, 진짜.
너무 좋아.
***
점심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놓더니 인상을 팍 찌푸리며 선배가 입을 열었다.
"나 좋아하는 사람한테 사탕 줄 거야."
부럽다. 누군지는 몰라도 진짜 완전 캡 짱 부럽다. 저런 선배가 좋아해주다니.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생긴 거랑 다르게 겁나 순정파다, 이 선배. 걸핏하면 얼굴이 빨개지질 않나. 아니, 가끔 좀 서스럼 없이 다가올때도 있지만 그래도 되게 순둥순둥하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저 표정 귀엽다. 귀여워서 죽을 것 같아.
"나 잠깐 화장실 갔다 올게."
"네."
화장실 갔다 온다면서 화장실을 만들고 싸고 오는 건지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선배에 깨끗한 식판만 수저로 긁고 있었다. 심심해. 어느새 다 빠져 나가 버린 학생에 조심스래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의 식판까지 정리한 뒤 급식실을 나왔다. 똥이라도 싸는 건가. 주머니에서 학주가 준 사탕을 꺼내 입에 물었다. 윤기 선배를 맡아줘서 고맙다고 그러는데 누가 보면 아빠인 줄 알겠더라.
"아, 미안."
"뭐 하다 왔어요?"
"응, 사탕 주고 왔어."
누군지는 몰라도 진짜 부럽네. 부럽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래, 난 고3이다. 정신차리고 공부나 하자. 선배와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교실로 향했다.
"코는 괜찮아?"
"아, 네. 부러지진 않았대요!"
"다행이네."
몇 분 안 돼 교실에 도착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전정국과 정호석이 내 자리에 앉아서 왠 상자를 흔들고 있었다.
"뭐 하냐?"
"어, 야 이거 뭐냐?"
"야 누가 너한테 주는 건가봐. 사탕 같은데?"
"진짜?"
"누가 너한테 사탕을 준 걸까. 아마도 눈이 획까닥 맛이 간 사람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본다."
"우리가 너 줄라고 사탕 샀는데 줄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이건 다른 사람 줘야 겠다."
"왜! 나 줘!"
"너가 사탕 못 받았을 것 같아서 사온 건데 받았잖아."
"맞아, 넌 그냥 그거 먹어. 우리는 이거 불쌍한 사람한테 기부하고 다닐게."
"줬다 뺏는게 어딨어!"
내 말을 무시하고 교실을 나가는 전정국과 정호석을 바라보다 자리에 앉아 상자를 열어봤다. 꽤 큰 상자였다. 내 기준에서. 형형색깔의 사탕들이 담겨 있는 상자에 웃으며 선배를 바라봤다.
"사탕 완전 많아요! 하나 먹을래요?"
"아니, 나 많이 받았어. 너 먹어."
"누군지는 몰라도 나중에 만나면 뽀뽀 해 줘야지."
혼자 중얼거리며 상자를 품에 안았다. 아, 이런 특별한 기념일날 이런 거 받으면 기분이 이렇구나. 맨날 정호석이랑 전정국한테만 받아봐서 어떤 기분인지 몰랐는데 이제 알겠다.
***
"아, 맞다. 사탕 줬더니 뭐래요?"
"좋아하더라."
"그게 끝?"
"응, 몰래 주고 왔거든."
"왜요?"
"그냥."
"의외로 순정남이네요. 되게 나쁜남자 같이 생겼는데."
"..."
"짠, 이건 선물!"
선생님한테 부탁해서 외출증을 끊어 아까 전 쉬는 시간에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가 내 손바닥만한 사탕 하나를 사왔다. 내가 선배한테 못 받았지만 그동안 내 말 잘 듣고 염색하고 학교도 잘 나온게 기특해서 사 온 거였다.
"고마워."
"뭐야, 반응이 시원치 않은데요? 제가 이거 사려고 외출증까지 끊었어요."
"잘 했어. 잘 먹을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선배를 보며 나도 따라 웃어주었다. 네. 완전 잘 먹어야 해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동굴을 보여주는 선배였다.
***
교복을 벗고 옷을 입던 도중 치마 주머니에서 툭 떨어지는 손수건을 주었다. 피가 묻어 얼룩덜룩 해진 손수건을 바라보다 화장실로 향했다. 피를 없애기 위해 비누로 박박 문지르자 얼룩이 조금 사라지며 검은 생명체가 정체를 드러냈다. 어, 이거 나 1학년 때 있었던 건데. 그때 누구 줬었지, 아마. 이 곰 이름이 쿠마몬 이였었나. 그랬던 것 같은데. 손수건을 펼쳐 보고 있는데 곰 아래에 글씨가 있었다.
"2014년 3월 9일, 쿠마몬?"
처음 산 날 적어 놓은 건가. 귀엽네. 손수건을 빨아 건조대에 널어논 뒤 침대에 누웠다. 오늘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 오늘은 왠지 좋은 꿈을 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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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많이 늦었죠. 원래 시험 끝나고 오려다가 그냥 왔어요. 공부도 안 돼고.
독자님들은 시험 보셨나요?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시험 잘 보세요. 화이팅.
아, 2화에서 나온 노래 물어보신 분이 있더라구요. 마마무의 고양이 (Cat Fight) 입니다!
암호닉 빠지신 분들 있으면 말해주세요. 바로 넣어 드릴게요.
그럼 시험 끝나고 올게요. 안녕.
윤기 짝꿍 |
호롱불/인연/슬요미/챠이잉/접근금지/화학/스케일은 전국/푸후후야/동물농장/1214/월향/삐삐까/단미/첫사랑/청보리청 재수생/자몽에이드/호비/뚜찌빠찌/가뭄아닌윤기/열렬히/배고프다/밍기적/수민트/녹는중/비데/단아한사과/지금당장콜라가먹고싶다/열려라참깨라면/방울이 색시/쮸뀨/호두마루/네로나/복학생/덕후/맴매때찌/민슈프림/민윤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