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에서 사적인 태도로 대하는 거 혐오합니다. 그러니까 조심하세요"
"아니, 나는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내 말 이해 안갑니까. 나는 그쪽 만난 적 없는 걸로 합니다. 그러니까 반갑지도 않고"
"어...,아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서 일 하세요. 걸레질? 뭐 열심히 하십쇼"
모르겠다, 그렇게 석달여 정도가 지난 것 같다.
원식이..아니, 팀장 김원식은 그 후로 신입사원 김별빛이에게 어떠한 사적인 말도 꺼내지 않았다.
물론, 공적인 이야기는 했다, 이야기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갈굼이지만
"김별빛씨, 일이 하기 싫으면 집에 가세요, 나도 능력없는 부하직원 데리고 있기 힘드니까."
"죄송합니다. 수정해 올리겠습니다."
"뭘 수정해, 회의시간에 뭘 했길래 이딴 결과가 나옵니까, 같이 들었잖습니까."
"아, 팀장님이 말씀하신 내용 다 적어 놨는데"
"누가 다 적어올리랍니까, 포인트, 그러니까 핵심만 딱 정리해서 올리라는 겁니다."
"저번에는 하나씩 다 정리해서 올리라고.."
"네, 그렇게 상사한테 말대답 하세요. 상사가 하라면 하라는대로 하는게 예의이자, 기본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말대답 할 시간에 나같으면 노트북 전원을 켰겠네."
"아.. 그럼"
싸가지 없는 놈, 어렸을 땐 나한테 찍 소리도 못내더니, 재수 드럽게 없어 진짜.
팀장 사무실을 나오면서 속으로 주문처럼 외우는 저주이다.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아 한숨을 푹 쉬며 노트북을 켜는 나를 직원들이 측은하게 쳐다본다.
분명 김원식은 여기 모두에게 동일한 저주를 받고 있을거다.
싸가지 없는 놈, 재수 없는 놈.
그럴만도 하지, 나이도 어린데 벌써 팀장에. 회사 곳곳에서는 김원식이 회장 사위 내정자라는 소문이 돈다고 한다.
많이컸네 김원식.
별 생각을 다 하며 노트북 회면을 멍하니 보는데 재수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외근입니다. 알아서들 퇴근하세요. 월요일날 봅시다."
아, 오늘 금요일. 축제다.
퇴근 세시간 전 팀장은 외근갔고, 씩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똑같은 표정이다.
귀에 꽂인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타자를 쳐, 작업을 끝내놓으니
벌써 퇴근을 준비하려는 팀원들이 보여, 나도 슬쩍 가방을 챙겨놓는데,
사무용 메신저에서 띵동 하고 알림이 울린다.
아.
김별빛씨는 예외 입니다.
서류 다 끝내놓고
나 올때까지 기다리세요.
검토하러 갈거니까.
김원식....내가 죽여버릴거야.
하나 둘 팀원들은 퇴근을 했다. 정각 오후 7시.
"아, 왜 안와."
평소같으면 퇴근을 하고도 남아 근처 포장마차에서 한 잔 할 시간인데..
금요일 저녁에 내가 여기서 썩고 있다.
하릴없이 팀장을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잠에서 깨 눈을 떠 고개를 들었을 때 김원식이 내 눈 앞에서 웃으며 빤히 나를 쳐다봤다.
"아, 꿈이구나.."
"아닌데, 꿈."
특유의 낮은 목소리가 나를 더 나른하게 한다. 다시 눈을 감아 고개를 숙인다.
"맞잖아 꿈"
"아니라니까, 말대답 하지 않습니다, 김별빛씨"
암호닉
흑요니/2721/원식의 봄/양재동넘버원/원시끄/검정체리
라일락/11월의 꿈/구름
9분의 사랑과 함께 달리고 있습니다.
암호닉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