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일곱, 여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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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시작은 인터뷰
에디터_ 인터넷 서핑 중에 굉장히 흥미로운 걸 하나 발견했는데요. 00 씨 친구분이 택배 기사로 위장을 하셔서 대기실을 찾아오셨다고요. 그걸로 열애설이 터졌다고.
00_ 다행히 비난하시는 분들은 없으셨는데, 진심으로 화가 났었어요. 잘못했으면 제 친구한테 피해가 갈 상황이었잖아요? 제가 이 팀에 들어온 이상 그런 기사들의 특화된 인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되게 짜증이 일었어요.
진_ 연예인의 고충이죠.
00_ 앞으로 연애를 하게 되면 기자분들 말고 팬분들께 먼저 알려드리고 싶어요.
뷔_ 우리는요?
랩몬_ 넌 그냥 조용히 해라.
에디터_ 이렇게 된 거 각자 이상형 하나씩 말해 볼까요?
랩몬_ 저는 긴 생머리에 빨간색 아니면 검정색 컨버스 하이가 잘 어울리는 분. 옷차림은 흰 티셔츠에 스키니진? 뇌도, 몸도 섹시한 분이 좋습니다.
진_ 귀엽고 다정한 사람. 구두보단 운동화가 더 좋아요. 강아지 같은 분이었으면 하는데. 오버사이즈 상의를 많이 입었으면 좋겠어요.
슈가_ 저랑 취향이 비슷하고, 저는 인상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분위기 같은 거. 스트리트 패션이나 그냥 세련된 스타일을 선호합니다.
00_ 딱히 이상형이다 하는 건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그냥 느낌이 좋은 사람.
제이홉_ 페미닌한 스타일을 좋아하긴 해도 화려한 건 싫어요. 요리 잘하고, 배려해 주는 분. 가끔씩 스포티한 모습을 보여도 좋을 것 같아요.
지민_ 신발은 상관없고요. 키는 저보다 작아야 해요. 입술이 예쁘고 눈이 매력적인 사람. 쌍꺼풀이 없어도 괜찮아요. 분위기는 깔끔한 걸 좋아해요.
태형_ 바지가 잘 어울리고 긴 생머리.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 또, 말 예쁘게 하는 사람이 좋아요! 키가 조금 커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정국_ 키가 크지만 저보다 작아야 하고, 다리 예쁘고, 내조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착한 사람이요. 아, 피부도 하얘야 해요.
10. 00의 친구
"00 씨 계세요?"
"네, 저예요."
분주하게 움직이던 대기실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00은 남자가 들고 있던 박스를 봄으로써 대충 퀵이구나 짐작했다. 팬들이 간혹 이럴 때도 있는 터라 00은 자연스럽게 박스를 받아냈다. 음. 너무 가벼운데. 가벼운 박스를 조금 흔들어 보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00은 아직까지도 나가지 않고 있는 택배 기사를 바라봤다.
"택배 기사님 아닌 거 아는데. 누구세요?"
엥? 택배 기사가 아니야? 멤버들이 다 놀라 택배 기사, 정확히 말하면 택배 기사로 위장하고 있는 누군가를 쳐다봤다. 남준이 성큼성큼 다가가 00을 조금 멀리 떨어지게 했다. 혹시나 안티나 사생이라면 00이 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 그러나 00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남자의 모자를 손수 벗겨냈다. ……야, 너.
"야, 네가 여길 오면 어떡해!"
"그러면서 왜 안냐."
"반가우니까, 병신아. 얘들아, 오빠, 나 나갔다 올게."
짐짓 얼굴을 구기면서도 00은 남자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짜증 난다고 한 말과 달리 그 다음에 나온 말에는 조금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기도 했다. 어떻게 올 생각을 했어?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어? 남자는 간간이 00의 어깨를 토닥였다.
문이 달칵 닫혔다. 뭔가 뺏긴 느낌. 태형이 감자튀김을 마저 씹어삼켰다. 지민은 메이크업을 받다 말고 태형과 눈빛 교환을 했다. 호석은 00과 낯선 남자가 나간 문을 빤히 쳐다보다가 강아지마냥 그르릉대는 태형과 지민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 명했다. 정국은 연신 뭐예요? 누구예요? 해댔고, 형라인들은 친구겠지 하면서도 불안한 건 감출 수 없었다. 아, 진짜. 뭔가 뺏긴 느낌이란 말이야! 00이 자신들 것은 아니었으나, 그 남자가 00을 앗아간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형, 저 남자 누구래요?"
"내가 어떻게 알아."
"헐? 매니저라는 사람이 막 낯선 사람이랑 자기 가수랑 둬도 되는 거야? 너무 무책임하잖아요!"
"00이가 너네랑 같냐. 알아서 잘하는 애야. 남자 친구 만들 애고 아니고, 남자 친구래도 행동 잘할 거고. 시끄러우니까 빨리 먹기나 해."
"이씨."
*
"막 나가도 돼? 너 아이돌이잖아."
"난 사람 아니냐. 그리고 우리팬 극성 아니야."
"언니, 누구예요?"
"친구야, 친구."
"그 오빠가 더 아깝다!"
"너무하네!"
"00아, 오빠한테 시집 오기로 했잖아!"
"친구라고요!"
음. 제 가수를 닮아 팬도 제정신이 아닌 걸까. 00의 친구 윤혁은 생각했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건 00이나, 00의 팬이나 똑같다고. 계속해서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는 탓에 귀가 피곤해지는 기분인 윤혁은 00의 입을 막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어떻게 가수가 팬을 이겨먹으려 하고, 팬이 가수를 이겨먹으려 하지. 생각했던 것과 다른 환경에 조금 당황한 것도 잠시, 00은 주문까지 끝내고 윤혁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왜 온 거야?"
"나 곧 유학 가서."
"어디로?"
"유럽 어딘가겠지. 5년 정도 갔다 올 생각이야. 그동안 한국은 쳐다도 안 볼 거고."
"으음, 그럴 것 같아."
갑자기 친구를 못 본다는 말에도 00은 당황하지 않았다. 담담한 반응에 윤혁도 놀라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마지막으로 보는 거야. 5년 후에 보는 거지, 그리고. 앞에 있는 쿠키를 집은 윤혁은 쿠키의 부스러기가 떨어질까 한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생각하던 00은 눈을 빛냈다. 어마어마하게 낭만적인 재회일 거야, 그건. 00의 말에 쿠키를 꿀꺽 삼킨 윤혁이 인상을 썼다.
"여자 친구한테 5년만 기다려 달라고 하면 너 같은 반응이냐?"
"여자 친구 있어? 미쳤네."
"군대보다 더 긴데, 나 미친 거야?"
"어. 지금은 울고 불고 하겠지만 나중에는 마음 식는다? 그 여자애가 기다린다고 해도 못 들은 척해. 나중에 다른 남자 생겼다는 얘기 듣는 것보다 비참할 순 없을걸."
"아니지. 아예 연락을 안 하겠지."
"잘 아는 애가 그래?"
유학 간다고 말하려 온 게 아니라 그냥 걱정거리 상담하러 온 거였네. 여자 친구가 얼마나 중요하면 택배 기사 분장까지 하고 아이돌 친구 만나러 와. 이래서 아들 키우는 보람이 없다고 하는 건가. 잠시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00이 빨대를 물고 죽 늘어졌다. 윤혁은 00의 앞에서 한 번도 흥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항상 진중하고 신중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윤혁의 앞에서면 00도 한없이 차분해졌다. 그 차분함이 옛날에는 참 당연했던 거였는데. 오랜만에서 만나서인지 멤버들의 분위기에 적응이 되어버린 건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 00이었다.
"이리 와. 가기 전에 안아 보자."
"언제 출국이야?"
"오늘 저녁이니까 오지 마. 오늘 만난 것도 네가 공항까지 올까 봐였어."
"그래. 뽀뽀해도 돼?"
"꺼져. 징그러워. 그냥 5년 뒤에 만나."
"연락받아. 안 받으면 네 본가 찾아갈 거야."
"무서워서라도 받아야겠네."
윤혁이 00을 가볍게 들었다가 놨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파파라치가 있나?"
"파파라치? 있지. 그런 기자들."
"……뭐, 그래."
윤혁은 조금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00을 감은 팔을 풀었다.
11. 열애설
"인간적으로 남자 친구가 있었으면 우리한테 말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남자 친구? 무슨 소리야."
"지금 누나 열애설 났어요. 아까 그 사람이죠? 택배 기사로 위장했던 사람. 아무리 그래도 남자 친구가 있었으면 말을 해 줘야죠. 솔직히 나 배신감 느껴요."
"내가 열애설이 났다는 거야? 아까 그 친구랑?"
"네. 카페에서 안는 사진이랑 같이요."
"……좋아. 해명해도 되지? 걔는 정말 내 친구고 안았던 건 걔가 유학을 가기 때문이야. 진짜 염병할 시스템이다. 어떻게 회사랑 상의도 없이 내. 기사를 개좆같이 올리네?"
남준이 움찔하는 것도 보지 않은 채 00은 급하게 회사로 갈 채비를 마쳤다. 소파에 대충 던져져 있는 코트를 입고 회사로 갔다. 망할 회사는 아예 피드백을 하지 않을 작정인가? 어떻게 당사자를 안 불러. 일단 급한 불씨부터 끄기로 한 00이 택시를 잡고 SNS를 접속했다. 이런. 난리도 아니군. 쯔쯔, 혀를 찼다. 다행히 욕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불쾌한 말투의 사람들은 있었다. 물론 방탄소년단의 팬은 아닌 사람들이. 하여간 진짜 별것들이 참견한다니까.
00은 뚱한 표정의 셀카를 한 장 찍고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그 사진과 함께 [지금 회사 가는 중. 친구랑 포옹 한 번 했다고 열애설이 터지다니, 저도 이만큼 인기가 있는 걸까여. 아무튼 안심하세요. 사실 저도 열애설을 방금 확인해서 매우 안정이 안 되는 상태이긴 하지만요. 결론은 저 아무랑도 안 사귀어요.] 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팬들의 속도는 빨랐다. 대부분 얘가 그럼 그렇지, 하는 반응이었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네. 내가 어디가 어때서. 빼액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00은 참았다. 그리고 자신의 담당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수가 먼저 회사에게 전화를 걸다니. 쯧.
"열애설 때문이라면 아닌 거 아니까 끊어."
"……이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런 게 어디 있어! 나 지금 회사로 가고 있는데!"
"누가 오래? 기자 이 미친놈이 회사랑 상의도 없이 냈어. 이거 지금 결투 신청인 거니?"
"그런 듯. 그럼 저 숙소에 있으면 돼요?"
"어. 너 피드백한 거 봤어. 몇 분 있음 기사 낼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애들 징징대는 거 컨트롤할 수 있지?"
"음. 네. 징징대는 건 아니에요. 우리 애들 너무 애 취급하지 마세요! 이래봬도 다 성인이라고요."
"막상 제일 애 취급하는 건 너잖아."
"아, 들켰나. 그럼 저 숙소에 있을게요. 끊어요, 언니."
SNS 해명글을 봤으려나. 00이 멤버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야 할 생각에 머리를 감싸쥐었다.
첫 열애설이라니. 태평하기만 한 제 친구 윤형이 조금 괘씸하기도 했고.
12. 괘씸죄
"누나, 누나, 누나!"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
"맞아요."
"진심으로 식겁했었어요."
"남자 친구라니. 난 네가 그럴 줄 몰랐다."
"아니라잖아요. 얘가 뭔 남자 친구야."
"그 기사가 진짜였다면 누나랑 절교할 뻔."
멤버가 많으면 많을수록 시끄럽다. 어쩌면 7명으로 구성된 팀들은 다 시끄러운 걸지도 모른다. 블락비, 비투비, 인피니트, 아이콘 등. 상상만 해도 피곤해진다. 각자 한 마디씩만 해도 소음이 되어버리니 그냥 입을 다물게 해 주고 싶다고 생각한 00은 저리 가라며 손을 마구 휘저었다. 그럼에도 석진은 남자 친구가 있으면 안 좋은 점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 주기 시작했다. 남준은 아까의 억울함과 서운함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윤기는 피식피식 웃으면서 00을 비웃었다. 쟤가 뭔 남자 친구야. 태형과 지민, 정국은 역시 그렇죠? 하고 맞장구를 치기까지 했다. 호석은 막내 라인의 재롱에 으하하학 웃어댔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하, 젠장.
"야, 조용히 해 봐."
남준이 말했다. 그러나 조용해지지 않았다.
"아, 조용히 해 보라고!"
……조용하군. 마음에 들어.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가 괘씸하잖아?"
"입 안 다물어?"
"잘 들어요, 누나. 누나가 죄를 씻을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어요."
"아니 내가 무슨 죄를 지었…… 하. 그래. 들어나 보자. 뭔데."
"치킨시켜 줘요."
Pardon? 00이 귀를 만지작댔다.
"오, 그거 괜찮다."
"김남준 웬일로 머리 썼냐."
"누나 전 프라이드요."
"전 양념이요."
"전 둘 다 상관없어요!"
"순살로 시켜. 뼈 바르기 귀찮아."
"에이, 치킨은 뼈거든요?"
아. 시끄러. 시끄러 죽을 것 같다. 귀찮다. 그냥 조용히만 시키자. 아. 짜증 나. 00은 조용히 치킨집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진짜 염병할. 짜증 나. 악.
13. 이상형
"실례지만 시간 있으신가요?"
"네, 뭐. 혹시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 건가요?"
00은 꽤나 여우 같은 면이 있었다. 뻔히 작업을 것임을 알아채고도 모르는 척하는 모습은 정말 자연스러워 남준은 와 감탄했다. 태형도 갑자기 나오는 영어에 당황하다 꿀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외국인 남자의 눈빛에 눈만 꿈뻑꿈뻑거렸다. 형, 저거 누나한테 작업 거는 거 맞죠? 어, 그런 것 같아. 몸이 먼저 나서는 태형이 남자와 00을 갈라놓으려 했지만 가만히 있으라는 00의 눈빛에 깨갱 주춤거렸다. 결국 멀리서 보는 수밖에. 다른 멤버들은 자전거와 보드를 타고 이미 슝슝 달리는 중이었다.
"아뇨. 그건 아니고요.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요. 여긴 왜 온 거예요?"
"형제들이 자전거나 보드 타는 걸 좋아해서요. 저는 못 타지만요."
"시간이 된다면 가르쳐 주고 싶네요. 저도 자전거나 보드를 좋아하거든요."
"좋은 취미 생활을 가지셨네요."
아마 남자는 친구를 따라 이곳에 왔을 것이라고 00은 생각했다. 저기 두 남자가 자신과 남자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으니까. 다른 때 같았으면 철벽을 치고도 남았을 00이 왜 저렇게 잘 받아 주는지 남준과 태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훤칠하고 훈훈하게 생기긴 했지만, 보통 안 저러는데. 이상했다. 태형이 말려야 하지 않냐며 찡찡댔다. 남준은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하면서 가까스로 태형을 달랬다.
"사실 친구들이 '당신의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제 친구들에게 천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요.' 라는 멘트를 써먹으라고 했어요."
"푸웁."
"……엥? 왜 웃어요? 저게 뭔 뜻인데요?"
"쉿."
"푸핫, 전 그럼 못 들은 척했을 거예요."
"오, 그 멘트를 안 하길 잘했네요. 음.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싶어요. 괜찮으시다면 전화번호를 주지 않으실래요?"
"미안하지만 전 이곳의 가수라서요. 댄스가수요."
"아아, 아쉽네요. 실례했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네. 저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남자와 끝까지 예의를 차린 대화를 한 00이 남준과 태형이 앉아 있는 벤치 옆에 앉았다. 태형이 흥, 삐친 척을 했지만 00이 머리를 태형의 어깨에 기댐으로 태형은 다시 히 웃었다. 쯧. 단순하기는. 남준은 바보같이 웃는 태형의 볼을 툭 치고 00에게 물었다.
"웬일로 작업을 받아 줘요?"
"아, 저 사람 내 이상형이거든."
"……네?"
"네에?"
태형이 놀라 움직이는 바람에 머리가 덜컹거렸다. 아. 좀 가만히 좀 있어 봐. 태형은 입술을 쭉 내밀어도 어깨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덕분에 00은 다시 안정감 있게 머리를 기댈 수 있었다.
"누나 이상형이 없다고 했잖아요?"
"느낌이 좋은 사람이 곧 이상형이지. 느낌이 좋아서."
"……허얼……. 이거 일부러 저희 놀리는 거죠? 그거 거짓말이죠?"
"너네도 내 이상형이나 마찬가지야. 느낌이 좋았으니까."
윽. 의도치 않은 심쿵이다.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것도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새벽 하늘을 보며 듣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란.
"이제는 내 사람이라고 해야겠지, 너넨."
"……."
"애들 오나 보다."
두 사람의 심장을 의도치 않게 흔들어 버린 00은 일어서 기지개를 피는 게 다였다.
14. 좀 쉬자는 뜻으로 인터뷰
에디터_ 혹시 멤버들이 서로 질투할 때 있어요? 노래 파트에 대한 질투도 괜찮고, 다른 팀에 가 있으면 '우리 멤버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던지요.
슈가_ 그런 건 없고, 그런 건 없는데. 애들이 그렇게 00이와 저의 사이를 질투해요. 자꾸 둘이 있는다고.
00_ 말이 조금 이상하잖아요. 정확히 말하면 작곡을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그리고 질투가 아니라 제가 작업실에 가면 숙소에 잘 안 가거든요.
슈가_ 그게 질투 아니야?
진_ 너는 가사를 쓴다는 애가 어떻게 이해를 못해.
지민_ 김태형(뷔)보다 심각하네요.
제이홉_ 순간 진짜 놀랐어요. 저 형이 드디어 미쳤구나 싶어서.
슈가_ 뭐?
랩몬_ 근데 그건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누나 같은 경우는 정말 '우리 팀이야!' 하는 게 있어요.
뷔_ 맞아요. 이제 누나가 다른 분들이랑 있을 때마다 실세 정국이가 출동하죠.
정국_ 저요?
00_ 정국이가 해맑게 "누나 왜 거기 있어요?" 하면 그냥 끌려가 줘야겠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렇게 잡혀서 살아요. 공경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우리 막내 정국이.
정국_ 양꼬치 사 주면 공경은 생각해 볼게요.
슈가_ 거기 가요, 거기. 강남.
정국_ 맞아요. 거기 맛있어요. 사실 거기밖에 안 가 봤어요.
15. 누나는 우리 팀이에요
"누나."
"어, 정국이."
"올, 전정국. 키 더 컸다?"
"누나나 내놔요."
"000 잡혀사냐?"
"내가 이렇게 살아요."
"야, 우리 00이거든? 못 줘."
정국이 비투비 멤버들을 빤히 바라봤다. 줘요. 성재는 00을 꽉 끌어안고 정국을 장난스레 째려봤다. 싫어. 정국은 눈을 돌려 00을 쳐다봤다. 이리저리 끌려다는 게 여간 귀찮은 표정이다. 왜 외간 남자 품에서도 편하게 저러고 있는지 불만이다. 정국의 한쪽 눈썹이 삐축삐축 올라갔다. 성재는 정국을 제대로 약올릴 작정인지 꼭 안아 부둥부둥까지 했다. 흔들리는 00은 눈을 감은 채 잠을 청하려 했지만. 성재의 가슴팍이 좀 편했어야지. 자신을 거의 인형쯤으로 생각하는 성재이기에 00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정국에게는 많이 거슬린 게 문제였다.
"누나 놔요, 빨리."
"김태형은 어디 갔냐?"
"말 돌리지 말고요."
얘는 반응이 바로바로 와서 귀엽단 말이야. 성재가 킥킥 웃었다. 성재의 중얼거림을 들은 00이 발로 성재의 다리 어딘가를 걷어찼다. 저 어린 애 놀려서 뭐 할래.
"아가나 이겨먹으려고. 물론 너도 어리긴 하다만."
"재미있잖아요!"
"퍽이나. 가자, 정국아."
으음. 정국의 눈썹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먼저 내민 손도, 아가라고 칭하는 모습도. 뭔가 마음에 안 들어. 정국은 오기로 00의 손을 잡지 않았다. 00은 허전한 느낌에 응? 하고 뒤돌았다가 아, 하고 파악했다. 삐쳤다. 정국이 삐쳤다. 정국이 조용하게 대기실로 들어갔다. 지민이 우쭈쭈해 주는 것도 무시하고 정국은 무작정 눈을 감았다.
"누나 정국이 왜 저래요?"
"삐쳤어."
"에? 왜요?"
"성재가 놀렸거든."
"뭐라고 놀렸는데요?"
"그냥 나 안고 주기 싫다 그런 거지 뭐."
"걔 또 그랬어요? 육성재가 누나 안는 건 저도 싫어요!"
그래. 그렇겠지. 00의 미지근한 반응에 지민이 기분 전환을 해야겠다며 태형을 찾았다. 00은 피곤함에 눈을 감다가 정국의 옆을 차지하고 눈을 감았다. 자연스레 정국의 어깨에 머리를 가져다댔다. 눈만 감고 있었던 정국은 먼저 다가와 준 00을 보고 손을 덥썩 잡았다. 나름 둘의 화해 방식이었다.
"미안해."
"……어린이 대하는 것 같은 말투나 좀 바꿔 줘요."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애한테 그럼 뭐라고 해. 오빠라고 불러?"
"그거 괜찮네요."
"손 물어 버린다."
"죄송해요."
훈훈한 이 둘을 보기 아니꼬왔던 지민과 태형은 카메라를 들고 괴롭혀 00은 윤기 옆으로 이동하는 걸로 끝났다.
16. 누나는 우리 누나예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은 뭐게."
"뭔데."
"오빵!"
"What the……."
동생들만 잔뜩 있는 자신의 팀과는 다르게 옆동네만 가도 오빠들이 한가득인지라 팀에서 나오기만 하면 00은 유독 애교가 많아진다. 이렇게 지호한테 가서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지호가 처음에는 기겁하면서 안 받아 주는 척해도 나중에는 귀여워 죽으려고 하니까. 땀냄새로 질식사할 것 같은 순간에 00이 와서 오빠~ 하면 블락비 멤버들은 널부러져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반기곤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멤버들은 무척이나 심기 불편해 하고.
"아, 나 이거 보여 주려고 연습했다?"
"뭐. 어떤 거."
"지코지코니~ 다메다메~"
"……."
"……흫."
"으하하하하학. 겁나 귀여워."
아, 뿌듯해. 블락비 멤버들이 빵 터질 때면 항상 00이 자랑스레 웃는다. 그러다 몰래 탁자 위에 놓여진 초콜릿도 먹고, 빵도 먹고, 밥도 먹고……. 아. 이 사탕 진짜 맛있다. 냠냠대던 00을 모르고 찾아대는 멤버들은 친한 사람 대기실을 휘젓고 다니기 마련인데, 오늘의 당번은 지민이다. 재효는 00에게 대기실 문쪽에 있는 지민을 가리키고 손에 초콜릿을 수북히 챙겨 준다.
"……오빠 저 보내는 거예요?"
"쟤 팔근육 장난 아니야. 무서워."
"오빠 오빠 맞아요? 어떻게 저 아가한테 쫄고 그래."
"누나!"
"빨리 가. 내일 또 오고."
"넹."
초콜릿은 얻었으니 뭐. 손을 흔들어 주는 블락비에게 똑같이 손을 흔들어 주고 지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누나 어디 있었어요? 조금 심통이 난 지민의 목소리에 00은 어깨를 으쓱이고 답했다. 블락비 대기실. 00의 여유로운 모습에 지민은 가만히 생각하다 자신과 00을 쳐다보고 웃고 있는 지호에게 다가가 말했다.
"누나 내 거예요!"
"얼씨구? 000이 왜 네 거야."
"몰라요. 내 거예요. 훔쳐가지 마세요."
"헐, 이놈 좀 보게. 야, 000. 선택해. 나야, 박지민이야."
지호의 물음에 00은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였다. 92년생이나 95년생이나 철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00도 딱히 철이 든 건 아니었지만……. 확실한 건 저렇게 싸울 일은 없다는 거다.
"따지고 보면 000은 방탄 거지 네 게 아니거든?"
"저도 방탄이니까 내 것도 맞아요. 그러는 형은 블락비잖아요. 방탄이 아니니까 누나는 형 게 아니에요."
"나 쟤 어렸을 때부터 봤거든? 나 경이랑 크루 결성해서 믹스테잎 냈을 때 쟤가 피처링했거든?"
"누나랑 저랑 화음도 맞추거든요? 누나랑 저랑 언제나 같이 있거든요?"
"네가 000 사춘기 때를 보기나 했냐?"
"형이 누나 막 일어난 걸 보기나 했어요?"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네, 어째. 그러거나 말거나 00은 재효가 챙겨 준 초콜릿을 냠냠 까먹었다. 윽, 달다. 조잡한 단맛에 인상을 찡그리고 혀로 좀 녹인 다음 그냥 꿀떡 넘겨버렸다. 끈적하고도 찝찝한 기분 나쁜 느낌에 물을 찾자 지훈이 물을 건네 주었다. 감사. 반 정도 들어 있었던 생수병을 입에 갖다대고 원샷. 올. 지훈은 그 모습이 또 박력 있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000이 나한테 오빠라고 부르고 애교도 부려 준다? 넌 그런 적 없지? 없지?"
"……."
"할 말 없지?"
"……아. 진짜."
"그만하고 가자, 지민아."
단언컨대 지금 지민은 삐쳤다. 지호는 승리의 웃음을 지었다. 어휴. 둘 다 아이 같아서야. 지호에게 말로 졌다는 게 상심이 큰 지민이 한숨을 푹 쉬었다. 00은 그런 지민의 손을 잡고 초콜릿을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대기실을 나가려 했다.
"누나는 우리 누나예요!"
00은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가 이 팀에 있었더라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17. 서열 8위잖아
"아까 복도에서 소리지른 거 박지민이죠?"
"응. 고음 담당 아니랄까 봐."
지민의 외침이 조금 떨어져 있던 방탄소년단의 대기실까지 들렸던 모양이다. 호석은 의자에 쓰러지듯 앉는 00의 어깨를 주물렀다.
"야, 박지민."
"네?"
"왜 누나가 네 거야."
"형 거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엄연히 '우리'라고 했어요."
"지호 형이랑 싸웠다는 거 들었어. 누나가 네 거녜, 내 거녜 하면서. 누나가 네 소유물이야?"
"……아, 나한테 왜 이래요."
"그래, 인마. 예의 없게 어디서 내 거 소리를 하고 있어."
"심했네요, 형."
"맞아. 심했다. 누나, 괜찮아요?"
서열 8위의 삶은 고달픈 법이다. 00은 멤버들의 말을 듣다가 하품을 하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