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H CRUSH !
01
태일/재현/민형
어우 답 없는 새끼. 핸드폰 홀더키를 눌러 환했던 화면을 잠갔다. 정재현은 저렇게 씨알도 안 먹히는 개소리를 어떻게 유치원 꼬꼬마 시절부터 꾸준히 지껄이는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내가 지금 초중고 12년 플러스 대학 2년을 뼈빠지게 공부한 수학을 무려 내 개인! 학생한테 처음 가르치러 간다는데 응원을 해줘도 모자를 판에 어떻게 내 돈으로 자기 배 부를 생각만 하는지?(울컥) 이래서 친구는 잘 사귀어야된다고, 어른들 말씀에 틀린 말 하나도 없다.
“아 뭐야, 10분도 안 남았잖아!!!”
한참을 덜컹거리다 멈춘 지하철에서 내렸다.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 내가 냅다 지른 소리였다. 순간 집중된 사람들의 시선이나 30분 동안 공들여서 고데기 한 머리는 중요한게 아니란 말이기도 했다. 다섯시 반까지 가야하는데 다섯시 이십분이면, 뛰는게 답인 것 같다. 가방을 고쳐 맨 후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 인파를 뚫었다. 죄송합니다, 먼저 지나갈게요오..! 를 반복하며 미리 답사한 길을 따라 달렸다. 오늘은 절대 늦으면 안된다는 사명감이 뇌리에 깊게 박혀있었다. 같은 과 선배를 조르고 졸라 따낸, 과외비가 어마어마한 이득 곱하기 이득의 엄청난 알바였기 때문이다. 이거 깨지면 난 또 편의점으로 돌아가야 해…. 그건 끔찍했다.
“아 죽겄네 진짜..”
단숨에 과외 학생이 산다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와 주소에 적혀있던 34동까지 뛰어왔다. 여기까지 뛰어오는데 딱 5분이 걸렸다. 3번 지각하면 F를 주겠다던 악명 높은 김교수의 수업에 간당간당 했을 때보다 더 열심히 뛴 것 같기도 하다. 대충 숨을 고르며 인터폰을 눌렀다. 심장이 팔딱팔딱 뛰다 못해 춤까지 출 기세인게 내가 방금 전력으로 달려서인지 곧 과외 학생을 만난다는 생각에 긴장해서인지 모르겠다. 그저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정리 하는데, 인터폰에서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머, 선생님이세요?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
-문 열어드릴게요~
아, 마사카. 완전 떨려. 착하게 살테니까 오늘 제발 실수 안하게 해주세요. 속으로 빌고 또 빌며 힘겨운 한발짝을 뗐다. 너무 긴장되서 정재현이 보고싶을 지경이다. 진짜 정신이 나갔나보다.
피치 크러쉬 !
01
“어머~ 선생님 너무 예쁘시네요~! 저희 애 수업에 집중 안되겠어요 호호.”
“아하하..아니에요..하하..”
집은 굉장히 넓고, 깨끗하고, 심지어 인테리어까지 완벽했다. 돈이 그냥 많은게 아니라 무진장 많은 비주얼이란 소리였다. 나는 그 넓고 깨끗하고 인테리어까지 완벽한 집 한 가운데 자리 잡은 푹신한 소파에 앉아 어색한 미소를 짓는 중이었다. 어쩜 소파 가죽까지…. 나도 돈 열심히 벌어서 우리 집 소파 하나 새로 장만해 드려야지.
“저희 애가 고3이라 평일엔 시간이 애매해서 매주 토요일에 길게 수업했으면 하는데..괜찮으세요?”
“저야 뭐 학교만 다니고 있어서 상관 없습니다!”
“그럼 하루에..”
가르칠 학생은 학원에서 지금 오고 있을거라며 5분정도 늦을 것 같다고 하셨다. 오히려 다행이였다. 어머님과 먼저 어색함을 풀고 있어야겠어. 그런 다짐을 하며 수업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몇시부터 몇시까지 할 것인지, 페이는 얼마로 할 것인지 뭐 그런 당연한 얘기들 말이다. 그러던 중에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내 첫 학생..!
“민형이 왔니~?”
“네, 다녀왔습니다.”
“선생님 오셨어. 인사해.”
쇼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ㅎr…나 너무 쭈굴미 넘치잖아..? 벌써부터 갑을관계에 굽신거리는 내가 한심해 눈을 질끔 감았다 뜨는 순간 딱 봐도 반듯한 자세로 걸어오던 남학생과 시선이 맞물렸다. 당황한 탓에 입술 새로 멍청한 옹알이가 튀어나왔다. 으억, 따위의 민망한 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이민형입니다.”
아니 잠시만…제가 수업에 집중을 못할 것 같은데요 어머님…?
“…너가 민형이구나..나는 김여주라고 해…!”
성적이 상위권이라고만 하셨지 무진장 잘생겼다곤 안하셨잖아요...
피치 크러쉬 !
01
민형이는 고등학교에 들어온 후 수학 개인 교사만 10명을 넘게 바꿨다고 한다. 애가 결단력이 강해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바로 바꿔달라고 요구한다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메아리 쳤다.(그런 섬뜩한 말을 웃으면서 하셨다) 이건 뭐 거의 너도 똑바로 안하면 바로 잘릴 수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의 정석을 세권씩 양쪽 어깨에 올려놓은 기분이었다.
“…”
“..”
그리고 바로 지금, 내 첫 학생(키포인트) 민형이와 단 둘이 민형이의 방 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시야에 잡힌 건 넓직한 책상이었다. 어색한 기류 속에 내가 방이 좋다고 하자, 민형이는 감사하다는 한마디만 짧게 남기곤 테이블 앞에 있던 의자를 끌어 내 앞에 멈춰 세웠다.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으며 녀석의 눈치를 봤다. 어머님 앞에선 순한 미소로 잘 웃던 애라 먼저 살갑게 말을 걸어 줄 것 같던 민형이는 내 예상을 깨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무표정으로 말이다. 내가 먼저 인사해야겠지..? 아부지..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우럭)
“만나서 반가워 민형아~”
“아, 네.”
“음.. 선생님은 스물 한살이거든? 너무 선생님이라 생각하지 말고 누나처럼 편하게 따라와 줘..!”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첫 멘트라고 생각합니다만?ㅎ 따지고보면 두살 차이니까 빨리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내 내뱉은 말이었다. 뿌듯한 마음에 방긋 웃으며 민형이를 바라봤다. 그래도 내가 먼저 웃으면 따라 미소를 지어줄거라 생각했는데 이 예상 또한 와장창 깨져버렸다. 아까 그 순둥한 눈매는 어디가고 잔뜩 날 선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괜히 주눅이 들어 열려있던 입동굴을 닫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딱히 걸리는 것도 없었다. 내가 눈만 깜빡이며 민형이를 바라보자, 놈은 바람 빠진 웃음을 낮게 한번 내보내더니 선생님, 하며 입을 열었다.
“편하게 따라가는 건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 선생님은 수업만 똑바로 하세요.”
“..응..?”
..얘가 지금 뭐라는..? 지금 내가 들은게 내 첫 학생(다시 강조하지만 키포인트) 민형이 입에서 나온 소리에요…? 오, 이건 정말 조금도 예상 못했던 상황인데? 벙찐 표정으로 민형이를 쳐다봤다. 너무 당황하는 바람에 말문이 턱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 망상 애인이였던 유시진 대위가 살아 돌아왔을 때도 이 정도로 벙찌진 않았다고.
“자기 일 똑바로 안하고 돈만 챙기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요, 제가.”
“나는 안 그럴걸..?”
“해봐야 알겠죠 뭐.”
[system: 김여주님의 멘탈이 붕괴됐습니다.] 나는 너 스터디 플랜 짜주려고 새 노트도 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수업하려고 펜도 새로 사고, 너 만나려고 새 옷도 사입고 달려왔는데 너는 어떻게 나한테 이런 비수를 꽂을 수 있냐..! 거울은 없었지만 내 얼굴이 거의 울기 직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니, 똑바로 말하자면 열이 올라 얼굴이 붉어졌을거다. 평소의 나라면 죽빵부터 나갔겠지만 지금은 참아야했다. 이민형은 수능을 여섯달 앞둔 예민보스 고3이였고, 난 돈이 필요한 비루한 대학생이니까. 까딱하다간 오늘이 이 넓은 집을 방문하는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고.
“선생님이 열심히 수업 준비 해올게..!”
“그건 당연한거구요.”
와 동네 사람들 쟤 말하는 거 좀 봐주시죠?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꾹 쥐었다. 참을 인을 세번 곱씹은지는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이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물론 누가봐도 억지라는게 흠이였지만.
“그래그래. 너 말이 다 맞아. 내가 너무 당연한 걸 말했다. 아하하~!”
민형이는 내 반응에 더더욱 얼굴을 굳혔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한숨을 내쉬는게 딱 봐도 이런 내가 귀찮다는 행동이였다. 야 인마, 나도 이런 내가 싫어...(입틀막) 돈 버는게 이렇게 힘들다고, 알아? 방에 발을 들이는 순간 돌변한 이민형은 계획에 없던 마상이였다. 괜히 담담한 척을 하며 흘러내린 옆머리를 도로 귀 뒤로 넘겼다.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는 민형이는 이 과외에 아예 감흥이 없는 듯했다.
“민형아.”
“..”
“너 혹시 내가 만만해 보이니?”
스터디 플랜은 개뿔. 계속 앉아있으면 멘탈만 나갈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방을 나가기 전 궁금한 마음에 물어본 말이었다. 충격에 정신이 나가서 저런 패기 넘치는 질문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정답이다. 내 말에 민형이의 고개가 다시 내쪽으로 향했다. 무심한 눈빛은 그대로였다. 대답만 듣고 나갈 사람처럼 가방을 들고 서 있는 내 모습에 잠시 혀로 입술을 축이던 녀석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사람 좋은 미소 말고, 조소. 뭐 그런 입꼬리 말이다.
“네.”
이런 대답과 함께.
피치 크러쉬 !
01
정재현에게 톡을 날린 후 먼저 치타폰에 들어갔다. 치타폰은 미자 탈출을 한 후로 정재현과 내가 즐겨 찾는 아기자기한 술집이였다. 태국 사람이 운영하는 가겐데 외진 곳에 있어서 사람도 많이 없고 가격대비 굉장히 괜찮은 곳이라 애용하는 곳이다. 절대 주인이 잘생겨서가 아니라고.
“여주 와써? 재혀니는?”
“좀 있다 올거에요.”
“얼굴이 슬퍼. 무슨 일이야?”
자리를 잡고 앉자 잘생긴 주인이 등장했다. 워낙에 단골이라 통성명을 한지는 오래였다. 내쪽 호칭은 텐 오빠였다. 단번에 내 구린 기분을 알아차린 오빠는 어눌한 발음으로 나를 달래주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멘붕을 겪고 온 나는 좀처럼 얼굴을 피지 못했다. 오빠 저 괜찮아요 라는 빈 말과 함께 소주 두병만 주문 했을 뿐.
“야 김여주.”
“아 왜 이렇게 늦게 와?”
“뭘 늦게 와. 엄청 달려서 왔구만.”
그 때 마침 정재현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큰 숨을 한번 들이마시는 걸 보니 정말 뛰어왔나보다. 정재현은 자연스럽게 내 맞은 편에 앉았다. 그러면서 텐 오빠에게 살갑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주는 뭘 시켰냐는 물음에 나는 대답대신 고개만 저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느라 진이 다 빠져 말 할 기운도 없다. 그냥 마시고 죽어야지.
“뭔데. 무슨 일인데.”
자주 먹는 안주를 주문한 정재현이 제 손으로 턱을 괴며 나를 바라봤다. 테이블에 엎드린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그런 정재현과 눈을 마주했다. 내가 만만해 보인다니. 이민형의 대답에 나는 또 등신같이 맞장구나 쳐주곤 녀석의 집을 나왔다. 어머님껜 다음주부터 정식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잘 둘러대고 나왔으니 걱정은 없다만, 걸리는 건 다음주부터 세시간을 얼굴 맞대고 있어야 할 이민형이였다. 이런 거지같은 상황에 내가 어떻게 수업을 하냐고.
“나 그냥 과외 엎을까?”
“미쳤네 김여주. 문구점 털 땐 언제고.”
“아 학생이 완전 이중인격이라니까? 엄마 앞이랑 뒤랑 성격이 완전 달라.”
소주 두병과 함께 정재현이 시킨 안주가 나왔다. 나는 의식의 흐름을 타는 듯 자연스럽게 소주병을 까며 몇십 분 전 내가 당한 모든 수치를 털어놨다. 건방진 쉐끼. 욕은 덤으로 말이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정재현의 반응이였다. 분명 꼴 좋다며 낄낄거릴 줄 알았는데, 도리어 애꿎은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나보다 더 성을 내는 것이였다.
“웃기는 새끼네 그거? 야 당장 엎어.”
“왜 이래, 아깐 미쳤냐고 하더니.”
“아 그건 몰랐으니까 그런거고. 말만 들어도 싸가지가 김여주 중2때보다 심각하잖아.”
“..싸우자는거냐?”
정재현의 고운 미간이 잔뜩 좁혀져 있었다. 턱을 괴던 손으로 눈가를 만지작거리던 놈이 한숨을 푹 내쉬는 걸 보면 어지간히 열을 받았나보다. 하기야 강철멘탈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며 살아 온 나도 탈탈 털리고 왔는데, 만사에 감수성 폭발해주시는 정재현이야 쉽게 열받을 스토리긴 하지.
“근데 너 완전 웃긴다 김여주.”
“뭐가. 왜.”
“나한텐 화 잘만 내면서 그 고딩한텐 왜 아무 말도 못하고 왔냐?”
다시한번 말하지만 정재현은 만사에 쓸데없는 감수성을 폭발시킨다.
태용 선배한테 죽어라 빌어서 따낸 과외이기도 하고. 이민형은 말 한마디로 내 모가지를 자를 수 있는 슈퍼갑이고, 나는 명문대 재학생이라는 스팩 한 줄만 소유한 슈퍼을이잖아 시바…. 납득 해야만 하는 내 말에도 정재현은 좀처럼 표정을 풀지 않았다. 나쁜년, 넌 그냥 내가 너무 편한거야. 그게 그렇게 속상한건지 붉은 입술이 쉬지 않고 툴툴댄다. 20년을 편한 사이로 지냈으면서 새삼스럽게 왜 저런담.
“이래서 열심히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너는 그 지랄 좀 자제 해. 너가 키우긴 뭘 키워.”
“또 또 말대꾸. 내 말에도 그냥 가만히 맞장구 ㅊ, 아!”
하여튼 매를 벌지 정재현. 테이블 밑으로 한번 걷어 차이고 나서야 입을 다문다. 혀를 쯧 차며 술잔을 들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 참 달았다.
피치 크러쉬 !
01
“야 넌 술 이제 그만 마셔.”
“왜!! 나 오늘 마시고 죽을거야!!”
“웃기고 있네. 너 술 취하면..”
정재현이 쉴 새 없이 술잔을 들고 위아래로 움직이던 내 손목을 잡았다. 빽 소리를 지르며 그 진득한 손길에서 벗어나려 손을 비틀었지만 오히려 더 꽉 붙들려 술잔마저 뺏기고 말았다. 정재현은 줄곧 나를 매섭게 바라보다 잠시 시선을 내리더니 말을 머뭇거렸다. 나 술 취하면 뭐. 벌써 옅은 취기가 올라 온 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답 없어.”
“죽을래?”
“사이다나 마셔 인마.”
정재현의 겁 없는 발언에 발끈하자 녀석은 곧 술잔을 내려놓곤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헤집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달랠때마다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이였다. 인정하긴 싫지만 술에만 취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하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정재현은 아까 잔뜩 열을 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환한 미소를 머금고 텐 오빠에게 사이다 한병을 부탁했다. 그런 정재현을 보며 술 향기가 남아있는 입맛을 다셨다.
그때 테이블에 올려뒀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정수정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눈을 두어번 꿈뻑이다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잔뜩 흥분한 상태로 유추되는 정수정의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내가 미간을 좁히자 맞은편에서 나를 바라보던 정재현도 덩달아 표정을 찡그린다.
-야 김여주!!! 너 내가 방금 누굴 봤는지 알아? 아니 내가 방ㄱ..”
“뭐?”
-(야 너 미쳤냐?!!?!) 김여주, 난데. (아 폰 달라고!!!) 별거 아니니까 그냥 끊어!!! (야!!!!!)
“..뭐야, 김동영? 여보세요?..야 끊었..”
뚝. 신호음이 끊기는 소리와 함께 통화 종료 화면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정확히 9초가 걸린 통화였다. 처음은 분명 정수정이였는데 끝은 김동영이였다. 뭐야. 같이 과제한다고 하더니 아직도 같이 있어? 정신이 하나도 없던 전화를 곱씹으며 까맣게 물든 핸드폰 화면을 응시했다. 누굴 봤길래 이 난리야.
“왜. 정수정이 뭐라는데.”
“몰라. 얘 아직도 김동영이랑 같이 있어.”
핸드폰을 도로 내려놨다. 내 주위에 정상인은 한명도 없구만. 전화를 받는 그 짧은 사이 텐 오빠가 갖다 준 사이다를 컵에 따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피치 크러쉬 !
01
“야! 너 미쳤어? 왜 폰을 뺏어?”
“너야말로 정신 나간거 아니냐? 정재현이 김여주..!”
“알아! 근데 김여주도 아직까지 술 취하면 문태일 그 인간 찾는거 너도 알잖아. 넌 정재현 생각만 해?”
“야 그건 문태일 그 형 보고싶다고 찾는게 아니라 나쁜놈이라고 욕 하는 거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수정에 버럭으로 맞받아친 동영이 제 큼직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마터면 수정의 자유분방한 입에서 문태일 이꼬르 금기어가 튀어나와 여주의 귀로 들어갈 뻔 한 것을 간발의 차로 막은게 그저 다행이다 싶었다. 수정과 과제를 끝낸 후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본 태일이 이 난리의 화근이였다. 한순간에 복잡해진 상황에 동영의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옆에서 계속 화를 내는 수정도 그 지끈거림에 한 몫 하긴 했지만.
태일이 돌아왔다. 이 사실을 여주가 안다면 당장 그 미운 얼굴을 확인하러 달려갈게 뻔했다. 아무리 일년 전에 헤어진 사람이라 해도 태일의 일방적인 부재였으니 또 다시 여주의 속을 쓰리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여주의 곁을 지키다 뒤에서 제일 힘들어 할 사람은 재현이겠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정수정 너 잘 들어. 김여주한테 절대 문태일 형 얘기 하지마.”
“김여주네 집 앞 카페에서 알바하는 거 못 봤냐? 우리가 숨겨도 두 사람 만나는 건 시간 문제야.”
“그래도 아직은 안돼. 너도 알면서 왜 자꾸 그러냐. 응?”
“..가서 화라도 내면 좋겠으니까 그러지. 김여주가 그 오빠때문에 얼마나..”
만나서 득이 될 사람이 절대 아니였다. 어차피 만날 운명이라면 그 순간을 늦추고 싶을만큼 아픈 사람이였다. 여주에게도, 재현에게도.
♡
말머리에서 볼 수 있듯이 태일 재현 맠둥이에게 사랑받는 글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동영이랑 수정이는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이에요! 그 외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에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