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찾아왔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는 내게 무심코 한 마디를 내던졌다.
방 끝에 동그란 창문 앞에서 벽에 기대 서있었다. 검은 넥타이에 검은 양복을 입은 그는 샹들리에와 결코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되게 친근한 말투로 다가왔다.
"누구야?"
"내가 누군지 말하면 바로 기억해 주려나?"
"...그럼 너는 날 아는거야?"
"응"
오랜만이야, 학연아
이런 곳에서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행운인지 불행인지 애매모했다.
나는 내가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는데 누군가는 나를 알고 있었다. 이 넓은 어둠 속에서,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만났다는거 자체만으로도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 나는 외로웠었구나.
그제서야 나는 심해였기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내 눈물을, 여태 울고있었다는 걸 알았다.
"여전하네 우는 거"
그는 내게 걸어오면서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서 내 가슴에 달았다.
'차학연'이라고 써져있는 명찰. 한 쪽 끝이 조금 부러지고 녹슬었지만 이름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네 이름표 찾느라 고생 좀 했어. 다른 애들꺼는 모여있어가지고 금방 찾았는데"
"다른 애들? 또 누가 있는거야?"
"있었지. 지금은 다 제자리로 돌아갔어"
" 어...디로?"
"하늘에"
우린 죽었으니까.
아, 그랬구나. 난 죽었구나
예상치 못한건 아니였다. 그냥 느낌 상 난 방황하는 영혼 그 자체였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뭘 해야할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는거 같았다.
죽은 사람은 자신이 죽은 줄 모른다고.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죽기 싫은게 사람이 아닐까.
"그래, 난 죽었구나. 그냥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는데, 직접 들으니까 새롭네"
"......"
" 이제야 조금씩 기억이 난다. 근데 죽을 때 기억은 잘 안나는거 같아."
"사람들은 원래 죽을 때 쇼크 때문에 그 기억은 못한대. "
"아 그렇구나. 어쩌면 그게 더 좋은건지도 모르겠네"
"...미안해 늦게 찾아와서. "
"아니야, 택운아"
"맞췄네. 내 이름"
"당연하지. "
비눗방울이 공중에서 터지 듯이 내 머리 속에서도 기억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너의 이름도, 나머지 내 친구들의 이름도.
"김원식, 이재한, 한상혁, 이홍빈...다들 잘있을까"
"다 잘 있어. 너만 기다리고 있어."
"그렇구나. 얼른 가야겠네. 가자"
"아냐,,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았어. 너 먼저 가야해"
"그래? 중요한 일이야?"
"응"
"알았다. 금방 올꺼지?"
"그래. 금방 갈께. 미련은 없지?"
"응. 이제 갈 수 있을 꺼 같아. 데리러 와줘서 고맙다."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 한 택운이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금방 갈테니 먼저 가라는 말에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내가 사람이 그립기는 그리웠나봐.
몇일을 여기서 헤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택운이를 고생시킨거 보면 오랜 시간동안 여기 머물러 있었던거 같아서 미안했다.
죽었다는 말이 중요한게 아니였다. 그냥 갈 곳이 있다는게 좋았다.
내가 악몽 속에서 깨어난 순간이였다.
*
차학연을 마지막으로 사실 내가 지금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은 끝이났다.
너는 우리를 이끌어주고 있으니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찾아 올꺼라는 내 믿음은 틀리지 않았던거 같아서 다행이다.
너가 여기에 오기까지 오래걸렸던건 아무래도 너를 앞에서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게 아닐까, 항상 너에게 기대고 있었던거 같아서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리는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울면서 들어오기는"
학연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너무 변한게 없어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나는 그가 간 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동그란 창에 가서 벽에 기대 섰다.
너희들과 마지막으로 지냈던 방.
아직도 내 눈에는 위를 올려다 보면 우리들이 떠들고 놀던게 기억이 난다.
다른 친구들이 가지고 있던 짐들은 내가 서있는 바닥에 떨어졌는데 내 짐은 아직 바닥에 붙어서 내 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 미련이 남았기에.
배가 뒤집어지는 순간 나는 이들과 다른 곳에 있었다.
마지막 순간 까지 너희들과 같이 있어주지 못한게 너무 서럽고 미안했다.
또 다른 나는 아직 산소호흡기를 끼고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는걸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산 사람들은 살아가야한다는 말이
내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들어왔다.
차마 방황하고 있는 내 친구들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명, 한 명 다시 이 방으로 모았다.
아직 죽지 않아서 그런지 영화처럼 내 머리속에서 그 장면들이 새겨졌다.
죽어가는 순간 모든걸 기억하는 건 나 하나로 충분했고, 너희들은 행복한 기억만 기억해도 충분했다.
살아있는게 무슨 죄냐고 말하는게 들려왔다. 아마 가족들이 말하는 거겠지.
죄는 아니여도 적어도 옥이였다. 나를 옭아매는 옥.
나는 여기서 나가기 위해 아직 할 일이 많다. 계속 찾아 해메일 것이다. 흩어진 모든 사람들을.
나의 순서는 맨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장미빛 고래입니다
변명을 하자면 1개월 동안은 정말 바쁜듯이 지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아침에 눈을 뜨고 한 번 감으면 어느새 밤이였습니다. 새내기라 눈코 뜰 새없는 한 달을 보냈고
여러분에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제 글을 기다렸던 분들께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
악몽이라는 글을 두 편에 걸쳐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학연이 시점과 택운이 시점이 있는 이번 편에서 많은 걸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학연이는 악몽이 끝났다고 믿고, 택운이는 다른 사람들의 악몽이 끝나는 순간이 나의 악몽의 끝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정말 그럴까요?
답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