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많이 놀랐지"
"...예"
푹신한 의자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시끄럽게 울리던 노래는 꺼졌지만, 지금 내 정신상태는 그 노래가 울릴때보다
더 피폐해지는것 같다. 그 원인을 예를 들자면, 그래. 지금 저기서 달그락 거리며 스스로 싱크대에서 물로 샤워중인
그릇들이라던가, 내 앞에 놓여진 잔 위에 혼자 물을 따르고 있는 물병이라던가.
" 저기요, 놀란거 보이시면 이거 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돼요?"
"응? 뭐가?"
"아니, 댁은 손이없어요 발이없어요. 물 같은건 좀 댁이 따라주시면 안되나요?"
"아아,그거. 내가 직접 따르고 있잖아"
이렇게.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던 남자가 손가락을 휙 움직이자 물을 따르던 물병이 식탁에
얌전히 자리잡았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좋아요. 이 모든게 꿈이라면 내 뺨이 이렇게 얼얼하진 않을 것 같으니..."
"맞아, 너 아까 진짜 미친년같더라"
"씨발"
"어,욕했다"
순진한듯 푸스스 웃는 남자에 머리뚜껑이 한번 더 열렸다. 아까 전, 문을 열고 처음 본것이 두발로 서서 다니는 강아지,
그리고, 둥둥떠서 .... 누워있는 수상한 남자. 그 광경을 목격하자마자 내가 한 행동은 내 뺨을
수차례 내리치는 것이었다. 난데없는 가학(苛虐)에 내게 밀려났던 남자가 급히 내 손을 잡았다.
뺨이 얼얼했다. 이것은 필시 현실이라는 이야기.
남자는 재빨리 집안에 들어와 강아지를 방안에 들여보내고는 둥둥 떠있는 남자의 손을 끌어 또한 방안에 집어넣었다.
둥둥 떠있던 남자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에도, 심지어 남자가 본인의 손을 잡아끌어도 절대 잠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박수가 절로나오는 시추에이션이다.
"..정체가 뭐요?"
"어..백수? 며칠전에 카페 알바면접을 보긴 했어"
"..아니 그딴거 말고.."
"그럼 뭐가?나에 대해선 설명할게 없는데...아,우리집 강아지를 소개시켜줄까?"
"..."
"얘가 보기에는 귀여워 보여도 성깔이.."
남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방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니니야~ 하며 활기차게 강아지를 불렀다. 뭐,씨발아. 거친 욕과 함께
방문을 열고.. 이전의 아까 그 강아지가 걸어 나왔다. 오,지져스 할렐루야...
"또 들켰냐? 아주 그냥 광고를 하고 다니지 그래?"
강아지가 나를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이내 강아지가 남자의 뺨을 내리친다. 남자가 맞고도 실실 웃는걸 보니 저것은 필시 솜망치이니라.
강아지가 다른쪽 뺨을 한번 더 내리치고는 식탁앞으로 뚜벅뚜벅, 두발로 잘도 걸어온다.
내 뺨을 다시만 치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야"
"...응?"
"너 어디가서 얘기하고 다니면 뒤지는거 알지?"
"....응?"
"어디서 이렇게 멍청한걸 데려왔어. 야, 너 내가 하는말이 개소리로 들리냐?"
"...응"
강아지가 내게 협박을 한다. 강아지가 어이없는듯한 표정을 짓는다.
강아지가…,
"니니야,근데 그 모습으로 말하면 되게 개소리같은 거 알지?"
남자가 여전히 헤헤 웃으며 정곡을 찔렀다. 강아지가 가볍게 그 말을 무시한다.
"야,너 옆집살지? 앞으로 어제오늘같이 시끄러운일은 없을테니까 이제 가봐"
아, 오늘일은 어디가서 미친년취급 당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조용히 하고. 강아지가 새초롬하게 말을 덧붙였다.
"..미친, 강아지가 말을.."
"야,너 왜 아까부터 나한테 하는 말은 짧냐?내가 만만해?"
어?만만하냐고. 강아지가 눈을 치켜떴다. 남자는 조용히 이쪽을 관음중이었다.
"니니야, 아무래도 그 모습으로는 조금.."
"넌 좀 찌그러져 있어,씹탱탱볼같은새끼야"
"응.."
강아지의 말을 들은 남자가 풀이 죽어 구석에 쳐박혔다. 강아지가 남자를 지나쳐 방에 들어가더니 이내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아지가 아닌 웬 남자가.
"오늘은 좀 편히 있고 싶었는데,시발. 변백현 이 또라이 새끼가 다 망쳤네"
이쯤되니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싶어졌다. 실없이 웃으며 본인을 쳐다보는 남자의 머리를 여러번 내리친 남자가
내쪽을 바라봤다. 내가 상황파악을 못하는 멍청이가 아니라면, 저 남자는 아마 그러니까, 내가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아까 그 강아지..인것 같았다.
"야,이제 좀 내 말이 말같을것 같냐?"
"..."
"이젠 아예 대답을 안하겠다는거야 뭐야"
"어..,그러니까"
"내가 아까 그 개새끼 맞고, 이 씹새끼는 물건 둥둥 띄우는 새끼 맞고,
안방에서 둥둥 떠서 쳐 자고 있는 새끼는 내 형이고, 뭐가 문제여서 그렇게 얼빠진,"
"...이 집은 미쳤고..."
하하,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조용히 내 뺨을 한차례 더 내리쳤다.
"....노래를 틀어둔 건 저기 형때문이고,우린 이 집 사람이 아니니까 오늘까지만 있을거야.
원래 변백현, 쟤는 시끄러운거 별로 안좋아하니까 노래도 아마 형이 오지 않는 이상 틀지도 않을거야.
애초에 형은 노래를 틀어야 잠을 자서 틀어놓은거고.."
앞으로 피해 줄 일 없다는 소리야, 이젠 알아 먹겠어? 남자가 아까보단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개로 변하는 남자와 고막이 찢어질정도로 노래를 틀지않으면 잠을 못자는 남자,
그리고 제일 수상해보이는 이웃남자.
우리 옆집에 아무래도 미친놈들이 들어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