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지호야. 난 너의 짝꿍 박경이란다. 너 참 얼굴이 하얗구나. 우리 친하게 지내자."
".."
예상한 대로 박경은 1교시도 시작하기 전에 잔뜩 어필하기 시작했다. 웃기는 녀석.
"너 낯을 많이 가리는구나? 하하. 괜찮아. 이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이 형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줄테니까. 나만 믿어."
허세 가득한 말투 뒤에는 어깨 동무라도 한 것이 분명했다.
별안간 무엇인가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유권은 무슨일인지 싶어 몸을 돌렸다.
"아야야.."
경이 어깨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지호가 밀치기라도 한 듯 했다.
목소리 큰 녀석을 필두로 반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야야, 다 닥쳐. 내가 잘못한거거든? 내가 책임지고 우리 학교에서 적응하게 도와줄거니까, 신경들 끄시고요."
혹시라도 경이 욱하기라고 하면 어쩌지 싶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역시 박경은 박경이었다.
금방 무슨 일있었냐는듯 호기심의 눈초리들을 향해 훠이훠이 손을 내젓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 유권은 몸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저기.. 방금 전엔.. 너무 당황해서.. 미안해.."
"에이에이. 친구끼리 뭘 그러시나. 별일 아냐 증말."
금새 또 사과하는 걸 보니 쟤도 신기한 애다.
왠지 박경이 금방 친해질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유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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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전학생은 경과 하루에 겨우 한두마디를 주고받는 건 이외엔 아무와도 교류가 없었다.
쉬는시간마다 몰려와 은근히 이것저것 물어대는 무리가 있었지만 입을 꾹 다물거나 엎드려 버리기 일쑤였고, 툴툴거리는 남고생들을 간신히 달래 돌려보내는 건 박경의 몫이었다.
"지호가- 어, 맞아, 한국말이 아직 입에 안 익대. 그래서 그런거야. 너네 무시하는게 아니라. 진짜로."
애쓴다 애써..
저렇게라도 지호의 마음에 들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경의 모습이 유권에게는 마냥 안쓰러우면서도 한심할 뿐이었다.
유권도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대체 왜 말을 안 하는 걸까.
섣불리 어깨동무하는 새친구를 거세게 밀쳐낸 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사과할 만큼 여린 아이면서.
왜 모두의 관심을 무시하고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도 않는걸까.
생각할 수록 이상한 애야.
관심을 가지는 것도 괜히 지는 기분이 들어
유권은 괜히 한숨 한번을 내쉬고 이어폰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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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가 전학 온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도 반 아이들과는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지만 경이와는 나름 인사도 잘 하는 것 같고 눈에 힘도 조금은 풀린 것 같다.
가끔 경이와 지호가 얘기하고 있을때 유권이 자리에 와서 앉기만 해도 대화가 뚝 끊기는 게 내심 신경쓰이는 터라, 유권도 나름대로 친해져 보기로 했다.
'그 까칠한 녀석하고는 어떻게 친해지는거지..'
친화력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유권이지만,
왠지 그 녀석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와썹 우죠. 이제 오시는가."
"안녕 경아."
그래, 사람이 인사부터 하면서 정이 오고가는 거지.
"안녕 우지호."
고개를 돌려 최대한 환히 웃으며 인사하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
적잖이 당황한 듯한 표정과 완벽히 다른 곳을 향하는 눈동자. 저건 확실한 무시의 표현이다. 무시당한거야!
"하..하하.. 우리 지호가 나, 낯 많이 가리는 거 알지 유권아! 괘괜찮아! 이제부터 친해지면 되지! 하하"
박경의 큰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이 상황이 더욱 처참하게 느껴진다.
괜히 쉴새없이 말하면서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저 오이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섣불리 친한척을 한 제 자신에게도 허탈할 뿐이다.
"김유권.... 병신 진짜..."
조용히 입안에서 되뇌인 혼잣말은 아무도 못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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