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전학생이 온 이후 여느 하루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집에 가도 아무도 없겠지.
피시방에 가자는 경의 말에도 끌리지 않아 결국 혼자 집에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 때 저멀리 유난히 하얀 얼굴이 눈에 보였다.
얼굴도 얄쌍해서 키가 저렇게 큰 줄은 몰랐네.
근데 쟨 저기서 뭐하는거야.
아, 찬스다.
불현듯 유권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이 복도엔 나와 우지호 뿐이다.
대체 왜 날 피하는지 이유를 따져 묻던가, 다시 한번 도전해 내일부터는 인사를 씹히지 않던가.
이 자리에서 결판을 짓고 말겠어, 라는 다짐으로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
"뭐해?"
".."
"뭐 찾는데?"
고개를 젓는다거나, 끄덕인다거나 하는 움직임도 없다. 심지어, 눈도 바라보지 않는다.
우지호는 아예 유권이 없는 사람인마냥 행동하고 있었다.
"어디 찾는데. 내가 알려줄게."
".."
환하게 웃고 있는 유권의 입에도 이제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대체 왜 대답을 안 하는거지?
"야, 대답이라도 좀-"
그 순간, 지호의 손목을 잡는 유권의 손이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아..맞다. 너 터치하는 거 안 좋아하지. 미안. 내가 실수했다."
유권은 애써 솟아오르는 분을 참으며 웃었고, 지호는 차갑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래도 도와준다는데.. 대답은 해주지 그래. 내가 뭐 너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능청스러운 말투로 장난을 거는 유권을 가만히 바라보던 지호가 내뱉은 말은 아주 짧고 강렬했다.
"꺼져."
"뭐?"
"꺼지라고."
하-
유권은 머리끝까지 번져오는 화를 억눌렀다.
떨려오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올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리고 싶지만, 후회할 행동을 하면 못쓰지.
"너 대체 왜 그러냐."
머리는 가라앉기는 커녕, 더 헝클어지고 말았다.
창문 너머 불어오는 바람에 검은 생머리가 흐드러졌다.
두 차례나 독설을 던지고 난 뒤에나 정신을 차렸는지 지호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유권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있었다.
한참을 입만 오물오물하던 지호는 잔뜩 빨개진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별안간 뒤돌아서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야, 야 우지호!"
또 무시당했다. 대체 왜 저러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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