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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방탄소년단 정해인 변우석 더보이즈 세븐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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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외모에 창을 곧잘 하던 계집아이가 있었다.

  윤 씨였는지 유 씨였는지, 여하튼 어느 양반댁의 소작농으로 태어난 아이는, 이따금 나가서 목소리를 팔고 식구들 먹을 쌀을 얻어오곤 했다.

  타고나길 미인이라 동네의 유명인사였던 아이가 더욱 그 이름을 떨친 것은, 그 작은 손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였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아느냐!!!”

“.......”

“천한 년이 감히 뉘 집 자식을.... 죽고 싶으냐??!!”


  지주 양반네 막내 도령이 아이를 희롱한다는 걸 그 댁 대감마님이 모를 리 없었다.

  피가 묻어난 돌을 들고 파르르 떠는 아이의 얼굴과 옷매무새가 엉망진창이었단 것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동네 사람들 모두가 알았을 것이다.

  부모조차 나서지 못했을 뿐이다.


“아가, 경성으로 가거라.”

“...어머니.”

“여기 남았다간 맞아 죽는다. 몰래, 아주 몰래 멀리 가거라.”


  그저 열 살 남짓한 딸의 손을 잡고, 새벽 일찍 동네 밖으로 쫓아낼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그렇게 아이는 고향을 떠났다.

  10리를 채 가지 못했을 때 즈음, 소녀는 어느 양반네 소작농 부부의 죽음을 들었다.

  울지도 못한 채 입술을 깨물고, 선 자리에 그대로 박혀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는 물어물어 경성에 갔다. 목숨만은 부지하고자, 팔 수 있는 모든 걸 팔면서 하염없이 걸었다.

  마침내 경성의 도로에 소녀의 발이 닿았을 때, 남아있는 것은 만신창이가 된 몸뚱아리와 목소리뿐이었다.


  경성에서 소녀는 ‘마사코’가 되었다. 

  글로리아를 방문한 사내들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옆에서 술을 따랐다.


  내지인, 조선인 가리지 않았다.

  웃음을, 노래를, 몸과 마음과 자존심과 젊음을 팔았다.

  그 빈자리는 돈으로, 술로, 담배와 공허와 고독과 추위로 채웠다.


“마사코.”

“예, 마담.”

“실력이 많이 늘었더구나.”

“...과찬이십니다.”

“내일은 혼자 무대를 하렴.”

“...예, 감사합니다.”


  수년이 지났을 때쯤, 마사코는 클럽의 근처에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살 수 있었다. 경성의 시끄러운 활기와 텁텁한 밤공기가 작은 창으로 넘어오는 곳이었다.

  목이 부어오르도록 노래를 부르고 술에 절은 채 방에 돌아오면, 마사코는 방의 등을 딱 하나만 켜고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경성은 추워.”


  여름에도, 겨울에도, 경성은 그저 추웠다.


  그렇게 끝이 붉은 담배 한 개비를 끝까지 다 태우고 나서야 마사코는 간신히 잠에 들었다.


  그렇게 또 수년이 흘렀다.



***



“그런 똑같은 날이었단다. 붉은 옷을 입고 노랠 부르고, 어두운 가운으로 갈아입고, 술에 찌든 채 방으로 돌아가는 그런 밤.”

 “...네에.”

 “불령선인 하나가 내 앞에 뛰어들었어.”


  흠, 하고 숨을 들이쉰 로라가 손에 들린 잔을 다시 입에 가져갔다.

  독한 양주로 벌써 여섯 잔째였지만, 눈이며 혀며 얼굴빛이며 조금도 평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다만 나는 재빠르게 손목을 털고 펜을 고쳐 쥐었다. 

  마담의 말은 느렸지만, 글로 쓰며 따라가야 하다 보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모르는 글자나 단어 앞에서 머뭇거리다 보면 한참을 뒤처지기도 했다.

  잘 따라가려면 아무래도 글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준비를 기다려주듯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로라는, 다시 펜을 쥘 때쯤에 맞추어 입을 열었다.


 “사실 별다를 것 없는 날이었지만, 모든 것이 아주 생생해.”

 “...이를테면, 어떤 것 말인가요.”

 “푸르게 빛나는 길바닥, 코를 찌르는 가스등 냄새, 흩어지는 발소리 같은 것.”

 “...사내였나요?”

 “그래. 눈이 밤하늘보다 검은 것이 아주 강렬했었지.”


  기억을 곱씹는 마담의 입술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저번에 말했던, 로라의 ‘미운 사내’가 그라는 것을.


 “눈이 참 반짝거리는구나. 그래,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지.”


  ...너무 무례했던가.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로라는 이야기를 잇기 전에 작게 웃었다.


 “그자의 눈동자는 밤새 날 맴돌았어. 범죄자와 마주친 것은 처음이라, 심장이 아주 빨리 뛰었거든.”

“.......”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런가요.”

“그리고 그 눈과는... 생각보다, 꽤 일찍 다시 마주쳤단다.”



***



  밤하늘 같던 그 눈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불안감에, 알 수 없는 긴장에 잠을 설치길 사흘.

  마사코는 영업을 준비하다 그 눈을 발견했다.


  마담과 꽤나 친한 듯한, 늘씬하게 불란서 양장을 빼입은 모던보이.
  모자와 두건에 가려졌었던 맨얼굴에 얇은 테의 안경을 걸친 모양이 준수하다 못해 아주 빼어나서, 클럽의 소녀들이 눈길을 떼지 못하는 남자였다.


  마사코는 저가 눈에 띄지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순사에게 고할 생각은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저 살아내기 바쁜 그녀에게 독립운동이란 것은 너무 어렵고 복잡한 일이었다.

  불령선인은 그저, 엮여 좋을 것 없는 과거의 인간들이겠거니. 결국은 노래하는 여인네에게 헤실거리는 하찮은 사내에 불과하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갈 길을 갔지만, 시선이 따라붙었다.

  노골적이지만 부드러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도 잘 아는 그 눈을 피해, 마사코는 재빠르게 스테이지 뒤로 숨었다.


  피해야 하나. 

  아니야, 범죄자는 그 자인데 내가 왜.

  여차하면 순사에게 고발하면 돼.


  그날 이후로, 그 남자가 밤이면 밤마다 진득하게 앉아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마사코의 안일한 마음가짐이었다.



***



  남자는 매일을 춤추듯이 살았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웠고, 나쁘게 말하면 한량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글로리아에 발을 들이고, 카드와 술이 흐드러진 테이블과 시끄러운 무리 사이에 끼어 앉아있는 사람이었다.

  클럽이 떠나가라 떠드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과묵하지만은 않아서 간혹 취하여 큰소리로 웃거나, 우스갯소리를 하거나, 직접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꽤 큰 판을 만들기도 했다. 

  돈이 어디서 나는지, 새벽이 다가올 때쯤 모든 값을 계산하고는 가장 안쪽 방을 통해 사라졌는데, 일행들은 거나히 취해 집에 들어갔겠거니 하고 좋아했다.


  아주 훤칠한 미남자이지만, 어딘지 허실거리는 데가 있는 한량 청년. 딱 그 정도의 인상이었다.


  그런 그가 유달리 취기를 걷어내고 아주 집중한다 싶으면, 여지없이 마사코가 무대로 올라왔다.

  항상 앉는 무대의 왼쪽 자리에서, 그는 어느 때보다 바른 눈을 한 채 빨려든 마냥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치 쉽사리 웃어주지를 않았다. 부러 얼굴을 굳히는 쪽에 가까웠다.


  마사코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실수로 눈을 맞추면, 그 눈동자의 깊이에, 처음 마주친 그날의 기억에 음이 삐끗거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간혹 친우와 이야기하며 웃음을 짓는 그를 흘끔거리며 무대를 내려가다 휘청거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니, 무섭게 바라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필사적으로 오른쪽을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하던 어느 날.


“...아 - ”


  그 날따라 조금 더 취한 것인지, 아니면 덜 취한 것인지. 

  어딘지 서글픈 미소를 지은 그와 눈이 마주치던 날, 마사코는 처음으로 무대에서 가사를 틀렸다.

  잔잔한 입꼬리와 눈의 잔상은 아주 깊은 밤까지 소녀를 달아오르게 하고 뒤척이게 했다.


  모른척하기에는, 이미 커진 지 오래인 마음.

  그 생경한 감정은 그제서야 겨우 정체를 밝혔다.


  첫사랑.

  닳도록 닳은 스무 살에 찾아온 첫 연심에, 소녀는 입술을 꾹 다물었더랬다.



*** 



“그리 미인이셨나요?”

“경성 제일가는 미남자라 하면 믿으련?”

 
  사르르 입꼬리를 올리는 로라의 얼굴은, 어딘지 수줍기도, 어딘지 앳되기도 했다. 보는 이의 마음마저 들뜨게 할, 그런 미소였다.

  이리 고운 이가 첫 연심을 품은 사내라니. 그 낯이 매우 궁금하였다.


“어떤 용모셨는지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아주 늘씬해서는 양장이 참 잘 어울렸어.”

“그리고요?”

“항상 같은 향수를 뿌리고... 안경을 꼈다 벗었다 했는데, 나는 끼고 오는 날을 더 좋아했지. 오똑한 콧대가 아주 잘 보였거든.”

“와아...”


  눈앞에 보이는 마냥 용모를 읊던 마담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과거를 짚어가는 눈동자가 서서히 깊어지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기억을 할 정도로 훔쳐보았으니, 어느샌가 싱어 언니들이 눈치를 주더구나. 슬쩍 옆에 가서 말을 걸어보라고 말이야.”

“그렇게 하셨어요?”

“못했지. 수줍은 것은 둘째치고, 어쨌거나 엮이면 큰일 나는 불령선인이기도 했고...”

“...아.”

“무엇보다, 글로리아 붙박이 주제에 여직원 시중만큼은 극도로 거부하는 사람이었거든, 그이가.”



*** 



  차마 숨길 수 없는 수준의 마음이었다는 것은, 굳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볼 거면 마담 통해 불러다가 옆에 앉히지 그러나.”

“...무슨, 그런.”

“자네 지금 본인이 어떻게 보이는지 하나도 모르는 눈치구만.”


  취기가 싹 가신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는 남자는 물론이요,


“가서 말이라도 붙여봐. 피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아니에요, 그런 거.”

“그런 게 아니긴. 얼굴이 이렇게 익어 놓구.”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뺨을 붉히며 도망치듯 피하는 마사코도 마찬가지였다. 

  예사 감정이 아님을 눈치챈 주위에서는 어떻게든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좋은 마음으로 나섰던 주변인들이 혀를 내두르며 손을 뗐을 즈음,

  마담이 나섰다.

  
“마사코.”

“예, 마담.”

“잠시 따라오련.”


  공연도 끝나고, 남자도 사라졌을 즈음 편한 가운을 입고 있던 마사코는 영문도 모른 채 마담의 뒤를 따랐다.


  가장 깊은 방, 굳게 닫힌 문이 열린 때에야,


 “...마담? 아무것도 부탁한 것 없 -”


  이 방이, 매일 새벽 남자가 조용히 사라져서 향하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담, 저는 - ”

 “귀한 아이입니다.”

“.......”

“글로리아의 주인이 될 녀석이에요.”

“.......”

 “귀히 대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럼.”


  쿵.


  마담이 방을 닫는 소리는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만 같았다.


  작은 방에 남겨진 두 사람.

  마사코는 뛰쳐나갈지 말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인지, 꽤 오랫동안 어색한 정적만이 흘렀다.


“...일단은, 그, 여기에.”


  축객령을 내리지도, 도망치지도 않는 남자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마사코는 습관적으로 객의 말에 따라 움직여 그의 옆에 앉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녀가 기계적인 웃음을 지으며 술병을 들었을 때,


 “...우리, 만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

 “서너 달 전쯤, 글로리아의 뒷길에서. 새벽달이 유독 밝았는데.”

 “.......”

 “아닙니까.”


  마사코는 놀랐다.


  초면에 존칭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꺼내지 않을 법한 일을 직설적으로 들이미는 그의 화법이 문제였는지.

  한동안 듣지 않았던, 묘하게 향수 어린 조선어라 그랬는지.


  틀어막힌 것 같은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길 몇 차례.

  입술을 축이느라 연지가 번진 것도 모른 채, 마사코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새벽에는 항상 취해 있어서.”
 
 “.......”

 “잘 모르겠습니다.”


  길고 고운 손가락을 뻗어 마사코의 손에서 술병을 빼간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채웠다.

  거짓말이 통한 것 같지는 않았다. 술잔 속 위스키에 비친 눈은 그 날 밤과 똑같았으니까.


  달그락.

  얼음이 담긴 잔이 놓이는 소리에 마사코의 팔엔 소름이 돋았다.

  앞에 놓인 황갈색의 위스키가 잘게 찰랑거리는 것이 꼭 떨리는 심장 박동과 맞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름이 어찌 되십니까.”


  모르고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이름도, 나이도, 하다못해 조선인인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사코는, 소녀이기 이전에 마사코였다.


 “마사코입니다.”

 “그렇군요.”


  남자는 제 잔을 들어, 마사코의 앞으로 내밀었다. 


 “제 이름은-”


  그의 입술 새로 빠져나온 이름은 클럽 친우들이 부르는 일본 이름과는 달랐다.

  그것이 유토였던가, 아니 유우토였던가.

  여하튼, 이렇게 가득히도 아름답고, 또 위험한 이름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은 유토라고 불러주십시오.”


  마사코는 말없이 본인의 잔을 드는 것으로 대답을 갈음했다.

  차랑, 하고 잔이 닿는 소리에 남자가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다 미소가 만들기 직전에 멈추었다.


 “내일도 공연이 있으십니까.”

 “내일은 다른 아이가 하는 날입니다.”

“...그렇습니까.”


  꼴깍.

  숨을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잔이 기울어지고, 불덩이가 두 사람의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혈관 끝까지 화끈거리는 느낌에 깊게 숨을 내쉬는 마사코를, 남자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일 저녁에도 와도 되겠습니까.”

 “.......”
 
 “공연이 없다고 하시기에.”


  마사코도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깊은 새벽보다 어두운, 눈동자.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예.”


  소녀는 결국 두근거리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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