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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모음

 


1

 

 

"어머니!"

 

 이리저리 혼잡해진 마당을 둘러보다 마루에 걸터앉아 흐느끼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하곤 상황파악을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이게 무슨일이예요, 어떻게 된거예요 어머니! 민석은 조용히 흐느끼기만 하는 어머니의 야윈 어깨를 잘게 흔들었다. 대답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방문을 여니 방안도 피차 마당과 같았다. 흐트러진 이부자리와 열려진 농의 문도 제가 없던 폭풍과도 같았던 전야를 모조리 보여주고 있었다. 횡망하고 쓸쓸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자 닦을 세도 없이 들려진 고개에는 앞으로의 어두운 미래가 비추어 졌다. 침을 겨우 삼킨 민석은 주위를 둘러보다 상황설명을 위해 입을 여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가로막았다.

 

"어머니,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집에 계세요."

 

" … 민석아."

 

 너는…. 너는 달려야 하지 않느냐.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굳은 표정에 의해 다시 들어가 버렸다. 낡은 집의 대문을 나서며 한층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코치님이 잡아주신 대회 일정을 되돌아 보고 연습을 마치고 온 후의 집안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치도 않은 제 자신이 원망스러워 가슴 한켠이 답답해져 왔다. 일장기를 가슴에 달지 않고 달려 보자는 코치님의 말씀에 제 유니폼에 손수 태극기를 달아주시던 어머니다. 국제대회에서 꼭 일등을 하여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다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는 마라톤의 유망주인 루한이 출전한다고도 했다. 어린시절 일본에서 건너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던 제 집 옆에 큰 저택을 지어 살던 그는 한순간에 동무에서 앙숙이 되어버렸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일본의 피인 그를 꺾어야만 했다. 적색으로 노을지는 하늘아래서 답답한 마음을 떨쳐내고자 달리고 또 달렸다. 조선총독부 앞에 멈춰서 다시 다짐했다. 내꿈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노라고.

 


2

대회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달리고 달렸던 날들을 고스란히 되짚었다. 무너져버린 희망을 잡아 일으킬 수 있는것 또한 나뿐이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을 꼭 꺾어야만 나의 집과 어머니를 지킬 수 있다. 가슴에 달린 태극기가 더욱 사무쳤다. 어머니… 꼭 먼저 들어오겠습니다. 그래서 제 나라의 건실함과 자국민의 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태극기를 손으로 쓸었다.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태극기… 검정 실이 모자라 얼기설기 짜여진 문양이여도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고개를 숙여 시작을 기다리는 찰나 내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나의 사랑스런 동생. 내 동무의 정혼자. 양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가 오늘따라 어수선해 보였다. 굳은 의지의 표정을 내비춘 민서는 내게 새하얀 운동화를 쥐어주었다.

 

" 오라버니… "

 

 누이동생의 눈가가 붉어짐에 따라 나는 고개를 돌려 그것을 외면하였다. 나또한 누이처럼 눈물이 고이면 뛸 때에 자꾸만 생각이 날 것 같아서였다. 고개를 돌린 그곳엔, 일장기를 자랑스럽게 가슴에 달고 웃고 있는 루한이 보였다. 답답하고 꽉 막혀오는 가슴이 마치 루한과 나의 사이를 대변하는 듯 했다. 어린시절의 동무는 사라지고 증오심만 남은 이곳에 나와 루한은 함께 서 있다. 처음 만나 함께 달리던 날, 좋은 신을 신지 못해 그만 져버린 기억이 떠올랐다. 누이가 건내주던 흰 신을 고쳐신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두번 다시 너에게 지지 않는다. 그리고, 너와 꼭 닮은 너의 조국에도.

 


3

시작을 알리는 총성과 함께 함성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로 집중됨이 느껴졌다. 그들 사이에는 나의 누이와 어머니가 서 있었다. 지난 세월, 힘든 나날들과 인력거꾼으로 내달리던 나의 모습이 어머니의 얼굴에 비추어 졌다. 이번 대회에서 루한을 꺾는다면…. 총독부 앞에서 다짐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내달리는 내내 나는 루한과 기싸움을 벌여야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때 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 사랑스런 누이동생과 늘 힘이 되주던 동무 종대…. 그리고 희망의 끈을 한줌 쥐고 힘겹게 버티는 나의 조국. 아름답던 옛 동산과 행복했던 그 시절들. 하나 둘씩 되새기며 숨을 참았다. 옆에서 루한이 치고 올라 올때면 이를 악물고 달렸다. 내 두 발을 감싸오는 이 흰 신을, 내게 이 신을 건내주던 누이의 눈물어린 고운 그 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짖밟힌 내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 되찾을 것이라 다짐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 헉,헉… "

 

 고지가 눈앞에 보였다. 시작 전 잘해보자는 루한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양 가로 터져나오는 소리와 그 사이로 숨죽인채 나를 지켜보는 내 가족. 나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던 내 조국의 사람들. 한숨 놓일 찰나 뒤에서 따라붙던 야마자키가 나를 밀어냈다. 비틀거리는 찰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내 앞으로 내달리면서도 나를 뒤돌아 보는 루한이었다. 다시 일어나 결승점을 향해 달렸다. 루한도, 나를 밀어붙였던 야마자키도, 저 위에서 지켜보던 일본놈들도 모두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단숨에 결승점에 도착해 제일 먼저 들어왔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누이, 내 조국의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나또한 눈물이 흘렀다. 땀과 함께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뒤이어 들어오던 루한은, 여전히 까져버린 내 무릎을 보고 있었다.

 

" 결과 발표가 있겠습니다! "

 

 소란스러움을 가르는 소리가 쨍하니 귓전을 때렸다. 어머니를 얼싸안은 팔을 풀어내렸다. 드디어, 나는 조국의 건재함을 호롱불 밝히듯 증명해냈다. 대회에서 태극기를 달고 금메달을 따 낸 것은 아주 보람찬 일이었다. 뿌듯함의 웃음을 보이는 어머니를 따라 웃었다.

 

" …에, 대회 결과가 바뀌었습니다. 김민석은, 부정행위로 인하여 실격처리… "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사람들 사이로 멍하니 서 있는 루한이 보였다. 다 니가 벌인 짓이지 않니?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신발이 벗겨지는 지도 모른 체 객석에 앉아있던 루한의 아버지를 향해 다가갔다. 말리려 달려드는 손들을 뿌리쳤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이런것이었소?

 

" 알면서 혼심의 힘을 다해 뛰었겠지. "

 

" … …. "

 

" 너로인해 벌어진 일이다. 저들이 보이지 않나? "

 

" … …. "

 

" 폭동을 일으킨 자들을 모조리 잡아라! "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4



" 어머니! 민서야!! "


눈앞에 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내 두 팔을 붙든 순사를 밀어내고, 내 모습을 바라보던 루한에게 침을 뱉었다. 너도 너의 나라도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가만두지 않을것이다. 나와 나의 동무 종대, 폭동에 가담했던 학생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는 모조리 끌려갔다. 재판이 있을것이라는 말에 조소를 흘렸다. 니놈들이, 간사히기 짝이 없는 네 나라가 우리에게 재판의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욕을 흠씬 받아야 될것이다. 나의 말에 끌려온 모두가 동의의 표시로 목청을 높였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수차례 두들겨 맞고서야 늦게 재판장에 들어 갈 수 있었다!.


" 대일본제국에 충성을 다하도록 하라! "

" 죽어도 그렇게는 못한다, 아니 안한다!!! "

한차례 폭동이 더 있었다. 재판장을 나오면서 입구를 가득 매운 사람들 중 나의 어머니와 누이의 눈물젖은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 어머니, 꼭 돌아오겠습니다! "

그 날이, 나의 조국에서의 마지막이 되었다.


5

후텁지근한 날씨에 빽빽하게 매운 이 곳에서 오지 않는 쪽잠을 청했다. 파도소리와 함께 배의 출항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의 조국과 가족, 소중하던 꿈을 뒤로하고 떠나는 이 배는 내게 너무도 괴로운 족쇄였다. 배에 올라 타기 전, 괜찮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던 그들에게, 또다시 미안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금메달은 네것이라며 애써 나를 다독이던 동무 종대도, 폭동으로 인해 교복을 벗어던지고 뛰어들던 세훈이도, 나와함께 인력거를 끌던 종인이도. 모든것이 나로 인해 생이별을 한것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이 났다. 얇은 소매로 눈가를 문질었다. 입고있던 옷을 벗어 어머니가 달아주신 태극기를 눈에 담고 또 담았다. 일본에 가면 필히 버려질 것이다. 신발이 벗겨진 오른발을 보고 있자니 누이동생이 두 손에 꼭 쥐여주던 희망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왼발에 신겨진 흰 신을 벗어 옷으로 싸두었다. 조국으로 돌아가면, 꼭 찾을거라 다짐하며.



일본군으로 징집된지 일년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맞지않는 일본군의 옷을 입고 명령에 따라 밖으로 나왔다. 꽤 많은사람이 나온 탓에 앞뜰은 순식간에 꽉 찼다. 적의 가득한 눈빛들과 웅성이는 목소리는 일순간 잦아들었다.



"새로 부임한 대위 루한 입니다. "

너와 나의 사이는, 아무래도 하나가 죽어야만 끝이 날 것이라는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너의 손에 있는 나의 흰 신이 나에게 그럴지도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6

" 꿇어라. "

" ...싫다. "

일순간 막사에는 적막이 흘렀다. 조선인 주제에 당돌하기 그지없군. 루한의 말에 여기저기서 짧은 탄성이 나왔다. 비참한 세월의 고개를 거슬러 올라간 기분. 내가 너에게 억울하게 패했던 그 날. 눈앞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곧장 루한어게로 다가가 멱살을 잡으려 했으나 그의 보좌관인 다스케의 저지로 인해 뒤로 밀려났다. 조선이 아니라, 대한제국이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막사 밖으로 끌려나가 구타를 당했다. 맞는 동안, 내 앞에 서있던 루한은 내품에 감추었던 흰 신을 빼앗았다. 필사적으로 지키려던 손은 무참히 짖밟혀 버렸다. 절망섞인 목소리로 돌려달라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루한의 조소가 담긴 목소리 뿐이었다.

 

" 찾고싶다면 끝나고 나에게로 오라. "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지옥같은 시간이 가고 신을 찾기 위해 루한의 막사 앞을 한참 서성였다. 들어가 사정해도 돌려줄까 싶겠거니와 막상 들어가 그의 얼굴을 대면하면 울분이 차올라 다시금 손찌검을 할 것 같았기 때문었다.

 

" 모래 자박이는 소리가 거슬리니 들어와라. "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내 앞으로 신 한켤레와 신 한짝을 하고있던 나의 유니폼이 던져졌다.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루한은 총구를 닦다 말고 나를 겨누었다.

 

" 챙기고 썩 꺼져라. 쏴버리기 전에."

 

" 루한. "

 

" 함부러 이름을 담지 마라. "

 

" 루한. "

 

" 죽고싶은것이구나. 가소롭다. 저 옷은 네가 마라톤을 하여 나어케 패했던 날 입었던 것이 아니냐. "

 

" 나를 죽일만큼 강단있는 네가." 

 

" ... ... ."

 

" 왜 내 신 한짝은 챙겨들고 있었니."

 

 지난 일년이란 시간동안, 우리가 만날거란걸 어떻게 알고. 1소대 막사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춥다. 누군가 옆에 있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7

" 민석아! "

 

 조용히 나를 깨우는 종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시간이 되었다. 옆에는 종인이와 세훈이도 있었다. 밖에는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듯 바람소리가 쌩하니 들렸고, 막사 안은 밖만큼이나 추워 숨만 쉬어도 입김이 났다. 몽글몽글 피어 오르는 입김만 쳐다보고 있자니 내 짐을 다급히 챙기는 종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말끔히 정신을 차리고 옷을 여며입었다. 나의 태극문양이 달린 선수복과 흰 신을 잊지 않고 챙기고, 마지막으로 만약을 대비하여 총도 챙겨넣었다. 발걸음을 죽이고 조용조용 밖으로 빠져나왔다. 막사 밖은 예상대로 살을 뚫고 들어올 듯 한 차가움이 휘몰아 치고 있었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부대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민첩한 몸놀림이 필요했다. 불밝혀 서있는 보초들을 뒤로하고 풀밭을 기어 철조망 가까이로 다가갔다. 막사의 입구를 빠져나오자 마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발 밑에는 무수히 많은 뚫린 감옥이 자리잡았고, 그 안의 사람들은 추위에 떨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막 부대를 나가던 순간, 무언가 머릿속을 날카롭게 휘저으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달리는 동무들을 먼저 보내고 다시 감옥께에 돌아갔다. 경비를 주의하며 발 밑 감옥 수용자들을 살폈다. 나는 어느 한 곳에 멈추어 감옥 문을 뜯어내고 중국인 여자를 꺼내었다. 일전에 전투에서 나를 노렸던 여자다. 부모를 죽인 일본에 대항해 싸우다 결국 잡혀들어왔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이 하게 된 사람이다. 내일이면 처형당할 것이 걸리어 그녀와 함께 이 지옥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그녀를 부축하여 부대를 벗어나 종대가 기다리는 나룻터로 뛰었다. 드넓은 땅 솟아있는 억새 사이를 지나 막 배에 오르려는 찰나 저 멀리서 오는 적들의 배들이 한 두척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부대에 있을 루한이 문득 생각나 또다시 이 곳을 벗어 날 수 없었다. 미련함에 발목잡혀 죽을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남은 동무사이의 정을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배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뒤돌아 달렸다. 나를 붙잡으려 하는 종대의 몸부림을 종인이와 세훈이가 막아섰다. 그녀도 나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나를 쫒아오기 시작했다. 총을 고쳐매고 루한과 겨루던 그날을 떠올리며 달리고 또 달렸다. 날이 밝아오고 허공을 가르는 전투기 소리에 몸을 웅크려 억새 사이로 숨겼다. 높이 날던 전투기는 점점 높이를 낮추어 낮게 날았다. 아무래도 나와 그녀를 찾는 듯 했다. 나는 엎드려 엉금엉금 기어 가며 뒤이어 따라올 그녀의 안위도 살폈다. 그녀는 가픈 숨을 쉬며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를 바라봤다.

 

" 정신차려, 그것을 볼 시간은 없어. "

 

" 민석. "

 

" 대답해 줄 시간도 없으니 말 걸지 말아라. "

 

" 그동안 고마웠다. "

 

" … 알고 있으면 되었다. "

 

" 내 가족을 잊지 않게 해 주어서. "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멍하니 그녀의 동태를 살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녀를 제지할 통이 없었다. 그녀는 내가 돌아가는 길과 나룻터의 반대방향으로 뛰며 전투기를 유인하는가 싶더니 이내 총을 장전하고 발사 태세를 취하였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전투기도 그녀도 사라졌다. 두 눈에서는 쉴새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로인해 또 한 사람이 죽은 셈이다. 나는 소리내어 울며 부대로 있는 힘껏 뛰었다. 눈에 부대의 모습이 들어오고 막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계획대로라면 우리가 먼저 적을 치는 것이었으나 그것이 틀어져 버린 것을 알려야만 했다. 언덕을 막 넘어 루한이 내 눈에 들어 올때, 나의 뒤에는 적의 모습이 더욱 가까워 지고 있었다. 급해지는 마음에 두 손을 올려 돌아가라 흔들어 보였지만 나의 움직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군을 하였다. 그리고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바로 나의 뒤에서 터졌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은 없었다. 다시 엎어진 몸을 일으켜 뛰었다. 또다시 뜀박질이 시작되고, 멀리만 느껴지던 아군이 점점 가까워 질 때 아수라장이 된 한 가운데 서 있는 루한이 보였다. 죽어가는 아군들의 모습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한 루한이.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너와 내가 있었다.


8

  
" 민석. "  
  
한바탕 폭풍과도 같았던 전쟁터를 벗어나 막사로 돌아오는 길은 고향을 더욱 그립게 만들었다. 고요한 하늘 노을만이 내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루한의 작은 목소리가 가슴을 후벼팠다.  
  
"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  
  
어린 시절, 동무로 시작하여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너의 할아버지에게 건내진 폭탄은 우리의 미래를 미리 예견해 주었다. 살인 누명을 쓴 나의 아버지가 수차례 폭행 뒤 시신으로 돌아왔을때, 그때부터 우리는 더이상 동무가 아니었다.  
  
" 죽게 두지 그랬어. "  
  
그래, 그럴걸. 짧은 내 대답에 루한은 나를 보던 눈을 지는 노을로 돌렸다. 참 그립구나. 루한의 짧막한 말을 끝으로 우리는 침묵했다.  
  
" 죽이고 싶을만큼 미워도 "  
  
" ... ... . "  
  
" 죽이지 못한다는걸 네가 제일 잘 알지않니. "  
  
  
너에게 진 목숨값은 이걸로 값은셈 치자.  
  
제자리에 멈춰서 나를 바라볼 루한이, 어리기만 했던 그때만 같아서 웃음이 났다.  
  
경쟁이 아닌 함께라는것을, 우리 해보자 루한.


9

" 아프지 마라. "

 

" … …. "

 

" 제발…. 아프지 마. "

 

 꼭 함께 살아서 돌아가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간이 침대에 누워 힘겹게 숨을 내뱉는 너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져 왔다. 삭막함마저 고요함이 된 이곳에서 너와 나는 덩그러니 놓여있다. 루한의 군모를 벗기고 군용 담요를 덮어주었다. 파랗게 질린 입술에 결국 눈물이 터졌다. 돌아가서 함께 달려야 하지 않겠니. 떨리는 손으로 루한의 얼굴을 쓸었다. 차갑게 꽁꽁 언 손을 쥐고 크게 울었다. 다시 동무로 돌아가고 싶어. 경쟁자가 아닌, 적이 아닌… 동무로. 따스하던 그 가을 날의 뜀박질이 기억나니? 나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네가 나에게 처음으로 이긴 날, 분하던 마음은 네 웃음 하나로 알 수 없게 사그라졌다. 원통하고 답답한 마음에 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인력거를 끌고 달릴 때 마다 너의 그 해사함이 생각나 더 내달렸다. 다시 너와 겨루게 되고, 처음으로 태극문양을 가슴에 새겨 너와 나란히 섰을 때 옛 동무 시절 다 헤진 고무신을 신고 달리던 나와 깔끔한 차림의 네가 기억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다시 만들 수 있다면 만들고 싶다.

 

"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

 

" … …. "

 

" 너와 나는 이제부터 아무 사이도 아니다. "

 

" … …. "

 

" 경쟁자도 아니고 적도 아니다. 넌 대위가 아니고, 난 일본군이 아니다. "

 

" … …. "

 

" … 나는 대한제국의 인력꾼 김민석이야. "

 

" … …. "

 

" 너는 누구니? "

 

 대답 없는 네 모습에 또다시 울컥 했다. 얘, 난 이렇게 추운 날씨는 난생 처음이다. 낯선 이국 땅이 너무도 밉구나. 너는 안그러니? 나의 군복을 벗어 루한에게 덮어주고 작게 불을 피워 주위를 데웠다. 어서 일어나라. 나 심심하다.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루한을 바라봤다. 창 밖의 눈보라는, 점점 그쳐가고 있었다.

 


10

" 저 동양인 선수는 누굽니까? "

 

" 한국의 김민석이라는 선수입니다. "

 

" 굉장하네요.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어요. "

 

 이곳까지 오기에 3년이 걸렸다. 지옥을 벗어나 다시 두 다리로 달릴 수 있는 시간이 왔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고 값진 시간이다. 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나의 수고를 대변해 주었다. 7여년동안의 전쟁과 타국 생활, 내가 너에게 저질렀던 짓들과 다시 시작한 동무로서의 사이는 이제 더이상 이 곳에 없지만, 너의 꿈만은 여기에 남아 있다. 내가 네 꿈을 지켜줄게, 민석아.

 

그리고 이 뜀박질을 끝내고 나면, 나도 너를 따라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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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하나하나의 조각이 모여서 가슴아픈글이 남앗네요...ㅠ 그 시절에는 죽어서야만 함께잇게되니깐 많이 슬프네요 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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