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고싶어 그래-규현
등교길이 유난히도 따스하고, 밝았다. 차라리 비라도 퍼부어 내려주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멍하니 길을 걸었다. 신호등을 기다리다, 멀리서 차가 달려오는게 보였다. 문득 저 차에 부딫히면..., 하는 못난 상상과 함께 붉은 신호를 연신 엄하게 내뿜는 신호등을 똑바로 쳐다보며 무작정 찻길을 건너려 했다. 그 순간, 쩌렁쩌렁한 클락셴 소리와 함께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고, 질끈 감은 내 두눈이 무색하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다시 인도에 안전하게 두 발이 놓인 채, 난 권순영에게 잡혀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열이 오른 표정으로 권순영은 내 어깨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너 진짜 뭐해 김여주."
잔뜩 상기된 표정과는 달리 낮게 울리는 그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말도 않고 고개를 젓기만 하는 내 시선 위로 권순영의 물기어린 시선이 겹쳤다. 제발,... 뒷말을 잇지 못한 채, 말을 늘어뜨리는 권순영을 부여잡고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권순영을, 아무데도 못가게 끌어안고 엉엉 울어제끼고 싶었다. 나야말로 제발, 제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걸음으로 비틀거렸다. 그런 내 위태로운 걸음을 권순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순영은 그런 내 발걸음에 맞춰 저도 위태로운 걸음을 걸었다. 가만히 땅만 보고 걷는 순영을 그저 바라만 봤다. 그렇게 가만히 서있으면, 순영은 내 빈자리를 느낀건지 고개를 돌려 내쪽을 바라보고선 또 그 표정을 지었다. 그, 슬퍼 죽겠다는 표정. 순영의 그 표정을 보고 있으면, 온갖 슬픈 감정이 내 주변을 밀고 들어와, 나까지 그 우울함에 잠식해버릴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내 표정을 본건지, 순영은 제 표정을 재빨리 거두고선 환히 웃어보였다. 순영의 그 환한 웃음에, 무채색이던 세상이 온갖 색으로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순영의 손짓에, 주변에 시들던 꽃들이 갑자기 고개를 들며 확, 피어났다 .
"여주야, 빨리와."
교실문을 열자마자 들리는건, 반 아이들의 수군거림이었다. 여주가 이랬네 저랬네 하는 그 수군거림들이 듣기 싫어, 일부러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권순영은 그런 내 모습을 한참동안 내려다보곤, 이내 저도 내 옆자리에 앉았다. 순영은 의자를 빼내기도 버거울 정도로 쌓인 제 책상 위의 선물들을 얼굴 가득 미소를 달고 바라봤다. 야, 대박이다. 아이처럼 탄성을 내뱉고선 이내 순영은 그 선물더미들을 헤쳐내기 시작했다. 순영은 내가 들으라는 듯, 서투른 손길로 포장지를 뜯어내며 한마디씩 해나갔다. 얜 나랑 별로 친하지도 않은 애가 선물을 다 줬네, 부터 제 친한 친구 승관이 마음에 쏙드는 선물을 줬네, 까지. 아이처럼 재잘대는 순영의 모습이, 보기 힘들정도로 행복해보였다. 내 멍한 표정을 본 순영은 이내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내 어깨를 가볍게 쓸었다.
"여주. 너 내 선물 샀어?"
그 한마디에, 힘들게 유지하고 있던 모든 감정이 무너져버렸다. 깔끔하게 다려진 교복치마 위로 얼룩을 이곳저곳 새기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순영의 다급한 손길에 더 눈물이 나올것 같아 무작정 교실 밖으로 나와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이끈 곳은, 이따금 학교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우는 날 데리고 순영이 수업시간 몰래 나와서 날 달래주던, 빈 과학실이었다. 무작정 문을 닫은 뒤 순영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등지고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런 내 울음소리가 새어나갔는지, 순영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더 거세졌다.
"제발 여주야 문 좀 열어봐..."
순영의 힘없는 목소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있는 힘껏 귀를 막았다. 머릿속에, 그 어떤 목소리도 들어오지 못하게. 쓰라린 눈을 비비고 밖으로 나왔을 때, 순영은 사라져버린 후였다.
달리는 걸 좋아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내달리며 땀을 흘리는 순영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멀찍이 서서 땀을 닦아주는 내 손길에 그애는, 가끔 가슴이 겉잡을 수도 없이 빠르게 뛸만큼 예쁜 미소를 지어주곤 했다.
순영은, 달리는 걸 좋아했다.
이따금씩 못마땅한 말투로 달리는걸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내 말에, 순영은 그냥 웃기만 했었다. 그렇게 대답 없이 웃으며 순영은 날 보고 저와 같이 뛰어달라며 졸라대곤 했었다. 그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었지만. 그래서 달릴때면 온 세상이 제것인 마냥 웃던 순영을 위해, 그의 열여덟번째 생일선물로 이따금 순영이 검색해보던 운동화를 샀었다. 아, 이것만 있으면 몇시간은 더 달릴 수 있을텐데. 제 신발이 영 못마땅한 듯, 뒷축을 몇번 매만지던 순영은 그렇게 그 운동화 사진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었다. 잇새로 새어나올것만 같은 뜨거운 덩어리를 간신히 삼켜내며, 내 옆에 쌓인 선물더미 맨 윗쪽에 하얀 상자를 올려놓았다. 빳빳한 새것의 자태를 뽐내며 얹혀진 그 선물상자를 보고, 난 기어코 울음을 터트렸던 것 같다.
아침의 내 기도가 먹혀들기라도 한건지, 학교가 끝나자마자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기대에 가방에 넣어둔 우산을 굳이 펼치지 않았다. 그렇게 빗속을 가만히 걸어가려다, 문득 예전의 권순영이 떠올랐다.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던 나는, 갑작스레 내린 저녁의 빗줄기에 당황한 채 교문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중이었다. 그때, 순영이 거짓말처럼 달려왔었다. 제 손에 우산을 든 채로. 그렇게 내 시선을 피하면서 우산을 씌워준 순영은 머쓱한 듯, 뒷머리를 매만지며 말했었다.
"비맞으면 감기 걸리니까."
마치 그때의 순영과 같이 달리듯, 빗속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달리는 길은, 마치 날 씻어주는 듯,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저 끝에, 그애가 보였다. 이번에는 우산을 들지 않은 채, 비에 젖어든 권순영이 눈가에 아프게도 고여들었다. 축축해져 무거운 가방을 열며, 우산을 꺼내들었다. 그렇게 권순영에게로 향해 우산을 씌워주며 조용히 말했다. 비맞으면, 감기 걸리니까. 내 말에 순영이 웃었다. 웃는데도 이상하게 순영은 우는 것 같았다. 빗줄기가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순영의 눈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토해낼 것만 같은 그런 눈이라서였을까. 가만히 우산을 씌워주고 있던 내 손위로 제 손을 덮은 순영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온 힘을 다해서 달리면, 그 끝에 네가 있을 것 같았어."
"항상 너는 내가 안보이는 데에서 울고 있어서, 그래서 내가 너한테로 가고 싶었어."
"내가 달려가면, 그게 어디든 꼭 너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힘이 들고 숨이 차는데도, 그렇게 끝까지 달렸어."
제 품속에서 일전에 내가 놔두었던 하얀 상자를 조심히 꺼내며, 순영은 눈물을 뚝뚝 흘려보냈다. 빗줄기와 그애의 눈물이 섞여들어가, 더 애달픈 모양새를 하며 떨어졌다.
"나는, 너에게 가고 싶었어.
지금도 너무 너에게 가고 싶어."
순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숨이 차도록 울어제끼는 내 얼굴을 순영이 쓰다듬었다. 그런 순영의 표정이 너무 안쓰러워, 무너질 것만 같았다. 잔뜩 갈라지고 거칠어진 목소리로 순영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너는 지금 나한테 올 수 있니. 내 물음에 순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치 큰 덩어리를 삼켜내려는 양, 순영의 목울대가 힘겹게 움직였다. 고개를 천천히 든 순영은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가 가고싶어도, 이제는..."
순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더 크게 울어버렸다. 순영이 보고 싶어서. 순영을 보내기 싫어서.
순영은 제가 그토록 기다리던 열여덟번째 생일을 맞지 못했다.
그렇게 신고싶어하던 신발도 신지 못했다.
제 생일날에 내게 하겠다고 한, 그토록 하고 싶어하던 말도 하지 못했다.
항상 내가 있는 곳에 당연히 있었던 권순영이, 내 슬픔을 제것처럼 보듬어주던 권순영이 이젠 없다.
권순영은, 죽었다.
생각이 많고 그만큼 할일도 많은데 또 일이 잘 안되고... 오늘은 날씨탓인지 기분이 꿀꿀하네요...ㅠㅠ 개인의 연애사를 정말 빨리 올려야 하는데 뭔가 잘 안돌아가는 느낌이에요.. 왠지 마음에 안들구 막.... 어느새 3달째 한 글만 계속 쓰고 고치고... 답답해요... 최대한 노력해서 꽃님들한테 좋은글만 보여드리고 싶은 만개에요... 너무 미워하진 말아주요...8ㅁ8 낙화기는 앞으로 2~3편 정도 나올 것 같네요!꽃봉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