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달이여
03
아침부터 풍기는 맛있는 냄새에 남준은 저도 모르게 잠이 깼다. 남준이 눈을 비비며 냄새의 근원지로 가자 교복 위에 앞치마를 두른 채 열심히 생선을 굽고 있는 탄소가 보였다. 남준을 발견한 탄소는 벌써 일어났냐며 물 한 컵을 떠서 남준에게 가져다 줬다. 아 내가 해줘도 되는데. 남준은 얼떨결에 탄소에게 받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됐네요. 얼른 앉아서 아침이나 먹어. 탄소는 다 구워진 고등어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흰 쌀밥에 미소된장국, 그리고 알맞게 구워진 고등어와 밑반찬들. 그동안 식빵정도로 아침을 대충 때웠던 남준에겐 생소한 아침만찬이었다. 남준은 식탁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탄소가 앞치마를 벗고 식탁 앞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이타다키마스- 그런 탄소를 보는 남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풉- 소리가 나왔다.
"일본에서는 밥먹기 전에 다들 이렇게 하길래."
"푸핫... 아냐아냐. 잘했어."
"많이 먹어 오빠."
"너 진짜 시집가도 되겠다. 나 이런 밥상 오랜만에 먹어봐."
"조선시대면 이미 애도 낳을 나인데 뭐. 얼른 드세요~ 센세~"
"오, 맛있다."
"다행이다. 오빠 도시락도 싸놨으니깐 이따 가져가. 떡갈비 괜찮지?"
"완전 땡큐지. 왠지 호석이 마음을 알 것 같아."
"뭐가?"
"아무한테도 시집 보내기 싫은 오빠의 마음?"
"오빠 장가가는 거 보고 시집갈 거니깐 걱정마."
아침을 다 먹고 학교를 갈 준비를 마친 탄소는 오늘도 어김없이 남준의 차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탄소는 창문을 열고 팔을 기댄 채 빠르게 움직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하늘과 초록빛 나무의 조합이 무더운 일본의 여름날씨와 잘어울렸다. 싱그러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도착한 학교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생기가 가득했다. 먼저 도착한 교실에는 이미 많은 아이들이 서로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탄소는 그런 아이들을 제치고 제자리로 가 풀썩 주저앉았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저절로 탄소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가려나. 탄소는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일본 여름의 하늘은 너무 맑고 청량해서 저절로 호석을 그립게 만들었다. 탄소에게 일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호석이었고 활기찬 여름은 호석 그 자체였다. 갑자기 들리는 남준의 목소리에 탄소는 정신을 차리고 남준을 바라보았다. 보조개가 파인 남준의 미소는 언제 봐도 탄소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남준을 계절로 따진다면 아마도 따사로운 초가을이 아닌가 싶다. 그때,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태형과 지민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 헉헉... 저희 지각 아니에요! 」
「 나보다 늦게 들어왔으면 지각이다. 너희 둘은 남아서 청소하고 가. 」
「 저희 방과후에 연습있는데요! 」
「 내가 농구부 담당인 거 잊었어? 청소 조금 한다고 연습에 지장 없어. 」
지민과 태형의 표정이 허탈함으로 가득했다. 남준이 나가고 지민과 태형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서로를 탓하기 바빴다. 하루토, 네가 조금만 일찍 나왔어도! 태형이 지민에게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음료수 사러 간다고 중간에 사라진 게 누군데. 지민은 찡찡거리는 태형을 지나쳐 탄소의 옆에 앉았다. 이마와 목에서 땀이 주륵주륵 흐르는 지민이 제 손등으로 땀을 훔쳐보지만 그 많은 땀들을 닦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 탄소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하얀색 손수건을 지민에게 건냈다. 하얀색 손수건에는 노란 달모양의 자수가 새겨져있었다. 지민은 불쑥 손을 내민 탄소의 손을 보고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미간을 구기며 탄소와 손수건을 번갈아봤다.
「 땀 많이 나는 것 같은데 닦으라고. 」
「 필요없으니깐 치워. 」
「 네 상태를 보면 누구보다 필요해 보이는데. 」
「 아는 척 하지마. 짜증나니깐. 」
지민은 탄소의 손을 옆으로 탁 쳐냈다. 아니 그렇다고 손을 쳐낼 필요까진 없잖아. 탄소는 지민의 반응에 울컥했지만 참았다. 왠지 호석이라면 이상황에서 그랬을 것 같았다. 탄소가 민망하게 쳐내진 손에 들린 손수건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고 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탄소의 팔목을 잡아챘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놀란 탄소는 커진 눈망울로 제 팔목을 감싸쥐고 있는 손의 주인을 올려다 보았다. 탄소와 눈이 마주친 태형은 바보 같이 히죽 웃으며 허리를 숙여 탄소와 거리를 더 좁혔다. 눈높이를 대강 맞춘 태형은 탄소의 팔목을 잡아 올려 그대로 탄소가 쥐고 있는 손수건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갖다 대었다.
「 고마워 미즈키. 잘쓸게. 」
「 어...어? 아, 응.」
「 미즈키가 닦아줘. 」
탄소는 태형의 이마와 목에 흐르는 땀들을 손수건으로 톡톡 닦아냈다. 태형은 탄소의 손길이 좋은지 눈을 감고 탄소의 손길을 받아낼 뿐이었다. 여전히 태형의 손은 탄소의 팔목을 감싸쥐고 있었다. 「 손수건에서 미즈키 냄새난다. 좋은 냄새. 」 태형은 눈을 뜨며 스르륵 뜨며 말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탄소는 묵묵히 태형의 땀을 닦아내었다. 그 둘의 모습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본 지민은 인상을 찌푸린 채 엎드려 잠을 청했다. 다 닦았다. 탄소는 손수건을 태형의 얼굴에서 떼어냈다. 탄소가 손수건을 주머니에 다시 넣으려고 하자 태형은 탄소의 손수건을 낚아챘다. 빨아서 나중에 줄게라는 말과 함께 태형은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태형의 해맑은 미소에 탄소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아이들이 탄소와 태형을 보며 수군거리자 태형은 아이들을 향해 뭘보냐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반 아이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태형은 탄소를 보며 나.잘.했.지? 라는 입모양 만들며 브이를 내밀었다. 탄소는 그런 태형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태형 덕분에 탄소는 활기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체육시간인지 운동장에는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탄소는 처음 입어보는 체육복이 조금 낯선지 자꾸 옷을 만지작거렸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준은 호루라기를 불며 체조를 시작했다. 아이들도 일제히 남준의 몸동작을 따라하며 열심히 체조를 시작했다. 한국과 다른 체조동작에 탄소는 자꾸만 허우적거렸고 중간에 탄소와 눈을 마주친 태형은 뭐가 그리 웃긴지 탄소를 보며 낄낄거렸다. 체조를 마친 남준은 호루라기를 세 번 불며 아이들을 가운데로 모았다.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 남준은 그 짧은 말과 함께 그늘이 있는 스탠드로 올라갔다. 뭔가 날로 먹는 것 같은 기분은 기분탓인가. 탄소는 그늘에서 편하게 부채질을 하고 있는 남준을 보며 생각했다.
피구는 짝수 홀수에 따라 팀을 나누어 탄소는 홀수 팀에 가게 되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고 공격권은 짝수 팀에게 넘어갔다. 공을 쥐고 있던 유이는 망설임 없이 탄소에게 공격을 가했다. 탄소에게 날아온 공은 그대로 퍽하는 소리와 함께 탄소의 머리를 세게 강타했다. 머리를 세게 맞은 탄소는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어지러움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 어깨를 맞춘다는게 그만. 머리는 탈락 아닌 거 알지? 미안 미즈키~ 」
「 별로 세게 안 맞췃는데 미즈키가 그렇게 자빠져 있으면 내가 너무 무안하잖아~ 」
웅성거리는 여자애들의 목소리에 탄소는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났다. 다시 경기가 시작되고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몇명의 여자들이 아웃되었다. 한창 경기가 활발해졌을 때 유이가 다시 공을 잡았다. 유이는 이번에도 탄소를 향해 공을 힘껏 던졌고 불행히도 공은 탄소의 코를 그대로 강타했다. 반동에 의해 뒤로 자빠진 탄소의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탄소의 코에서 흐르는 코피를 본 여자애들에 의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유이는 그런 탄소를 보며 짧게 미안- 한마디를 할 뿐이었다. 사과라도 한 게 어디야. 탄소는 차오르는 억울함을 애써 달랬다. 소란스러움을 눈치챘는지 멀리서 남준이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 사이에 쓰러져 있는 탄소를 본 남준은 헐레벌떡 뛰어와 탄소를 일으켰다.
「 괜찮아? 코피난다. 보건실에 데려다줄까? 」
「 아뇨. 저 혼자 갔다 올게요. 감사합니다. 」
탄소는 남준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다. 고개를 들어 자꾸만 코피가 흐르는 코를 손으로 부여잡고 아이들의 틈을 벗어나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 나 보건실 어딨는지 모르지. 막상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온 탄소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보통 1층에 있던데. 탄소는 1층을 하나하나 뒤져보기 시작했다. 까치발을 들며 교실 안을 살펴보던 중 어디선가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간지럽히는 선율에 탄소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찾았다. 1층 구석에 있는 교실에서 피아노 소리가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탄소가 까치발을 들어 교실 안을 들여다보자 피아노 앞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탄소는 건너편의 교실로 제 몸을 급하게 숨겼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탄소는 다시 앞으로 나와 교실을 들여다 봤다. 남자 혼자 앉아있던 피아노의자에 머리가 긴 여학생이 함께 앉아있었다.
커플인가 보네. 잘 어울린다. 탄소는 들었던 까치발을 내리고 다시 몸을 돌렸다. 탄소가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 찰나에 갑자기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가 멈췄다. 뭐지? 탄소는 다시 까치발을 들어 교실 안을 들여다봤다. 교실 안은 탄소의 생각보다 훨씬 더 민망한 상황이었다. 여자가 남자의 위로 겹쳐 앉아 남녀가 서로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열심히 입술을 부비던 남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 진한 키스를 끝마쳤다. 키스를 마친 여자는 정성스럽게 포장이 된 초콜릿을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여자에게 잘먹을게- 라는 말을 하며 그 초콜릿을 받아들었다. 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린데.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탄소는 의아했다. 갑자기 들리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탄소는 급히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찾는 척 했다. 다행히도 여자는 탄소를 보지 못한 채 교실을 떠났다. 거 참 학교에서 민망하네. 탄소가 숙였던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남자의 목소리에 탄소는 그대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이딴 걸 어떻게 먹으라고 가져다준 건지."
"꼴에 포장은 예쁘게 했네."
진선배..? 석진의 한국말을 들은 탄소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아까 그럼 그 여자는 여자친구가 아니었던 건가? 탄소는 여전히 피가 흐르는 코를 틀어 막은 채 이도 저도 못하고 쭈구려 앉아있었다. 드르륵- 갑자기 앞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석진이 교실을 나왔다. 가라... 제발 그냥 가라... 탄소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석진이 탄소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훔쳐 보는 게 취미인가 미즈키? 」
「 ㅇ,안 훔쳐 봤는데... 」
"피아노에 비쳐서 다 보이거든."
"아..."
"난 원래 이런 사람이니깐 신경쓰지마."
"이런 사람이 뭔데요?"
"가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
"...."
"가식 안 부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너가 농구부 매니저인 거 마음에 안 들어."
"...."
"그냥 네가 언제까지 버티나 궁금해져서. 그렇다고 네가 싫은 건 아니고."
"....아"
"보건실은 여기서 오른 쪽으로 쭉 가면 끝에서 두 번째에 있어. 너 손에서 코피 줄줄 샌다."
석진은 탄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탄소는 멍하니 석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에 점점 흐르는 피를 느끼고 헐레벌떡 보건실을 찾아갔다. 겨우 도착한 보건실에서 대충 응급처치를 한 탄소는 다시 운동장으로 향했다. 앉아서 쉬라는 남준의 말에 탄소는 나무 아래 있는 그늘에 주저앉아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나는 왜 이 틈 사이에 끼지를 못하니... 탄소는 괜히 울적해져 운동장에 기어다니는 개미들을 바라봤다. 탄소가 개미들과 혼자 놀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끙차- 탄소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속으로 다시 화이팅을 다짐하고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정도 가지고 힘들어 하면 안되지. 오빠는 더 힘들었을 거야. 탄소는 호석을 떠올리며 자신을 위로했다.
교실 안은 아이들의 도시락에서 풍기는 냄새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각자 책상을 붙여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뭐가 그리 재밌는지 꺄르륵 웃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탄소는 책상 위에 올려진 자신의 도시락을 차마 열지 못하고 있었다. 태형이 오늘도 자신의 반찬을 뺏어먹을까봐 일부러 태형의 반찬까지 더 챙겨온 탄소는 두리번거리며 태형을 찾았다. 어째서인지 태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 입맛 없다. 다시 가방에 넣으려고 도시락을 집어 들었을 때 갑자기 태형이 탄소의 손목을 잡고 무작정 뛰었다. 얼떨결에 태형에게 붙잡힌 탄소는 왼손에는 도시락을 든 채 태형을 따라 뛰었다. 태형과 함께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옥상이었다. 탄소가 차오르는 숨을 고르고 태형을 바라보자 태형은 탄소를 향해 태형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보여줬다. 오늘부턴 여기서 먹자. 태형은 탄소를 이끌고 옥상 안 쪽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엔 탄소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토...? 지민은 탄소를 슬쩍 흘기고 태형에게 왜 이렇게 늦었냐며 핀잔을 줬다.
「 착각하지마 미즈키, 너 좋아서 온 거 아니야. 타이요우 부탁으로 온 거니깐. 」
"아 박지민! 그걸 말하면 어떡해!"
"빨리 앉기나 해 김태형. 배고파."
"아무튼 박지민 눈치도 없어. 미즈키! 이리와! 여기 내 옆에 앉아!"
탄소는 빨리 오라며 손짓하는 태형의 옆자리에 앉았다. 태형과 지민은 바스락거리는 비닐 속에서 편의점 주먹밥 몇 개를 꺼내들었다. 자! 이건 탄소 선물- 태형은 코카콜라 하나를 탄소에게 건넸다. 고마워 타이요우, 잘 마실게. 경쾌한 소리와 함께 달달한 콜라향이 탄소의 코를 찔렀다. 탄소는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일부러 넉넉히 싸왔으니깐 먹어도 돼. 탄소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태형은 바로 떡갈비 한 조각을 집어들어 입 속으로 넣었다. 지민은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떡갈비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지만 묵묵히 차가운 주먹밥을 꾸역꾸역 밀어넣을 뿐이었다.
"와! 미즈코! 진짜 맛있어!! 물론 저번에 조금 탄 베이컨도 맛있었지만 이건 진짜 맛있어!!"
"다행이다. 많이 먹어"
"지민아지민아~ 이거 떡갈비 좀 먹어봐! 완전 맛있어!!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응?"
"너나 먹어. 김태형"
"아 끝까지 이럴래? 하나만 먹어봐"
"아, 안먹는다니ㄲ...!"
태형은 억지로 지민의 입에 떡갈비 하나를 쑤셔 넣었다. 입에 있는 고기를 몇 번 씹은 지민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맛있지? 거봐. 괜히 고집은 쎄서. 태형이 고기를 우물거리는 지민의 앞에서 깐족거렸다. 맛은 있네. 지민이 탄소의 도시락에 있는 떡갈비를 하나 더 집어들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지민의 귀가 빨개진 것이 조금은 부끄러운 듯 했다. 떡갈비를 두고 아웅다웅하는 지민과 태형을 본 탄소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겉만 어른이지 아직 속은 어린 애처럼 느껴졌다. 태형에게 환한 미소를 보이는 지민을 보며 탄소는 차갑게만 느껴졌던 지민이 생각보다 차갑기만 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자신에겐 한없이 차가운 지민이었지만 탄소는 자신에게도 저렇게 환한 미소를 지어줬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
*
*
방과후 체육관에는 열심히 공을 튀기며 연습을 하는 윤기와 정국, 매트에 누워 낮잠을 청하고 있는 석진, 그리고 의자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남준이 있었다. 공을 튀기던 윤기는 튀기던 공을 내려놓고 남준에게 다른 두 명은 어디갔냐고 물었다. 걔네 청소 중. 곧 올거야. 남준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남준은 전화를 받고 오더니 제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기가 남준을 향해 어딜 그렇게 급하게 나가냐며 물었고 남준은 그런 윤기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야겠다. 오늘부터 매니저 오니깐 무슨 일 있거나 필요한 거 있으면 매니저한테 말하고."
"매니저가 첫 날부터 지각이네요."
"사정이 있겠지. 슌, 네가 주장이니깐 미즈키 좀 잘 챙겨줘."
"....매니저 같은 거 필요없다니까요."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더 나아"
남준은 한 번 더 울리는 전화를 받으며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윤기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애꿎은 공을 벽에다가 세게 던지며 욕을 작게 읊조렸다. 석진은 언제 잠에서 깬 건지 괜히 공에 짜증을 부리는 윤기를 보며 피식 웃었다. 마음에 안 들어. 윤기는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아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그 때 태형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함께 태형과 지민이 체육복 차림으로 체육관을 들어왔다. 걔 미킨가 미즈킨가 하는 애는 어딨어. 윤기가 태형을 보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 아까 먼저 간다고 하고 갔는데요? 태형은 머리를 긁적이며 지민을 쳐다봤다. 그치? 아까 먼저 간다고 갔잖아. 지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윤기는 연습이나 시작하자며 공을 지민에게 던졌다.
첫 번째 연습이 끝나고 다들 지쳐서 바닥에 앉아 거친 숨소리를 내뱉고 있을 때 탄소가 양 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체육관에 나타났다. 양 손 가득 들고온 짐을 내려놓은 탄소는 땀범벅이 된 윤기에게 달려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미안할 짓 하는 애들이야. 」
「 나가서 뭐 좀 사오느ㄹ... 」
「 나가 여기 있는 거 자체가 방해되니깐. 」
「 .... 」
"한국어로 해야지 알아들어? 당장 꺼지라고. 필요없으니깐."
"...오늘은 먼저 갈게요. 내일 봬요."
"아니, 내일도 올 필요 없어. 내 눈 앞에 띄지마. 엄청 거슬려."
탄소는 꿋꿋이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며 윤기에게 인사를 한 뒤 체육관을 나갔다. 으... 따가. 탄소의 손은 더운 날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닐에 쓸려서 그런지 새빨갛게 일어나있었다. 늦은 내가 바보지. 제대로 찍혔네... 탄소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남준이 연습이 끝날 때 차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너무 일찍 집에 가게 된 탄소는 무작정 길을 걸었다. 남준과 아침마다 왔던 길을 떠올리며 걷기에는 다소 먼 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속상한 마음에 눈에 조금씩 눈물이 차올랐지만 절대 울지 않았다. 단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며 한 걸음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을 뿐이었다.
"오빠가 그렇게 아끼던 사람들이니깐 미워하지 않을게."
"그래도 조금은 속상하다."
"오빠가 나중에 혼내줘. 우리 미즈키 속상하게 한 사람 나와! 이러고."
"오늘도 보고싶다."
탄소가 나가고 분위기가 쎄해진 체육관 안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태형뿐이었다. 아무도 탄소를 신경쓰지 않는 듯 그저 다시 각자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태형은 탄소를 쫒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쫒아가도 자신이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탄소가 나간 문을 애처롭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형... 이건 어떻게 할까요? 태형의 물음에 윤기는 탄소가 갖고온 봉지를 쓱 쳐다봤다. 갖다 버려. 윤기는 무심하게 시선을 거뒀다. 태형은 입이 비죽 나온 채 봉지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봉지 속을 들여다 본 태형의 눈이 커다래졌다.
"형... 윤기형?"
"왜, 갖다 버리라니깐"
"이거 봐요..."
"아씨, 그게 뭔데. 사람 귀찮게 만들어."
태형의 말에 윤기가 짜증을 내며 봉지 앞으로 다가갔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태형이 있는 쪽으로 집중되었다. 봉지 안을 살펴본 윤기의 표정이 굳었다. 형, 형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태형은 윤기를 향해 외친 뒤 탄소를 찾아 체육관을 뛰어 나갔다. 윤기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봉지 속 내용물들을 그저 바라보았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의 석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봉지 안을 살폈고 윤기와 봉지를 번갈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 뒤로 줄줄이 내용물을 확인한 지민과 정국도 아무런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 시발 누가 이런 거 해달라고 했냐고. 윤기는 머리를 털며 발걸음을 체육관 밖으로 돌렸다. 어딜 가냐는 지민의 물음에 윤기는 「 씻으러. 」한마디를 외친 뒤 지민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탄소가 낑낑대며 들고온 두 봉지 중 한 봉지 속에는 온갖 이온음료와 이름이 적힌 아이스 물병이 들어있었다. 나머지 봉지엔 얼음과 함께 들어있는 차갑게 적셔진 수건이 다섯 개가 들어있었다. 지민이 수건 중 하나를 들어올렸다. 지민이 들어올린 수건 모서리에는 탄소가 새벽부터 일어나 바느질 한 하루토와 지민이라는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나머지 수건에도 마찬가지로 탄소가 한땀한땀 새긴 나머지 다섯 명의 이름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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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츠키에요!
오늘은 남준이 때문에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항상 남준이가 웃었으면 좋겠어요.
오타 지적해주시면 바로 고치겠습니다!
우리 달들 잘있었죠?
제가 언제나 애정해요.
달들도 항상 행복하게 웃었으면 좋겠어요.
나의 아름다운 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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