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Boy!
: special 1
1. 전한울과 전정국
"전한울."
"..."
"아버지랑 말하기 싫어요?"
"...네에..."
"왜 싫어요?"
"...아부지가..."
"응. 아버지가."
"...아부지가 한울이 미워해요..."
"아버지가 우리 한울이를 왜 미워해요."
"...한울이가 엄마 어깨 토닥토닥 해줬는데에, 아부지가 하지 말라고 막..."
"한울아 그거는 아버지가 한울이 미워서 그런 거 아닌데?"
"...그러엄?"
"자. 아버지한테 안겨봐. 아버지가 알려줄게요."
"네!"
식탁에 앉아서 부자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여간 귀여운게 아니였다. 조금 전, 한울이가 내 어깨를 안마해주겠다며 작은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이는데 - 퇴근하자마자 그 모습을 본 정국이가 한울이를 거실에 앉혔다. 왜 엄마를 아프게 하냐며. 한울이는 오늘 유치원에서 배운 걸 한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다가, 제법 엄하게 저한테 뭐라하는 아빠에 서러운 지 그와 똑 닮은 눈망울에 눈물을 담아낸다. 당황한 그는 그에게 왜 우냐고 물었지만, 한울이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제 소매로 눈물을 훔쳐 내기 빠쁘다. 정국이는 그런 한울이의 손을 잡으며, 저와 말하기 싫냐고 묻는데. 한울이는 또 거기에다가, 네. 하고 답한다.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재밌는 상황이었다. 한울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한다며, 결국은 으앙 - 하고 크게 눈물을 터트렸다. 정국이는 한울이의 얼굴만한 제 큰 손으로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한울이가 미운 게 아니라며. 그 이유를 알려주겠다며, 한울이를 한 팔에 안고는 내게로 다가온다. ...왜 나한테 와?
정국이는 한울이에게 '잘 보세요. 한울아 - " 하고 말하며, 내 어깨부분의 티를 살짝 잡아 당긴다. 덕분에 밤 사이 그가 잔뜩 피어나게 한 열꽃이 드러났다. 나는 황급히 옷을 올리며,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야! 뭐해!"
그러자 그는 정강이가 차인 쪽 다리를 들고는 두어 번 뛰었고, 한울이는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제 입을 허업! 하고 막아온다. 그리고는 정국이에게 말한다.
"아버지! 한울이가 엄마를 너무 쎄게 안마했나봐요오..."
"그치? 우리 한울이는 아버지를 닮아서 힘이 많아요."
"엄마아... 한울이가 미안해요. 마니 아파써요?"
나는 그의 정강이를 다시 한 번 차고는, 한울이를 안아들었다. 나는 한울이의 콧잔등에 내 코를 마주 대고는, 엄마 하나도 안아팠어요. 하고 답했다. 그러자 제 다리를 잡고 끙끙거리던 그가 묻는다.
"하나도 안아팠어?"
"...야."
"진짜로?"
"..."
"하나도?"
나는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에, 반대쪽 그의 발을 걷어찼다. 한울이는 방금 전 본 붉은 자국들이 잊혀지지 않는지, '아니야아. 엄마 아파써... 한울이가 많이 미안해요.' 하고 말한다. 으이구... 아들. 나는 한울이의 양 볼에 입을 맞추고는 정국이를 향해 소리없이 말했다.
이따가 봐. 죽었어. 진짜.
정국이는 내 입모양을 알아 들었음에도, 못 들은 척 제 어깨를 으쓱인다. ...저거 몇 살이야. 진짜.
2. 정국이의 신분증 만들기.
"열 손가락 전부 다 묻혀주세요."
살다살다 남자친구 민증을 만들러 같이 올 줄이야. 나는 사뭇 진지하게 제 손가락에 잉크를 묻히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난 저거 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더라. 순식간에 느껴지는 아이와의 나이차이에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그를 담당하던 직원이 나 쪽을 향해 물었다.
"친구는 안 만들어요?"
나는 설마 나를 향해 묻는 질문인가 싶어, 저요?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남자 직원은, '응. 학생이요.' 하고 답한다. 헐. 대박. 나는 참을 수 없는 웃음에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정국이는 제 지문에 잉크를 묻히다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정국이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저는 만든지 한참 됐어요."
"...네?"
"저 스물 셋인데."
"정말요?"
"네!"
직원은 친절함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정말요? 하고 물었고, 나는 그런 직원에게 밝게 네! 하고 답했다. 내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정국이는 직원의 테이블을 툭툭 - 치고는, '다했어요.' 하고 말한다. 직원은 정국이의 손가락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두 번째랑 네 번째 손가락 더 묻히세요.' 하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내게, 다시금 '진짜 동안이시네요.' 하고 말을 걸어온다. 연하 남자친구 만나니까, 별 소리를 다 들어보겠네. 나는 직원에게 가볍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는, 종이 위로 제 지문을 찍는 그를 지켜봤다. 아니... 뭘 저렇게 꾹꾹 눌러. 지문 뭉치게. 아니나 다를까 직원은 새 종이를 가져오며, '조금 살살 찍어주세요.' 하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그럴 생각이 없는지 제 손가락을 종이 위에 강하게 눌러 내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은 그를 잠시동안 쳐다보다가 제 고개를 기웃거리고는 다시 종이를 가지러 간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진다.
"...뭐해!"
"어려 보인다니까 엄청 좋아하더라."
"...뭘 또 엄청 좋아해."
아이는 내 말에 대답대신 내 얼굴을 바라보며 살짝 웃어보였다. 저 웃음은 또 뭐야. 어느새 새 종이를 한 장도 아닌, 뭉텅이로 가져온 직원은 그의 앞에 종이를 두고는 내 쪽으로 향한다.
"저 이거 음료수라도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저... 근데..."
"네?"
정국이는 아예 몸을 돌려 앉아, 나와 직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직원은 내 얼굴의 왼 쪽을 가리키며, 저 근데... 하고 말을 머뭇거린다. 왜지? 나는 쉽게 말을 하지 못하는 직원에 네? 하고 물으며, 벽에 붙어 있는 거울을 바라봤는데.
왼 쪽 볼과 목덜미 쪽에 보기 좋게, 아이의 손가락 다섯 개가 찍혀 있었다. 아마도 그가 방금 전 입을 맞추며, 내 왼 쪽 볼을 감싼 탓이겠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화르륵 타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직원은 나와 정국이를 번갈아 바라보는 듯 했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직원을 향해 '끝났는데요.' 하고 말한다. 직원이 멀어지는 발 소리가 들리자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아이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쳤다.
"일부러 그랬지!"
"아니. 버릇인데."
"뭐?"
"나 버릇이야. 그거. 얼굴 감싸는거."
"...야."
어느새 정국이의 맞은 편에 앉은 직원이었다. 직원의 눈은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했다. 나 아청법으로 잡혀 가는 거 아니야...? 직원은 정국이의 지문이 묻은 종이를 정리하는데, 정국이는 그 사이를 못참고 또 한 번 사고를 친다.
"나 키스할 때도 그러는데. 뭘 새삼."
"..."
"몰랐어?"
그 말을 끝으로 건물을 벗어났다. 나 혼자.
3. 찰나의 순간
"이게 요즘 애들한테 제일 잘 나가는 거 맞죠?"
"네! 그럼요 - 녹음 기능도 있어서, 공부할 때도 편해요."
"아... 그럼 이거 하나 주세요."
"포장해드릴까요?"
"네. 아들 녀석 줄 거라."
"아. 그러시면, 여기 빨간 버튼 눌러서 녹음해주세요!"
"...네?"
"원래 녹음 기능 있는 제품 선물 할 때는, 선물 주시는 분이 다 해주시는 거예요!"
"...괜찮습니ㄷ"
정국이 생일 선물이나 사줘야겠다 싶어, 백화점에 들렀다. 늘상 이어폰을 꼽고 사는 아이라 제대로 된 엠피쓰리나 하나 사줘야겠다 싶었는데... 뭔 종류가 이리 많은지. 그냥 직원 아가씨의 추천대로 가장 최신형을 받아들고, 포장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직원 아가씨는 녹음을 해서 주라며 자꾸만 나를 부추긴다. 쑥스럽게 무슨.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괜찮다고 말하는데. 마침 가게 안으로 들어온 여자 손님으로 인해, 직원이 '그럼 녹음 다 끝나고 불러주세요!' 하고 떠난다. 방금 들어온 여자는 고등학생인지, 뒤에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아빠 빨리!' 하고 명랑하게 외친다. 부녀지간인가. 여학생은 핸드폰을 바꾸러 온 건지, 핸드폰 전시대 앞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참 밝기도 밝다. 학생의 아버지는 딸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쪽 구석에 마련 된 '호신무기' 코너에 시선을 돌린다. 하긴 딸 가진 아버지 마음이야 다 똑같지. 아들 녀석 하나 있는 나도 이 세상이 불안한데. 아이의 아버지는 딸아이 모르게, 호루라기 하나를 집어들고는 계산을 마친다. 여학생은 제 아버지의 팔을 끌어당기며, 제 마음에 드는 핸드폰을 가리킨다.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자, 괜히 더 그리워지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나는 빨간버튼을 눌러, 목소리를 다듬었다. 큼큼.
정국아.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26화가 조금 일찍 올라온 이유는, 바로 스페셜 화 때문이었어요!
마지막 화가 다가오는 걸 아쉬워 해주시는, 독자 분들을 위한 선물입니다 :)
텍파에 들어갈 많은 번외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ㅎㅎ
이번 화는 조금 급하게 올려서, 오타가 더 많을 것 같아요...ㅜㅅㅜ 시간 될 때 얼른 수정할게요!
스페셜 화 전에 26화도 있으니, 두 회차 모두 재밌게 읽어주세요.
특히 이번 스페셜 화의 '찰나의 순간'은 작품 초기 때부터, 꼭 넣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주민등록증 만들러 함께 간 내용은, 26화 댓글 중에서 의견을 주신 독자 분이 계셔서 추가해봤습니다.
아이디어 주신 슙기력 님 고마워요.
다들 몽글몽글 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