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하, 병판 나으리 댁에 가실 시각이 다 되셨사옵니다. 속히 서두르셔야 하옵니다."
"한 식경 정도 지체될 것이라 병판 댁에 이르거라."
(*한 식경 = 30분)
"저하, 하오나 이는.."
"이 아이와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아니더냐. 오늘이 지나면, 국혼이 이뤄지고 나면.."
"이 아이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질 않느냐."
"저하, 왜 오늘이 지나면 저하를 볼 수 없게 되옵니까?"
"그건,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없으면 나에겐 정말 아무것도 남지를 않는데, 그조차도 저들은 나에게 허락지 않는구나."
지학을 갓 넘긴 조그만 소년이 그보다도 더 작은 소녀를 애달프게 바라보자,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는 그런 소년의 모습이 가엾게만 보였다.
동그란 소녀의 눈에 울망울망한 눈물이 맺히자, 소년은 얼굴에서 슬픔을 거두고는 소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학 = 15세)
"그렇지만 괜찮다. 언젠가 내 것을 되찾는 날이 반드시 올 테니."
"그러니 꼭 나를 기다려 주어야 한다,
나의 세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