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A4-너 때문에
아침부터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침대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아직 졸음이 덜 가신 눈을 비비면, 지수오빠가 샛노란 유치원 원복에 모자까지 예쁘게 쓴 채로 서있었다. 문을 열어준 엄마가 놀라 어머, 지수 무슨일이니? 하고 물으면 오빠는 헤,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여주랑 유치원 같이 갈꺼에요!" 들어와 기다리라는 엄마의 말에 부엌 탁자에 앉아 엄마가 담아준 과자를 야무지게 오물오물, 먹고있던 지수오빠는 세수를 다 하고 새거라 아직 빳빳한 유치원 원복을 입은 채, 어색하게 서있는 날 보더니 의자에서 폴짝, 하고 내려와 제 고사리같은 손을 탈탈 털고선 히야... 하며 박수를 쳐보였다. "여주 너무 예쁘다... 지수꼬야." 놀이터에서 반지사탕을 끼워주던 그 날 이후로 오빠는 말끝마다 지수꺼, 라는 말을 붙이는게 일종의 버릇이 되어버렸다. 그에 수줍어 작게 웃어보이면, 오빠는 내 손을 덥썩 잡더니 현관 앞에서 우릴 배웅해주던 엄마한테 야물딱지게 "다녀오겠슴니다!" 하고 인사까지 해보이고선 신난 발걸음으로 종종종, 앞장서 걸었다. "여주 오빠 손 꼭 잡으세요." 연신 그 말을 반복하며 내 손을 고쳐잡던 오빠와 얼마 걷지 않아, 뒤에서 지수야아아!! 하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면, 안간힘을 쓰며 달려오는 이석민이 보였다. "지수 나빠! 석민이도 같이 가야지!" 작은 손으로 주먹을 콩, 쥐며 흔들흔들해보이는 석민에게 지수오빠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러. 지수 여주랑 둘이 갈래. 여주 지수꼬야." 그에 이석민은 허! 하고 어이없단 표정을 지어보이고선 말했다. "여주 석민이꺼야! 여주 내 동생이야!!" 이석민의 대답에 지수오빠는 흥, 하고 제 등 뒤에 날 숨긴 채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여주 지수꼬야. 여주랑 지수랑 커서 결혼하기루 했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주 진짜야?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오는 석민에게 고개를 끄덕끄덕, 해보이면 석민은 축 쳐진 어깨를 우리 둘에게 보이며, "그럼 지수가 여주 가져..." 하곤 터덜터덜, 저 혼자 걸어가버렸다. 그런 석민이 신경쓰이지도 않는지, 지수오빠는 웃음을 얼굴 한가득 띄운 채 내게 말했었다.
"들었지? 이제 진짜루 여주 지수꼬야!"
유치원에 들어서자 마자, 지수오빠의 친구들이 나와 지수오빠 주위를 둘러쌌다. "안녕!"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오빠의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자, 지수오빠는 눈을 가늘게 뜨며 갑자기 나를 꽉 안아버렸다. "안대! 얘 지수꼬야!" 그 소리에 금방 풀이 죽어버린 오빠의 친구들은 내게서 멀찍이 떨어져선 "지수꼬...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에 나도 안녕,하고 손을 흔들어보이자, 지수오빠는 내 팔을 잡고 제 뒤로 숨겨버리더니 내 귓가에 속삭였다. "여주 쟤네한테 인사하지 마" 그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다행이라는 듯, 오빠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너무 예뻐!라고 연신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오빠와의 추억으로 이미 범벅이 되어버린 작은 상자를 덮으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면 다시 약해질 것만 같아서.
오빠만 보면 그렇게 설렜던 기억이 있다.
그저 그랬을 뿐이다.
회장님이 보고계셔!
be mine!
02.
아, 짜증나 진짜.
교문 앞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짜증을 내며 가방을 바닥에 패대기 치는 이찬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오기 전엔 덥다고 짜증이더니 지금은 또 왜 짜증이래. 별꼴이야, 하며 눈을 흘기는 날 보며 찬은 울상을 지으며 내게 매달렸다. "야 여주야, 오늘 선도 또 저 형이야, 재수없게." 찬의 말에 돌아본 교문 앞엔, 지수오빠가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하나씩 인사해주고 있었다. "진짜 지랄맞네." 내 말에 찬이 맥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다, 이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오늘 학교 가지 말래?" 이미 단정지은 듯한 그 말투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 또 봉사할 일 있냐, 얼른 들어가기나 해." 강하게 제 등을 떠미는 손길에 찬은 못이기는 척, 교문으로 들어섰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저도 봉사는 죽어도 두번다시 하기는 싫었을게 분명하다. 고개 숙이고 얌전히 들어가. 내 말대로 살금살금 들어가던 찬은 몇발자국도 걷지 못하고 이내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너 또 넥타이 안맸네."
덩달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가 고개를 들면, 그곳엔 이찬의 와이셔츠 뒷쪽을 잡은 채,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찬의 가슴팍을 가리키고 있는 지수오빠가 있었다. 누가 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는다고 했던가. 이찬은 웃는 얼굴에 주먹을 꽂고도 남을 놈이었다.
"아 씨, 진짜 짜증나게."
일순간 표정을 구기며 오빠를 쳐다보는 찬의 행동에 오빠의 표정도 덩달아서 구겨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제 페이스를 되찾은 오빠는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분명히 저번에는 봐줬던 것 같은데." 오빠는 분명 조곤조곤, 평소와 같은 상냥한 말투로 말했지만 여기서 굽히고 들어갈 이찬이 아니었다. "그래서요?" 고개를 쳐들며 당당히 되묻는 찬을 보며, 이대로 둬서는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못할거란 생각에 교복에 핀으로 얌전히 고정되어있던 내 이름표를 손으로 뜯어냈다. 그리고선 이찬의 뒷목을 아직도 그러쥐고 있는 지수오빠의 손을 떼어낸 뒤 오빠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저도 명찰 안했는데요." 삐딱하게 저를 바라보며 말하는 내 모습에 지수오빠는 당황한 표정으로 날 보더니, 이내 제 손에 쥐고 있던 명단을 힘없이 내리고선 가보라는 듯 손짓을 해보였다. 그런 내 옆에서 제 와이셔츠를 툭툭 털던 이찬은 별꼴이야, 하며 내 팔을 잡아 이끌며 다시 걸어나갔다. "아 저 형은 왜 맨날 나만 못잡아서 안달이야, 너는 맨날 봐주는 놈이." 그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관심없다는 듯 손을 휘 저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내 대답에 입맛을 쩝, 하고 다시던 이찬은 다시 지수오빠가 서있는 교문 쪽을 쳐다보며 마음에 안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재수없어."
집에 들어와서까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찬은 왜 하필 오늘같은 날에 넥타이를 안매고 와서. 갑자기 치미는 짜증에 이찬에게 전화해 화라도 낼까, 하다 한숨을 턱 내쉬며 손에 쥔 핸드폰을 다시 침대에 패대기 쳤다. 아 짜증나 진짜. 머릿속의 생각을 비우려 가만히 누워있어도, 일전의 지수오빠의 표정이 계속 머릿속에 잔상을 남기며 맴돌아 오히려 두통만 더 심해졌다. 괜히 속앓이만 하고있기 싫어 눈을 질끈 감으며 잠이라도 자려 하면, 갑자기 방문이 세게 열리더니 이석민이 쿵쿵 소리를 내며 누워있는 내 등판을 팡팡 내리쳤다. "기집애야 너 또 홍지수 속썩였지." 깊은 한숨을 훅훅, 내쉬며 말하는 이석민에게 도리어 짜증을 내며 돌아누웠다. "아 속 안썩였어. 아는 척도 안하는데, 무슨." 내 대답에 이석민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침대 모퉁이에 걸터앉았다. 그리고선 턱을 괸 채 심각한 눈빛을 하며 하는 말. "그러니까, 왜그러는건데." 그런 이석민의 말에 대답도 못하고 그저 베개에 얼굴을 더 깊이 파묻으며 손을 휘저었다. "아 몰라. 그냥 나가라 좀." 내 말에 이석민은 독한 기집애, 하며 눈을 부라리고선 땅에 떨어진 인형을 내 쪽으로 세게 던지며 문을 쾅, 닫고선 나가버렸다. 미친놈이 진짜, 짜증나게. 혼자 욕을 중얼거리며 내 옆에 떨어진 인형을 주웠다. 그러고 보니 이 인형도 중학생 때 오빠가 뽑기기계에서 뽑아다 준 거였는데. 돈을 2만원이나 날리고서도, 기어코 내가 눈독들이던 인형을 뽑았다며 연신 웃으며 내 품에 인형을 자랑스레 안겨주던 오빠의 그 모습이 아침의 풀죽은 오빠의 모습과 겹쳐보여 고개를 떨궜다. 이젠 이 인형도 못안고 자겠네. 애꿎은 인형을 한손으로 꾹, 누르며 서랍을 열어 구석 깊은 곳에 놓아두었던 상자 안에 인형을 억지로 쑤셔넣었다. 인형을 넣다 상자에서 떨어진 사진 한장을 주우려다 이내 손을 멈췄다.
중학생 때 같이 놀이공원에 놀러갔다가 찍은 사진.
이 때 오빠가 나 목마 태워준다고 엄청 애썼는데. 나란히 토끼 귀 모양 머리띠를 하며 웃고 있는 사진을 반으로 접어 다시 상자 안에 넣어버렸다. 다시 봐봤자 아프기만한 거, 오래 볼 필요가 있나. 쓴웃음을 짓고 서랍을 닫았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 꽁꽁 숨기다 보면, 어느새 다 잊혀진 후겠지. 다시 침대에 누우려다 발에 무언가 걸려 아래를 내려다보면, 작은 상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꽤나 먼지쌓인 그 모습에 상자를 조심히 열면, 그안에는 각종 연고와 밴드가 들어있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 뚜껑을 잃은 채 끈끈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연고를 경멸스러운 눈초리로 응시했다. 이제 이건 필요없겠지. 자꾸만 쿵쾅대며 크게 뛰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그 먼지쌓인 상자를 쓰레기 봉투에다 넣어버렸다. 어차피, 온통 아픈 기억들 뿐이다.
날 보며 짓던 오빠의 그 아픈 표정 만큼이나.
꽃봉오리 |
2화 업뎃 완료 8ㅁ8 역시 글은 그렇다 쳐도 마지막 다듬는 과정이 제일 오래걸리네용... 오늘 남사친이랑 서점 갔는데 아주 나이스 포카 민규가 안나온다며 앨범 12장 사는 광경 보고 기절.... 덕분에 승철이 포카 받았어요... 결국 한번 나와주신 민규님..! 요즘 암호닉 신청 해주시는 분들이 많으시던데 암호닉을 다시 받아야 할까요...8ㅁ8 고민중입니당. |
꽃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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