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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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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레논 전체글ll조회 533l

  톡, 톡, 톡. 암막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으로 빗방울이 약하게 내리치며 들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도 고요한 방 안을 울렸다. 작고 아담한 방 한구석에 놓인 야트막한 침대에 기대 책을 읽고 있던 성종은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에 책을 덮어 내려두고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가늘고 긴 손가락을 뻗어 커튼을 살짝 들추자 빗방울이 조금 맺힌 창문 너머로 집으로 올라오는 오솔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바라보는 성종은 곧 세상을 버리고 떠날 것만 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와 핏기 없이 허여멀건 한 입술 색이 그것을 더욱 부각해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눈에는 살아있는 누군가의 눈빛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저 자신도 불편한지 습관적으로 매만지는 입술은 겨울이 아님에도 이리 트고, 저리 터버린 채로 곳곳에 피딱지가 얹혀 있었다. 


 

  미약했던 빗줄기는 점차 거세지더니 이제는 창문 너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번져나갔다. 더는 잘 보이지 않는 바깥 풍경에 흥미를 잃은 성종은 커튼을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침대로 돌아왔다. 아까 읽다 말았던 책을 볼까 싶어 다시 한 번 들여다봤지만, 책은 다시금 그의 흥미를 끌기에는 한없이 역부족이었다. 그는 책을 침대 아래로 내던지듯 두고 침대에 돌려 누웠다. 다시 잠에 빠져들 요량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쉬지 않고 제 존재감을 과시라도 하겠다는 듯 계속해서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차마 잠이 들지 못한 그는 빗방울 소리에 맞춰 리듬을 타듯 손가락으로 딱딱한 벽을 두드렸다. 톡, 톡, 톡. 이제는 꽤 많이 길어버린 손톱이 벽에 부딪치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러다 문득 보이는 손목 위 적갈색의 가느다란 상처 몇 개에 시선이 간 그는 가만히 그 상처를 바라보다가 보기 싫다는 듯 손가락 장난을 그만두었다. 


 

 오늘도 성종을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이제 곧 자정을 가리킬 예정인 탁상시계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는 죄 없이 시키는 대로 돌아가고 있을 뿐인 시계를 들었다. 아무리 눈을 깜빡여도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시간이 변할 리야 없었다. 그는 시계 뒤편의 장치를 조정해 시간을 뒤로 돌렸다. 11시, 10시, 9시…… 계속해서 시간을 돌렸다. 그러나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를 찾아와야 할 사람은 찾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혹시 날 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며 갖은 걱정이란 걱정은 말도 안 되는 것까지 다 끌어다가 해댄 그는 답답한 마음에 시계를 들어 내던졌다. 짧은 거리를 날아가던 시계는 곧 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쨍그랑, 시계 파편이 그릇을 맞춘 것인지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다시 수그러들었다. 그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리가 알려준 대로 시계의 큰 파편이 결국 유리 그릇을 깼다. 그는 일어나서 그것을 정리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언제 올지 모르는 제 형이 알아서 정리해 줄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눈을 뜨고 있었다는 것의 증명인 피곤이 한순간에 몰려온 그는 무책임하게 눈을 감아버렸다. 


 

  성종은 어쩐지 부산스러운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잠의 여파로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리며 잠을 쫓아내던 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는 이미 그쳤는지 빗소리는 더는 들려오지 않았고, 암막 커튼 사이로 밝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침이었다. 그리고 어젯밤 깨부수었던 탁상시계와 유리 그릇들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 뜻은, 


 


  "형!" 


 


  성종의 미성이 방 안을 울렸다. 그는 서둘러 세수를 하고 방문을 열었다. 저만치 떨어진 부엌에 키 큰 남자의 형체가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요리에 집중하고 있던 그의 형, 성열은 성종이 다시 그를 부른 후에야 겨우 뒤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밝은 함박웃음을 지은 채 손을 흔들고 있는 성종을 본 성열은 좀 더 기다리라며 들어가 있으라고 손짓을 했다. 


 


 "언제 온 거야?" 

 "새벽에. 일이 늦게 끝나서." 

 "걱정했잖아." 

 "알아." 


 


  다시 요리에 집중하면서도 성종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을 해준 성열은 얼마 남지 않은 요리를 끝마치고 앉은뱅이 식탁에 제대로 상을 차렸다. 그리고 그것을 침대에 앉아 그를 기다리던 성종의 앞에 내려두었다. 성종은 아까 보이던 반가운 기색은 어디로 보내뒀는지 삐진 듯 픽, 하며 고개를 돌렸다. 와야 할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늦게 온 제 형에 피우는 어리광이었다. 성열이 그것을 모를 턱은 없었으나 제가 잘못한 것은 있으니 그냥 봐주기로 했다. 


 


 "배고프지? 빨리 밥 먹어, 응?" 

 "……." 

 "안 먹으면 내가 다 먹는다?" 


 


  성열은 숟가락에 볶음밥을 가득 담더니 짐짓 먹는 체를 했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성종은 고픈 배에 조용히 항복하고 볶음밥을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이 귀여운 성열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심심하지는 않았어?" 

 "심심했어……. 난 언제 바깥에 나갈 수 있어? 빨리 나가고 싶어. 사람들도 만나고, 친구들도 사귀고, 형이랑 놀러도 가고, 하고 싶단 말이야. 언제까지 방 안에만 있어야 해?" 

 "…… 미안, 나도 몰라." 

 "형이 가서 그 아저씨, 그래 촌장님한테 물어보면 안 돼? 나 나가면 안 되냐고 물어봐. 나 많이 컸잖아. 이제 형이랑 눈 마주쳐도 아무 일 없잖아, 응?" 


 


  성종이 점점 울상을 지으며 성열을 채근했다. 

  성종의 나이는 열여덟. 그 사건이 그가 다섯 살이었을 때 있었던 일이었으니 이렇게 외딴 산속에서 갇혀 지낸 것이 벌써 13년이었다. 다섯 살 짜리 꼬마 애가 부모도, 친구도, 그 누구도 없이 오롯이 성열, 자신과 지낸 시간이 13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으며, 왜 갇히게 된 것인지. 가둔 것도 모자라 방 밖으로 나갈수 조차 없게 강한 결계까지 쳐 둔 것인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성종이 성인이 되면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모든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되기 까지 단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확정 지은 그는 절대 그것을 성종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고 애써 웃어 보였다. 


 


 "그래도 일주일 동안 성인식 주간이잖아. 그동안 많이 놀아줄게. 그럼 괜찮지?" 

 "……응." 


 


  성종은 서운했지만 그래도 일주일 동안 떨어질 일은 없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면 모두 말해주었으면 좋겠지만. 


 

  성종은 어느새 볶음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배가 부르니 예민했던 기분이 다시금 평온하게 돌아왔다. 성열은 치우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는 앉은뱅이 식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혼자가 된 성종은 벽 한쪽에 걸려있던 큰 달력을 바라보았다. 빨간 색연필로 마구 동그라미를 쳐둔 5월 16일 앞뒤로 3일간에 걸친 성인식 시즌에는 빨간 줄이 연결되어 그려져 있었다.  


 


 

 "오늘이 12일이었구나……." 


 


  성종이 중얼거렸다. 성종이 아는 성인식은 그와 같은 열여덟 살 초능력자를 대상으로 열리는 게임이었다. 종목이 무엇인지는 매년 바뀐다고 했으며, 사람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다고 했다. 성열이 알려준 것이 딱 거기까지였다. 더 알려달라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성열은 항상 그것 말고는 해줄 말이 없다고만 할 뿐이었다. 


 

  멍하니 기다리고 있던 성종의 앞에 짠, 하고 붉은 장미 한 송이가 들이밀어 졌다. 아픈 가시를 모두 제거한 채, 분홍색 포장지에 싸여 있는 장미를 받아 든 그는 무심결에 향기를 맡았다. 은은한 장미의 향이 느껴졌다. 


 


 "이건 뭐야?" 

 "장미. 옛날부터 성인식 날에 성인이 된 걸 축하한다는 의미로 장미를 줬대." 

 "예쁘다. 나 이거 처음 봐." 


 


  성종이 장미 꽃잎을 살살 쓸면서 말했다. 항상 책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등장했었던 장미를 실제로 보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던 그는 한동안 장미에서 눈을 떼지를 못했다. 향도 몇 번을 맡아보고, 잎을 쓸어보고, 가시를 잘라내면서 생긴 울퉁불퉁한 줄기를 만져보고……. 성열은 한없이 신기해하는 성종을 보며 웃고만 있었다. 곧 이런 것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게 될테니까. 


 


∞∞∞ 


 


  행복한 시간은 항상 빨랐다. 어느새 암막 커튼 사이로 삐져나오는 태양 빛이 사라지고 완전한 어둠이 깃든 후에야 성종은 벌써 잘 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성열에게 너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며 불평한 성종은 성열에게 오늘은 같이 자자고 졸랐다. 당연히 승낙한 성열은 성종에게 먼저 씻으라고 권했다. 성종이 화장실로 들어간 후에 창고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하늘색 화병에 물을 채워 가지고 온 성열은 성종에게 주었던 장미의 포장을 풀어 화병에 꽂았다. 하늘색과 붉은색.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그러나 성열은 한없이 걱정스러웠다. 성종은 그에게 준 장미의 의미를 단 하나도 모르겠지만, 성열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제발 내일 아침에 성종이가 제 옆에 있게 해주세요." 


 


  성열은 성종에게 절대 들리지 않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뒤에 신을 찾는 온갖 소리를 붙이려다 그만두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신 타령을 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였다. 단지 제발 이 장미가 효력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 


 

(오타 첨삭 중) (끝!) 

인피니트 글이 활성화 되기를 빌며, 쫑멘-.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독자1
안뇽 독자입니당 신비의 쫑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얼른 성종이 방을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예요.. 장미가 무슨 능력이있을까 궁금해서라도 다음편을 읽고야 말겠어요! 수고했어요
8년 전
비회원23.10
잘 읽고 갑니다 빨리 2편으로 돌아와주세요!
8년 전
독자2
잘 보고 가요!!!♡
8년 전
독자3
잘 읽고 가요! 2편도 보고싶어요...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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