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VS 연애 #02
_워커홀릭
선배랑 같은 현장에서 촬영을 한다는 건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일이지만⋯ “추워? 추우면 이거 입어.” 굳이 내가 몰라도 되는 일까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도 모르는 척 해야된다는 게 제일 큰 단점이랄까. 내가 분명 다른 여자한테 옷 벗어주는 거 싫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까먹은 건지 신경도 안 쓰는 건지 촬영장에서 다른 여배우한테 자기 옷을 벗어주는 선배가 눈에 띄었다. 추운 날씨인 것도 맞고, 옷 빌려줄 수도 있는 건데. 나는 그게 뭐라고 이해가 안 된다. 내가 말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싫다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준 선배도 밉고 고작 그거 하나 이해 못하는 나 자신도 마음에 안 들어서 알게 모르게 선배한테 하루종일 틱틱거렸다. “왜 그래?” “뭐가요?” “어디 아파? 왜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지.” 촬영 중간에 잠깐 시간이 났을 때 선배가 내 옆에 와서 조용히 말을 거는데 그조차도 미워서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선배랑 얘기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표현할 것 같았고, 그런 사적인 감정을 현장에서 보이고 싶지 않아서도 있고 선배랑 싸우기 싫은 것도 있고. 그냥 복합적인 이유들로 선배가 묻는 말에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선배도 끝나고 얘기하자며 더이상 묻지 않았다. 머지않아 다시 시작된 촬영은 하필이면 나랑 선배의 데이트 장면이었다. 별다른 대사 없이 둘이 길을 걸으며 마주보고 웃기도 하고 뽀뽀도 하고 뭐 그런 장면들. 평소와 다를 거 없이 순조로운 촬영이었고, 사실 나도 선배랑 마주보고 연기하면서 마음이 조금 풀린 것도 있다. “웃으니까 훨씬 예쁘잖아.” 감독님의 컷 소리가 나자마자 내 귓가에 속삭여준 말 덕분인 것도 있고, 뭐⋯ 이렇게 나혼자 기분 나빠봐야 시간만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나쁘긴 하다. 어떻게든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려고 하는데 내 기준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집으로 갈래?” 촬영이 다 끝나고 선배가 나랑 둘이 얘기 좀 한다며 본인 매니저랑 내 매니저까지 먼저 보내버렸다. 둘 사이의 어색한 침묵을 깬 건 선배였다.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는 모양인지 어떻게든 내 기분을 맞춰주려 하는 모습이 귀여워보이면 병인가. “선배.” “응?” “있잖아요. 선배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는데.” “응, 얘기해.” “나는요, 진짜. 진짜로 선배가 다른 사람한테 막 그렇게 선배 옷 벗어주고 이런 거 진짜 싫어요. 진짜.” “⋯아.” “나도 그게 왜 이렇게 이해가 안 되고 짜증나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냥⋯ 싫어요. 선배가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다른 여자한테 잘 해주는 거. 물론 선배는 그렇게 남 챙기는 게 습관일 수도 있고 정말 감정 없이 하는 행동일 수도 있는데. 그래서 어떻게든 선배 이해해보려고 했는데. 나는 이해 못하겠어요.” “⋯” “몰랐던 것도 아니고, 전에 분명히 얘기했잖아요. 나는 그런 거 진짜 싫다고⋯ 내가 모르는 상황이면 어떻게든 넘겨보겠는데 다 보이잖아요. 안 보고 싶어도 보이고. 나도 차라리 그냥 몰랐으면 좋겠어요, 선배가 남들 그렇게 챙기는 거.” “⋯그거 때문에 하루종일 그랬던 거야?” 선배 반응이 역시나 나를 이해 못하는 거 같다. “근데 더 싫은 거는요. 별 것도 아닌데 이해 못하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내가 더 싫어요. 이런 것도 이해 못하는 애 같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지.” “⋯” “애 같다는 말이 여기서 왜 나와. 서로 이해 못하는 게 있으면 얘기해서 풀면 되는 거지.” “선배는 맨날 서운한 거 없다고 하는데 저는 하루에도 막 백 개씩 쌓이니까.” “그렇게 많아? 그건 내가 미친놈이네.” “아니이⋯ 말이 그렇다고.” “백 개여도 되니까 서운한 거 있으면 이렇게 다 말해줘. 내가 더 조심할게.” 혼자만 또 어른인 것 같은 선배 모습에 쳇-하고 창 밖만 바라보자 선배가 자기 좀 보라며 내 손을 잡는다. “내가 둔해서 사소한 거 까지 신경 못 써서 미안해. 자기가 싫다고 했던 거 다 기억하는데, 아까는 내가⋯ 아니야, 그냥 내가 잘못했어. 싫다고 하면 안 하면 되는 건데 괜히 속상하게 했어.” “맨날 자기만 멋있는 척 해.” “안 그러려고 해도 멋있는 걸 어떡해.” 사과를 하는 건지 자랑을 하는 건지 뻔뻔한 선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면 기분 좀 풀렸냐며 양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는 볼을 어루만지다 짧게 입을 맞추고는 떨어진다. 별 말 없이 선배랑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괜히 애틋한 기분에 선배 목에 팔을 두르고 입술을 포갠다. 차 안에서 불편한 자세로 한참동안 입을 맞추다 겨우 떨어지면 타액으로 번진 선배 입술,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일 내 입술만 내려다보는 선배 눈이 보인다.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