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감성 - JT&MARCUS♬)
그렇게 너의 죽음으로 한편의 이야기를 지어 먹었다.
* * *
밤은 길고 공허했고, 나의 곁을 비운 너의 자리에는 서늘함만이 가득했다.
그 순간이 마지막인줄 알았더라면, 나는 네게 조금 더 따스히 웃어주었을까.
나는 영정 앞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날 그렇게 가버릴 연인이었다면 날을 세웠던 그 말들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맹세를 수없이 해보아도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불현듯 고개를 드는 그날의 순간들, 그리고 차가웠던 표정들은 영정의 해사한 미소 앞에서 무참히 무너져내렸다. 그날 밤, 네가 죽었다.
긴 호흡으로 불러내어보는 그의 이름에 온기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머지 않은 일이었다. 새벽 언저리의 시간이 되면 너의 이름이 자꾸만 입가를 맴돌았다. 차마 뱉을 수 없는 이름이 되어 나의 곁을 맴도는 까닭은, 아직 네가 나를 사랑해서일까. 아니라면 내가 너를 그리워해서일까.
그의 모든 물건을 버리면서 단 하나의 물건을 버리지 못했다. 잠옷에 롱패딩을 뒤집어 쓴 채, 모아놓은 용돈을 손에 쥐고 종종걸음으로 뛰쳐 나갔던 지하철 역을 다시는 지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의 모습을 내내 담고 있던 카메라를 어떻게 쉽게 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의 그녀까지도.
우리는 사진을 사랑했다. 영영 멈춰있을 것만 같은 순간을 담아낸 그 한장의 종이쪼가리를 나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나의 품 한켠에 숨은 너와의 사진, 그리고 네 SNS에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는 너와 그녀의 사진. 같은 날 찍은 두 장의 사진은 퍽 섭섭하게도 운명이 달랐다.
하지만 사진은 온전히 내가 바라볼 수 있는 너였기에 나는 사진을 사랑했다. 그리고 너 또한 그러길 간절히 바랐다. 언젠가 너와 그녀와 함께 떠난 여행을 잊지 못한다. 그 시간의 기억에서 나는 그녀를 지운 채 너만을 기억하고자 애썼다. 비로소 기억 속에서나마 너는 나와만 함께였다.
뷰파인더 속의 그와 눈이 맞을 때면 심장 소리가 귓전을 때려 그녀의 웃음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다. 수년간 그와 그녀, 그리고 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했으니 그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너의 곁은 다행히도 두 개의 자리를 갖고 있어 나는 그녀가 갖지 않은 다른 한 자리를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그러한 믿음이 어리석은 믿음이라는 사실을 그녀로 인해 깨달았다는 사실에 고작 분개할 수 밖에 없음이 괴로웠다. 나의 카메라로 나는 너를 바라보았는데, 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오랜 시간을 기다린 손바닥만한 사진의 우리는, 꽤 잘 어울리지 않았나.
네가 떠난 후 시간은 속절 없이 흘렀다. 사무치게 그리워하다 행여나 기억 속의 네가 닳기라도 할까, 그리움조차 아꼈던 나의 간절함을 너는 알고 있을까. 그렇게 너의 그녀를 만났다. 그녀 또한 너를 그리워하고 있었으나 나는 어리게도 그런 그녀가 밉기만 했다.
- 그를, 사랑했어요.
그녀가 과연 나보다 널 그리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을 해보았다. 수백번 의심하고 내린 대답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나의 마음은 세상 밖으로 내보일 수 없었으나 그녀의 그것은 그럴 수 있었다. 그조차도 나는 질투가 나서, 너의 이름을 쉽게 내뱉는 그녀의 입을 찢어버리고만 싶었다. 너의 그녀만 아니었더라면.
그래, 너의 그녀다. 그리고 너는 그녀의 그다.
이제야 자명해지는 이 사실에, 나는 넝마가 되었다.
역시 너는, 나의 그일 수는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