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flower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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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회 서울 국제 피아노 콩쿨을 시작 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가자 분들은 차례대로 준비 해 주시고, 약 10분후 콩쿨을 시작하겠으니 관람자 여러분들은 자리에 착석을 부탁드립니다."
사람 많고 말소리가 떠들석한 공연장에 그저 멍하니 무대 위를 쳐다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새하얀 손가락들이 서로를 움켜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긴장을 풀어주고 있는 듯 보였다. 남자의 옷차림새는 단정한 턱시도 차림으로, 이 콩쿨에 참여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남자을 지나치던 아주머니 두분이 남자을 보면서, 수근 거렸다.
"저 사람이 저번 콩쿨 우승자라며?
"그렇다니깐, 이번에는 어떤 곡을 준비할지 정말 기대 되는 사람이야."
"저번에는 어떤 곡을 쳤는데?"
"몰라. 하여튼 간에 정말로 대단했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대단했다니깐."
"그렇게나? 되게 평범하게 생겼는데?"
"에이, 나중에 수연이 엄마가 직접 봐봐. 대단해."
"알았어, 이제 곧 시작 할것 같으니깐, 얼른 들어가자고."
"알았어. 아, 근데 저 사람 이름이 뭐라고?"
"김성규래, 김성규."
그저 공허하게 무대를 쳐다보던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듣자, 긴장을 푸는듯 보였던 움켜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손을 펴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내 눈살을 찌푸려 공연장을 나갔다. 터벅터벅 걷는 발소리가 대리석인 공연장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곧이어 콩쿨 시작 멘트가 공연장에 퍼졌다
"제 20회 국제 서울 피아노 콩쿨을 시작하겠습니다!"
*
태어나자마자 받는 스포트라이트란. 나에겐 지독한 싸움이었다. 성악가이신 어머니와 지휘자이신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태어나기 전 부터 음악성을 인정 받았다. 사람들은 어린 나를 천재라고 불렀고, 친척들은 나를 집안의 기둥이라고 부르셨고, 부모님은 나를 피아니스트라고 부르셨다. 태어나자마자 했던 검사는 건강 체크 검사가 아닌 머리 지능 검사 였고, 돌잡이는 실, 연필이 아닌 악기였다. 돌잡이로 피아노를 건반을 잡아, 곧바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풀기 전에 피아노의 현을 풀었고. 블럭으로 탑을 쌓기 전에 마스터한 피아노 책을 쌓았고, 영어 알파벳을 외우기 전에 음계부터 외워야 했다.
친구를 사귀기 전에 피아노 한곡을 다 쳐야 했고 컴퓨터의 자판을 만지기 전에 피아노의 건반을 쳐야 했고 학교에 가기 전에 꼭 한번씩은 어머니가 원하는 피아노곡을 쳐야 했다. 하지만 난 불평 한마디 없이 모든일을 소화해 냈고, 부모님의 맘에 들고 싶어했다. 이미 9살 위인 누나는 사회계로 진출해 부모님의 관심을 한 몫에 받고 있었고, 나 또한 부모님의 관심을 받고 싶어했다. 아니. '잘했다'라는 칭찬이라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 받기엔 너무나 힘들었다.
부모님 뿐 만이 아니었다. 내 피아노 소리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잘했다' 가 아닌 '수고했다' 란 말을 더 좋아했다. 난 매번 잘해야 했고, 기대에 부응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엔 난, '대단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김성규'를 원망했다. 난 내 자신을 미워했다. 사실 미워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나,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약 일년간 나갔던 30번의 콩쿨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뒀다. 최고의 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콩쿨이 이번 년도 마지막 콩쿨이었다. 마지막 까지 좋은 성적을 거둬야 했다. 턱시도를 차려입고 큰 공연장을 메운 사람들을 한번 쳐다보고, 큰 공연장의 무대위에 덩그러니 놓여진 그랜드 피아노도 한번 쳐다보고, 이층 좌석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누구인가 모르게 나를 향해 수근 거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말이 거슬렸다.
"김성규래, 김성규."
김성규라. 난 김성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쁜 기분을 삭히려 음료수 한잔을 뽑아 마시려, 등을 돌려 공연장을 나갔지만, 공연장안에서 큰 마이크소리가 들렸다.
"제 20회 국제 서울 피아노 콩쿨을 시작하겠습니다!"
기분이 잡쳤다.
*
대기실에 얌전히 앉아 기다려야 했다. 나쁜 기분이 사라지질 않아 결국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옆에는 부모님과 함께 희희낙락 거리는 참여자. 부모님과 함께 긴장이 되는 듯 눈을 끔뻑거리며 있는 참여자, 부모님과 함께 화장실을 왔다갔다 거리는 참여자. 여러명이 있었다. 그들과 난 차이점이 있었다.
부모님.
한번도 내 공연을 봐주신 적이 없다. 늘 바쁘시다는 핑계로, 오지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었다. 내 옆에는 그저 반 쯤 있는 물병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긴장이 되지도 않았다. 그저 이번 콩쿨의 최우수상은 내껏이 되있겠지. 하는 마음에 얼른 쉬고 싶었다.
"다음 무대, 김성규 준비 해 주세요."
이름이 호명되고, 난 박수 갈채를 받기 '만' 하면 되었다. 그러기만 하면 되었다.
무대로 나가 시덥지 않은 인사를 하고, 피아노 앞에 섰다. 의자를 꺼내 앉고 손가락을 얌전히 피아노 건반위에 올려 두고 악보를 되새김질을 했다. 머릿속에 'start'가 되고 그에 맞춰 난 피아노를 쳤다. 현란한 손가락이 움직이고, 피아노 소리가 큰 공연장의 울림이 되었다.
10분간의 곡 하나를 마무리 짓고, 다시 인사를 하여 공연장을 빠져 나왔다.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크게 울렸다. 대기실로 가려던 복도 끝에는 여러 참여자가 나를 보며 '수고했다' 며 악수를 청했다.
"수고 하셨어요."
하나,
"역시 최고는 다른가 봐요."
둘,
"잘 들었어요."
셋,
"수고 하셨습니다."
넷,
"수고 십니다."
다섯,
"음악 잘 들었어요."
여섯,
"기대한 대로 예요."
일곱,
"역시나. 기대에 부응해주셨어요."
여덟.
"되게 잘하셔요."
마지막 아홉.
아홉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 들었다.
"김성규씨. 되게 잘하시네요."
내 이름이 기분 안나빴던 적은 그때가 처음일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