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초록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항상 열심히 하겠습니다.
복숭아 시즌 2
w. Bohemian Heal
나의 기억을 내가 망각하고 있었을 때,
나의 기억을 얼마나 외로웠을까
06: 그 여름 안에서 上
***
희미한 마지막 향은 향수를 불러일으킨 그 곳의 그 때, 그 향과 매우 비슷했으며 나는 열아홉 크리스마스를 기억했다. 추운 공기 연락을 받지 않았던 나를 찾았던 축축한 땀, 그 겨울 너는 얼마나 발걸음을 재촉했을까.
사건이 일고 법정의 발걸음이 잦아들었고 그간의 몰아친 피로를 일단락 시킬 시간이 주어졌고 비었다시피했던 인적 고요한 집 안, 항상 나의 신과 두배쯤 차이가 날 익숙하지 않은 신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나는 줄곧 잠만 잤다. 어찌 눈을 뜨면 커튼 새 진득한 밤의 수없이 하늘에 핀 모래알이 보였고 어찌 눈을 뜨면 뜨거운 직사광선이 얼굴을 때렸다.
"좀 일어나지? 어제 몇 시에 잤어"
"열두시"
"잘한다, 오늘 병원 가"
"다치지도 않았는데"
"그러면 잠 좀 깨고 서에 갔다와, 연락왔더라"
말을 가시가 돋쳤건만 바닥에 떨군 머리끈을 주어 손바닥 위에 올려둔 뒤 꽤나 피부에 스치는 더운바람이 거슬러지던 차 창문을 닫는 최승철이었다. 제작한 쇼가 마무리되며 당분간의 휴식을 온통 쓸데없이 이 집구석에 쓰는 그를 말려봤자 갈 곳도 없다며 슬쩍 넘어가버려 포기하니 그는 꾸준히 이 오피스텔로 발걸음을 찍어냈다. 덕분에 불안감 없이 안정을 찾아갔지만 한쪽의 신경은 도통 가라앉을 생각이 없는지 혼자 붕붕 휴대폰 위를 떠다녔다. 많이 바쁜가, 가로등 새 발걸음을 끈덕지게 묶었던 공포에서 나를 꺼낸 뒤 그림자도 비추지 않는 그가 직접적 화해도 없을뿐더러 신경이 가던 차 경찰서를 입에 담는 최승철에 고갤 돌리니 그는 문자를 건넸다.
"피해자 조사 참석, 같이 가주고 싶은데 오늘은 나도 바로 가야해서"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네"
"잡혔데, ..불안하면 같이 갈래?"
"됐어, 넌 약속 가고 난 지금 출발해야겠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를 지나치려니 손목을 잡아 돌려세우는 행동에 한참을 고개를 올려 시선을 맞추었을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침묵의 공기로 가득차 우리는 그리 바라만 봤다. 왜냐고 그 한 마디 나는 왜 묻지 못했으며 너는 왜 말이 없었을까. 종국에 머리만 헝클이고 신발 두고 간다며 한 마디 건넨 뒤 현관에서 금새 사라진 최승철에 나는 의문투성이로 한참 주방에 서있어야만 했다.
***
-"거의 다왔니?"
"아마, 우리 ㅇ여사 호강하네. 언제 집을 이렇게 지었데?"
-"그러게 이 기지배야. 이렇게 좋은 집 구경 좀 오라고 오라고 해도 안 오더니만. 너 없이 엄마 이렇게 좋은 집에 살았다. 후회가 좀 되냐?"
"약간 되네, 문 열어요. 우리 어머니 분부대로 마음은 가볍게 양손은 무겁게 해오니까 문을 열수가 없네"
"망가져 철 없는 기지배야!!"
휴가철이었다. 한 눈 팔지 말고 차피 연휴 집에 들리지도 않을 거면 휴가철 시간 내어 얼굴 좀 비추라는 닦달에 과일바구니를 잔뜩 들고 문을 발로 쾅쾅 차니 귓전을 날카롭게 때리는 ㅇ여사의 목소리와는 달리 거대한 형체에 고개를 올리니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젖은 머리를 털어내는 권순영이 서 있었다. 다시 이주일만이었다, 피곤한 눈을 비비고 손에 무겁게 든 과일바구니를 가져가며 왔어, 한마디와 함께 집 안으로 쑥 들어가버리는 그에 무어라 덧붙일 새 없이 나는 자리에서 기가 찼다.
"이모, 조금 이따 깨워주세요"
"어, 그래. ㅇㅇㅇ 넌 옷 갈아입고 이것 좀 도와"
"뭐야. 거의 일년만에 보는 딸한테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쟨 왜 저래"
"이주일동안 한숨도 못 잤데, 오늘 새벽 출발해서 우리 점심 사주고 이제 쉰다"
두 눈에 졸음을 가득 얹은 채 문꼬리도 못 찾는 한심한 형체에 문을 열어 방 안으로 떠밀자 반응을 할 기운도 없는지 방문을 닫아버리는 권순영이었다. 대체 일을 어떻게 하길래 저 모양인지, 부산으로 내려와 건축한 집에 오는 것이 처음인지라 이리저리 둘러본 뒤 권순영의 바로 옆 방 침대에 누우니 또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오랜만에 집 냄새도 부모님도 권순영도 마치 오래전 시간으로 돌려둔 듯 하니, 묘한 무언의 형용불가한 분위기 흐름만 맛봤다.
권순영은 정말 졸렸는지 저녁도 거른 채 잠에 들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잠에 들 그 시간에 걸쳐 겨우 잠에서 깨어 방에서 나왔다. 말리지 않아 밉게 눌린 머리를 정리하며 내 옆에 앉는 그와 공기는 참도 어색했고 그 어색함이 못견디게 간지러운 나와 달리 전혀 생각이 없는지 소스라치도록 싫어하는 로맨틱코미디가 티비에 방영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동이 없었다.
"..또 자냐?"
"안 자"
"잠은 왜 안 잤는데"
"쥐새끼 잡느라"
뭘 그렇게 몸 부서저라 열심히 하냐 타박을 하려던 순간 내 어깨에 닿는 머리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미동도 없이 감히 숨은 쉴까 손을 대어보려던 순간 길쭉한 팔은 어느새 나의 등 곁에 서 묵작한 손으로 어색한 토닥임을 들었다. 어지간히 힘에 부쳤들었을까, 눈을 연속해서 감았다 뜨는 그에게 더이상의 말 대신 엷은 이불을 건네니 것을 쥐어 덮고 곧 눈을 감자 나는 그제서야 다시끔 화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미안하다는 사과가 꼭 필요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니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열아홉도 아니었는데 별 걸 다 가지고 다퉜다싶었다, 그때 나도 모르고 큰소리난 것에서 괜시리 미안해 대화라도 좀 꺼내볼까 싶어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미약한 숨소리와 함께 잠든 너를 본 그제서야 나는 어색한 공기를 뒤로 할 수 있었다.
*
"ㅇㅇㅇ! 슈퍼가서 마늘하고 두부 좀 사올래? 정신 머리가 없나, 깜빡했네"
"금방 다녀올게"
후드를 뒤집어쓰고 좀처럼 뻑뻑하며 흐린 눈에 안경을 둘러쓰고 꽤 걸어 슈퍼로 향했다. 장소만 바뀌었지 정말 과거로 돌아온 이 느낌은 꽤 오묘했다. 간단히 물건을 담은 검은 비밀봉지 하나 덜렁 들고 슈퍼를 나서니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지는 몸집 큰 빗방울은 금새 안경을 감싸안았고 시야를 괴롭혔다. 생각보다 오랜 걸음으로 도착한 턱에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고 비가 그칠때까지 기다리려 슈퍼 앞에 몸을 쭈구려 앉아 휴대폰을 찾으니 소파 위 고히 두고온 휴대폰이 생각나며 깊은 한숨을 들이키고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늦었다고 우리 ㅇ여사 오랜만에 내려온 딸에게 등짝스매싱 날리는 거 아니겠지, 소낙비인줄 알았던 비가 점점 더 오래 굵게 쏟아지니 어디 버려진 비닐우산대기라도 없나 고개를 마구 돌리던 차 시야에 들어온 익숙한 운동화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은 것은 그도 알아챌만큼 컸으리라.
"칠칠아"
우산을 든 권순영이었다. 한심한듯 바라보는 표정은 덤으로 서 있는 그였지만 반가운 것은 역시 반가운 것이었다. 후에 비닐봉지를 앗아들고 피곤하게도 한다며 타박함과 동시에 안경을 쑥 빼가 물기를 소매로 닦은 후 제자리에 씌어준 권순영과 함께 길을 길을 걸었다.
세찬 빗줄기가 오롯히 들려오는 우산 안에서 느린 ㅇㅇ의 걸음에 기꺼히 맞추어 걷는 순영은 그녀 몰래 우산을 기울였다. 휴대폰도 가지고 나가지 않아 슈퍼까지 얼마나 뛰었는지, 비를 맞고 올까봐 주위를 얼마나 두리번 거렸는지 몰라도 상관 없었다. 더불어 고통스러운 한 밤 사건을 일으킨 그를 잡기 위해 제대로 찍힌 cctv영상 하나 없이 이주간 꼬박 서울바닥을 비롯해 약간의 낌새로 수많은 지역 새를 비집고 파고들었던 그 모든 순간을 꼭 영영 몰라도 되는 것이었다. 그냥 그저 알아주는 것보다 그녀 자체가 저에게 더 중점적 소중함이었으니, 그는 이따금 터무니없는 농담을 내던지는 그녀에 단순히 옅은 웃음만 주었다.
장마인가보다, 많이도 쏟아질 건 가보다. 내려질 거면 좀 더 세게 내리어라, 너의 비로 발걸음을 묶어주어라. 좀 더 오래, 같이 이 길을 걷게.
***
-ㅇㅇ가 모르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서울서초경찰서 신입 전정국입니다."
"바빠도 집중해, 이래봬도 수석이라던데. 모르는 건 우리 막내한테 묻고"
"아, 반장님"
뻑뻑해진 눈으로 cctv를 돌려보던 순영은 벌써 세번째 핫식스를 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시가 바쁜 거 아시지 않습니까, 날선 목소리였지만 반장은 그저 이리 질문이라도 답하며 쉬라는 말을 끝으로 믹스커피잔을 들고 자리를 떠 버렸다. 어젯밤 다리미로 다린 듯 각 잡힌 경찰복과 곧은 형세를 영혼없이 살피며 다른 cctv파일을 찾던 순영은 순간 스친 사진의 인물과 흡사한 인형과 이름에 파일을 찾던 손을 멈추고 일어섰다.
"초면에 뜬금없이 죄송하지만 서울중앙지검 ㅇㅇㅇ검사 알아요?"
"네, 알고 있습니다"
"무슨 사이에요?"
"네?"
혈육으로 묶인 가족도 아니고 생활의 곳곳이 궁금할 애인도 아닌 말하자면 현재 둘 사이의 관계는 친구였지만 순영 혼자의 입장으론 ㅇㅇ를 애석한 시간으로 보낸 뒤 꾸준히 바라보았던 입장이다. 앞뒤 싹둑 가위질 한 뒤 혼자 상황의 경계선을 긋고 불쑥 물어온 순영에 당황스러운지 자연스레 정국은 한 발짝 물러섰다. 상사인데, 왠지 초원의 맹수며 저는 그 앞 먹이감이 된 기분이란, 정국은 올곧한 순영의 시선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저의 시선을 피했다.
"...아는 누난데요"
"ㅇㅇㅇ는 동생 자체를 안 두는데요, 어린 거 칭얼대는 거 싫다고"
"어, 그러니까.."
"둘이 만나요?"
"네? 아뇨,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정말 그냥 아는 누나, ㅇㅇ누나 아니, ㅇ검사님 보좌수사관이랑 저랑 친굽니다. 설명이 길ㅇ,"
"..초면에 죄송했습니다. 점심 안 먹었으면 제가 사죠, 갑시다"
순영은 진심으로 좁은 어느 곳에라도 얼굴을 비집어넣고 싶었다. 순식간 어떤 연유로 일어난 의문적인 상황인지도 모른채 정국은 순영에게 날카로운 질문과 비꼼과 빠른 사과와 점심을 받았다. 후일담이지만, 두 사람은 한 철 일은 짝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하기도 했다고.
짝사랑은 이런 것이었다, 어린 소년의 짝사랑보다 더 짙어진 감정에서 순영은 운전대를 잡으며 헛웃음 지었다. 여전히 그녀를 공포감에 몰아넣은 이를 잡아야하며 수없는 밤을 수면에서 비껴나와 수사를 해야하지만 그저 열여덟 그녀의 생일날 찍은 바랜 사진이 꽂힌 지갑을 만지작 거렸다.
*
Plus: 그 밤, 한강
"저기요"
"저요?"
"네, 아까 일행분들이랑 있을 때 봤는데 너무 예뻐서.. 번호 좀 주실 수 있나 해서요"
"..아"
이십구년 인생에 꽃이 피는구나 아주. 제대로 된 연애고 뭐고 이런 훈남이 저에게 번호라니요, ㅇㅇ는 약간의 당혹감으로 그를 바라보다 저의 뒷편을 바라보았다. 그림 한 번 어두칙칙하네, 맥주캔을 들고 있는 네 사람의 형체를 둘러보고 ㅇㅇ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 ..그러시구나"
어떻게 머문 감정인지 그에 대한 짝사랑의 확신은 안타깝게도 정국에게 고갯짓으로 답했다. 그는 어느정도의 짐작이었을런지, 괜찮다며 웃었고 지나치려던 찰나였다.
"검사님?"
"민규씨?"
새로운 투샷이다, 이건. 무슨 상황인가, 편의점 봉투를 든 채 편안한 차림으로 정국의 곁에선 민규와 동공지진이 일어난 정국과 더 당혹스러운 ㅇㅇ였다. 곧 불꽃놀이가 시작할 시간과 맞물려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녀는 먼저 가겠다며 자리를 떴지만 후의 이야기론 민규와 정국은 고등학교 동창임과 동시에 절친한 사이임을 전해들을수 있었다.
그 밤, 한강의 시간은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절경의 끝자락을 보이었고 불꽃은 여러갈래로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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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와 정국이가 글 속에서라도 친하라고.. 설정을 넣어봤네여.
너무 길어서 렉 걸릴까봐 두 편으로 나눴습니다! 그 여름 안에서 하 편도 곧 올라올 예정이니 오래 기다리시지 않아도 될 것이라 말을 하고 싶은데.. 제가 내일 시골로 들어가서 오늘 새벽에 올라오지 않으면 약 일주일의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하지만 최대한 빨리 올릴 예정입니다. (하 편 80% 완성)
복숭아 이제 삼분의 이가 막 지났네요, 헛된 소리지만 그러니까 우리 그냥 복숭아 시즌 3 시즌 4 이러면서 평생 볼까요.. 내용은 뭐... 제 멘탈을 쥐고 흔들면 나오지 않을까요. 헛소리였네요, 마지막 인사하고 약히 취한듯한 작가는 물러가겠습니다. 우리 오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