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복숭아 시즌2 3화 역시
초록글에 올라갔습니다. 오래 기다려주신 모든 독자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정말 사랑합니다❤
복숭아 시즌 2
W. Bohemian Heal
"검사님 안 들어가십니까"
"이것만 마무리 하고 들어가려구요, 먼저 퇴근 하세요"
"밖에 비도 많이 오는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그럼 먼저 퇴근 하겠습니다"
"네, 월요일에 봐요"
봄이 어젯밤 휘감아 그 나른한 달콤함에 안겨 잠들었던 것 같은데 달력을 보니 유월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시간 한 번 징하게 빠르게 달리 나는 어느새 그 속도를 그리워만 할 뿐 더이상 따라잡으려 달리지 않았다.
민규씨의 말대로 일을 어느정도 정리한 뒤 몸을 틀어 창을 바라보니 유월을 반기는 세찬 빗줄기가 사무실 창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아, 우산 없는데. 물론 차도 두고 왔다. 점차 늦어지는 퇴근길에 자꾸 졸음이 폭우마냥 쏟아지니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이 요즘 들어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해버렸다.
"뛰어가지 뭐"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단순한 인간이었다. 옷이 젖어봐야 얼마나 젖겠느냐, 아직 감기가 완전하게 낫진 않았지만 심해져 봤자다 심보인 아주 천하태평한 자기합리화를 순식간에 끝내고 가방을 집어들었다. 엘레베이터 몸을 잠시 실었다 내려 로비를 지나쳐 걸어 빗속으로 달려가기 전, 혹 벗겨질 구두를 다시 고쳐신고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빠듯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조급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차였다.
"또 또,"
"최승철?"
빗속으로 뛰려는 나의 손목을 잡아 돌려세운 새로운 향에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내 두 눈을 응시하며 우산을 쥔 채 웃는 최승철이 서 있었다.
04: 남자사람친구 上
***
현재에서 딱 열걸음을 뒤로 걸은 그 시간과 매우 흡사했다. 함께 바다에 갔고 불꽃놀이를 보았으며 그 밤은 유독 찬 어둠에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뒷덜미를 감싸안는 바람이 선선했다. 바다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주 흡사한 이 순간에 늦은 퇴근길에 합류한 최승철은 맥주캔을 들고 나타났고 그는 내 곁에 앉았다.
"오늘 한강에서 불꽃놀이 한다던데"
"이십분 남았어, 야 내꺼 마시지마!! 니꺼 마셔!"
"아 한 모금만!!"
"아 내꺼 마셔. 내꺼"
권순영은 제 맥주캔을 건넸다. 참 별 것도 아닌 것이 전부 다툼이 되는 나와 부승관이 한심하다며 최승철의 캔을 쥐고 들이키던 이석민은 최승철에게 뒷통수를 맞았고 나는 권순영이 건넨 맥주캔을 받아들었다.
"우씨. 불꽃놀이 하기 전에 맥주 더 사올래"
"같이 가"
"됐어, 그냥 남자 넷이 좋은 그림 만들고 있지? 혼자 걸을래"
내 손목을 쥐는 최승철을 두고 편의점으로 걸었다. 머릿결을 쓰다듬는 바람 새 수놓는 여름향이 코 끝에서 춤을 추니 짙은 계절의 존재가 한발짝 앞에 서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저기요"
"저요?"
"네, 아까 일행분들이랑 있을 떄 봤는데 너무 예뻐서.."
급작스레 나를 불러세운 뒷편의 남자에 의문을 가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쑥쓰러운지 머리칼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아까 욕 밖에 안했는데 멀리 있었나보네.
"번호 좀 주실 수 있나 해서요"
"...아"
이런 상황을 기점으로 썸이 시작되고 연애가 시작되는 건가. 부가적으로 나는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못한 터였으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앞에선 훈훈한 이를 앞에 두고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머문 바람과 짧은 고민과 결국 입술을 열었다.
*
(작가 시점)
"아까 편의점 가는데 어떤 남자가 번호 물어봤다. 나 그런 거 처음이었는데 대박"
"헐"
"헐"
"뒷모습 보고 말 걸었나 보지. 거기 가로등도 어둡잖아, 뒤에서 너 불렀지? 백프로야"
"권순영 닥쳐"
ㅇㅇ는 유독 순영이 죽고 못살던 과자를 봉지에서 꺼내 던졌다. 니가 그럼 그렇지, 그동안에 대체 무엇을 기대한 건지. 권순영의 말에 공감을 하고 앉아있는 둘 또한 미웠다. 내가 그리 매력이 없나.
"11시다. ㅇㅇ야 앉아"
여름을 알린 이 밤은 매우 깊었고 그 어느 밤보다 이루어 형용하기 어려울 맑은 모습을 내보였다.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금새 돌아온 ㅇ는 순영의 옆에 앉았다. 곧 검게 채색된 도화지엔 여러개의 꽃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수시로 바뀌는 꽃잎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그녀는 도화지의 꽃처럼 환했고 연신 그녀의 양쪽으로 자리잡은 순영과 승철에게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열아홉 때 생각 나지 않아? 그땐 제대로 놀지도 못했지. 대박이다 진짜"
실로 무거운 법정에 수시로 서 냉정한 법률을 읊어대던 검사는 어디에 두었을까 그들 앞엔 오직 여직 도화지를 수놓는 화단을 동경하는 열아홉의 소녀 뿐이었다
순영은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줄곧 ㅇㅇ에게서 시선을 뗴지 않았다. 그녀가 밤하늘을 보건 저를 보건 그의 시선을 올곧았지만 이내 그녀를 지나쳐 오묘한 다른 시선과 허공 위 마주쳐 있었다.
"건배?"
"콜"
"아 지금 둘 다 술이 넘어가? 저거 좀 보라고!!"
"너나 보고 있어. 한 모금만 마시자"
순영은 ㅇㅇ의 고개를 다시 여실히 제 몫을 다하며 은하의 자수를 놓고 있는 하늘로 위치시켰고 승철이 든 캔에 저의 캔을 맞부딪혔다. 두 사람의 시선은 무척 완고했다. 두 사람의 침묵의 무게는 형용할 수 없이 무겁고 묵직했다. 승철은 캔을 비워 내려놓았고 시선을 거두었다, 두 사람의 감정은 이 기점으로 증폭되었다. 서로에게 양보란 더이상의 허용범위 안에 참여될 수 없었고 순영 또한 캔을 비운 뒤 시선을 거두어 ㅇㅇ의 머리 위 손을 턱 올리고 헤집었다.
초여름,의구심으로 가득했던 현 감정은 옆에선 별의 배열을 세는 이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으로 확신을 세웠고 바람이 앵초 위를 뛰놀았다. 이 하늘 어디에 에우로파 있는가, 오늘 하루 보고 싶구나. 자격으론 이미 충분히 보았을 에우로파여.
***
"피의자 인치를 왜 제가 합니까?"
"민규씨 지금 병가 냈어, 오늘까진데..어떻하냐. 나도 이따 3시 공판이야"
"알았어요. 피의자 인치하고 딴 거 시키기만 해봐 아주"
"고마워. 밥 살게"
"됐어. 나 가요"
피곤하다. 내 수사건도 아니건만 염치없이 달라붙는 양아치적인 선배의 부탁을 덥석 안고 나서는 걸음은 무척 귀찮았고 짜증이 밀어올라왔다. 인생 개기며 살라는 ㅇ여사 말을 한 번 실천해 볼 껄, 아주 호구가 따로 없구나.
"반장님, ㅇ검 왔어요!"
귀찮은 부탁을 들어도 일이니 얼굴을 접을 수는 없었다. 더불어 몇번 들락날락 하지 않았건만 매번 인상 좋은 얼굴로 나를 반기는 아버지뻘의 이 반장님 앞에선 더더욱. 여유로운 오후, 들이닥친 검찰청 이가 반가울리 없겠지만 반장님은 딸처럼 나를 반겼다.
"오늘은 서류가 많네요? 좀 쉬시지. 그러다 병 나요"
"오늘 우리 막내가 병가 냈어. 어제까지 잠복수사 하고 병났나벼, 아주 독종이야. 오늘 새벽에 넘기고 하루 쉰다네"
"아 그래서 분담, 쉬엄쉬엄 하세요. 이거 드시고. 아 맞다, 이번 건 수사 자료 어디에 있어요? 온 김에 가져가려구요"
"저기 벽 끝 쪽, 저기가 막내 자린데. 저기에 있어, 깔끔하게 잘 해둔 것 같던데 좀 수월할 거야"
"감사합니다"
벽에 붙은 자리는 굉장히 나의 자리와 비슷했다. 수없는 서류들과 복잡한 메모지로 넓은 책상을 도배했고 노트북을 특히하게 직각으로 두 대를 놓아놓는 습관이 닮았으며 근근히 굴러다는 펜과 가족사진이 놓여진 위치까지 비슷했다. 가족사진?
"..권순영?"
정확히 말하면 가족사진이 아닌 너와 나의 사진이었다. 열여덟 나의 생일 권순영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교복을 입고 이젠 시간에 묻힌 앳된 두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책상 위 먼지 한 톨 없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고 그 앞 그의 명패가 보였다.
강력 1팀 형사 권순영
생각보다 넌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수년간 엇갈린 것이었을까. 나는 사진을 집어든 손을 거둘 수 없었다.
*****
오랜만이에요, 정말 3화 고심 끝에 썼는데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이야..정말 감사드립니다. 기다려주신 독자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근데 이번 글은 노잼예약.
그리고 복숭아 제목이 약간 바뀌었죠? 승철이를 밀던 독자님들이 계신다면 희망을 가지세요. 전 반반의 확률로 글을 열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서로의 감정에 충실하기 시작하는 순영이와 승철이, 헣허헣.
(+뜬금포지만 민규와 정국이의 친목을 응원합니다)
다음엔 좀 더 매끄러운 작품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이번 글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네요.. 항상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